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82)
재벌집 만렙 아들-82화(82/416)
< 형님 하기에 달린 거지 >
심 사장은 서류 뭉치를 들었다.
“이건 태성화학 직원들의 사직서니까 우광의 것이 아니지. 이건 챙겨가겠다.”
“그거나 갖고 빨리 꺼져라.”
“아니, 명패 챙길 시간조차 안 준다고? 우광은 원래 책상 정리하는 사원도 이렇게 쫓아내나?”
심 사장은 책상에 한쪽 엉덩이를 턱 걸쳤다.
“그럼 자네도 명패 챙길 시간도 없겠는데? 미리 명패를 챙겨놓는 게 어떤가?”
“헛소리!”
“헛소리가 아닌 건 나도 알고 자네도 알잖아. 우광건설이 150억짜리 어음을 막아낼 능력은 있고?”
“······.”
우광건설 김 사장은 입을 다물었다.
억지로 평온을 가장하고 있으나 분한 기색은 숨기기 어려워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떠나는 마당에 내가 할 말이 뭐 있겠어? 그저 동병상련이 들어서.”
“심원철.”
“살길은 미리 모색해야겠더라고. 날 보라고.”
심 사장은 보란 듯이 두 팔을 벌려 어깨를 으쓱했다.
“하루아침에 태성화학 사장직에서 쫓겨날 줄 누가 알았겠어?”
“으음.”
“태성은 보름 만에 벌써 두 명의 계열사 사장이 단칼에 잘려 나갔다. 제 동생, 제 심복의 밥그릇을 뺏어다가 아들 손에 쥐여주더군.”
태성화학의 심 사장과 태성건설의 차 사장이 경질되었다.
우광건설 김 사장은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그럼 이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심 사장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책상에서 엉덩이를 떼어내며 미련 없이 내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
한 손에는 태성화학 직원들의 사직서 뭉치를 든 채였다.
“잠깐. 명패를 챙겨가고 싶다면 가져가도 좋다.”
“됐어. 지금 사장실에 들어가 봐야 좋은 꼴 보겠어? 명패는 자네가 잠시 보관해주면 좋겠군. 조만간 찾으러 가지.”
태성화학을 곧 되찾아올 작정이거든.
* * *
심 사장은 내 손을 잡고 비서실에서 나왔다.
개운하고 후련한 얼굴이었다.
“심 사장님, 지금 꼭 악당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요.”
“티 났습니까?”
심 사장은 부정하지도 않았다.
“일부러 우광건설 사장님을 들쑤시던데요.”
“받은 대로 돌려준 것뿐입니다.”
심 사장은 닫힌 문을 힐끔 돌아보며 혀를 찼다.
“우광건설 김 사장이 헛바람을 잔뜩 집어넣는 바람에 회장님과 동생분의 돈독했던 사이가 크게 벌어졌잖습니까.”
전(前) 태성건설 사장이었던 작은할아버지 얘기였다.
“우광의 두 형제 사이는 얼마나 돈독한지 두고 보자 싶어서 말입니다.”
심 사장은 가벼운 말 몇 마디로 우광건설 김 사장의 마음에 의심의 싹을 뿌렸다.
형의 속내를 의심하고, 자신의 미래를 의심하도록.
‘안 그래도 김 회장이 태성화학 어음 발행처로 우광건설을 콕 짚은 후다. 우광건설 사장의 불안과 불만에 제대로 불을 지핀 격이지.’
심 사장은 들고 온 서류 뭉치를 서류 가방 안에 쏙 넣었다.
“아, 아까 돈세탁한다던 거요!”
“여기 있습니다.”
“태성건설로 이직하겠다는 입사 원서는요?”
“그것도 여기 있습니다.”
심 사장이 아까 챙긴 서류 뭉치 속을 슬쩍 벌려서 보여주었다.
겉표지엔 <태성화학 사직서>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 안에는 다른 서류가 슬쩍 섞여 있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기 사장실에 두고 온 서류들은 죄다 겉표지만 그럴듯하지 정작 내용은 쭉정이 같은 쓰레기뿐입니다.”
“쭉정이 서류들이요? 설마 태성화학의 샴푸 배합법이나 개발 보고서 같은 것들도······.”
“예, 일부러 실패한 실험들로만 골라다가 보란 듯이 늘어놨지요.”
심 사장은 씩 웃었다.
“우광의 김 회장이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 반장을 시켜서 중요한 서류는 죄다 제 차 트렁크에 실어놓도록 했습니다.”
역시 심 사장! 철두철미하구만!
“그럼 가실까요? 저녁 식사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좀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심 사장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우광의 숨통을 조이는 일은 저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회장님과 태성의 계열사 사장들의 협조를 구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스르륵.
저승사자가 연기처럼 바닥에서 솟아났다.
