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63)
재벌집 만렙 아들-63화(63/416)
< 황금빛 명함 >
큰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진짜 우리 성준이가 맞네! 짜식, 중동에서 돌아왔으면 형님한테 제일 먼저 전화해야 할 거 아니야. 여기서 뭐 해?”
“직원들과 회식하고 있었습니다.”
“회식? 귀국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직원들을 챙겨? 작은아버지 얘기는 들었다. 네가 고생이 많다.”
큰아버지가 아버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손길이었다.
아버지는 착한 아이처럼 얌전히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아버지께 들었다. 처자식이 생겼다고?”
“예, 형님. 그렇게 됐습니다.”
“와, 연애한단 소리 한 번을 안 하더니. 처자식은 대체 언제 생긴 거야, 응? 이 형님 정말 섭섭해. 흐흐흐.”
큰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어?”
큰아버지는 나를 가리켰다.
“성준아, 너 어렸을 때랑 완전 판박이로 닮은 애가 여기 있는데······. 나 지금 많이 취했냐?”
“제대로 보셨습니다. 제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내 어깨를 살짝 짚었다.
“정혁아, 인사드려라. 큰아버지시다.”
“안녕하세요, 큰아버지. 차정혁이에요.”
나는 두 손을 모아 꾸벅 배꼽 인사 했다.
큰아버지는 대뜸 쪼그려 앉아서 나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네가 성준이 아들 차정혁이구나? 만나서 반갑다. 나는 성준이 큰형 차대준. 네 큰아빠 되는 사람이야.”
술 냄새가 팡팡 풍기는, 실없는 웃음이었다.
“정혁이는 짜장면 좋아해?”
“네.”
“자, 그럼 문제!”
큰아버지는 지갑에서 잡히는 대로 지폐를 꺼내 내 손에 듬뿍 쥐여 주었다.
솔직히 좀 황당했다.
‘처음 보는 조카에게 지갑 속 돈을 통째로 준다고? 이건 호구인가, 대인배인가? 허, 이게 다 얼마야?’
내가 왕년에 일수 찍으면서 수금하러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는데.
이 정도면 바로 견적이 딱 나오지.
“이걸로 우리 정혁이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몇 그릇이나 사 먹을 수 있을까? 맞추면 이거 다 주지! 못 맞추면······.”
“1,715그릇이요.”
“······.”
큰아버지가 두 눈을 껌뻑거렸다.
“잠깐만, 정혁아. 큰아빠가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데, 이 돈 한 번만 세어 봐도 될까?”
“물론이죠. 돈 계산은 정확해야 하니까요.”
나는 순순히 돈다발을 도로 내어줬다.
큰아버지는 손가락에 침을 묻히고 지폐를 세기 시작했다.
“만 원, 이만 원, 삼만 원······.”
“514,500원이요.”
“······.”
큰아버지는 피식피식 헛웃음을 지으면서 끝까지 돈을 셌다.
“······어? 성준아, 내가 오늘 술이 좀 과하게 들어갔나 본데. 이번엔 네가 한번 세어 봐라.”
“예.”
큰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지폐를 통째로 넘겼다.
아버지는 지폐를 세 번이나 다시 셌다.
“······514,500원입니다.”
아버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큰아버지에게 물었다.
“형님, 그런데 요즘 짜장면 한 그릇에 얼마나 합니까?”
“······그야 나도 모르지.”
나는 혀를 찼다.
“300원이에요.”
애초에 짜장면 한 그릇이 얼마나 하는지도 모르면서 문제를 내?
물론 아버지야 중동에 오래 나가 계셨으니 짜장면 가격을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 * *
우리는 바람도 쐴 겸, 후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자판기 커피를 홀짝였다.
아니, 정정한다.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밀크커피를, 나는 율무차를 뽑았다.
호로록.
큰아버지는 피식피식 웃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해. 그걸 어떻게 맞췄지?”
일수 찍기 3년이면 이 정도는 기본인데.
큰아버지는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는 것처럼 날 보고 있었다.
“그렇잖아. 되는대로 막 쥐여 준 돈을 정확하게 맞출 확률이······.”
“대충 찍은 건데요?”
뭐? 왜? 뭐!
내가 쓴 건 오로지 눈대중과 손끝의 감각뿐!
결국 어림짐작으로 대충 찍은 거 맞잖아!
“나눗셈도 잘하고.”
“요즘 내 또래 애들은 다 그 정도는 해요. 큰아빠 어렸을 때랑 달라요. 공부만이 살길이다, 아시죠?”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으며 남의 눈치를 보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시치미를 뚝 뗐다.
그다음은 자연스러운 화제 돌리기다.
“그런데 큰아빠, 이렇게 계속 나와 계셔도 돼요?”
