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5)
재벌집 만렙 아들-5화(5/416)
< 성의와 보답 >
나는 복도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바라봤다.
이제 새벽 2시 40분.
‘이 시간에 대뜸 전화하면 실례겠지?’
첫인상에 두 번의 기회란 없다.
‘만일 의사가 어머니의 고압 산소 치료를 거부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전화는 다음에 거는 게 좋겠군.’
대신 전화번호를 외워두었다.
철구 아저씨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어이, 꼬맹이. 졸리면 자.”
“안 졸린데요.”
“여차하면 진짜 간첩 신고 하려고?”
“필요하다면.”
하품하다 말고 철구 아저씨가 홱 돌아봤다.
“의사가 책임지고 치료한다잖냐. 아저씨가 여기 지키고 있을 테니까, 허튼수작 부릴 생각하지 말고 꼬맹이는 이만 자라.”
“됐어요. 난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못 믿··· 으갸아악!”
또 당하고 말았다!
철구 아저씨는 내 볼을 양쪽으로 쭉 잡아 늘이면서 혀를 찼다.
“이놈의 꼬맹이가 진짜. 뇌물도 모자라서 협박질에 의심병까지, 엉?”
“갸아앙으엑···!”
“믿어라, 좀! 의사도 믿고, 네 엄마도 믿고, 이 아저씨도 믿고! 어렵냐?”
“······.”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양 볼이 얼얼했지만 아까처럼 멀찌감치 물러나서 문지르지 않았다.
대신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아저씨를 제가 왜 못 믿겠어요. 감사 인사가 늦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아저씨.”
나는 은원을 확실히 갚는 사내다.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준다는 게 내 철칙!
철구 아저씨는 또 두 눈을 꿈뻑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우리 엄마는 돌아가셨을지도 몰라요.”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저승사자가 사망선고를 했었다고.
나는 과거 어머니를 무력하게 잃었고, 그건 내 평생의 한으로 남았었다.
“화급을 다투는 응급상황이었는데, 선뜻 어머니를 병원으로 옮겨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통금 시간이라 오가는 택시도 없었고, 오밤중에 남의 집 트럭 빌리는 것도 어려웠을 거예요.”
이번엔 철구 아저씨가 풀악셀 밟고 달린 덕분에 어머니는 늦기 전에 치료받을 수 있었다.
“말로만 감사할 일이 아니란 거 알아요. 하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일뿐인걸요. 정말 감사합니다.”
“됐다. 뭐 이런 거로.”
“감사 인사가 너무 초라하죠? 매일 감사 편지라도 써서 보낼까요? 그건 제 성의라 치고요.”
“진짜 됐다니까.”
나는 씩 웃었다.
“이 은혜는 언제고 꼭 갚을게요. 이건 제 맹세예요.”
철구 아저씨는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꼬맹아, 사나이 맹세는 함부로 막 하는 거 아니다.”
“난 내 입으로 한 맹세를 함부로 막 깨는 사내가 아니거든요?”
나는 아까 주워둔 담배를 아저씨 입에 물려서 반론을 원천봉쇄했다.
그러고는 어머니 가방에서 오백 원짜리 지폐를 꺼냈다.
거북선이 그려진 거 말이다.
“그리고 요건 변변찮지만 제 진심 어린 보답이라고 쳐주세요.”
“보답?”
“도움에 보답이 빠지면 섭섭한 법이잖아요. 마침 출출하시죠? 입 심심하시죠? 이럴 땐 뭐다? 휴게실 자판기 커피 한 잔이죠. 따라와요.”
나는 병원 의자에서 내려와 철구 아저씨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난 율무차, 잔돈은 아저씨 팁, 커피 한잔 마시면서 담배 한 개비 땡기면 끝내주겠죠?”
“허······.”
“왜요? 내 진심이 너무 초라해요?”
“그럴 리가.”
철구 아저씨는 또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하, 이 꼬맹이 진짜 뭐냐.”
아저씨가 내 옆구리에 팔을 끼워넣더니 날 달랑 들어 올렸다.
“으갸악!”
아무리 버둥거려도 꿈쩍도 않는다.
일곱 살짜리 몸뚱이는 너무 가벼웠다.
철구 아저씨는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대충 찔러넣은 채 성큼성큼 걸었다.
