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45)
재벌집 만렙 아들-45화(45/416)
< 투자자 >
차성준은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중동에서 그렇게 공사 수주를 많이 따왔는데, 어떻게 건설사 재정 상태가 이 모양인 거지?”
태성건설의 장부를 들여다볼수록 기가 찼다.
“대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었던 거야? 이 꼴을 아버지가 가만히 두고 보셨다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차성준은 장부를 탁 덮었다.
대신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아버지, 저 성준입니다. 태성건설 보유 자금 문제로 전화드렸습니다.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윤성이 놈이 맡았으니 적자를 보긴 봤을 텐데. 얼마나 심각하기에 목소리가 이리 심각해?
“이대로라면 지하철 2호선 공사를 따내도 완공 못 시킵니다.”
-뭐야? 그 정도야?
“문제는 또 있습니다. 지하철 2호선 예상 공사 금액은 약 1,800억. 정부에서 공사대금을 전부 지급해도 적자가 예상됩니다.”
차 회장의 한숨이 전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그래, 최소 300억의 적자는 우리가 떠안아야 한다. 대신 체비지는 우리 몫이 될 거다.
체비지는 도시개발사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사업시행자가 취득하여 집행 또는 매각하는 토지를 말한다.
-그거 팔아서 부족한 공사 경비를 충당해야지.
하지만 체비지는 후불이다.
보통 지하철역이 들어가고 건물이 눈에 띄게 많이 들어선 후 땅값이 폭등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체비지를 팔아도 제값을 다 받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다들 지하철 2호선 공사를 따내려고 눈이 벌게져서 달려들 거다.
“예, 지하철역 근처에 땅을 미리 선점해뒀다가 팔아치우면 떼돈을 벌 테니까요.”
-적자는 거기서 충당하고도 남아.
“아버지, 저는 그 정보를 팔아서 공사자금을 확보해보려고 합니다.”
-으음. 쉽지 않을 거다.
“사람들은 지하철 1호선 역이 들어간 지역 땅값이 폭등하는 걸 확실하게 목격한 바 있습니다. 정관계 고위직 인사들은 뒤탈 없는 비자금을 챙기기 위해 눈독 들일 만하잖습니까.”
-그거야 우리 태성이 지하철 2호선 공사를 따낸 이후에나 논할 문제지. 지하철 공사 입찰 심사에서는 건설사 보유 자금 현황도 중요하게 본다.
“그래서 당장 해결해야 하는 시급한 문제가 된 거죠.”
차성준은 한숨을 억지로 삼켰다.
“어쩔 수 없이 제 사재를 정리해서 태성건설에 집어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네가 가진 사재랄 게 뭐 얼마나 된다고?
“잊으셨어요? 제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호텔과 리조트를 짓고, 도로도 뽑았잖습니까. 그때 주변 토지를 미리 사서 되파는 방식으로 제법 주머니 두둑하게 챙겼습니다.”
-그래 봤자 택도 없다. 이참에 은행장들을 소개해주랴?
“은행권은 아버지가 이용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태성화학을 인수하려면 계열사 보유 자금을 전부 끌어오고, 은행 대출까지 풀로 당겨와도 어려울 것이란 거 압니다.”
차 회장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뭘 어쩌려는 셈이냐? 일단 네 사재를 처분한다 치자. 그럼 나머지 돈은?
“아무래도 사채를 빌려 써야겠지요.”
차 회장의 한숨은 전화기를 타고 흘렀다.
사람이 살다보면 돈 문제만큼 답답하고 막막한 일이 또 없다.
그건 큰 회사를 운영할 때도 마찬가지다.
-참. 아까 현무건설 오 사장이 전화했었다. 잔금은 내일까지 태성건설 통장으로 집어넣을 테니 땅문서나 얼른 넘기라더군.
“네?”
-수서동 아파트 부지 말이야. 너 그 의심병 말기 환자 현무건설 오 사장한테 제값 받고 땅 잘 팔았더라.
태성건설 통장에 뜻하지 않은 목돈이 들어온다는 소리였다.
-잘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냐? 현무건설 오 사장은 그리 호락호락한 놈이 아닌데. 저렇게 서두르는 꼴은 내 처음 본다.
“······.”
아버지, 저야말로 묻고 싶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전 수서동 아파트 부지란 걸 현무건설 오 사장에게 판 적이 없습니다만?
-성준아, 사채를 끌어다 쓰는 건 그만둬라. 돈은 내가 마련해 보마.
“아버지가요? 어떻게 하시려고요?”
-태성화학 인수를 포기하면 돼.
* * *
태성백화점에 들렀다가 한남동 우리 집에 도착하자,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다녀왔습니다.”
“아이고, 내 금쪽같은 내 새끼!”
“할아버지!”
“오냐, 할애비 왔다!”
