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83)
재벌집 만렙 아들-83화(83/416)
< 이런 게 운명? >
저승사자는 말했다.
[이경석이라는 그 친구, 정말 보통 똥꼬집이 아니더라. 내가 그렇게 수시로 악몽을 꾸게 만들면서 경고했는데도 들은 척도 안 하더군.]‘그야 꿈에 불과하니까.’
개꿈으로 치부하면 그만이거든.
[보통 그 정도로 똑같은 악몽을 반복해서 보게 되면 한 번쯤은 찝찝해서 몸을 사리기 마련인데 말이야. 이 친구는 그런 게 없어.]저승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강행군을 거듭하는 거야. 보스가 귀국했으니 자기가 나머지 일을 확실하게 커버해야 한다며 불타오르더군. 책임감이 아주 투철한 친구더라.]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책임감이 투철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칭찬해야 마땅한데.
미신에 휘둘리지 않고, 수면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다 해냈다는 건 분명 훌륭한 사회인의 자세인데.
이 비서, 당신 그러다 죽어! 여러 가지 의미로!
[내 딴에는 온갖 방해 공작을 다 했다만, 기어이 그 비행기를 타겠다고 하니 나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골치 아프네. 그래서 비행기를 탔다는 거야, 말았다는 거야?’
[안 탔다. 아니, 못 탔다.]‘오!’
그제야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경석은 이렇게 잃긴 아까운 인재였다.
그는 훗날 태성의 브레인이라 불리며 태성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인 태성전자 사장이 되는 남자다.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꿈도 안 통한다면서. 이 비서를 어떻게 막았는데?’
[그게······ 동티를 냈다.]‘동티?’
동티라면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렸을 때 받게 되는 재앙 같은 거 말이지?
뭔가 이상한데?
그러니까 주체가 바뀐 거 아닌가 싶다만.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자진해서 동티를 냈다고?’
[그 외에 달리 막을 방법이 있었나?]‘······.’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저승사자가 자진해서 동티를 냈다는 말은 또 생전 처음인지라.
‘동티가 나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
[아프지.]‘감기 몸살같이? 소름이 막 돋는다는 거나, 아니면······.’
[고열은 기본이고 하늘이 빙글빙글 돌다가 픽픽 쓰러지지.]‘······.’
[안 죽는다. 내가 설마 그렇게까지 과하게 손을 썼을까. 문제없다.]‘일단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손을 썼다는 것부터가 문제인 것 같은데 말이야.’
[나더러 이 비서가 아라비아해에 빠져 뒈지는 것을 막아달라며.]결국 내 부탁 때문에 저승사자가 동티란 무리수를 쓰게 됐다는 소리였다.
‘어, 음. 미안하게 됐다.’
[미안할 것 없다. 마침 네가 공을 크게 세운 덕에 대왕께서 선물을 준비하기로 하셨거든. 덕분에 천명에 기대어 슬쩍 넘겼다.]아, 그러고 보니 그걸 물어보려고 했었지.
‘만수르의 장인어른. 그 사람은 또 뭔데? 원래 그 비행기에 안 타는 사람이었잖아?’
저승사자는 씩 웃었다.
[그거 알고 있나? 사람이 재수 없게 죽으려면 여러 번의 ‘하필이면’이 겹쳐야 한다.]문득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죽을 때만 해도 그렇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운전기사 대신 내가 운전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하필이면 그때 25톤 트레일러 운전수가 졸고 있어서, 하필이면 유치원 애들 하교 시간과 겹쳐서, 하필이면 차 측면으로 부딪쳐서, 하필이면······.
[반대로 말하면, 여러 번의 재수 없는 하필이면이 겹친다고 하더라도 단 한 번의 행운이 깃들면 죽지 않고 넘어간다.]어?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운 좋게 사고를 면했다는 것은 보통 알지 못하고 지나치지.]그런가.
[반대로 인연 또한 그때의 운이 있기에 맺어지는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사실 이번 일은 이경석의 운에 네가 올라타는 격이라 할 수 있는데.]음?
[이경석은 본래 중동의 실세와 인연이 있던 자였다. 그는 단지 이번 일로 인해 조금 그 연이 앞당겨졌을 뿐이나, 너는 본디 그쪽과의 인연이랄 게 아예 없었으니까.]그야 내가 중동 뒷골목을 휘저을 일이 없었으니 그렇지.
그러고 보니 이경석은 중동 시장 덕을 크게 봤었다.
젊어서는 태성건설로, 이후에는 태성물산과 태성전자로.
이경석은 중동의 실세들과 격 없이 어울리며 친교를 나누고 사업을 성사시키는 수완가로 유명했다.
중동의 왕자들 중에서도 사업적 감각으로 두각을 드러낸 만수르가 종종 이경석 사장에게 자문을 구한다는 말이 돌 만큼.
