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414)
재벌집 만렙 아들-414화(414/416)
414.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우리 집.
예린이가 이곳을 그렇게 불렀다.
이게 뭐라고 가슴이 울렁거리냐.
예린이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방긋 웃었다.
“엄청 먼 길을 돌아온 기분이야.”
먼 길 돌아왔지.
네가 이곳으로 돌아오기까지 30년.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내가 널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거든.
“괜히 그리운 느낌이라고 하면…… 많이 이상할까? 헤헤헤.”
이상하긴 왜 이상해.
나도 지금 같은 기분인데.
“이렇게 오니까… 좋네.”
“나 지금 심장이 이렇게 마구 두근두근해.”
예린이는 녹아내릴 듯 달콤한 얼굴로 방긋 웃었다.
그 옛날의 너처럼.
“나 여기 엄청 좋은 것 같아!”
예린이는 신이 나서 이것저것 들춰봤다.
“우와, 이 철 밥상, 이 장미 담요, 이 은행 달력!”
그야 내가 똑같은 걸로 사놨으니까.
“이 밥그릇 국그릇, 물주전자랑 냄비에, 노란 장판과 줄 달린 형광등 스위치까지! 꿈이랑 너무 똑같으니까 엄청 신기해!”
예린이는 꺄르르 웃었다.
“오이 비누랑 빨래 비누도 그렇고. 곰돌이 세숫대야랑 빨간 고무대야까지 꿈에서 본 그대로야! 어쩜 이럴 수가 있지?”
예린이가 콧김을 뿜었다.
종종거리며 한참이나 곳곳을 들춰보다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근데 여긴 연탄보일러가 아니라 기름보일러네?”
그야 내가 바꿨으니까.
일찍이 어머니를 연탄가스로 잃었던 탓에 나는 연탄보일러를 질색했었다.
하지만 혼자 살 때와 달리 그녀를 냉골에서 재울 수도 없었다.
가난한 사랑은 서글펐다.
“못 보던 텔레비전이랑 세탁기에, 냉장고, 가스레인지와 선풍기까지 있네?”
그야 내가…….
예린이는 내 팔을 잡아 흔들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오빠, 밖에 눈!”
고개를 들어 반지하 창문을 보았다.
함박눈이 펑펑 내려 반지하 창문 앞에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오빠, 눈사람! 눈사람 만들자!”
예린이는 주머니에서 빨강 파랑 고깔모자 두 개를 꺼냈다.
“헤헤헤, 우리 눈싸움도 할래?”
* * *
“오빠는 바보야!”
예린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눈싸움하는데, 눈덩이 하나 안 던지는 게 어디 있어!”
“맞으면 아프잖아.”
“아팠어?”
아니, 왜 그렇게 미안한 눈이야?
“그까짓 것 맞아봤자 뭐 얼마나 아프다고.”
“그러니까!”
예린이는 허리에 양손을 척 얹고 나를 나무랐다.
“오빠도 있는 힘껏 나한테 눈덩이 던졌어야지! 내가 던지는 건 왜 다 맞아주는 건데!”
“안 맞으면 재미없잖아.”
“오빠는 바보야!”
예린이는 툴툴댔다.
“나 앞으로 오빠랑 눈싸움 안 할 거야!”
그거 다행이다.
난 앞으로도 너랑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았거든.
그게 눈싸움이든 뭐든.
“예린아.”
“나 엄청 화났…… 우와. 눈사람이잖아!”
예린이가 입을 떡 벌렸다.
“우, 우리가 아까 만든 눈사람 가족은 엄청 커다랬는데?”
“그건 창가에 못 놓잖아.”
나는 빨강 파랑 고깔모자를 씌운 작은 눈사람 한 쌍을 내밀었다.
예린이는 벙어리장갑을 낀 채 ‘맙소사!’ 하며 콧대를 짚었다.
“오빠는 어쩜 이렇게 눈사람을 예쁘게 잘 만들지?”
“마음에 들어?”
“엄청엄청! 헤헤헤.”
예린이는 눈사람 한 쌍을 두 손에 받쳐 들고 쪼르르 달려 나갔다.
그 옛날의 내가 했던 것처럼 눈사람을 반지하 창문가에 고이 놓아두었다.
예린이는 벙어리장갑을 탁탁 털었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뿌듯한 웃음이었다.
찰칵!
유종태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즉석 사진기 셔터를 눌렀다.
즉석 사진이 선명해지는 틈을 타서 유종태가 김이 폴폴 나는 머그컵을 슬쩍 내밀었다.
“으으, 두유는 텁텁해서 싫은…….”
“아가씨 건 요겁니다.”
“우와, 초코우유!”
나는 눈치 빠른 사내가 좋더라.
예린이는 따뜻하게 데운 초코우유 컵을 뺨에 대며 방긋 웃었다.
“아이, 따뜻해.”
“감기 걸리겠다.”
