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52)
재벌집 만렙 아들-52화(52/416)
< 이럴 수가! (1) >
나는 어머니와 함께 불꽃놀이를 기다리며 현무호텔 정원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는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여기 정원은 정말 공들여서 꾸몄나 봐. 알록달록 반짝이는 게 너무 예쁘다.”
정원 한가운데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까지 오색전구를 휘감고 반짝거렸다.
정원수를 휘감아 크고 작은 전등이 불을 밝혔다.
잘 깔린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으려니 제법 운치가 있었다.
“와, 맛있는 냄새! 정혁아, 우리 저기 가볼까?”
“요리사 아저씨들이 꼬치를 굽고 있어요.”
정원 한구석에는 호텔 주방장이 바비큐 그릴에 숯불을 피워 놓고 열심히 꼬치를 구워 손님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꼬치구이 종류도 다양했다.
닭꼬치, 염통꼬치, 소고기 큐브꼬치는 물론 마시멜로 꼬치까지 있었으니까.
펑!
까만 밤하늘에 긴 꼬리를 그리며 솟아올랐던 불꽃이 펑 하고 터졌다.
불꽃놀이였다.
어머니는 멍하니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펑! 펑퍼펑! 펑!
알록달록한 오색의 불꽃이 하늘을 물들였다.
이것이 바로 현무화학이 자랑하는 화약 기술력이었다.
‘확실히 현무화학의 불꽃놀이는 볼만하다니까. 방산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기업답군.’
현무화학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 그러니까 일본 다음으로 자체적으로 글리세린을 추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외국산 폭약에만 의존해야 했다.
그런데 현무화학으로 인해 폭약의 국산화를 이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무화학의 폭약은 터널 및 토목 공사 등에 크게 쓰였으니, 지하철 2호선 공사에서도 중히 쓰일 예정이었다.
“와아, 정말 예쁘다.”
어머니는 소녀처럼 좋아하며 방긋방긋 웃었다.
어머니의 눈동자에 비치는 색색깔의 불꽃이 보석처럼 수놓아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어머니 손을 잡고 방긋 웃었다.
“네, 정말 예뻐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했던 기억이 없다.
내게 불꽃놀이란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하는 축제의 축포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뒷골목을 전전했던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마치 크리스마스이브에 성냥팔이 소녀가 팔지 못한 성냥으로 붙이던 불꽃과 비슷했다.
나는 불꽃축제에서 먹거리를 팔았고, 사람들이 남기고 떠난 쓰레기를 치우며 돈을 벌었다.
사람들의 지갑만 보느라, 쓰레기를 줍느라 바닥만 보느라.
나는 단 한 번도 허리를 펴고 멍하니 불꽃놀이를 구경한 적은 없었다.
“정말 좋아요. 엄마랑 함께 불꽃놀이 보는 거요. 다음에도 또 같이 봤으면 좋겠어요.”
이런.
기쁨과 씁쓸함이 섞인 투정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어머니는 날 감싸 안았다.
“정혁아, 아빠랑 함께하지 못해서 속상하니?”
“아니에요.”
“오늘은 아빠가 너무 바빠서 함께 못 했지만, 다음에는 꼭 아빠랑 같이 불꽃놀이 구경하자고 졸라 보자. 어때?”
“네.”
“그럼 속상해하지 않기. 약속~”
어머니는 방긋 웃으며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멍하니 새끼손가락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약속.”
나는 말보다는 문서를, 새끼손가락 약속보다는 엄지 지장이 박힌 약속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새끼손가락 약속이라면 거절할 도리가 없다.
나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까지 꾹 눌렀다.
“실은 비밀인데, 엄마도 아빠랑 함께 불꽃놀이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엄마도 엄청 아쉬워. 정혁이도 그랬니?”
어머니는 내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하지만 정혁이도 봤지? 아까 할아버지랑 아빠가 엄마랑 정혁이를 위해 애써주시는 거.”
“네.”
“그래서 아빠가 많이 바쁘신 거야. 그러니까 오늘만 우리가 이해해주자. 응?”
“네.”
압니다.
아버지는 지금 무척 바쁘실 거라는 거.
실은 내가 김 비서를 시켜서 아버지를 구 시장에게 보냈거든요.
“엄마, 오늘은 우리 현무호텔에서 자고 가요.”
“응?”
“아빠가 아까 이거 주셨어요. 방 잡아놨으니까 편하게 쉬고 있으랬어요.”
나는 아버지에게 받은 룸 번호가 적힌 쪽지를 어머니께 드렸다.
“아빠가 오늘 밤은 많이 바쁠 것 같대요.”
어쩌면 밤을 꼬박 새워서 일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구 시장이 아버지가 가져온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얼마나 열의와 의욕을 태우는가에 따라 아버지의 오늘 밤 거취가 결정될 테니까요.
“아빠 기다리면서 속 끓이지 말고 우리 먼저 자요.”