‘수호신, 그래서 중동의 권력자는 어떻게 운 좋게 죽음에서 비껴간 거지? 자세히 좀 말해 봐.’
궁금했다.
‘그 양반은 아부다비 왕실의 외척인 데다 막강한 권력자라서 전용기를 타고 다녔을 텐데. 어쩌다가 그 비행기를 타게 된 거야?’
[하필이면 기계가 고장을 일으켰거든.]‘전용기가 고장 났다고? 어쩌다가? 이유가 뭔데?’
[그게 중요한가? 발이 묶였는데도 왕실의 초청을 무시할 수 없어서 일정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는 게 중요하지.]아, 그래서 그 양반이 두바이행 비행기표를 샀던 거군.
[일정을 강행하려니 별수 있나. 다른 방법이라도 강구해야지. 마침 시간에 맞춰 목적지로 향하는 표가 딱 하나 있었는데.]‘그게 하필이면 인도 항공 855편이었군.’
[그래. 하필이면 바닷속으로 추락이 예정된 비행기를 타게 생긴 거지.]나도 모르게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만 해도 대체 ‘하필이면’이란 단어가 몇 개나 들어간 것인가.
[하필이면 그때 같은 비행기표를 끊은 이경석과 나란히 걷게 됐고, 하필이면 나를 만났지. 그렇게 둘은 같이 동티가 난 거다.]‘음? 그럼 거기서 끝인 거 아니야?’
[그럴 리가. 그래서야 인연의 끈이 엮일 리 있나.]의아했다.
‘거기에 또 뭐가 더 있는데?’
[아직 하필이면은 끝나지 않았다. 하필이면 둘은 같은 공항 의무실을 나눠 쓰게 됐지.]‘······.’
[하필이면 경호원들과 비서들은 난데없는 비상사태에 대응하느라 저마다 바빴다. 둘만 남겨 진 거지.]보나 마나 요인 경호에 특화된 경호원들은 의무실 출입을 통제했을 테고.
비서들은 전용기 수리를 알아보느라, 변경된 스케줄로 인해 두바이 왕실과 연락을 취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경석은 끙끙 앓고 있던 와중에 전화를 쓰겠다며 의사를 붙잡고 사정해야 했다. 비행기를 놓치면 입찰서를 제출해야 하는 시간을 못 맞추게 생겼거든.]‘입찰서?’
[태성건설의 두바이 건설 공사 입찰 견적서.]······어라?
[중동에선 넘쳐나는 돈으로 도시 건설을 계획한다며. 비행기는 왜 타려 했겠나?]‘설마······!’
나도 모르게 그만 헛웃음이 나고 말았다.
‘설마 그 전화를 듣고 무함마드가 태성건설에 흥미를 보였단 말이야?’
[그런 거지. 전화위복이 된 격이라 할까.]저승사자는 씩 웃었다.
[세상사가 다 그런 것 아니겠나. 가끔은 소설보다 현실에서 더 허황된 일이 일어나곤 하지.]‘동티가 맺어준 인연이라는 건가.’
[황천길 행보단 의무실 행이 낫지. 달리 발을 묶을 만한 방법이 없더군.]그건 그렇다.
한쪽은 족히 보름 동안 수시로 악몽에 시달려도 무시하고 강행군하는 남자.
다른 쪽은 전용기가 고장나자 다른 비행기라도 타고 가겠다는 의지의 사나이.
육신도 없는 저승사자가 둘의 발을 동시에 묶으려면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잠깐. 이건 내 공덕을 치하하기 위해 마련한 특별한 인연이라며?’
[생각해 봐라. 그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여덟 살짜리 어린애와 한 왕실의 외척이자 거대 가문의 수장이 인연을 맺을 방법이 달리 또 있겠나? 인연의 끈을 타고 가는 수밖에.]생각하고 보니까 그건 그러네.
[우연이란 계기보다야 사람이, 대응이, 일이 더 중요한 법이지. 무함마드는 도시 건설을 계획하는 권력자이고, 이경석이 보여주는 태성건설 공사 계획이 그의 흥미를 끌었을 뿐이다.]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어쨌거나 이 비서는 무사히 살아있다는 거지? 그럼 됐어.’
나는 저마다 심각한 표정을 한 채 바쁘게 움직이는 어른들을 보았다.
할아버지는 외교부에 전화를 걸어 청탁하고 있었다.
“이번에 아라비아해에 추락한 탑승객 중에 이경석이란 친구가 있는지 한번 알아봐 주게. 우리 태성건설 소속 친구야. 부탁함세.”
아버지는 공항을 뒤져보고 있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인도항공 855편의 탑승객 중에 이경석이란 친구에 관해 알아보고 싶습니다. 인도항공과 연락을 취할 수 없겠습니까?”
