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90)
재벌집 만렙 아들-90화(90/416)
< 눈이 번쩍! >
태성병원 로비 구석에서 치러진 태성가족 환우돕기 행사.
난 높은 단상에 서는 대신 확성기만 입 가까이에 대고 후원 증서를 또박또박 읽었다.
“······하여 본 증서를 드립니다. 후원자 차정혁 및 태성그룹 임원진 일동.”
“감사합니다! 헤헤헤.”
“축하드려요. 여기 꽃다발.”
“고마워요, 오빠. 얏호, 신난다! 엄마, 아빠! 이것 봐요, 나 상도 받고, 꽃다발도 받았어요!”
내가 낭독한 후원금 증서를 건넬 때마다 환자복을 입은 어린애들은 꽃처럼 활짝 웃었다.
링거를 꽂은 채로도 차오르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폴짝폴짝 뛰어다닌다거나, 즉석에서 엉덩이를 흔들어 재끼며 춤을 추기도 했다.
환자복을 입었어도 어린애는 어린애였으니까.
“아이고, 잘한다! 잘한다!”
“옳지, 옳지! 와하하하!”
“춤 잘 추는 거 보니까 금방 낫겠네! 호호호!”
그럴 때마다 이 자리에 모인 태성가족은 물론 우광 사람들까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을 터뜨렸다.
이게 자선행사인지, 후원금 수여식인지, 어린애들 재롱잔치인지 헷갈릴 지경이었으나.
그게 뭐가 됐든 중요치 않을 만큼 다들 무척 즐거워 보였다.
그럼 됐지, 뭐.
“형아, 고마워. 진짜, 진짜, 진짜, 엄청 고마워!”
아무리 어려도, 아무리 아파도 알 건 다 안다.
이 후원 덕분에 가계의 부담이 덜어졌다는 것도 알 것이다.
그러니 저리 밤톨만 한 녀석이 고맙다며 글썽글썽한 거겠지.
“내가 이다음에 다 나아서 꼭 갚을게. 진짜로! 그러니까 약속~”
나는 새끼손가락 걸고 하는 약속 따윈 믿지 않는 사람인데.
링거를 꽂고 있는, 저 작은 손에 달린 마음을 거절할 수가 있어야지.
“약속.”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짝짝짝짝짝짝!
그렇게 난 스물다섯 번이나 후원 증서를 건넸다.
반복된 일이었으나, 하나도 고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이 곧 내 기쁨이 되었으니까.
“정혁 도련님, 정말 의젓하시군요. 후원 증서를 읽는 것 좀 보십시오. 무척이나 영특하신 분이십니다, 회장님.”
“하하핫, 아무렴! 태성의 핏줄인데 여덟 살이면 저 정도는 되어야지!”
“맞습니다. 도련님께선 회장님을 많이 닮으신 것 같습니다.”
“당연한 소릴! 꼭 내 어릴 때를 보는 것 같다니까? 얼굴부터 체형까지 내 판박이야. 하하하!”
맨 앞줄 벤치에 앉은 김 비서와 할아버지가 손바닥이 얼얼해질 정도로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아버지는 슬쩍 옆에 앉은 어머니 쪽으로 몸을 기울여 귓속말을 건넸다.
저승사자가 눈치껏 증폭한 아버지의 속삭임이 또렷하게 들렸다.
“솔직히 우리 정혁이는 아버지보다 날 더 많이 닮지 않았나?”
어머니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웃었지만,
“농담 아니야. 진지하게 묻는 거야. 나야, 아버지야?”
아버지의 얼굴에선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게 이렇게 정색할 일이에요?”
어머니가 눈을 초승달처럼 접으며 아버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당연히 선배를 더 많이 닮았죠. 누구 아들인데요.”
“역시 그렇지? 하여간에 우리 아버지의 억지는 진짜······ 못 말리겠다.”
그제야 아버지도 흐뭇한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보다 못한 저승사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요란하게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는 비단 언론과 방송국의 것만이 아니었다.
“도련님, 웃으시고! 옳지! 바로 그겁니다!”
유종태가 병원 로비 바닥에 드러누워 가면서까지 온갖 각도를 다 잡는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주신 즉석 사진기 플래시가 찰칵! 찰칵! 터졌다.
“크, 뉘 집 도련님인지 정말 잘생겼다! 꼬마 아가씨도 같이 웃자! 아니, 꽃다발은 왜 아직이야?”
“여기 있습니다! 우리 꼬마 아가씨는 제일 예쁜 장미꽃으로 고르느라 좀 늦었습니다!”
태성그룹 경호원이 재빨리 꽃다발을 건넸다.
김갑용의 딸은 활짝 웃으며 꽃다발을 품에 안았다.
“고마워요. 너무 예뻐요. 흐읍, 향기도 너무 좋고요. 정말 최고예요.”
