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46)
재벌집 만렙 아들-46화(46/416)
< 송년의 밤 (1) >
현무호텔에서 열리는 송년의 밤 행사.
연말연시를 맞아 불우한 이웃을 돕는 자선 바자회 및 후원의 행사다.
현무호텔 정문 앞에 우리가 탄 차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
탁.
아버지가 먼저 내려서 어머니를 에스코트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란히 섰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한 쌍이었다.
나도 아버지와 같은 컨셉의 도련님 양복을 차려입고 함께 섰다.
내 손까지 마저 잡은 아버지가 자신만만하게 싱긋 웃었다.
“들어가자.”
뉴스에서나 볼 법한 정재계 주요 인사들과 각계각층의 저명한 사회 지도자들이 대거 모인 자리였다.
홀에서는 연주자들이 모여서 합주했다.
초대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서 분위기를 주도했다.
종업원들은 쟁반 위에 샴페인을 얹어서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송년의 밤이 이런 행사였나?’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 와보긴 나도 처음이었다.
이건 우리 같은 음지 인사들에게는 입장부터 허락되지 않은 행사였으니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 필요할 때는 다들 우리한테 무릎걸음으로 기어와 쩔쩔매도.
상류층 인사들은 우리를 그들의 울타리 안에 넣어주는 법이 없었다.
‘막상 와보니 별것도 없네.’
남산 찰거머리의 화려하고 정신 나간 파티에 비하면 이건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내가 알던 사람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건 흥미롭군. 다들 한가락 하던 양반들이 지금 여기선 애송이 취급이나 받고 있고 말이야.’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샴페인을 마셨다.
가볍게 오가는 안부 인사에 섞여서 고급 정보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갔다.
도시 개발 계획부터 요즘 오르고 내리는 주식은 물론, 외교 정세와 외국기업 현황 등이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할아버지 곁에서 수행하고 있던 김 비서가 날 발견하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화장실 다녀올게요. 김 비서님께 부탁할 테니, 아빠는 엄마랑 같이 먼저 가세요.”
“그래.”
나는 김 비서의 손을 잡았다.
따로 물어볼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따로 초대한 손님들은 도착했어요?”
“아직입니다.”
“그럼 이따 말대가리가 오거든 넌지시 알려주세요. 오늘 여기엔 한국마사회 사람들이랑 뚝섬 서울 경마장 관계자들은 물론 경마장에 입점한 은행 지점장도 참석한다고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대가리는 태성에 순순히 협조하겠다고 약속했지, 다른 의미로 난장을 치지 않겠다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말대가리는 경마장까지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남자다.
“여기서 눈 밖에 나지 말아야 경마장에 사채 창구를 들이밀 기회라도 있을 거라고 일러주면 알아서 처신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참, 편지를 돌렸던 사람들 말이에요. 반응은 어때요?”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김 비서는 한쪽 입꼬리를 미미하게 올렸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우리 쪽 의원들 몇 명을 바람잡이로 투입해 논점을 흐리고, 여론을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좋아요.”
나는 그제야 아버지 곁으로 돌아갔다.
여기저기서 소곤대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하지만 음악 소리와 웃음소리에 묻혀서 말이 깨끗하게 들리지 않았다.
‘어이, 수호신.’
[소리 공유냐, 시야 공유냐?]‘내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가르쳐줘야겠어? 그냥 홀을 돌아다니면서 쓸만한 대화나 상황만 골라서 보내.’
[······어렵군. 알았다.]저승사자가 스르륵 사라졌다.
연기처럼 흔들리며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 * *
순간 눈이 확 밝아졌다.
시야 공유였다.
표정이 안 좋은 세 사람이 몹시 작은 소리로 귓속말을 건넸다.
“며칠 전에 매우 기분 나쁜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결제 서류 사이에 끼워져 있더군요.”
“그쪽은 결제 서류였습니까? 저는 국회의사당 복도 벽에 붙어 있던 종이를 떼어냈지요.”
“아찔했겠습니다. 전 화장실에서 받았는데 어질어질합디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묘해졌다.
우광의 뇌물을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던 터였는데.
말을 나눈 덕분에 짐작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우광이 이 정도밖에 안 될 줄이야.”