“그러자. 안 그래도 엄마 다리도 아프고, 피곤했거든. 아빠 덕분에 이렇게 예쁜 호텔에서도 자보고. 너무 좋다아~”
어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펑! 퍼퍼퍼펑! 펑!
밤하늘에 터지는 불꽃놀이는 아주 장관이었다.
‘어이, 수호신.’
[음, 정말 아름답군.]내 곁에서 뒷짐을 진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저승사자.
나지막하게 감탄하는 기색이었다.
[그동안 인세의 축포 기술이 이렇게까지 발전했을 줄이야. 어떻게 이런 오색찬란하고 다채로운 불꽃을 쏘아 올릴 수 있을까. 미망(未亡)의 여운이 느껴지는구나.]저승사자가 그대로 등을 돌려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라고?]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구 시장.’
[다녀오지.]* * *
구 시장은 여전히 송년의 밤 행사가 열리는 홀에 남아서 여야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구 시장, 우리도 잠깐 나가서 불꽃놀이나 보고 옵시다.”
“현무호텔 오 사장이 야심 차게 준비한 볼거리이니, 안 보고 가는 것도 섭섭한 일이겠죠.”
여당 의원들은 샴페인 잔을 들고 홀 밖으로 빠져나왔다.
덕분에 이곳엔 구 시장과 현무건설 오 사장, 둘만 남았다.
둘은 샴페인을 가볍게 쨍하고 부딪혔다.
현무건설 오 사장이 말했다.
“이제 우리 둘만 남았으니 그거 좀 보여주게.”
“무엇을?”
“뭐긴 뭐야. 지하철 2호선 노선표 노선도지. 가져왔다며? 살짝 구경 좀 하자.”
“어허, 안 되는 일이야. 극비 사항이라는 거 자네도 잘 알면서.”
“아까는 보여줄 것처럼 잔뜩 폼을 잡다니. 그게 다 정치 쇼였던 모양이지?”
“음, 거짓은 아니지.”
구 시장은 고개를 돌렸다.
테라스 가까이에 있던 터라 유리창 너머로 정원이 내려다보였다.
“오 사장,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2번 지하철 공사 말이야. 우광과 태성 중에 누가 더 제대로 공사할 수 있을 것 같나?”
“당연히 태성이지. 어느 면으로 보아도 태성이 우광보다 확실하게 앞섰는데, 뭘 또 물어?”
현무건설 오 사장은 웃었다.
“팽팽하게 이어지던 입찰 경쟁이 요 근래 갑자기 훅 기울었어. 태성 쪽으로.”
“차성준, 그 친구가 최근에 귀국한 이후 말이지. 흐음.”
“구 시장, 왜 그렇게 못마땅한 표정이야?”
“태성건설이란 대기업을 맡아 끌고 가기엔 사장이 너무 젊어. 지하철 2호선이란 대공사를 맡기에도.”
구 시장은 딱 잘라 말했다.
“차 회장이 태성건설 임직원 대부분을 숙청했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런 모양이더군. 얼마 안 됐어.”
“지하철 2호선 공사 입찰이 채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이야.”
구 시장이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는 이유였다.
“하다못해 다른 계열사 사장이라도 내정했으면 또 몰라. 이렇게 새파란 애송이를 건설사 사장 자리에 앉혀 놓았다는 건 그냥 공사를 포기하겠단 뜻 아닌가? 차 회장이 너무 오만한 결정을 내렸어.”
“차 회장을 모르나? 지하철 2호선 공사를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지.”
현무건설 오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난 전(前) 태성건설 차윤성 차장과 무능한 임직원을 숙청한 게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하네. 그 친구, 보기보다 대단한 수완가야.”
“수완가? 그리 젊은 친구가 재주를 부리면 뭐 얼마나 부린다고.”
“내가 어떻게 수서 지구 아파트 부지를 얻게 됐는지, 지하금융권 인물들이 왜 이곳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아직 말 안 했던가?”
“잠깐. 어디? 수서 지구?”
구 시장은 깜짝 놀라 돌아봤다.
구 시장답지 않은 반응에 현무건설 오 사장은 눈을 껌뻑거렸다.
“자네 갑자기 왜 그러나?”
“이것 참 공교롭게 되었군. 방금 수서 지구 택지 개발을 전면 보류하기로 결재서류에 도장 찍고 오는 길인데.”
“뭐야?”
“개발제한구역 및 허가거래구역 확대. 알지? 그런 이유로 이후 몇 년간 수서 지구 쪽은 건설 허가가 아예 안 날 예정이야.”
“어, 어떻게 그런 일이······!”
현무건설 오 사장은 마른하늘에 떨어진 날벼락이라도 맞은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런 말 없었잖아! 이미 수서 지구에 아파트 부지로 허가가 난 땅인데······.”
“지목이랑 건설 허가는 다른 말이잖나. 이거 안타깝게 됐군.”
“안 돼!”
현무건설 오 사장은 비틀거렸다.
“어째서······, 어쩌다 이렇게 갑자기······!”