나는 예린이의 목도리를 꽁꽁 여며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응!”
유종태가 씩 웃었다.
“보일러 팡팡 틀어뒀고, 목화솜 이불도 펴놨으니까, 뒹굴대며 놀기 딱 좋으실 겁니다.”
난 손 빠른 사내가 좋더라.
유종태는 젖은 옷을 갈아입혀준 후, 예린이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며 물었다.
“아가씨, 저녁으로 먹고 싶은 거 없으세요?”
“짜장면이요!”
예린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군만두는 서비스!”
“탁월한 메뉴 선택입니다.”
유종태가 엄지를 들어 올렸다.
“그럼 짜장면 사 올 동안 이불 속에 쏙 들어가서 놀고 있으세요. 감기 들지 않게요. 알았죠?”
“네에.”
예린이는 예쁘게 웃으며 방문을 열었다.
목화솜 이부자리를 보고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모아 “와아아!” 하고 감탄했다.
이불 속에 쏙 들어온 예린이가 한껏 기분이 좋아서 활짝 웃었다.
“아, 너무 포근포근 따끈따끈해. 진짜 좋아!”
“그렇게 좋아?”
“응. 헤헤헤.”
예린이의 눈이 살며시 가늘어졌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아아…….”
예린이가 이부자리 옆을 탁탁 쳤다.
얼른 누우란 재촉에 마지못해 나란히 드러누웠다.
천장에 달랑거리는 형광등 줄이 익숙해서 기분이 묘했다.
“구질구질하지?”
나는 볼을 긁적였다.
“살림살이도 죄다 싸구려인 데다, 집안은 툭하면 냉골이고, 씻을 물 데우는 것도 일이고.”
“엄청 행복한데?”
“…….”
나는 예린이를 돌아보았다.
예린이는 졸린 눈을 억지로 뜨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오빠, 사실 이 원앙금침, 엄청엄청 귀한 거다?”
“시장 포목점에서 파는 싸구려 이불인데.”
“오빠는 바보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모르긴 왜 몰라?
동네 시장 포목점을 돌면서 이 이불을 찾아 사놓은 게 바로 난데.
예린이는 크게 하아암 하품했다.
예린이 머리 위에서 투명한 주작이 삐약거리며 뱅글뱅글 돌았다.
예린이가 꾸벅꾸벅 졸았다.
“이거 진짜 큰맘 먹고 샀던 거란 말이야……. 힘쓰는 사람이 꼬박 두 달이나 점심값을 아껴서…….”
……어?
알고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추운 겨울밤에 찹쌀떡, 메밀묵 장사까지 해서 어렵게 장만한 거였단 말이야…….”
예린이는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어쩌지 못하며 입술을 삐쭉거렸다.
“내가 매일 냉골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끙끙댄다고 오빠가…….”
“미안.”
나는 예린이의 조그만 머리통을 슥슥 쓰다듬었다.
“오빠가 바보 맞네. 예린이 마음도 모르고.”
“아니야…….”
예린이는 이불에 얼굴을 묻으며 졸린 눈을 완전히 감았다.
“오빠는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내 기분 내 상태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줬는데…….”
졸음이 잔뜩 묻어나오는 흥얼거림이었다.
“난 바보처럼 말을 못 해서…….”
그야 넌 실어증이었으니까.
드문드문 끊기는 말이 부드러웠다.
“행복했어……. 오빠와 함께여서 내 모든 순간들이 반짝반짝 눈부셨어…….”
예린이가 눈을 감은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언제고 다시 만나면 꼭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어…….”
예린이가 눈물을 또르륵 흘리며 잠들었다.
“그리웠어……. 내내…… 언제나…….”
“나도.”
예린이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면서.
30년 동안이나 그녀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멍하니 되뇌었다.
“나도 그랬어.”
자꾸만 눈가가 화끈화끈해져서.
나는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꾹 누르며 웃었다.
너를 만나면 나도 꼭 말해 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
“기다렸어, 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언제나 이 자리에서. 아주 오랫동안.”
네가 이렇게 돌아와줘서.
내가 이렇게 돌아오게 되어서.
나의 오랜 기다림은 마침표를 찍었다.
[삐약삐약!]여전히 예린이 머리 위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던 투명한 주작이 길게 울음을 토해냈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까지 보여줬어?”
[삐약삐약.]“설마 전부 다 보여준 건 아니겠지?”
[삐, 삐약?]이게 어디서 의뭉을 떨려 들어?
나는 가늘어진 눈으로 주작을 노려보았다.
“일곱 살짜리 어린애야.”
[삐, 삐, 삐야아악…….]“예쁜 것, 좋은 것, 귀한 것만 보고 들어도 부족한 애한테, 아무거나 막 보여주면 안 되지.”
[삐약!]주작이 목화솜 이불 위에 포르르 내려앉았다.
[지금 그 말은, 예린이가 꿈으로 전생을 보는 일을 막아달라 이건가?]“어.”