못마땅한 목소리였다.
“문제는 그게 누구의 손에 들어갔냐는 겁니다. 설마 태성?”
“태성이요?”
난데없이 대화에 끼어든 목소리에, 몰래 말을 나누던 세 사람은 기겁했다.
돌아보니 야당 쪽 의원이었다.
“최 의원!”
“아까부터 편지가 어쩌고, 태성이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혹시 이걸 말하는 건가 싶어서 말입니다.”
최 의원은 품에서 곱게 접은 종이를 한 장 꺼냈다.
협박 편지를 운운하던 세 사람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보자마자 박박 찢어서 없앴던 종이였다.
“그, 그런 걸 어찌 사람들 앞에 들고나올 생각을 하셨습니까?”
“당장 불태워버리지 않으시고요. 배짱도 좋으십니다.”
“배짱이요? 이게 뭐 대수라고요.”
최 의원은 종이를 펴 보였다.
<태성은 모든 면에서 우광 이상입니다. 이번 지하철 2호선 공사는 반드시 태성이 따내겠습니다. 공정한 입찰 경쟁이 되도록 최 의원님께서도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야당 최 의원이 받은 종이는 그들이 받은 것과는 내용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최 의원은 엄지로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알고 보니 똑같은 편지를 받았다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심지어 태성의 차 회장님까지도 비슷한 편지를 받았다고 하시고······.”
“똑같은 편지?”
“게다가 태성의 차 회장님도?”
최 의원은 피식 웃었다.
“태성의 뒤에 대단한 후원자가 붙은 모양입니다. 저한테까지 이런 편지를 보내서 태성을 밀어달라고 부탁할 정도니.”
“태성에 붙었다는 후원자가 누굽니까?”
“그야 저도 모르죠. 태성의 차 회장님이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저도 그 정체가 궁금합니다. 하하하. 저도 후원 좀 받았으면 좋겠네요.”
협박 편지를 받았던 자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짧은 시간 오가는 눈짓에는 수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그들은 최 의원을 남겨두고 할아버지를 찾아 사람들 사이를 헤쳐 나갔다.
내가 부른 바람잡이는 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 김 비서님이 동원한 바람잡이는 맹활약 중이었다.
“차 회장님!”
그들은 홀 중앙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태성건설을 후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입니까?
“그럼. 살다 보니 이런 후원도 다 받아봅니다. 누군지 몰라도 이거 아주 든든합니다.”
할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그들은 할아버지가 보란 듯이 내밀고 있는 종이를 빠르게 읽어내렸다.
<태성이 우광에게 밀릴 까닭이 있습니까? 제가 뒤에서 버티고 있는 한 태성이 지하철 공사를 따내지 못할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 함께 역사에 남을 대공사를 성공시켜 봅시다. 제가 태성을 적극 후원하겠습니다.>
그들은 흔들리는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할아버지는 샴페인 한 모금으로 입가를 축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런 기대를 받았으니, 부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군요. 이번 지하철 2호선 공사는 반드시 우리 태성이 따내야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태성건설 앞으로 들어온 투자금이 현금으로만 30억입니다.”
“30억?”
“벌써 투자자들이 달라붙었습니까?”
사람들의 눈이 달라졌다.
투자자가 붙었다는 건 돈 냄새가 풍긴다는 소리였다.
수군대는 소리가 커졌다.
“어음이라면 모를까. 현금 30억을 단번에 동원할 만한 투자자가 있었나?”
“혹시 외국에서 차관을 끌어온 게 아닐까요?”
“듣자 하니 중동에서는 오일 머니가 넘쳐나고, 태성건설은 중동에 진출해 공사 수주를 활발히 따오고 있다는군요.”
“일리 있어. 국내에선 웬만한 은행들도 그런 거금은 쉽게 못 움직이지.”
저승사자 덕분에 귀엣말로 작게 수군대는 소리까지 깨끗하게 들렸다.
사람들은 어느새 아버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태성그룹 막내아들이 중동에서 굵직한 건설 공사를 따왔다는 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지난번에는 사우디 왕실에 귀빈으로 초청되었다던데요. 기름값 협상하러 사우디 갔던 삼황정유가 그거 보고 놀라서 눈 비비고 다시 봤다잖습니까.”
