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72)
재벌집 만렙 아들-72화(72/416)
< 남다른 선택 >
태성화학 심 사장은 말했다.
“제 두 번째 소임은······ 죄송하지만 보안상 이 자리에서 밝힐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십시오.”
그야 심 사장은 비밀 유지에 관해 나와 새끼손가락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 각서에 서명 날인까지 끝낸 후니까.
“태성의 또 다른 미래를 위한 대계의 포석을 다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유공 인수를 위한 밑 작업을 맡게 될 뿐이다.
태성에는 정유회사가 없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태성화학을 되찾아 오는 일보다 훨씬 더 크고 장대한 계획이며.”
사우디에서 차관을 빌려와야 할 것 같으니까.
“이 나라의 금융과 산업 전반에 파급력을 미치게 될 사안이라는 점뿐입니다. 이상입니다.”
내가 거물은행과 돈세탁해서 날름 먹어치울 예정이라서 이러나 본데.
뭐가 이렇게 거창해?
하지만 심 사장의 거창한 말을 들을수록 계열사 임원들은 궁금해서 미치려고 했다.
“그러니까 그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태성의 미래가 바뀌고 이 나라의 금융과 산업이 달라지는 일이란 게 뭡니까?”
“300억짜리 태성화학보다 더 큰 일이라면 몇억짜리 사업인데요?”
하지만 뻔뻔하게도 심 사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보안상 비밀이라고 했잖습니까. 결과야 두고 보면 알 테죠.”
심 사장은 정중하게 인사했다.
“태성의 미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귀한 분이 저를 중용하여 크게 써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아니, 투자회사 바지 사장이라니까.
동원 가능한 인력이라고는 달랑 나와 심 사장, 유종태와 태성그룹 경호원뿐인 쥐꼬리만 한 회사.
하지만 심 사장이 말을 하면 할수록 파장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었다.
심 사장이 어느 계열사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다들 궁금해 죽으려고 했다.
그건 태성의 직계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악한 사람이야. 태성의 직계들이 영입 전쟁으로 귀찮게 굴지 않도록, 중요한 일을 맡았다고 못 박아서 입을 막아버리는군.’
마음에 든다.
게다가 심 사장의 이러한 행동은 또 하나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태성의 미래, 대계의 포석, 보안상의 비밀입니다. 양해해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어떤 질문이든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할 수밖에.
“회장님, 도련님. 이 일은 제가 책임지고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심 사장은 그 말을 끝으로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서 심 사장에게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따질 수도 없게 됐다.
“좋다. 심 사장이 태성을 위하는 마음을 내 어찌 모르겠나. 믿고 기다리지.”
나중에 물어보면 될 일이라는 생각이로구만!
태성화학 심 사장은 떡국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 사장이 투하한 폭탄 같은 화제에 태성의 계열사 임원들이 들썩거렸다.
다들 떡국은 뒷전이고, 심 사장이 투척한 화제를 논하느라 바빴다.
“대체 태성화학을 어떻게 되찾아 오겠다는 걸까요?”
“심 사장이 준비하는 대계란 게 과연 무엇인지. 짐작 가는 것 없으십니까?”
“향후 행보를 주목해야겠군요. 회장님이 승인했고, 성준 도련님마저 묵인할 정도로 보안을 요하는 일이라니.”
수군수군 말이 많았다.
속 편하게 열심히 떡국을 먹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태성화학 임원들과 심 사장밖에 없었다.
이들은 머릿속에 이미 ‘중동의 외화벌이!’와 ‘금의환향!’ 또는 ‘좌천 대신 영전!’ 같은 단어를 박아두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태성화학 때문에 부모님께 향할 공격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김 비서와 심 사장은 날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지만, 나도 모른 척하기로 했다.
“와, 떡국이 엄청 맛있어요.”
떡국 한 그릇에 한 살을 더 먹을 수 있다면 난 지금 당장 열 그릇, 아니, 스무 그릇은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나이 이제 고작 여덟 살.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다.
‘일단은 태성화학부터. 그다음은 유공이다.’
한 걸음씩 걷다 보면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겠지.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랬으니까.
* * *
‘재벌가 스케일이란!’
할아버지는 손자와 손녀들을 줄 세워 놓고 세뱃돈을 하사했다.
이건 하사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한 액수였다.
‘아니, 무슨 애들 세뱃돈으로 백만 원씩이나 줘?’