정확하게 알아들었네.
주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후회하지 않겠나?]주작은 쓰게 웃었다.
[보지 않는다면 잊어버릴 텐데?]“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나는 기억이라면 잊는 게 맞지.”
나도 잠든 예린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번 생에선 예쁜 것, 좋은 것, 귀한 것만 보고 듣자, 예린아.”
30년의 그리움은 너무 무겁잖아.
나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리는 일을 다시 겪게 하진 않을 것이다.
그게 설사 꿈이라 하더라도.
“그러니 잊어도 돼. 아니, 잊어버려.”
나는 작게 웃었다.
“내가 더 행복하게 해 줄 테니까.”
고로롱 작게 코를 고는 예린이의 동그란 콧방울을 톡 쳤다.
예린이는 잠결에 헤헤헤 웃었다.
“되도 않는 애첩 소리 할 생각 따윈 하지 말고. 알았어?”
나는 조심스럽게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곧 유종태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유종태라면 철가방째 공수해 와서 짜장면과 군만두를 내놓으며 능글능글하게 방문을 열어젖히겠지.
“도련……!”
“쉿!”
내 이럴 줄 알았지!
나는 검지를 세우며 경고했다.
“깨우지 말고 한잠 푹 자게 둬요.”
“눈밭에서 실컷 뛰어놀더니 노곤하셨나 보군요.”
유종태가 아쉬운 얼굴로 철가방을 들어 보였다.
“아쉽군요. 여기 제법 음식 솜씨가 좋아서 홀이 꽉꽉 찼던데요.”
철가방엔 ‘신장개업!’이란 글자와 함께 익숙한 상호명이 적혀 있었다.
전생에 예린이와 함께 다니던 신림동 중국집이었다.
“짜장면 다 불어 터지면 맛없는데 말입니다.”
유종태는 철 밥상을 펼쳐서 짜장면과 군만두를 척척 올렸다.
누가 보면 중국집 배달부 출신이라 생각할 만큼 능숙한 동작이었다.
“도련님, 시장하실 텐데 한 젓가락 하시죠.”
“잘 먹겠습니다.”
그리운 맛이었다.
그 옛날 예린이와 함께 먹던 짜장면 맛 그대로였다.
“유 팀장님, 아무래도 이 집 부술까 해요.”
“예?”
유종태는 깜짝 놀란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이 집 도배지 하나, 장판 하나, 살림살이 하나까지 전부 손수 골라 채워 넣으실 정도로 애착이 많았지 않습니까?”
그랬지.
“지은 지 몇 년 안 된 다가구 주택인 데다, 기름보일러로 교체하고 냉장고며 텔레비전, 세탁기 할 것 없이 전부 최신 제품으로 넣어서 꽤 쓸 만한 곳이 되었는데요. 마당도 넓고.”
그래서였다.
“이렇게 부수기엔 좀 아깝지 않습니까?”
나는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려앉는 창가에 나란히 선 작은 눈사람 한 쌍을 보았다.
“괜찮아요.”
그녀와 함께했던 반년과 내 30년의 기다림이 묻어 있던 곳.
미련함을 알면서도 떨쳐내지 못했던 내 미련.
“더 크고 좋은 집을 지으면 돼요.”
30년 해묵은 그리움으로 묶인 반지하에서 우리의 미래를 다시 논하고 싶진 않다.
과거는 과거로, 꿈은 꿈으로 흘려보내고.
미래는 내 손으로 다시 만들어 줄까 한다.
“뭣하면 전망 좋고 입지 좋은 아파트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요.”
이를테면 내가 강우를 위해 장만해 줬던 신혼집 같은 거 말이다.
“아파트요?”
“룸 7개, 욕실 4개, 세대당 주차대수 4대, 매매가 149억 원짜리 124평형 한강뷰 펜트하우스 정도?”
“…….”
유종태가 입을 떡 벌리거나 말거나.
나는 씩 웃었다.
“신림동은 이제 지긋지긋해서요.”
30년을 지박령처럼 살았으면 됐지.
신림동 개미지옥으로 사는 건 이제 그만 사양할까 한다.
“JH투자 사무실에서 연락 온 건 없어요?”
“그건 또 어떻게 아시고.”
유종태가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정씨 집안 5인방이 곡소리를 내고 있다는군요.”
내 그럴 줄 알았지.
“검토해야 할 일본의 금융사 자료가 덤프트럭으로 실려 오고 있답니다.”
유종태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일본 총리가 이번에 아주 작정하고 밀어붙이려나 보더군요.”
* * *
일본 총리의 새해 신년사 선언으로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제2차 석유 파동의 위기! 일본의 에너지 산업 구조, 이대로 괜찮은가!>
매일 신문과 방송은 집중 조명했다.
하루걸러 하루마다 에너지 특집으로 뉴스 속보가 편성되고, 신문 1면은 중동발 기사로 도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