행복한 웃음이었다.
김갑용도, 그의 아내도, 태성화학을 다녔던 동료들까지 연신 행복한 웃음을 지을 만큼 화사한 표정이었다.
‘좋네.’
그렇게 태성병원 구석에서 가졌던 내 첫 행사는 웃음 속에서 끝났다.
다 같이 모인 김에 병원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따뜻한 차와 함께 도시락을 먹은 후.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끝낸 뒤에 안녕하고 헤어지는, 그런 작은 행사였다.
* * *
‘그 조촐한 행사가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뜰 일인가?’
나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말을 들어보긴 했으나, 자고 일어났더니 그 작은 행사가 신문 1면을 대문짝만하게 장식할 줄은 몰랐다.
<태성그룹 회장과 전 계열사 임원진이 태성병원에 모인 이유는? 태성가족 환우돕기!>
<여덟 살짜리 개최자? 또래 친구들을 위해! 태성은 한 가족!>
<미국이 놀라고, 중국이 경악하고, 일본이 벌떡 일어났다! 세기의 자선 행사가 대한민국의 한 병원에서 열리다!>
<청와대에서 태성그룹 총수에게 전화를 걸어 한껏 치하한 까닭은?>
마치 21세기 너튜브 썸네일에서나 볼 법한 기사 제목도 간간이 보였다.
‘아니, 신문 1면도 부족해서 정치면, 경제면, 사회면에 문화면까지?’
사진이나 제목도 죄다 큼직큼직하다.
그것참 많이도 실렸다.
‘와, 어떻게 신문사마다 죄다 태성, 태성, 태성! 태성의 이름으로 도배할 수가 있지?’
하다 하다 온갖 인터뷰와 칼럼까지 실렸다.
그러니 읽으면 읽을수록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그 작고 보잘것없던 행사를 이렇게까지 크게 띄울 수 있다고?’
이 대목에서 나는 그만 이 시대 재벌가의 힘을 실감하고 말았다.
작정하면 언론에 이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보다 더 명백한 증거가 어디 있으랴.
‘반면 당연히 태성병원의 작은 행사보다 훨씬 관심이 집중되었어야 할, 우광병원 합동 분향소 뉴스는 작게 묻혔군.’
그건 신문사별로 조금씩 크기가 다르나, 공통적으로 사회면 귀퉁이에 작게 실렸다.
<우광병원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를 찾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각계각층의 사회 인사와 정치인들이 분향을 마치고 돌아가다.>
<우광화학 사망자, 눈물의 영결식 속에 고이 잠들다.>
의도가 명백했다.
우광의 치부를 덮기 위해서다.
‘우광이 언론을 꽉 잡고 있다더니.’
우광의 입김이 강한 신문에서도 1면으로 태성병원의 행사를 미는데, 하물며 태성의 입김이 강한 신문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버지가 우광화학 화재 사고의 피해자 가족들을 챙긴 일까지 구체적으로 싣는 기사가 줄줄이 나왔다.
‘김 비서의 솜씨로군.’
문득 오늘따라 평소에 받지도 않는 신문까지, 웬 신문을 이렇게 잔뜩 쌓아 놓으셨나 의문이 들 때였다.
“어머, 우리 정혁이가 신문 1면에 실렸네?”
어머니가 신문을 보더니만 아침부터 웃음을 숨기지 못하신다.
주방에서 집주인 할머니가 국자를 든 채 고개만 빼꼼히 내밀며 웃으셨다.
“내가 새벽에 신문 받고 깜짝 놀랐다니까? 어찌나 신이 나던지. 철구더러 신문사별로 전부 사오라고 했지!”
“잘하셨어요.”
어머니는 즉시 가위를 들고 기사를 오리기 시작했다.
아침을 준비하던 집주인 할머니마저 가스 불을 끄고 신문 스크랩에 동참했다.
“어머, 이건 액자에 걸어야 해.”
“저쪽 벽에 거는 게 좋겠네. 정혁이 엄마, 못은 내가 박을게.”
“할머니, 엄마.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 솔직히 이게 그리 호들갑을 떨 만한 일은 아니지 않을······.”
탁.
“정혁아, 넌 이거나 하고 있어.”
산더미 같은 마른 멸치와 콩나물 한 소쿠리, 거기에 마늘 묶음이었다.
바른말을 한 대가였다.
“······.”
따르릉!
때마침 운 좋게 전화가 울리다니! 살았다!
“여보세요?”
-큰아빠다. 너 사진 엄청 잘 나왔더라? 하하핫, 연예인 해볼 생각은 없고? 멋지다, 우리 조카! 다음에 우리 같이 짜장면 먹으러 갈까? 하하핫!
따르릉!
