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9)
재벌집 만렙 아들-9화(9/416)
< 결심 >
분명 아주 좋은 방법이긴 한데.
‘하지만 아저씨라면 내가 저 서류를 달라고 부탁해도 순순히 내어줄 위인은 아니지. 그렇다고 억지로 뺏을 수도 없고. ‘
어쩔 수 없지.
조금 멀리 돌아가기로 할까?
나는 아저씨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아저씨, 힘없는 자의 용기는 만용이랬어요. 강제 철거를 막고 싶어요? 판자촌 사람들이 다치는 꼴을 보기 싫어요? 그럼 그만한 힘을 갖고 있어야죠. 당장 힘이 없으면 힘 있는 자를 끌어들이든가.”
철구 아저씨는 눈을 크게 떴다.
“과녁의 정중앙을 맞히려면 그보다 위를 쏘아야 하는 법. 우광건설을 막고 싶으면 그 위를 노려요. 라인 잘 보고.”
내 말을 새겨듣고 목숨을 구하기를 바라면서.
“행여 아저씨에게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 둬야죠. 토끼도 굴을 팔 때 여러 길로 파 둔다잖아요.”
오지랖은 이쯤에서 끝내기로 했다.
‘머리가 있으면 알아서 살길을 찾아내겠지.’
내 성의와 호의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말하다 보니, 문득 걸리는 게 있었다.
철구 아저씨를 고문하며 놈이 했던 말이 자꾸만 뇌리에 맴돈다.
-왜 간첩 뒤를 캐고 다녀야 할 새끼가 쓸데없이 우광건설 뒤나 캐고 다녔냐고 묻잖아!
-네놈 때문에 몇이나 곤란하게 된 줄 알아?
-빨리 배후나 불어. 태성건설이지? 태성건설 맞잖아.
-눈치 없는 새끼. 태성건설이라니까 그러네.
그놈은 아저씨가 우광건설의 뒤를 캐고 다녀서 곤란하게 된 사람 중 한 명일 터였다.
우광의 뒤를 덮어주기 위해 중정의 윗선이 개입했다.
여기서 문제.
‘우광은 왜 태성을 노리는 거지?’
이상했다.
거짓 자백까지 받아내 가며 태성을 배후로 지목해서 뭘 어쩌려고?
‘내가 알기론 우광과 태성은 혼맥으로 얽혀서 상부상조하던 사이였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못 잡아먹어서 난리야?’
분명히 뭔가 감춰진 게 있는 것 같고.
그게 아니라면 저 서류는 왜 저렇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건데?
궁금해 죽겠다.
그래서 대놓고 물어봤다.
“아저씨는 우광건설의 어떤 걸 건드린 거예요?”
“지하철 공사 입찰에 연관된······. 젠장, 또 말렸네. 요물 같은 꼬맹이가 진짜······.”
지하철 공사 입찰이라고?
하,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얼추 알 것 같군.
감 잡았어!
*
“아주머니, 저 왔어요.”
“그래, 정혁이 엄마. 어서 와.”
집주인 할머니는 정혁이 엄마를 살갑게 맞아 주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아무래도 오늘 당장 연탄보일러를 못 쓸 것 같아서.”
할머니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정혁이 엄마도 요즘 이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알잖아. 언제 철거 용역이 들이닥쳐 다 부술지 몰라서. 정말 미안하게 됐어, 정혁이 엄마.”
이게 다 강제 철거 때문이다.
큰돈을 들여서 연탄보일러를 갈아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정혁이 엄마도 집주인 할머니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거 보증금이랑 이번 달 방값이야. 이거라도 있어야 이사 갈 집을 찾지.”
집주인 할머니는 현금 다발을 쭉 밀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강제 철거가 시작될 거 같아서 그래. 험한 꼴 보기 전에 얼른 정혁이 데리고 떠나는 게 좋겠어.”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카디건 호주머니에는 정혁이가 넣어주었던 주택복권이 들어 있었다.
정혁이 엄마는 집주인 할머니가 내어준 지폐 뭉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주머니는 어쩌시려고요?”
“나야 뭐 버틸 때까지 버텨보고.”
집주인 할머니는 씁쓸하게 웃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미련 없이 떠나야 할 때가 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네.”
“왜요?”