그럴 때마다 내 몸은 위아래로 크게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내려줘요!”
“꼬맹이가 맨발로 어딜 가려고. 가만히 있어.”
철구 아저씨는 씩 웃었다.
“아저씨 믿는다며? 설마 그거 빈말이었어?”
“······.”
이것 참. 사나이 존심이 있지.
나는 얼굴을 한껏 구긴 채 몹시 불만스럽게 툴툴거렸다.
“아까 연탄가스 마셔서 속이 안 좋거든요? 살살 다뤄주세요.”
“허······.”
철구 아저씨는 즉시 옆구리에서 날 빼내 목마를 태워주었다.
중심이 잘 안 잡혀서 아저씨의 머리를 꽉 잡았다.
과거엔 단 한 번도 타본 적 없던 목마를 이렇게 타보네.
기분이 썩 괜찮았다.
정말로 나쁘지 않다, 이거.
“헤헤헤.”
내 입에서 나왔다기엔 믿기 힘들 만큼 아이다운 웃음소리였다.
그걸 내 귀로 듣는 게 너무 어색해서 문제였지.
웃음소리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입을 꼭 다물었지만, 올라간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왠지 뱃속이 간질거리는 기분이랄까.
“헤헤헤.”
아, 이런. 웃음 참기 대실패.
젠장, 어린애 몸뚱이란.
철구 아저씨가 성큼성큼 걷자, 우리는 순식간에 후원에 위치한 병원 휴게실에 도착했다.
“와.”
이게 바로 70년대 자판기!
21세기에는 이런 자판기도 많이 사라져서 잘 안 보이던데.
지금 이 시대에는 완전 최신식 외제 신문물 그 자체!
1977년에 록산산업이 일본 샴프사로부터 커피 자판기 완제품을 400대 수입해서 설치했다더니.
최고급 식당이나 호텔, 서울역 같은 데에만 들여놓았단 소리는 풍문으로 들었는데, 이걸 태성병원에서 보네?
요즘 태성그룹에서 투자금 왕창 받아서 규모 키웠다더니.
최신식 고압 챔버 시설도 그렇고, 커피 자판기도 그렇고.
돈 들어가는 거 보니까 병원 살림이 얼마나 폈는지 확 와닿는다.
“이야.”
커피가 무려 100원이나 한다!
짜장면 한 그릇이 300원이고, 이발비가 200원인데, 자판기 커피가 뭐라고 한 잔에 100원이라니.
‘그래도 쓸 땐 써야 하는 법.’
철구 아저씨는 환금 레버를 돌리려고 했다.
“무슨 자판기 커피가 백 원이나 해? 이 돈이면 다방 커피 마시겠다.”
하지만 난 손바닥을 쫙 펴서 막았다.
“사내가 귀한 도움에 감사의 뜻을 담아 보답할 땐 푼돈을 아껴선 안 돼요. 저 오늘 사치하기로 결심했어요.”
“엄마 돈으로 막 선심 써도 되냐?”
“우리 엄마 목숨값은 고작 오백 원짜리가 아니거든요. 내 맘 같아서는 전 재산을 탈탈 털어드려도 아깝지 않아요.”
눈 딱 감고 율무차 버튼을 꾹 눌렀다.
이것만 50원이더라고.
“빨리 말 안 하면 아저씨도 율무차 뽑아줄 거예요. 참고로 이거 되게 텁텁해요.”
“커피는 역시 블랙이지.”
달칵.
블랙커피 향이 참 좋았다.
70년대에는 원두를 갈아서 내렸다더라고.
“담배는 저기 구석에서 눈치 보지 말고 느긋하게 피시고요.”
달그락.
아저씨가 잔돈 환금 레버를 돌리는데.
“왜 안 나와?”
달그락달그락, 쿵.
아저씨가 주먹으로 커피 자판기를 내려치는 순간.
촤르르륵.
커피 자판기가 동전을 미친 듯이 뱉어내기 시작했다.
10원짜리, 50원짜리, 100원짜리 동전이 사방팔방 팅팅거리며 쏟아졌다.
“······.”
“······.”
한눈에 봐도 족히 만 원은 되어 보이는 동전을 보며 철구 아저씨가 헛웃음을 흘렸다.