“아차! 화장실 간다고 나왔는데. 에라, 나도 모르겠다. 배 째! 흐흐흐.”
큰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꼭 갓 태어난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같이 상냥했다.
“아이고, 똘똘해라. 큰아빠 사정까지 헤아려주고. 우리 정혁이 정말 천재 아니야?”
아버지가 왜 착한 아이처럼 얌전하게 머리를 내어줬는지 알 것 같달까.
“야무지고 똘똘한 게 우리 성준이 어렸을 때와 똑같네. 성준아, 정말 보면 볼수록 네 아들이야.”
큰아버지는 턱을 괴며 고개를 기울였다.
“우리 정혁이는 무슨 까까를 제일 좋아해?”
“과자는 썩 안 좋아해요. 별로 안 먹어보기도 했고요.”
솔직히 과자는 비싸기만 하지, 그거 몇 개 집어먹어 봐야 배도 안 부르다.
그 돈으로 라면이나 사서 끓여 먹는 게 낫지.
어려서는 비싸서, 나이가 들어서는 당뇨 올까 봐 못 먹었다.
그나마 지하철에서 껌을 팔 때, 복덕방 영감들의 어깨를 주물러주거나, 도박쟁이들의 심부름을 해주고 간혹 과자라는 걸 얻어먹을 때가 있었는데.
“건빵, 뻥튀기, 강냉이, 꽈배기. 뭐 이런 건 먹어 봤어요.”
“이 썩는다고 철저하게 관리했구나. 친구들은 뭐 좋아해? 초코나 딸기 들어간 과자?”
“으음······.”
“우와, 우리 정혁이 진지하게 고민한다.”
큰아버지가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성준아, 너랑 아주 판박이다. 고민하는 표정은 물론이고, 어떻게 과자 취향까지 똑같냐? 이쯤 되면 유전자의 신비가 아닐까?”
“그렇습니까?”
“에휴, 이 목석같은 놈. 어릴 땐 그래도 제법 귀여웠는데, 크니까 영 재미없는 놈이 되고 말았어.”
큰아버지는 내게 엄지를 척 들었다.
“우리 정혁이가 최고 멋지다! 부디 이대로만 자라다오!”
“큰아빠도 멋져요.”
“다시 보니까 우리 정혁이가 아빠보다 낫다! 립 서비스가 아주 확실하잖아.”
“그럼요. 세상사 기브 앤 테이크 아니겠어요?”
호의엔 호의로, 악의엔 악의로, 칭찬엔 칭찬으로
나는 큰아버지가 찔러준 지폐 다발을 살짝 흔들어 보았다.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해야죠.”
나는 두 손을 모아 배꼽 인사 했다.
“용돈 감사합니다. 고맙게 잘 쓸게요.”
“그래, 그래. 친구들이랑 까까 사 먹어라. 뻥튀기랑 강냉이도 사고, 초코 과자랑 아이스크림도 잔뜩 사서 나눠줘. 그래야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다.”
“네.”
그때 식당에서 나온 중년 아저씨가 우리를 발견하고 반색했다.
“차 사장님, 거기 계셨습니까? 난 또 술김에 귀가하셨나 했지 뭡니까?”
“송 원장님,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마침 여기서 동생과 조카를 만났지 뭡니까.”
“동생분과 조카라면······.”
“성준아, 여기 송 원장님께 인사드려라. 이쪽은 제 막냇동생입니다.”
큰아버지의 소개에 따라 둘은 악수했다.
“안녕하십니까, 태성건설의 차성준입니다.”
“아, 태성의 막내 도련님이시군요. 태성병원장 송진호라고 합니다.”
태성병원 송 원장은 명함을 건넸다.
‘황금빛!’
명함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의아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태성병원은 딱히 돈 될 만한 일도 없을 것 같은······ 아!’
불현듯 떠오르는 글귀가 있었다.
철구 아저씨가 적어낸 진술서에 적혀 있는 말.
할아버지가 태성건설에만 집중하도록, 내가 일부러 빼돌린 갱지에 적혀 있던 대목이다.
<죽은 우광건설 김광필이 공들여 접선했던 이는 김갑용. 태성화학 제4 공장의 작업반장이다.>
<그에게는 태성병원에 입원한 일곱 살짜리 딸이 있다. 병원비도 꽤 많이 밀렸고, 주변에 돈 빌리러 다닌 지 오래였다.>
<죽은 김광필의 소개로 김갑용은 우광병원 원장실에서 두 차례 독대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일개 공장 작업반장이 병원장을 독대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우광의 병원장쯤 되면 아무나 만나주지 않는다.>
<그 말은 즉, 우광병원장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누군가의 협조가 있었다는 뜻이다.>
철구 아저씨가 중정에 끌려가기 직전까지 하던 수사였다.