[저쪽 사장실 안에서는 우광 계열사 사장들이 잔뜩 신이 나서 난리가 났더군. 보여주랴?]‘됐어.’
그걸 엿봐서 뭐하겠어.
태성화학 사람들 머리 위에서 반짝이던 황천길 카운트다운과 주황색 화살표도 지운 마당에 굳이?
이젠 다 끝난 일이다.
[그 교활하게 생긴 놈 말이야. 우광건설 사장 놈. 그놈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꼬리를 잡는 일은?]‘그것도 그만둬. 지하철 2호선 공사도 따냈겠다, 태성화학도 넘겼겠다, 구태여 신경 쓸 필요 없을 것 같으니까.’
[그런가.]저승사자는 사장실 문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럼 뜻대로 하지.]* * *
차에 오른 우광건설 김 사장은 뒷문을 부서질 듯이 닫았다.
쾅!
심원철의 명패를 뒷좌석에 대충 던져 넣은 우광건설 김 사장은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태성화학을 날로 먹게 됐다면서 자축하느라 정신이 나가서 계열사 시찰도 관두겠다고 하고. 회사 꼴 참 잘 돌아가는군.”
“그럴 만한 경사잖습니까. 태성화학 지분을 정리하기 위해 150억이나 되는 돈을 마련하려면 골치깨나 아픈 일이었는데, 어음으로 퉁치게 됐으니까요.”
“그 어음은 누가 책임지고? 우리 우광건설이 다 떠맡게 됐어!”
우광건설 김 사장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최 비서는 백미러로 상사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야 회장님께서 사장님을 가장 믿고 아끼시니······.”
“헛소리! 형님께서 날 가장 믿고 아껴? 그럼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쿵!
우광건설 김 사장은 분에 못 이겨서 가죽시트를 주먹으로 쳤다.
“우광건설이 가진 땅을 다 팔아도 150억은 마련 못 해! 거기에 심원철 그 개새끼는 우광건설을 고작 50억짜리 회사 취급을 하더군!”
“많이 후려치긴 했군요. 50억은 좀 너무했지요.”
“형님께 따졌더니 한다는 말이, 차태성은 10억으로 7년 만에 300억짜리 회사를 키워냈는데, 난 30년 동안 150억짜리 회사조차 못 키워냈다니 안타까울 노릇이란다!”
우광건설 김 회장이 씩씩대는 이유였다.
“정말 우광건설을 부도내고 150억짜리 어음을 날려버리실 생각이냐고, 처음부터 태성화학을 집어삼킬 작정으로, 날 밀어낼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뭐? 못 할 이유라도 있나? 이런 빌어먹을!”
쿵!
“모든 것은 나 하기에 달린 일이라고? 우광건설을 지키고 싶으면 그만한 능력을 보이라고? 결과로 증명하고, 실력으로 인정받으라고? 우광건설이 150억보다 가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할 거라고?”
쿵!
“지금까지 내가 우광건설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헌신했는지 뻔히 알면서 내게 그런 모욕을 줘? 계열사 사장단 앞에서? 날 개돼지 취급을 하고 있지 않고서야!”
우광건설 김 사장은 빠드득 이를 갈았다.
한참이나 씩씩대면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운전대를 잡은 최 비서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목을 잔뜩 움츠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최 비서, 만약에 말이야. 지금 태성화학에서 화재가 나면 어떻게 될까?”
“사, 사장님!”
최 비서는 경악했다.
“방금 태성화학 인수를 끝내고 오는 길입니다. 전과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왜? 뭐가 달라졌는데?”
우광건설 김 사장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다.
“태성화학에 화재가 크게 나면 재산 및 인명 피해가 크게 난다. 그럼 언론이 떠들어대고, 청와대의 분노가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건 차 회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짰던 덫이었잖습니까. 이미 인수 합병이 끝난 이상, 화학 공장에서 사고가 나도 차태성은 이제 못 건듭니다!”
우광건설 김 사장은 키득키득 웃기만 할 뿐이다.
최 비서의 목소리가 작게 떨리기 시작했다.
“사장님, 이대로 일을 강행한다면 우광의 손해가 상당히 클 겁니다. 어쩌면 청와대에서 노여움이 떨어질 만큼······.”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형님은 총수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까?”
최 비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우광건설 김 사장은 멈추지 않았다.
“조카는 이제 고작 30대야. 차기 총수로 올라가기엔 너무 젊지.”
“사장님, 태성화학에 화재가 나면 태성화학이 허무하게 날아가고 맙니다. 거기에 우광증권까지 엮였다면서요? 손해가 너무 막심합니다!”
“그 정도의 손해라도 보지 않으면! 내가 우광의 총수 자리에 앉아볼 수나 있겠어?”
우광건설 김 사장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형님은 태성화학을 얻기 위해 우광건설을 버릴 독심까지 품고 있다. 이대로 우광건설을 부도내면 난 차윤성 꼴이 나는 거야.”
