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85)
재벌집 만렙 아들-85화(85/416)
< 같은 사건 다른 행보 >
청와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화학 공장 화재는 ‘안전사고’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태성의 계열사 사장들은 너도나도 입을 열었다.
“우광에서 막 투입한 인부들로 꾸려진 작업팀입니다. 직원들의 안전 교육이 부실하지 않았겠습니까?”
“익숙하지 않은 작업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작업을 해야 했을 겁니다. 사고가 나는 건 한순간이죠.”
“우광이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 같습니다. 듣자 하니 공장 안쪽에서 인화성 물질이 다량 발견되었다던데요.”
할아버지는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어쨌거나 화재 원인으로 원한에 의한 방화라든가, 북한과 관련된 폭발 테러 혹은 공습 따위를 지목한 건 아니란 말이지?”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차후 청와대의 발표를 지켜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할아버지가 계열사 사장들을 돌아보았다.
“우광의 움직임은 어때?”
모르고 묻는 말은 아니었다.
얼마나 심각한지를 묻는 말이었다.
“우광이라면 본사부터 계열사까지 전부 발칵 뒤집혔죠.”
“전 계열사 사장과 임원들을 총집결해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는 것 같습니다.”
“우광 비서실에서 전화통에 불이 나도록 태성에 격렬한 항의를 보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우광으로서는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쪽에 안전사고의 책임을 전부 떠넘기고 싶을 겁니다.”
그만큼 큰 사고였다.
사상자가 도합 이백 명에 가까웠으니까.
그래서 태성의 계열사 사장들은 안색이 어두웠다.
“어쩌면 우리 태성도 문책을 면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처음부터 우광과 공동 설립한 화학회사였고, 우리 태성이 지금껏 관리해왔지 않습니까.”
“우광에 태성화학을 넘겨준 지 고작 열흘밖에 안 지났습니다. 만일 시설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태성화학을 빼앗기는 과정에서 틀어져 보복성 문제를 일으킬 여지를 입 다물었다든가······.”
계열사 사장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줄어들어간다.
눈치를 보느라 뒷말이 뭉개지기 일쑤였다.
누군가는 눈 딱 감고 시원하게 말했다.
“우광이 태성의 탓으로 물고 늘어지면 회장님이나 심 사장이 곤란해질 게 뻔합니다. 이에 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맞습니다. 일단 사고 감식반과 접촉해보겠습니다. 어떻게든 태성이란 이름이 안 나오도록 발을 빼 봐야죠.”
“청와대 비서실에도 연락을 넣어놓겠습니댜!”
“그럼 전 언론을 막아······.”
탕! 탕! 탕!
할아버지는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때렸다.
“우리가 죄지은 것도 없는데, 왜 그런 구린 짓을 하려고 해?”
“회장님, 만에 하나 우리 태성이 여기에 얽힌다면······.”
“우광건설이 지난번에 구로동 판자촌을 강제철거하면서 왜 청와대의 눈총을 샀겠나? 일을 치고 뒷수습을 하겠다며 언론을 구워삶고, 경찰과 검찰의 입을 막았기 때문이야.”
그제야 계열사 사장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을 수 있다면 막아야죠.’란 뜻을 굽히지 않는 기색이었다.
할아버지는 혀를 찼다.
“뒷수습을 한답시고 얕은 수작을 부리는 것보다 각하께 잘못했다고 엎드려 빌며 선처를 구하는 게 더 낫다.”
과거 할아버지가 선택했던 방법이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이런 일에 얽히지 않는 것이고.”
계열사 사장들이라고 그걸 모를까.
둘째 큰아버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가능했다면 이렇게 전 계열사 사장들이 모여서 긴급 대책 회의를 열지도 않았겠지요. 태성은 이미 얽혔고, 사고는 이미 벌어졌잖습니까. 지금은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고요.”
“글쎄. 누가 우광화학 사고에 태성이 얽혔다고 했어? 심 사장!”
“예, 회장님.”
할아버지가 심 사장을 돌아봤다.
“자네가 직접 대답해 봐. 청와대에서 태성에 우광화학 화재 사고의 책임을 물을 일이 있겠나?”
“그럴 리가요. 우광화학은 태성과 전혀 상관없음을 천명할 수 있습니다.”
심 사장은 딱 잘라 말했다.
“태성화학을 넘겨줄 때 이 문제를 확실하게 처리했습니다. 우광의 김 회장이 이에 관해 서명 날인 했고, 우광의 전 계열사 사장들이 묵인한 사안입니다.”