‘안 그래도 조만간 태성병원에 한번 가야겠다 했었는데. 잘됐네.’
나는 슬쩍 끼어들었다.
“그 명함이요. 저도 한 장 얻을 수 있을까요?”
의아해하는 송 원장에게 아버지가 덧붙였다.
“제 아들입니다.”
“아, 그렇다면 태성그룹 차 회장님의 손자분이시군요. 그런데 명함은 왜······.”
“우리 엄마가 건강검진을 받았으면 해서요. 안 될까요?”
“안 될 거 없죠. 만사를 제치고 모시겠습니다. 우리 태성병원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자랑합니다. 의료진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다가······.”
“그렇게 폐를 끼칠까 싶어서요. 미리 병원에 연락하고 갈까 하는데요.”
“아, 그래서 명함을.”
태성병원 송 원장은 흔쾌히 내 손바닥 위에 명함을 올려주었다.
“언제든 연락하면 미리 스케줄을 빼놓으라고 지시해 두지요.”
“혹시 엄마 건강검진 받을 때 한 명 더 같이 예약해도 될까요?”
“아버님도 같이?”
안 그래도 지하철 2호선 공사는 물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공사까지 맡게 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예정인 아버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우리 아빠가 아니고요. 57세 할머니예요.”
“······아.”
아니, 아버지.
왜 그렇게 대놓고 실망하시는 겁니까?
“옥분 할머니와 철구 아저씨 덕분에 엄마가 제때 병원에 도착해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요. 은혜를 갚고 싶어요.”
아니, 아버지.
이번엔 또 왜 그렇게 경악하시는 건데요?
“정혁아, 그게 무슨 말이냐?”
“실은 며칠 전에 우리 엄마가 태성병원에서 치료받았거든요. 연탄가스 중독으로.”
송 원장은 크게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이런, 난 왜 이런 중요한 일을 몰랐을까.”
“혹시나 후유증이 남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요.”
아버지가 태성병원 송 원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큰아버지도 질세라 명함을 내밀었다.
“자, 큰아빠 명함도 한 장 받아.”
태성병원 송 원장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금빛 찬란하다!
황금빛이 번쩍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틈틈이 금색 폭죽까지 팡팡 터지는 명함이었다.
‘죽인다! 할아버지가 쓴 각서만큼 눈부셔! 우리 집 집문서보다도 밝아!’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태성자동차 사장 차대준
태성자동차는 태성그룹의 핵심계열사 중 하나였다.
태성병원 송 원장은 90도로 허리를 굽혀서 작별 인사를 청했다.
“시간이 늦었군요. 전 이만 들어가 볼 테니, 가족끼리 마저 이야기 나누십시오.”
큰아버지도 아차, 하고는 슬쩍 손목시계를 확인하셨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나도 이만 가 봐야겠는걸?”
“예, 형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큰아빠, 혹시 운전기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니, 먼저 퇴근하라고 했지.”
나는 큰아버지의 주머니에 만 원짜리 지폐를 몇 장 찔러넣었다.
“술 드셨는데 직접 운전하지 마시고 택시 타고 안전 귀가하세요. 그럼 밤길 조심히 살펴 가세요.”
“······.”
큰아버지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내가 넣어준 만 원짜리 지폐를 확인했다.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성준아, 네 아들 진짜 물건이다! 하하하!”
큰아버지는 기분 좋게 지폐를 흔들었다.
“이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카한테 택시비 받았어! 우와, 기분 째진다! 하하하!”
큰아버지는 크게 손을 흔들었다.
“성준아, 정혁아, 그러면 우리 조만간 가족 식사 자리에서 다시 보자!”
떠나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 보였다.
“아버지가 태성화학을 왜 그리 쉽게 포기하셨는지 내내 의아했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조금 알게 된 것 같네.”
피차일반이다.
태성그룹 보고서에 적힌 차대준이란 정보가 아닌, 큰아버지란 사람으로 조금 알게 된 것 같으니까.
* * *
태성그룹 차 회장의 저택.
차 회장은 김 비서와 함께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취하지도 않는 것 같다.
아까부터 맨정신으로도 구름 위를 둥둥 걷는 것만 같았다.
차 회장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태성에 귀인이 붙었어! 그 익명의 후원자 덕분에 일이 이렇게까지 잘 풀릴 줄은 몰랐지! 하하하!”
술이 계속 술술 들어가는 이유였다.
김 비서가 물었다.
“회장님,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뭔데 그래?”
“회장님께서는 왜 제게 익명의 후원자가 누구냐고 닦달하지도, 믿을 만한 사람이냐고 캐묻지도 않으십니까?”
차 회장은 조용히 술잔을 내려놓았다.
< 황금빛 명함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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