정원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던 할아버지가 헤벌쭉 웃으며 달려와서 날 번쩍 안아 들었다.
겨드랑이에 손을 끼우고 몇 번이나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았을까.
“아이고, 어지러워서 더는 못 하겠다.”
“헤헤헤.”
“저녁 아직 안 먹었지? 네 할머니가 맛있는 반찬을 잔뜩 만들었더라. 얼른 가서 먹어 봐라.”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도 같이 먹어요.”
“아니다. 할애비는 네 아빠랑 잠깐 의논할 일이 있어서.”
무슨 용건인가 했더니, 태성건설 문제였구만.
할아버지는 2층 서재로 올라갔다.
생각 같아서는 나도 따라 올라가고 싶었지만, 어머니한테 딱 걸린 이상 내뺄 수도 없었다.
얌전히 밥상을 받는 수밖에.
“정혁아, 대체 오늘 하루 종일 어디서 뭘 하고 놀았니?”
“······골목대장들을 만나고 왔어요.”
이거 전(前) 시대의 거물들에게 초대장을 배달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뭐 하고 놀았어? 재밌었어?”
“······그냥 야바위하는 거 구경하다 왔어요.”
이거 여태 도박장에서 도박하다 왔다고 말할 수도 없고.
“크흐흡!”
“크흡!”
같이 밥상을 받았던 철구 아저씨와 유종태가 밥풀을 뿜었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주는 대로 먹고 튀어야 할 때!
나는 모른 척 젓가락을 빠르게 놀렸다.
‘어이, 수호신!’
[또?]오늘 종일 패를 훔쳐본 저승사자는 유독 다크서클이 짙어진 얼굴을 들었다.
[······나도 좀 쉬자.]‘쉬는 건 죽은 다음에 해도 안 늦어.’
[으흐흑, 시야 공유!]* * *
아버지 서재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책상 위에 산더미같이 쌓아 올린 서류 산이었다.
아버지는 책상에 몸을 파묻다시피 서류를 처리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밤을 새워 가며 쉬지 않고 종일 일하느라 부쩍 초췌해진 얼굴이었다.
“오셨습니까?”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기에 내가 온 줄도 몰라? 저녁은 먹으면서 일하는 게냐?”
“죄송합니다. 보시다시피 워낙 일이 많이 밀려 있어서요.”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내가 더 미안하지. 못난 숙부 때문에 네가 욕봤구나.”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어깨를 작게 두드렸다.
“일할 때 하더라도 끼니는 챙겨 먹으면서 해라.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예.”
“여기 앉아 봐라. 네 엄마가 너 왔다니까 이것저것 많이도 만들어 놨더라.”
할아버지는 7단 도시락을 꺼내 응접실 테이블 위에 올렸다.
“네 엄마 성의를 봐서라도 한 입만 들어 봐라.”
그제야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 소파로 향했다.
할아버지에게 상석을 내어주고 본인은 차를 준비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저 때문에 애써 키운 태성화학을 포기해야 하다니. 면목이 없습니다.”
“됐어. 매년 수백 개의 회사가 생겼다가 또 사라져. 사업 한번 말아 먹는 거야 이 바닥에선 일도 아니지.”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내어준 차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회사는 다시 만들면 돼. 하지만 가족은 한번 잃으면 다시 얻기 어렵다.”
수증기가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꿀차였다.
“내가 든든한 혼맥을 맺어주려던 것도 이게 다 내 새끼 좋은 일이겠다 싶었다. 믿을 만한 언덕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겠단 욕심이었어.”
할아버지는 꿀차를 후후 불어 호로록 마셨다.
“하지만 평양 감사도 저 싫다면 그만이지. 네가 싫다는데 든든한 처가가 다 무슨 소용이야. 나는 너만 잘 살면 돼. 다른 건 다 괜찮다.”
“감사합니다. 언제고 이 손해는 제가 꼭 갚겠습니다.”
“그것도 됐다. 이해득실 따지면서 피곤하게 구는 건 회사 일만으로도 충분해. 우리 가족끼리 그렇게 야박하게 살지 말자.”
할아버지는 씩 웃었다.
“나는 전쟁을 겪었잖냐. 힘든 시절이었다. 가졌던 모든 기반을 다 잃고, 맨손으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여기서 회사 몇 개 잃어봤자, 내겐 남는 장사야.”
“아버지.”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날 일으켜준 건 처자식들이었어. 곤히 자고 있는 얼굴만 봐도 피곤이 가시고 내일을 버텨낼 힘이 솟아나더라.”
할아버지는 회상에 잠겨 그 시절을 떠올리는 듯했다.
“너도 네 처자식을 지키려고 이 고생을 자처한다는데, 내가 왜 그 심정을 몰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널 도와줘야지.”
“죄송합니다.”
“태성화학도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네 몫으로 준비한 것이고. 네가 싫다면 나도 미련 없다. 그러니 그리 미안한 얼굴 할 것 없다.”