“미련해서 그렇지. 이 집은 죽은 철구 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이야. 그래서 그런가. 발이 영 안 떨어지더라고.”
할머니는 그리움이 깃든 눈으로 집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정혁이 엄마도 그래?”
“네?”
“내가 한 달 전에도 보증금을 돌려줬었잖아.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훌쩍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만 같아서. 혹시 정혁이 아버지 때문이야?”
정혁이 엄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 사람은 아마 저 여기 있는 것도 모를 거예요.”
정혁이 엄마는 돈을 챙겼다
“안 그래도 복덕방에 가볼까 했어요.”
“잘 생각했네.”
집주인 할머니는 정혁이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어딜 가더라도 잘 지내고.”
“그간 감사했어요.”
* * *
철구 아저씨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내 앞이라서 그런지 차마 불은 붙이지 못하고 몇 번이나 뒷머리만 긁적였다.
나도 조용히 입 다물고 생각을 정리했다.
‘74년에 개통된 지하철 1호선이 크게 성공했으니, 정부는 2호선 공사를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겠군.’
순환철인 지하철 2호선 공사는 서울시의 주요 거점을 지나간다.
국내의 대형 건설사로서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일이었다.
‘단순히 공사를 따내 매출과 성과를 올리는 수준이 아니지.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는 곳은 땅값이 수백 배로 뛸 거야.’
서울시라는 땅이 통째로 판돈이 된 것이다.
판이 크다는 뜻은 곧 물어뜯을 살점도 큼지막하다는 소리.
아마 정관계 고위직 인사들이 줄줄이 엮여 있을 터였다.
‘공사 자체보다 지하철 역사 주변 땅을 사들였다 되파는 시세 차익이 훨씬 크겠어. 이참에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떡값 두둑하게 돌려 눈도장도 찍을 테고.’
어째서 우광이 태성을 견제하면서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뻔히 보였다.
아직 태성과 우광의 혼맥이 결성되기 전이었다.
‘과거 지하철 2호선 공사를 따낸 건 태성이 아닌 우광이었다.’
지하철 공사 입찰이 진행되기 직전의 어느 날, 대통령은 태성의 회장을 불러다 크게 역정을 냈다고 하던데.
그렇게 태성건설은 게임 오버됐다.
경쟁사인 우광이 지하철 2호선 공사를 따냈고, 지하철역 인근 땅을 대규모로 사들여 시세 차익을 독차지했다.
‘이게 철구 아저씨의 목숨은 물론 아버지까지 얽힌 일이라면 얘기가 또 달라지지.’
솔직히 어머니의 목숨을 구해준 보답을 아저씨 목숨을 구할 조언으로 갚는 셈 치려고 했는데.
이 아저씨가 운이 좋네.
우리 아버지가 태성건설을 맡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이건 그냥 모른 척 넘어가기 어려운 일이 됐는데?
나는 은근하게 속삭였다.
“아저씨, 만일에 대비해서 그 서류는 복사본을 따로 남겨 두는 게 좋겠어요.”
“뭐?”
나는 주변을 둘러본 후 더욱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알아요? 몰래 빼돌려 둔 복사본 덕에 위급한 순간 구명줄이라도 내려올지.”
철구 아저씨 목숨도 살릴 겸, 경쟁자를 물리칠 무기를 얻을 겸.
이거 한시라도 빨리 아버지를 호출해야 할 이유가 또 생겼는걸?
“정혁아!”
어머니가 부르신다.
“얼른 짐 싸자. 어두워지기 전에 여인숙 방을 잡으려면 서둘러야겠어.”
나는 철구 아저씨를 향해 씩 웃었다.
“그냥 토끼굴 하나 더 파둔다고 생각하세요. 퇴로는 원래 많으면 많을수록 좋거든요.”
나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어머니께 달려갔다.
어머니는 커다란 여행 가방에 옷을 챙기고 있었다.
“내일 엄마랑 같이 복덕방에 갈까? 아파트 보러.”
“네!”
기다리던 대답이었다.
“어디로 이사 갈지는 정했어요?”
“음, 네 말대로 압구정동이나 대치동, 아니면 반포동이나 서초동이 어떨까 하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강남에서도 땅값 팍팍 오르는 동네.
과거 내가 열심히 박박 긁어모으던 부동산이 그쪽에 많이 몰려 있었다.