우광건설 김 사장은 <태성화학 사장 심원철>이라고 적힌 명패를 힐끔 보았다.
심 사장의 충고가 떠올랐다.
-살길은 미리 모색해야겠더라고. 날 보라고. 하루아침에 태성화학 사장직에서 쫓겨날 줄 누가 알았겠어?
-태성은 보름 만에 벌써 두 명의 계열사 사장이 단칼에 잘려 나갔다. 제 동생, 제 심복의 밥그릇을 뺏어다가 아들 손에 쥐여주더군.
타산지석이 멀리 있지 않았다.
가까이에 있었다.
“남 일이 아니야.”
생각할수록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형님이라면 내 재산까지 홀랑 털어다가 조카 입에 물려줄 텐데.”
동생을 그렇게 아낀다는 차태성도 그랬다는데, 우리 형님이라면 더 모질게 굴면 굴었지.
알뜰살뜰하게 동생 부부와 조카를 챙겨주진 않을 것이다.
“우광건설 이름으로 어음을 발행하겠다는 것만 봐도 이미 날 잘라내려고 작심을 한 모양인데.”
안절부절못하던 최 비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장님, 술 한잔 같이하면서 형제끼리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눠보시죠.”
“우리 형제 사이에 그 정도 의리가 있을 리 있나.”
“그럼 태성화학, 아니, 우광화학 사장 자리에 누구를 앉히는지부터 확인하고 큰일을 도모하심이 어떨런지요?”
“우광화학 사장이라. 만일 내 자식에게 그 자리와 지분까지 전부 넘겨주겠다면······. 나 역시 더는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어.”
우광건설 김 사장은 그제야 가죽시트에 몸을 기댈 수 있었다.
“모든 것은 형님 하기에 달린 거지.”
우광건설 김 사장은 다리를 꼬았다.
“태성화학 인부에게 붙였던 그 악덕한 사채업자 말이야.”
“불광동 휘발유 말입니까?”
“그래, 그놈. 불 지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놈이라며?”
“오죽하면 별명이 불광동 휘발유겠습니까? 제 돈 갚지 않은 놈들 집과 직장을 찾아다니면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몰래 불 놓는 솜씨가 예술이라더군요.”
* * *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니 과연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태성의 계열사 사장 및 임원들은 전부 돌아가고, 태성의 직계 가족만 남았다.
우리는 아침에 비해 한결 조촐해진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게 되었다.
“정혁아, 태성화학 공장 견학은 재미있었느냐?”
“네, 할아버지.”
“심 사장, 고생했네. 태성화학 인수인계 준비에도 바쁠 텐데 말이야.”
“회장님, 안 그래도 태성화학 인수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심 사장이 입술만 달싹이고 있을 때였다.
김 비서가 창백해진 얼굴로 식당에 나타났다.
“회장님, 해외 뉴스 속보입니다! 두바이행 인도 항공 855편이 아라비아해에 추락해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김 비서는 다급하게 덧붙였다.
“성준 도련님이 탑승하기로 예정했었던 바로 그 비행기 말입니다.”
“······!”
경악으로 부릅뜬 가족들의 눈이 모두 아버지에게 꽂혔다.
“설마 진짜 꿈에서 나왔던 그 일이······!”
“맙소사!”
“세상에, 이게 다 무슨 일이래?”
정작 아버지는 다른 의미로 새하얗게 질려서 김 비서에게 급히 되물었다.
“한국인 탑승객도 있습니까?”
“아직 정확한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국인 탑승객도 있다는 것 같습니다.”
“설마 경석이가······!”
이경석. 이 비서의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경석이가 끊어왔던 왕복항공권이 인도 항공 855편이었습니다. 1월 1일 09시 30분에 출발하는.”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김 비서님, 경석이에게서 귀국하겠다는 전보를 받은 적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현황 보고에 관한 전보는요?”
“속히 귀국하라는 전보를 계속 보내고 있지만, 답신은 전혀 받은 바 없습니다.”
“설마 경석이 혼자서 일정을 강행하고 있는 건······.”
아버지는 마른세수했다.
김 비서는 보고를 이었다.
“현재 그 비행기에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 때문에 중동이 발칵 뒤집혔다고 합니다.”
“그게 누구죠?”
“무함마드 빈 부티 알하메드입니다.”
푸흡!
나도 모르게 물을 뿜고 말았다.
‘뭐? 만수르의 장인어른이 거기서 왜 나와?’
그때 저승사자가 불쑥 튀어나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것이다. 대왕께서는 네게 선물하시겠다던 아주 특별한 인연의 고리.]그러니까 원래라면 나와는 절대로 닿지 못했을 인연이자, 염라대왕이 특별히 고른 거물과의 끈이 저 사람에게서 시작된단 말이지?
< 형님 하기에 달린 거지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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