“생긴 것도 특출나게 잘생겼다던데, 수완까지 뛰어난 모양입니다. 중동에 오래 나가 있던 사람이 왜 귀국했나 했더니. 차관 때문이었나 봅니다.”
어느새 태성그룹의 후원자는 중동 쪽 인사로 확실시되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오히려 달가운 오해였다.
이제 곧 전 시대의 거물들도 입장할 테고.
태성그룹이 거액을 후원받는다는 것을 다들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 이참에 우리도 어떻게 중동에 끈을 대서 차관 좀 끌어올 수 없을까요?”
“저 친구가 네 또래쯤 되지? 친교를 다져봐라. 비즈니스는 원래 친분에서 시작되는 거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같이 위로 올라가는 거지.”
“예, 그럼 잠깐 다녀올게요.”
가뜩이나 잔뜩 꼬이는 똥파리는 앞으로 더 많아질 예정이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 * *
저승사자와 시야 공유를 끊었다.
‘다들 지하철 공사와 오일 머니에 관심이 많군.’
지하철 2호선 공사 입찰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태성과 우광 중에 누가 지하철 공사를 따내느냐에 따라 저들의 주머니 사정도 달라질 터였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비즈니스는 원래 친분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각자 끈을 대는 곳에서 흘러나온 정보로 이득을 취할 테니까.
‘이런 자리에서 오가는 고급 정보만으로도 주머니 두둑하게 벌 수 있는데, 지하철역이 어디 들어서는지만 알게 되면 시세 차익을 엄청나게 볼 테지.’
그런 이유로 유독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근처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일 터.
지하철 2호선 공사에 관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서였다.
어느새 아버지 근처에 슬금슬금 모이는 젊은 사람들도 꽤 많아졌다.
“성준아, 오랜만이다. 너 군대 가고 벌써 몇 년 만이냐?”
“왜 이렇게 혼자 바빠? 그동안 잘 지냈어?”
당연히 아버지 옆에 선 나와 어머니도 관심을 받게 되었다.
“누구야? 여기 이 엄청난 미인은?”
“이 꼬마 도련님은 또 누구고? 생긴 게 왠지 너 어렸을 때랑 똑같은 게······.”
그들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설마, 하는 의문이 표정에 다 드러났다.
아버지는 담담하게 우리를 소개했다.
“인사해. 내 아내 이수진, 그리고 내 아들 차정혁.”
“이수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차정혁이에요.”
우리가 인사하자 다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뭐?”
“잠깐, 성준아! 너 지금······!”
“우광과의 혼사는 어쩌고? 이게 다 무슨······!”
할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성준이 친구들이구나. 우리 며느리랑 정혁이 잘 부탁한다.”
태성그룹 총수가 공언했다.
근방에 모였던 사람들 사이로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를 훑어내리는 시선이 잔뜩 달라붙기 시작했다.
집요하고, 뜨겁고, 날카롭고, 냉소적인 시선이었다.
“차 회장님, 막내아드님을 결혼시켰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것 같군요.”
“그렇게 됐습니다.”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이 급격히 많아졌다.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그럼 우광과는 어떻게······.”
그때였다.
“우광이 도착했다.”
“우광그룹 총수 일가와 우광 계열사 사장단이 온다.”
홀에 모인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순간 멎었다.
잠시 후, 우광건설 사장과 우광그룹 총수를 비롯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홀에 도착했다.
가장 앞에서 걷고 있는 건 지팡이를 짚으면서 크게 절뚝이는 남자였다.
‘우광그룹 총수 김우광이로군.’
내가 스승님 밑에서 심부름을 다닐 때, 우광그룹 김 회장은 보통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더 정정한 모습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특유의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은 여전해 보였다.
“······.”
어느새 연주자들의 합주 소리가 작아지고, 초대 가수의 노래도 끝났다.
사람들은 그들의 입장을 빤히 지켜보았다.
협박 편지를 받았던 몇몇 사람들은 대번에 눈이 험해졌다.
어디선가 빠드득, 이 가는 소리도 들렸다.
우광건설 사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 송년의 밤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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