태성의 계열사 사장들이 웅성거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태성화학을 넘기면서 그 시간부로 모든 것을 다 우광의 소유임을 인정했습니다. 시설의 관리와 책임까지 전부 우광의 것임을 확인했고 말입니다. 태성화재 보험까지 종결시키고 넘긴 일입니다.”
“태성과 관련된 모든 끈을 협상 과정에서 확실하게 전부 잘라냈다는 소립니까?”
“예, 태성화학 인수 합병 계약서에 서명 날인하는 즉시 태성 측 사람들은 몸만 갖고 떠나기로 합의했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명패조차 챙기지 못했겠습니까?”
할아버지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심 사장의 혜안이 아주 놀라워. 설마 이런 일이 있으리라 예상했던 것도 아닐 텐데, 앞일을 내다본 것처럼 일 처리가 아주 깔끔하더군. 잘했어.”
“과찬이십니다.”
“안 그래도 태성화학 때문에 우광과 피 말리는 신경전을 오래 끌까 지긋지긋하던 참이었는데. 화끈하게 넘기고, 제대로 된 미끼와 함정까지 파놨고 말이야. 역시 심 사장다웠다. 믿고 맡긴 값을 톡톡히 했어.”
“감사합니다, 회장님.”
고모가 손을 들었다.
“난 믿기 어려운데요? 태성화학 지분을 우광이 사들였다면 은행이고 사채 시장이고 들썩여야 했어요. 족히 150억을 마련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쪽 시장이 잠잠한 것도 모자라 소리 소문 하나 들리지 않는단 말이죠?”
뾰족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꼭 시비 거는 것처럼 들려왔다.
계열사 사장들도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했다.
“설마 혼약이 파투 났다고 지분까지 그냥 넘긴 건 아니겠죠? 혼약은 혼약이고, 사업은 사업이에요. 게다가 심 사장은 인수 합병 계약을 추진한 직후 사직서를 제출했어요. 이거 나만 의심스러워요?”
고모는 팔짱을 끼며 콧방귀를 뀌었다.
“우광과 짜고 태성에 몹시 불리한 계약을 진행했다. 그래서 적게는 몇 달, 많게는 몇 년이 걸리는 태성화학 인수합병을 고작 하루 만에 날치기로 통과시킬 수 있었다. 아니에요?”
고모의 말이 길어질수록 태성의 계열사 사장들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이미 계열사 사장 직함을 내려놓은 사람이 어째서 태성의 사장단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가부터 의문인데. 이건 어떻게 해명하실 거죠?”
“타당한 의문입니다. 먼저 그에 대한 해명을 하기 전에 이것부터 보면서 말씀하시죠.”
심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해 왔던 복사본을 돌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이 문제를 확실하게 짚어야 할 것 같아서 문제의 계약서를 가져왔습니다. 참고하십시오.”
태성의 계열사 사장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서류를 뒤적거렸다.
“이게 바로 심 사장이 전권을 위임받아서 추진한 태성화학 인수 합병 계약서란 거군요?”
“우광 쪽에서 앉은 자리에서 바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면서요?”
“대체 우리 쪽에서 어떤 솔직한 조건을 내걸었기에 그 깐깐하고 철두철미한 양반이······ 음?”
계열사 사장들은 이내 입을 떡 벌렸다.
“세 장짜리 계약서? 이, 이게 끝입니까?”
“아니, 이건 또 뭡니까? 태성의 지분 전부를 가져가면서 150억 원 상당의 어음을······!”
“하, 게다가 어음 발행처가 우광그룹 지주회사가 아닌 우광건설이랍니다! 그깟 우광건설이 150억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계열사 사장들은 심 사장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심 사장,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런 계약서를 쓴 거냐고 묻는 겁니다!”
“태성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잖습니까! 인수 합병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부터 동산 및 부동산 일체가 우광에 귀속된다고요?”
“태성화학 정리조차 제대로 못하고 앉아서 수억의 손해를 봤습니까?”
“이럴 거면 태성화학 인수 합병에 관한 전권은 왜 얻어갔던 겁니까? 진짜 우광의 김 회장과 모종의 거래라도 있었던 거 아닙니까?”
탕! 탕! 탕!
이번에도 할아버지가 테이블을 내려쳤다.
“지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앞장이 아니라 뒷장이야!”
“뒷장?”
“다들 재인수 협상에 관한 조항부터 살펴본 후에나 떠들도록 해!”
“재인수 협상이라면······ 헉!”
태성의 계열사 사장들이 전부 계약서의 마지막 장을 주목했다.
