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6)
재벌집 만렙 아들-6화(6/416)
< 이건 서비스(1) >
‘방금 막 아버지에 대해 캐묻고 있었는데!’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할 정도의 눈치는 있는 모양인지.
철구 아저씨는 헛기침을 하면서 나와 어머니 쪽을 힐끔거렸다.
“크흠, 저, 그러니까, 치료 경과가 좋아서 후유증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답니다. 이제 퇴원해도 좋다기에. 커흠!”
“퇴원이요? 아직 병원비를 못 냈는데요?”
“그거 뭐 얼마나 한다고. 어이, 꼬맹아. 이만 집에 가자.”
아저씨가 병원비를 냈다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재빨리 가방을 열었다.
“얼마였어요?”
“됐습니다.”
“받으세요. 목돈이었을 텐데요. 전 의료 보험도 없어서······.”
미혼모였던 어머니는 시장에서 야채를 팔아 날 키우셨다.
그래서 우린 가입된 의료 보험이란 게 없었다.
이 시절엔 일부 인원만을 대상으로 의료 보험이 시행되던 시기였으니까.
“아, 거참 됐다니까. 치료라고 해 봐야 산소 좀 넉넉하게 공급한 것뿐이었는데, 목돈은 무슨.”
철구 아저씨는 씩 웃었다.
“따지고 보면 병원비는 저 꼬맹이가 해결한 거기도 하고.”
“네?”
“그런 게 있습니다.”
철구 아저씨는 내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아저씨가 말을 할수록 어머니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진다.
“그게 무슨 말인지······.”
“꼬맹아, 이건 서비스.”
철구 아저씨는 품에서 어린이 운동화 한 켤레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병원비를 내고도 돈이 남길래. 그리고 요건 덤.”
어린이용 양말이었다.
“서비스라며 끼워 주더라.”
영문을 모르는 어머니가 얼굴 위로 온통 물음표를 띄우거나 말거나.
아저씨는 씩 웃으면서 내 바지 주머니에 뭔가를 슬쩍 찔러 넣었다.
힐끔 봤더니 500원짜리 지폐였다.
“그건 그냥 넣어둬. 아무리 감사의 보답이라고 해도 애 삥이나 뜯어먹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엄마 돈으로 선심 썼다고 혼날까 걱정된 모양인데.
이 양반, 덩치는 곰만 해서는 제법 세심한 구석도 있잖아.
“가자.”
“네.”
나는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바닥에 푹신하게 착 떨어지는 운동화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혼자 성큼성큼 걸어가는 철구 아저씨를 따라 뛰었다.
“같이 가요, 아저씨! 엄마도 빨리 오세요!”
“정혁아!”
깜짝 놀란 어머니도 가방과 외투를 챙겨서 따라오셨다.
* * *
부르릉.
어머니는 버스 타고 가도 된다며 한사코 사양했지만, 철구 아저씨의 고집을 꺾진 못하셨다.
집에 두고 온 서류를 가져가는 김이라면서, 시간 없으니 빨리 타라고 재촉하는 통에 어머니는 어어, 하시다가 지프차에 타셨다.
‘음?’
지프차 바닥에 굴러다니는 서류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눈부신 황금빛!’
이건 왜 이렇게 번쩍번쩍 빛나냐?
고작 검은색 커버에 노끈으로 질끈 묶어놓은 것뿐인데.
거칠거칠한 갱지에 직접 타자기로 친 서류였다.
컴퓨터로 쳐서 프린트로 뽑아오는 21세기에는 보기 힘든 타입이었다.
나는 홀린 듯이 서류철을 주워들었다.
‘큭!’
서류철을 잡자마자 눈앞이 휙 변했다.
일렁이는 푸른색을 엷게 씌운, 영화 같은 장면이 확 빨려 들어왔다.
* * *
촤악!
철구 아저씨는 음침한 지하실에 꽁꽁 묶인 채 물벼락을 맞았다.
온몸에 고문의 흔적이 적나라했다.
-야, 박철구. 바른대로 불어. 이거 누가 시켰어?
서류철을 흔들면서 양복 입은 남자가 혀를 찼다.
딱 봐도 중정 요원이었다.
-중정 요원이란 새끼가 나라가 아닌 개인에 충성하면 되겠어?
-그런 거··· 쿨럭, 아닙니다.
-그럼 왜 이딴 짓을 하고 다녔는데?
-죄송합니다, 선배. 전 단지······.
-왜 간첩 뒤를 캐고 다녀야 할 새끼가 쓸데없이 우광건설의 뒤나 캐고 다녔냐고 묻잖아!
우광건설?
우광그룹은 장차 대한민국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재벌 기업인데.
-박철구, 지금 배후가 누구냐고 물었다.
-없습니다.
-장난하지 말고.
짝!
철구 아저씨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철구 아저씨는 퉤 하고 피 섞인 가래침을 뱉었다.
-선배, 우광건설 그 새끼들이 판자촌을 철거한답시고 사람을 몇이나 상하게 한 줄 아십니까?
-그래서? 지금 네놈 때문에 몇이나 곤란하게 된 줄 알아?
짝!
-뭐? 고작 판자촌 새끼들 때문에 이 사달을 벌여?
짝!
-새끼야, 너 그러다 진짜 죽어. 빨리 배후나 불어. 태성건설이지?
-없습니다, 그런 거.
-태성건설 맞잖아.
-그런 거 아닙··· 큽!
첨벙!