* * *
우리는 명동의 한 여인숙에 들어갔다.
“정혁아, 여기서 텔레비전 보고 있을래? 엄마는 요 앞에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
어머니는 동전 지갑과 수첩을 챙겼다.
나는 저 수첩 속에는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안다.
단 한 개밖에 적혀 있지 않은 전화번호.
이게 바로 어머니의 용건일 터였다.
“다녀오세요.”
잘됐군. 안 그래도 나 역시 따로 볼일이 있어서.
어머니가 큰 결심을 하셨는데, 아들 된 도리로 서포트는 확실하게 해 줘야지.
“올 때 엄마가 맛있는 거 사 올게. 그러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물론이죠. 걱정 말고 일 보세요.”
어머니가 나갔다.
나는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대(大)자로 누워서 방 천장을 바라봤다.
‘뭐라고 불러야 하지? 수호신, 저승사자, 염라대왕이 붙여준 덤. 뭐가 됐든 당장 나와 봐.’
[수호신이라 불러라.]과연 저승사자가 그림자처럼 스르륵 솟아올랐다.
내 볼일은 바로 이것이었다.
[감히 내게 반말을 하다니. 한낱 인간 주제에 건방지구나.]‘그럼 그것까지 포함해서 우리 대화란 걸 좀 해 보자고.’
[우리 사이에 오가야 할 말이 있던가?]‘당연히 있고말고.’
내가 일부러 염라대왕 앞에서 따지지 않고 남겨둔 게 하나 있거든.
그러니 지금부터 제대로 따져 봅시다.
‘난 태어나서 한 번도 저승사자가 누구의 수호신 노릇을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황천길 안내하기에도 바쁠 텐데, 그런 고급 인력을 수호신으로 붙인다? 이건 누가 봐도 자원 낭비거든.’
[그래서?]‘업경으로 진실이 드러난 이후, 왜 댁이 달달 떨어댔던 것일까 궁금했지. 왜 하필 댁이 내 수호신이 된 걸까, 내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어.’
암만 봐도 이상하잖아.
‘바른대로 불어.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누명, 천벌, 지지리 박복했던 모진 인생. 그거 전부 댁 때문이었지?’
저승사자는 크게 움찔했다.
오호라, 너 딱 걸렸다!
‘그래도 내가 반말하는 게 용납이 안 돼?’
[반말, 받아들이도록 하지.]심증은 확증으로 굳어졌다.
‘앞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협조하겠다고 약속하면 그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덮어둘 의향이 있는데.’
[적극 협조하겠다. 최선을 다하지.]‘좋아. 그러면 지금 당장 태성그룹 회장님 댁으로 날아가. 거기서 한 가지 해줘야 할 일이 있는데.’
[음?]나는 관자놀이를 콕콕 짚으며 씩 웃었다.
‘댁이 지난번에 주인집 할머니한테 한 일 말이야. 남의 꿈에 쳐들어가는 거.’
[왠지 누구 꿈에 다녀와야 하는지 알 것 같군.]저승사자도 씩 웃었다.
[다녀오지.]* * *
정혁이 엄마는 동네 어귀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를 찾았다.
“후우······.”
그녀는 공중전화 수화기를 잡은 채 한참이나 호흡을 골랐다.
긴장으로 온몸이 작게 떨렸다.
자꾸만 손바닥에 땀이 차서 몇 번이나 손수건으로 닦아냈는지 모른다.
줄 서서 기다리는 뒷사람에게 차례를 양보하기를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열 명 넘게 양보하고서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좋아. 할 수 있어. 정혁이를 위해서라면.”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못 할 짓이 없다.
어떤 치욕이 쏟아져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각오!
설사 아이를 빼앗기게 될지라도 감당하겠다는 의지!
정혁이 엄마의 눈에서는 그런 다짐이 엿보였다.
뚜르르. 뚜르르. 철컥.
-여보세요?
선 굵은 목소리.
그녀는 이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오, 오랜만입니다, 차 회장님. 저 이수진입니다. 막내 아드님인 성준 씨와······.”
-오! 안 그래도 자네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네.
“······?”
정혁이 엄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화염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차 회장님.
그 괄괄한 성정에 대뜸 불벼락이 떨어지리라 각오 단단히 하고 전화했건만.
뭐지? 이 열렬한 환영은?
< 결심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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