이 시절 장관 월급이 25만 원이었고, 국무총리 월급이 35만 원이었다.
대신 할아버지는 빳빳한 만 원짜리 신권으로 한 다발을 주면서 애들 한 명 한 명에게 올해의 계획을 물어보았다.
“바이올린을 살 거예요.”
“저는 오락기랑 만화책이요!”
“레코드판 사야죠.”
으레 아이들이 그렇듯 다들 용돈을 쓸 생각에 신나 보였다.
내 차례가 되었다.
“전 태성병원의 어린 환자들 병원비에 보탤 거예요.”
철구 아저씨가 갱지에 써내려갔던 진술서가 마음에 걸려서.
아저씨는 중정에 끌려가기 직전까지 죽은 우광건설 김광필과 태성의 커넥션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렇게 찾아낸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태성화학 인부였고, 나와 동갑인 아픈 딸이 태성병원에 입원 중이다.
나는 조만간 그 애와 태성화학 인부를 만나러 태성병원에 한번 들러볼 생각이거든.
“기부를 하겠다? 선정 기준은 무엇이냐? 제비뽑기?”
“이왕이면 태성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중에서 병원비 때문에 형편이 많이 어려워진 집을 돕고 싶어요.”
내가 원래 천사표라서 기부를 생활화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목적을 밝힐 수도 없고.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적당히 주워다 쓰기로 했다.
“태성은 한가족이니까요.”
“훌륭하다. 그래, 그래야지!”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
사촌 형과 누나들에게 세뱃돈을 주면서 단 한 번도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지 않았다.
그러니 사촌들은 물론이고 태성의 임원들까지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돈은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는 더 중요한 법이다.”
할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할애비가 왜 큰돈 들여서 태성에 의료 보험을 도입했겠느냐. 네가 그 뜻을 헤아리고 있었구나. 장하다.”
지금 이 시절엔 전국적인 의료 보험이 시행되기 전이라서, 직장, 지역, 공무원 및 사립학교원 등으로 나누어 의료 보험이 시범 운영되던 시기였다.
태성화학 인부의 딸이 우광병원이 아니라 태성병원에 입원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받아라.”
할아버지는 빳빳한 1만 원짜리 신권 다발을 하나 더 꺼내어 얹어 주었다.
“태성병원에 입원한 가족을 챙기겠다는데, 할애비가 한 손 보태야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그리고 이건 세뱃돈이 아니라 용돈이다. 마음을 예쁘게 쓰는 것이 기특해서 챙겨주는 과잣값이니 이건 정혁이 까까 사먹어라.”
아니, 무슨 과잣값이 1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야?
하여간에 통은 크시다니까.
“고마워요, 할아버지!”
2백만 원이라면 밀린 병원비는 물론 수술비까지도 거뜬하겠는걸?
“송 원장님, 조만간 이거 들고 태성병원에 찾아갈게요. 그래도 되죠?”
“아이고, 물론입니다. 그때 드린 명함으로 미리 연락만 해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떡국을 먹고 있던 태성병원 송 원장도 벌떡 일어나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미리 송 원장 명함을 받아놨어? 넌 미리 뜻을 세워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내렸구나. 그래, 여덟 살이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하하!”
사촌 형과 누나들은 나와 할아버지와 2백만 원짜리 돈다발을 번갈아 보았다.
그들의 나이는 죄다 두 자릿수.
세뱃돈을 들고 슬금슬금 뒤로 빠져나갔다.
그런 우리를 지켜보던 계열사 임원들은 흐뭇하게 웃었다.
“어린 도련님께서 좋은 일을 계획하시는군요. 그럼 저도 작게 동참하겠습니다.”
“저도 약소하나마 조금 보태지요.”
태성의 임원들 중 몇몇이 선뜻 지갑을 열었다.
나는 방긋 웃었다.
“태성병원 송 병원장님, 방금 좋은 일하신 분들은 이름과 금액을 적어서 태성병원 복도에 걸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다들 태성가족 환아 돕기에 힘쓰신 분들이 아닙니까. 태성병원 정문 로비에 걸어두겠습니다.”
송년의 밤 행사에서 배운 수법이었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명예를 찾더라고.
“이왕이면 다들 볼 수 있게 플래카드로 만들어서 크게 걸면 안 될까요?”
“프, 플래카드까지요? 안 될 건 없지만······.”