그놈은 철구 아저씨의 머리채를 잡아 물통 속에 넣고 눌렀다.
-눈치 없는 새끼. 태성건설이라니까 그러네.
온몸이 묶인 철구 아저씨는 힘껏 버둥대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 * *
‘어······?’
서류철에서 손을 떼자, 눈앞에 일렁이던 푸른 영상도 사라졌다.
‘방금 그건 대체 뭐였지?’
너무 생생했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철구 아저씨가 진짜로 그런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숨소리 하나, 냉기 하나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과거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한번 검은 서류 커버를 툭 건드렸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잠했다.
‘내가 잠깐 헛것을 봤나?’
[아니.]놀래라!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이상한 일이군. 내가 본 것을 엿본 모양인데.]저승사자가 보조석에서 연기처럼 스르륵 나타나더니 말했다.
[이 녀석, 황천행은 일주일 후다.]기억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로동 판자촌은 강제 철거되었다.
집주인 할머니 역시 그렇게 집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는데, 그때 철구 아저씨는 이미 죽고 없었다.
‘철구 아저씨가 일주일 후에 죽어? 고문받다가?’
저승사자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철구 아저씨를 힐끔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으헉!”
갑자기 철구 아저씨는 운전하다 말고 부르르 떨면서 몸서리치는 게 아닌가.
[감이 좋은 놈이로군.]스르륵.
저승사자가 솜사탕이 물에 녹듯 사라져 버렸다.
철구 아저씨는 팔을 문지르며 보조석 방향을 연신 곁눈질했다.
“뭐, 뭐지? 방금 엄청 섬칫했는데?”
“아저씨, 이거 뭐예요?”
나는 서류를 주워 들었다.
철구 아저씨는 백미러로 보더니 정색했다.
“꼬맹아, 그거 중요한 거니까 내려놔라. 함부로 보면 큰일 나는 거야.”
“아저씨 우광건설 뒤 캐고 다녀요?”
정확하게는 우광건설 비자금에 관한 추적 조사.
끼이익!
철구 아저씨는 대뜸 지프차를 갓길에 세우더니 내 손에서 서류를 낚아챘다.
“넌 못 본 거다. 잊어. 알았어?”
이 양반이 진짜 뒷배도 없이.
깡이 좋은 거야, 멍청한 거야? 당신 그러다가 진짜 죽어.
우광은 군부독재 시대에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재벌 기업이었다.
어머니도 덩달아 심각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우광건설이라면 판자촌 밀고 아파트 짓는다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행패 부리는 그 사람들이죠?”
철구 아저씨는 입을 꾹 다문 채 정면을 주시했다.
긴 한숨과 함께 관자놀이만 꾹꾹 누른다.
하지만 어머니의 다음 말에 뒤를 홱 돌아보았다.
“엊그제 우리 집에도 찾아와서 당장 이사 가라고, 다음엔 곱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며 잔뜩 으름장을 놓던걸요.”
“그놈들이 또 행패를 부렸습니까? 다친 사람은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곧 강제 철거가 시작되겠군.’
나는 아저씨가 회수해간 서류철을 힐끔 보았다.
아저씨를 고문하던 남자가 배후를 태성건설로 몰고 가려던 게 괜히 마음에 걸렸다.
“아저씨.”
“어른들 문제야. 꼬맹이는 몰라도 돼.”
철구 아저씨가 오디오 버튼을 누르자 70년대 트로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75년에 발표되어 송대권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전설적인 대중가요였다.
철구 아저씨는 큰소리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부르릉.
지프차는 힘차게 달려나갔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2020년대와는 너무나도 다른 서울의 거리였다.
대로를 따라 빼곡하게 들어섰던 고층 빌딩 대신 꼬마 빌딩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다.
길 가는 사람들도, 오가는 차량 수도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큰일이네. 셋방살이하는 우리 집까지 보상금이 나올 리도 없고. 통장 보니까 알겠더라. 우리 형편엔 당장 이사 갈 곳도 마땅치 않아.’
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아버지 시계를 팔든가, 아버지 집에 연락해서 도움을 받든가. 어른들의 사정이란 게 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한겨울에 길바닥 생활을 할 순 없잖······응?’
방금 버스정류장 근처 가판대에서 황금빛이 번쩍이는 뭔가를 봤다.
마치 폭죽처럼 빛이 터져나오더라고.
“아저씨, 스톱! 스토오옵! 차 세워요! 빨리요!”
끼이익!
철구 아저씨는 두 번째 급정거를 해야만 했다.
“왜? 뭐? 왜? 무슨 일이야?”
“저 잠깐 내릴게요! 금방 다녀올게요!”
“뭐? 왜?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어른들을 뒤로하고.
나는 지프차에서 폴짝 뛰어내려서 전력질주했다.
아까 봤던 범상치 않은 황금빛을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왠지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아까 저기에서 불꽃처럼 터졌던 황금빛이······ 찾았다!’
버스 정류장 근처 가판대에서 팔고 있는 주택복권!
나는 손등으로 눈을 벅벅 문질렀다.
다시 봐도 복권에서 황금빛이 찬란하게 터져 나왔다.
‘와, 이건 사야 돼!’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내 주머니에는 아까 철구 아저씨가 서비스라면서 챙겨준 5백 원이 있다.
‘복권 한 장에 100원이니까.’
눈 딱 감고 지르기로 했다.
“주택복권이요! 이거 주세요!”
복권 추첨일은 바로 오늘.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해진다.
< 이건 서비스(1)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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