할아버지는 꿀물을 한입에 털어 마신 후, 찻잔을 내려놓았다.
“뭐 들인 돈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많지 않아. 그러니 싼값에 좋은 경험 한 셈 치면 그만이지. 과거란 미련은 그만 버리고, 지금부터는 미래를 준비하자.”
“예, 아버지.”
“송년의 밤. 거기서 우광을 만나겠지. 난 거하게 선전포고를 할 생각이다.”
“선전포고요?”
“어차피 깨어진 혼사. 이번 송년의 밤에 내 며느리와 손자를 소개하고, 우광과 깨끗하게 정리해야지. 난 내 금쪽같은 손자를 혼외자식, 더러운 사생아로 키울 생각 없다.”
할아버지는 후련해 보였다.
“너도 만인들 앞에서 당당히 보여줘라. 네가 선택한 사람들이 누군지, 태성의 위상이 어떤지. 내 이번 지하철 공사에 힘을 단단히 실어주마.”
“감사합니다.”
“되도록 화려하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야 할 거야. 네 처자식 손가락질받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좋아. 우리는 거기서 태성건설이 만들어낼 희망과 가능성만 보여주자고.”
“태성이라면 이번 지하철 공사를 반드시 따낸다는, 그런 확신을 심어주겠습니다.”
“좋아. 원래 주식도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지. 일이 성사될 것 같으면 돈과 사람은 자연히 따라붙는다. 사람들은 대세를 따라. 우리 태성이 대세를 만들면 돼.”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도시락밥 위에 불고기 한 점을 올려 주었다.
“송년의 밤이 끝나고 마음 편히 식구들끼리 새해 아침 식사나 같이하자. 가족들에게 네 처자식을 소개해 줘야지. 가족들만 모르고 있으면 섭섭하지 않겠냐.”
“예, 그렇게 할게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너는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지하철 공사 준비만 잘하고 있어. 우광을 몰아넣는 건 내가 하마.”
이미 여론을 움직일 협박 쪽지도 돌린 후다.
“자금 문제도 마찬가지야. 사채도 내가 알아서 처리할······.”
그때였다.
띵동! 띵동띵동!
김 비서는 거침없이 서재로 걸어왔다.
“회장님, 도련님. 돈 가져왔습니다.”
태성그룹 경호원들이 통째로 뜯어온 금고와 묵직한 여행 가방을 내려놓았다.
쿵!
“현금 약 30억 원 정도 됩니다.”
“30억?”
“그것도 전부 현금으로 말입니까?”
30억 원이라면 강남 아파트가 대체 몇 채인가.
아무래도 차용증에 적힌 하우스를 돌며 금고의 돈을 탈탈 털어온 모양이다.
김 비서는 말했다.
“투자자가 태성건설에 50억쯤 투자하겠다는군요.”
“투자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좀 말해봐!”
“투자 조건이 뭡니까? 투자자는 누굽니까?”
김 비서는 빙그레 웃었다.
“죄송합니다. 투자자가 입 다물길 원하시는지라. 하지만 송년의 밤에 다른 투자자들도 확인할 수 있을 거라 하셨습니다.”
“송년의 밤에? 다른 투자자들까지 있단 말입니까?”
“예. 이렇게 손이 큰 투자자가 나타났으니, 태성건설의 자금 부족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겁니다.”
“좋아! 그럼 판을 더 키워야겠다.”
할아버지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김 비서, 한경련 전화번호부 좀 가져와!”
“예, 알겠습니다.”
“고위 공직자들 전화번호부도 함께!”
“예.”
“현무건설 오 사장에게도······.”
“투자자가 말씀하시길, 현무호텔 주인에게는 미리 허락받은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
할아버지의 표정에 화색을 돌았다.
“그것참 잘되었다! 어찌 일이 이리 술술 풀릴까. 마치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 같구나.”
* * *
나는 저승사자와의 시야 공유를 끊었다.
‘투자자.’
김 비서가 고른 그 한 단어가 내 가슴에 팍 꽂혔다.
‘익명의 투자자. 투자 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후원자. 여차하면 강제력을 행사할 수도 있는 권리자.’
괜찮은데?
일곱 살이란 나이 때문에 손발이 묶여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게 너무 답답했다.
난 초대장 하나 얻어오는 것도, 도박판에 한번 뛰어드는 것도 대리인을 써야 했다.
-태성의 이름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서.
-일곱 살 꼬마란 것이 도드라지지 않도록.
유종태나 철구 아저씨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이럴 수도 없지 않나 싶어서 짜증이 났었는데.
‘내가 투자회사를 세운다면?’
나는 한참을 방 안에서 서성였다.
밤이 깊어갈수록 고민은 더 깊어졌다.
그렇게 송년의 밤이 되었다.
< 투자자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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