태성병원 송 원장은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이라는 듯 눈을 껌뻑거렸다.
하지만 플래카드로 광고하겠다는 말에 계열사 임원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저도 돕겠습니다.”
“저도 보태겠습니다.”
“저 역시!”
나는 태성병원 송 원장을 돌아보았다.
“잘 받아 적으세요. 좋은 일 하고 속상하는 일 없이, 한 분도 빠짐없이, 액수 틀리지 마시고요.”
“예, 예. 그래야죠. 허허허.”
본인을 ‘둘째 큰아버지’라 부르라던 태성의 둘째 아들, 차기준이 날 물끄러미 보더니 그린 듯이 웃었다.
“성준이와 달리 아주 재밌는 재주를 가졌는데?”
둘째 큰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휘어진 실눈 사이로 날카로운 눈빛이 번뜩 스쳤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둘째 큰아버지도 관심 있으세요?”
돈 낼 생각 없으면 관심 끄란 소리였다.
“100만 원.”
둘째 큰아버지는 선뜻 백만 원을 던졌다.
뜻하지 않은 지출일 테고, 콕 짚어 혼자만 지목받은 게 당황스러울 법도 하건만,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대신 이따 나랑 같이 노는 거다.”
둘째 큰아버지는 내 시간을 사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를 따르는 양 비서가 얼굴을 굳혔다.
“사장님, 안 됩니다. 식사가 끝나면 바로 2층 서재로 올라가야 합니다. 계열사 임원들과 모여 나눌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건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오늘은 새해 첫날이야. 그리 빡빡하게 굴 필요는 없겠지.”
둘째 큰아버지는 손을 들어 양 비서의 입을 막았다.
“게다가 우리 조카님을 처음 만난 날이기도 해.”
“사장님!”
“2층 서재엔 자네만 올라가는 게 좋겠군. 정 걱정되면 내 몫까지 귀담아듣고 오면 되겠고.”
비공식적인 계열사 임원회의를 마다하고,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도 아닌, 고작 여덟 살짜리인 나를 만나겠다?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선택이지.
* * *
식사가 끝나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애들은 놀이방으로, 어른들은 서재로 모여. 오랜만에 가족끼리 허심탄회하게 새해 인사나 나누자.”
새해 인사를 빙자한 계열사 간 정보 교류를 하자는 소리로 들린다.
큰아버지 부부와 부모님은 물론 고모와 심 사장, 김 비서와 고 실장까지 전부 2층으로 향했다.
반면 지하는 우리 어린애들 차지였다.
‘허, 이게 재벌가 애들 놀이방 스케일!’
무슨 놀이방이 이렇게 화려하냐?
당구대는 물론이고, 포커판부터 시작해서 최신 오락기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인형과 장난감은 물론 만화책도 가득했고, 애들이 편하게 굴러다닐 수 있도록 소파와 카펫, 커다란 쿠션용 베개까지 장만해두었다.
애들 간식을 넣어놓은 바구니와 음료수가 종류별로 잔뜩 들어있는 냉장고까지 봤을 땐, 그저 웃음밖에 안 나왔다.
“작은아빠!”
“아빠!”
둘째 큰아버지인 차기준이 지하 놀이방으로 내려왔다.
수행원은 아무도 없다.
대신 종이 상자째 뭔가를 한가득 가져왔는데.
그걸 보고 사촌 형과 누나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할아버지에게 백만 원을 받을 때도 시큰둥했던 사촌들이 저게 뭐라고 이렇게 뜨거운 호응을······.’
빨간 잡지와 콘서트 티켓, 그리고 커다란 연예인 브로마이드였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유행하는 최신 팝송이 담긴 레코드판도 잔뜩이었다.
둘째 큰아버지는 넥타이를 풀고, 소매를 걷은 채 의자에 앉았다.
“내 사전에 공짜란 없다. 이걸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다들 알지?”
“네!”
사촌들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러더니 사촌들은 둘째 큰아버지에게 우르르 달려가서 달라붙었다.
한 놈은 둘째 큰아버지 어깨를 주무르고, 팔에 한 명씩, 다리에 한 명씩, 그렇게 각각 달라붙어서 열심히 안마를 하기 시작했다.
둘째 큰아버지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떡국을 먹다 말았나. 왜 이리 손아귀 힘이 부실해? 잡지 안 갖고 싶어? 브로마이드 필요 없어?”
< 남다른 선택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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