“아까 잔돈은 나더러 팁 하랬던가?”
내 초라한 진심에 하늘이 성의를 보태 준 건가.
* * *
‘기분 좋아.’
따뜻한 품이었다.
향긋하고 그리운 냄새.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감촉.
젊은 여자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그래, 우리 어머니가 딱 저렇게 웃곤 하셨······.
‘어?’
정신이 확 들었다.
간밤에 일반병실로 옮긴 어머니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날 품에 안아 재우던 어머니가 활짝 웃었다.
“우리 아들, 잘 잤니?”
“······!”
무려 45년 만이었다.
꿈에서라도 한 번 볼까 그렇게 한처럼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다시 만났는데.
난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 했다.
“어, 어······.”
금붕어가 된 것처럼 입만 뻐끔댔다.
어머니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을 뿐이었다.
다시 숨이 트였던 그때처럼 호흡이 급격하게 가빠왔다.
이젠 기억에서조차 흐릿해진 어머니의 얼굴을 꼼꼼하게 뜯어보고 말리라는 결심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그저 눈앞이 뿌옇게 차올랐다.
“어, 엄마······!”
맞닿은 살결이 따뜻해서.
콩닥콩닥 들려오는 심장 소리가 감격스러워서.
또렷하게 빛나는 어머니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치는 게 울컥해서.
“엄마아아······!”
나는 어머니 품에 머리를 처박고 훌쩍훌쩍 울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꽉 끌어안고서 뺨을 부볐다.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쓸어내려 주셨다.
웃음소리가 섞여 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이제 괜찮아. 어제 우리 아들 많이 놀랐지?”
“······응.”
무서웠다.
어머니가 돌아가실까 봐.
이대로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까 봐.
“미안해. 엄마가 우리 아들 지켜줘야 하는데, 바보같이 쿨쿨 자버렸네.”
어머니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 없을 거야. 엄마가 약속할게.”
그런 걸 약속한다고 오는 죽음을 막을 수 있을 리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벅벅 닦고 야무지게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약속한 거예요.”
“도장 꾹.”
원래 약속은 말이 아닌 문서로, 새끼손가락을 거는 게 아니라 엄지로 지장을 찍어야 완성되는 법인데.
“헤헤헤.”
나는 새끼손가락 약속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좋다고 웃었다.
아, 진짜 어린애 몸뚱이란.
꼬로록.
내 배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배고파? 우리 아들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니?”
“······거나.”
“응? 뭐라고?”
“엄마가 해 주시는 건 아무거나 다 좋아요.”
예전에는 몰랐었다.
엄마 밥은 맛없다고 늘 툴툴댔었는데.
어머니를 잃고 나서야 그마저도 다시 먹을 길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를 한껏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어머니, 45년 만입니다.
“엄마, 사랑해요.”
다시 만나면 꼭 이 말부터 하고 싶었습니다.
“엄마도 우리 정혁이 사랑해. 세상에서 제일. 아주아주 많이.”
어머니도 나를 꽉 끌어안으면서 활짝 웃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소였다.
“응?”
어머니는 문득 가방 위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보석함을 발견하고 안색을 굳혔다.
그건 우리 집 장롱 깊은 곳에 있어야 할 물건이었으니까.
“정혁아, 너 여기 들어있던 거······!”
“이거요?”
나는 주머니에서 바쉐론 콘스탄틴 패트리모니 1970 스페셜 에디션을 꺼냈다.
“이거 아버지 시계 맞죠?”
어머니가 난처한 표정으로 입술만 달싹였다.
그래도 난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한참을 망설이던 어머니가 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래.”
하, 그렇단 말이지?
“그럼 아빠는 어디 있어요? 엄마가 아픈데 왜 안 와요? 나 보러 왜 안 오는 거예요?”
“정혁아, 아빠는······.”
드르륵.
그때 거침없이 병실 문이 열리면서 담배 냄새부터 훅 끼쳤다.
‘설마······!’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달려온 건가?
내 아버지의 집안이 태성그룹이라면, 여기는 태성병원.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뒤를 홱 돌아보았다.
“에이, 아저씨잖아!”
곰처럼 커다란 몸이 병실 안으로 들어오다 말고 움찔했다.
< 성의와 보답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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