<만기까지 어음을 완납하지 못할 경우 어음 비율에 따라 지분을 넘기는 것으로 갈음한다.>
마지막으로 추가된 조항이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다.
<태성은 만기까지 어음 체납에 대해 독촉하는 등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 대신 담보인 우광증권도 재인수 협상 조건에 갈음하여 처리한다.>
태성의 계열사 사장들은 순간 숨을 흡 들이마셨다.
회의실에는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거······ 이거 설마······.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그거 맞죠?”
“우광의 김 회장이 이 계약서에 사인할 때만 하더라도 화학 공장에서 화재가 날 거란 사실은 몰랐을 테니······.”
“아이고, 수십억의 이자를 아끼려다가 담보로 잡힌 우광증권까지 홀랑 날리게 생겼군요?”
다들 입꼬리가 귀에 걸려서 씰룩거리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다들 계산기와 주판알을 바쁘게 튕기고 있는 듯, 재빨리 만년필로 메모를 하는 사장들이 생겼다.
“어때? 확실하지?”
세 장짜리 계약서를 흔들면서 할아버지는 웃었다.
“우광의 김 회장이 청와대로 불려나간 상황이다. 우광이 이 어음을 갚을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나?”
태성의 계열사 사장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모아 대답했다.
“어렵죠.”
“지금 태성화학 어음 막을 정신이 있겠습니까?”
“현재 실시간으로 우광의 전 계열사 주식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중입니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서 태성화학을 먹느니, 진창에 처박히게 생긴 우광철강을 살려보겠다고 안간힘을 쓸 겁니다.”
할아버지는 다시 한번 물었다.
“오늘 내가 자네들을 왜 불렀는지 이젠 알겠지? 우리는 화학 공장 화재 사건에서 빠져나갈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야.”
탕!
“우리는 이 기회에 태성화학을 어떻게 되찾아올 것인가에 관해!”
탕!
“우광증권에 어떻게 손을 뻗어 삼킬지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다!”
태성의 계열사 사장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래서 그들의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우광의 주식이 폭락하고 있습니다. 이를 주주들이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겁니다. 전 그쪽을 은밀히 들쑤셔보겠습니다.”
“전 자금 경색 직전인 우광의 현금 흐름을 좀 더 확실하게 틀어막아볼 생각입니다. 한경련 사람들과 접촉해 보지요.”
“우광그룹 계열사 중에서 알짜로 한번 골라보겠습니다. 마침 우리 태성이 인수하면 좋을 만한 계열사가 몇 개 눈에 띄더군요.”
“좋은 생각입니다. 저도 합류하겠습니다. 우광이 부활하려면 팔다리 몇 개는 뜯어줘야 할 겁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태성의 덩치를 키워야지요.”
“태성은 마침 송년의 밤에서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했습니다. 거기다 지하철 2호선 공사를 맡게 되면서 지하철역이 들어서는 곳의 땅을 사서 시세차익까지 노려볼 수 있습니다.”
탕!
할아버지는 씩 웃었다.
“다들 오늘만큼은 일찍 귀가할 생각은 버려. 밤을 꼬박 새우더라도 이에 관한 대책 논의를 끝내야 한다. 내일부터는 전 계열사가 오늘 정한 목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지. 안 그런가?”
“예, 알겠습니다!”
“다른 기업들이 발 빠르게 우광의 빈자리를 낚아채기 전에 우리가 좀 더 빠르게 움직여 보자고.”
“예, 회장님!”
“난 우리 태성이 고작 재계 서열 5위에 머무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기회가 왔을 때 잡고,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빼앗을 수 있을 때 빼앗는다!”
“물론입니다!”
할아버지는 냉혹한 기업가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는 40년 우정이란 단어가 끼어들기 어려웠다.
이 자리에서 할아버지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는 계열사 사장들의 눈만 해도 38쌍이었다.
그들 역시 각자 계열사를 이끄는 수장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두 할아버지 못지않게 비정하고 계산적인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손을 들었다.
“화학공장의 화재 사고로 사상자가 무척 많습니다. 우광병원만으로는 환자를 다 수용하기 어려울 겁니다.”
아버지 혼자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태성병원에서 의료 지원을 보냈으면 합니다.”
순간 계열사 사장들 전원이 입을 다물었다.
그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중상자가 사망자로 바뀌기 전에, 경상자가 중상자로 바뀌기 전에,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구해야죠. 전 그쪽을 맡겠습니다.”
< 같은 사건 다른 행보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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