김 비서는 이곳저곳에 전보를 치겠다고 달려나간 후였다.
‘이것 참. 이 비서는 멀쩡히 살아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뭐 마음고생 좀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모른 척하기로 했다.
‘저승사자, 수고했어.’
일을 해줬으면 일당을 받아야 하고, 공을 세웠으면 포상을 받아야지.
‘내가 오늘 집에 돌아가면 우리 집 지하실 금고를 개방해 줄게. 거기에 산수화랑 예술 작품이 잔뜩 있어. 지난번에 보니까 너 그런 거 감상하는 거 좋아하더라?’
[흐음, 이왕이면 난 다른 것에 도전해보고 싶은데.]‘다른 거? 뭔데?’
[이를테면 저런 거.]저승사자가 가리킨 건 흑백 브라운관 티비였다.
[신문물인 모양인데, 거참 신기하더라고.]좋지!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네 공을 참작해서 특별히 채널 선택권까지 준다.’
원래 채널 선택권은 그 집안의 실세에게만 허락되는 특권이라구?
* * *
‘괜히 보여줬나!’
저승사자는 텔레비전이란 신문물을 영접하고 신세계에 눈을 뜨고 만 것이다.
[빨리 텔레비전 좀 틀어봐라. 일일연속극 시작할 시간이다!]어느새 저승사자는 하루 종일 기다려서 시간까지 맞춰가며 본방 시청하는 드라마 애청자가 되어 있었다.
누가 백수 아니랄까 봐.
‘너 고작 열흘 만에 텔레비전 편성표를 전부 외운 거냐?’
[이러다가 앞부분 놓친다. 어제 결정적인 순간에 끊기는 바람에 뒤가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다!]저승사자가 내 소매를 마구 끌어당겼다.
‘나 지금 멸치 똥 따고 있는 중인데?’
[멸치 똥 따면서 텔레비전 못 보는 거 아니잖나. 텔레비전 다 보고 마저 따도 되고. 하지만 연속극은 시간을 놓치면 다음이란 건 없단 말이다!]‘아 쫌!’
저승사자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발을 동동 굴러가며 재촉했다.
애국가부터 시작해서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채널을 돌려가며 텔레비전을 보겠다고 떼를 쓰곤 했다.
보다 못한 내가 ‘텔레비전 시청 가능 시간표’를 짜고 나서야 일상생활이 가능해졌을 정도다.
중독이 멀리 있지 않다니까?
[얼른! 흥선대원군이 나온단 말이다!]저승사자가 손꼽아가며 기다리는 연속극이 몇 개 생겼다.
동양방송의 매일 연속극 ‘아름다운 이 청춘아’와 ‘외동딸’, 금요드라마 ‘찔레꽃’ 그리고 주말 연속극 ‘그건 그려’.
그중에서도 저승사자가 가장 좋아하는 연속극은 매일연속사극인 ‘비 바람 찬 이슬’이었다.
[아아, 조선의 국운이 이렇게 쇠하여······! 이 나라의 앞날에 어둠이 짙어져 가는구나······!]장영이 흥선대원군 역을, 장미현이 1인 2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저승사자가 극에 몰입해서 탄식과 감탄을 거듭하며 보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한 마디밖에 나오지 않았다.
‘염병.’
아줌마들이 드라마에 나오는 악역을 현실에서 만나면 그렇게 욕을 해댄다던데.
[내 왜놈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 지난번에 봤다. 저놈들이 어디 사는지 내가 봤다니까?]‘아니야. 저거 연기야. 그 사람들 다 한국 사람들이라고.’
[일본군이 군복을 벗고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더라니까? 저런 쳐죽일 놈들! 포졸들은 뭐 하나? 저런 놈 안 잡아가고!]‘······.’
업데이트가 조선에서 멈춘 것 같은 저승사자를 두고 내가 한국사 강의를 어디까지 해야 할까.
진짜 매국노를 보듯이 비분강개하는 저승사자를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만.
여차하면 ‘동티’란 끔찍한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인지라 이거 모른 체할 수도 없고.
‘저승사자, 잘 들어. 그러니까 이건······.’
내가 저승사자를 앉혀놓고 텔레비전과 방송 시스템, 연기자와 세트장, 대본과 고증 등에 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으려 할 때였다.
-뉴스 속보입니다!
갑자기 뉴스 화면으로 전환하면서 앵커가 다급하게 속보를 발표했다.
-오늘 오후 5시 7분께 인천의 한 화학 물질 제조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현재까지 공장에서 작업을 하던 인부와 진화 작업을 벌이던 소방관 2명을 포함해 52명이 죽고, 137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습니다.
뉴스 화면 밑으로 커다란 자막이 떴다.
<화학 공장 화재 사고, 현 시각 사망자 52명, 부상자 137명>
< 이런 게 운명?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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