“자네도 알고 있었을 텐데. 요즘 부동산 시장이 너무 과열되는 양상이라 위에서 말이 많아. 부동산 규제가 곧 시작된다는 사실, 정말 몰랐나?”
“알아! 하지만 그게 수서 지구일 줄은 몰랐지!”
현무건설 오 사장은 부들부들 떨었다.
“설마 태성건설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날 엿 먹이려고 고의적으로······.”
“아니, 그건 아닐 거야.”
구 시장은 딱 잘라 말했다.
“원래 오늘 결재로 올라온 건 신도림 지구였어. 그런데 지하철 2호선이 그쪽을 지나갈 예정이라서.”
“뭐?”
구 시장은 노선도가 들어있다던 품을 툭툭 쳤다.
“지하철 2호선 공사 입찰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야. 1,800억짜리 지하철 2호선 노선을 변경하는 것보다 개발제한구역을 변경하는 게 더 낫지. 안 그런가?”
“이, 이럴 수가!”
“아까 도시개발 계획 부장도 기함하고 뒷목을 잡더군. 딱 지금 자네와 같이.”
구 시장은 현무건설 오 사장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쩌겠나. 이미 결재서류에 도장 찍고 끝난 일이야. 그러니 이번엔 자네가 포기해.”
“안 돼! 그 결재서류 좀 어떻게 철회 안 되겠나? 다시 도장 찍으면 안 될까? 제발 이번 한 번만!”
그때였다.
“구 시장님.”
김 비서와 아버지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구 시장은 현무건설 오 사장에게서 눈을 돌려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래, 무슨 일인가? 혹시 달리 궁금한 것이라도 있나?”
“아닙니다. 지하철 2호선 노선도를 가져왔습니다.”
구 시장은 눈은 동그랗게 떴다.
“뭐야?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그럴 리가요.”
구 시장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내 제안을 받은 지 지금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네. 그런데 뭐? 벌써 지하철 2호선 노선도를 그려와?”
구 시장은 못마땅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신중하게 결정하게. 내가 내어준 기한은 일주일이야. 이렇게 함부로 기회를 날렸다가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어.”
구 시장의 눈빛은 싸늘했다.
“아무리 불이익 없이 가산점만 준다고 했어도 이렇게까지 성의 없이 대충 그려오는 건 아니지. 이게 태성의 태도인가?”
콧방귀까지 대놓고 뀌었다.
“귀찮은 일은 맡고 싶지 않으니 일찍 가산점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군.”
“그럴 리가요. 어떻게든 구 시장님께 눈도장을 찍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제가 어찌 그 황금 같은 기회를 허투루 날린단 말입니까?”
아버지가 눈짓하자 김 비서가 곱게 접은 선물용 고급 지도를 내밀었다.
“일단 이것부터 보고 다시 말씀하시죠.”
“좋아.”
구 시장은 순순히 지도를 받아들였다.
“딱 봐도 방금 새로 산 티가 역력한 선물용 고급 지도로군. 그래, 어디 한번······ 헉!”
구 시장은 지도를 펼쳐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충격받은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정치판에서 오랫동안 굴렀던 탓에 나름 표정과 생각을 숨기기에 익숙한 구 시장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이, 이럴 수가!”
구 시장은 무척 당황해서 품을 더듬었다.
다급하게 꺼낸 것은 곱게 접은 지도 한 장이었다.
“이걸 태성이 그려왔다고? 고작 30분도 안 되는 동안!”
지도를 들고 있는 구 시장의 손은 아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게 태성이 꿈꾸고 있던 지하철 2호선이란 말이지······!”
구 시장은 지도 두 장을 펼쳤다.
두 지도는 크기가 달랐지만 표시된 역은 같았다.
태성이 가져온 지도에는 빨간색 사인펜으로, 구 시장이 준비한 지도는 검은색 연필로 지하철 2호선 노선도가 그려졌다는 점이 달랐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같은 하늘 아래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구 시장의 눈이 양쪽 지도를 번갈아가며 바쁘게 오갔다.
“내가 정한 43개 지하철역을 태성도 거의 비슷하게 짚어내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표시한 지하철역 위치가 비슷하니, 역을 이은 지하철 2호선 노선도도 비슷할 수밖에.
“잠깐! 아니로군! 단 하나, 내 구상과 완전히 다른 점이 있어!”
구 시장은 별표가 쳐진 곳을 주목했다.
“태성은 왜 1호선 환승역을 영등포가 아닌 신도림으로 정했나? 나는 영등포역이 더 낫다고 보는데.”
“영등포역은 이미 지하선 1호선이 선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현재의 한국 토목 기술력으로는 이미 지어져 있는 역의 지하를 관통하여 굴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오!”
구 시장은 눈을 크게 떴다.
아직 놀라긴 이르다.
내가 김 비서를 통해 아버지에게 전한 선물은 저거 하나만이 아니거든.
구 시장에게 건네야 할 지도는 아직 더 남았다.
< 이럴 수가! (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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