-신문 봤다. 축하한다. 강남에 크게 우리 조카님 이름으로 태성병원을 새로 짓는다면서?
“둘째 큰아버지, 저한테 질문 빚진 거 마저 대답하기 전까진 질문 못 하시는 거 잊으셨어요?”
-축하한다. 아무래도 큰아버지가 우리 조카님 입학 선물은 손수 챙겨줘야겠지? 기대해도 좋을 거야.
따르릉!
-정혁아! 고모가 골라준 옷은 왜 안 입고 갔어? 코트 털에 윤기가 안 흘러! 백화점으로 와. 고모가 코트 몇 벌 더 골라줄게. 참, 어머니께는 마사지 한번 받으시라 하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었다.
따르릉!
“선배, 뉴스에도 정혁이가 나왔다고요? 어머, 난 못 봤는데요.”
액자를 걸던 집주인 할머니가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여기 비디오 녹화하는 기계도 있다며? 뉴스 녹화는 안 되나?”
“안 해봐서 몰라요. 뭔가 있긴 있을 거예요. 이참에 한번 해볼까요?”
급기야 평소에 텔레비전을 본 척도 안 하시는 어머니가 채널권을 사수하시기까지!
저승사자가 제 뺨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안 돼! 내 연속극!]‘어이, 수호신! 잠깐. 웨이러 미닛! 너 왜 우리 어머니한테 눈을 그렇게 뜨냐?’
[······.]‘어쭈? 눈 안 깔아? 앞으로 텔레비전 켜지 마?’
[눈도 내 맘대로 못 뜨고······.]저승사자가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지나가 버린 연속극은 돌아오지 않는데······.]어쩔 수 없지.
인생은 원래 당근과 채찍.
‘대신 시킨 일 잘하고 착하게 굴면 텔레비전 한 대 더 사줄게. 저것보다 더 큰 거, 최신식으로, 제일 비싸고 좋은 거. 어때?’
저승사자가 눈을 번쩍 떴다.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나?]‘불광동 휘발유. 그놈에 관한 정보 좀 빼와야겠다.’
[흠, 그놈이 어디에 사는지 같은 그런 게 궁금한가?]‘전혀.’
그건 김 비서의 몫이다.
김 비서라면 할아버지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여 불광동 휘발유의 인적사항부터 주변 관계까지 전부 캐내겠지.
그게 기본이니까.
[그렇다면 뒤를 밟으라는 소린가? 그 우광의 교활한 놈의 뒤를 밟았던 것처럼?]‘아니. 그럴 필요도 없어.’
‘됐어. 내가 경찰도 아니고.’
현장 검거는 경찰의 몫이고.
게다가 불광동 휘발유는 이미 지은 죄가 많지 않은가.
‘우광화학 화재 사고.’
저승사자의 동공에서 지진이 났다.
‘불광동 휘발유가 쥐고 있는 우광의 목줄. 그게 뭔지 알아 와야겠지.’
내가 필요한 건 그것뿐이다.
나머지는 김 비서가 채워줄 것이다.
김 비서가 아니었다면 철구 아저씨가 불광동 휘발유와 그 똘마니들을 서빙고 물고문실에서 만날 일 없었겠지.
그건 철구 아저씨가 취조할 만한 꼬투리를 김 비서가 잡아서 건넸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중정 물고문실에서 불광동 휘발유는 어떻게 몸 성히 나왔을까? 바로 우광의 결정적인 약점을 잡고 있기 때문이잖아. 그 약점, 내가 얻어야겠다.’
[처, 천기누설을? 지금 나더러 천기를 누설하라고······!]저승사자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그럴 순 없······!]‘누가 천기 누설하래?’
[······그러면?]‘네 쫄따구들 부려서 알아내면 되잖아.’
[뭐? 누구? 내 쫄따구우우?]‘이 집 금고 정보는 어떻게 얻었더라?’
그야 저승사자가 이 저택에 붙어 있던 지박령을 때려잡아서 정보를 캐냈지.
‘그때도 천기누설에 걸렸어? 아니잖아.’
[오호!]그제야 저승사자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안 그래도 그놈, 지은 업보가 많아서 주변에 원혼과 잡귀가 들끓더군.]저승사자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녀오마.]* * *
[찾았다! 잡았다! 해냈다!]저승사자는 위풍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귀환했다.
어깨는 물론이고 가슴도 쭉 편 채, 저승사자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크게 웃었다.
[불광동 휘발유라는 놈이 숨기고 있던 우광의 목줄에 대해 본 처사가 알아왔단 말이다! 하하하!]좋았어!
나는 손바닥을 비볐다.
‘어디 있어? 어떻게 생겼어? 그게 뭔데?’
[모른다.]이 자식이 지금 장난하나?
내 눈이 가늘어질 때, 저승사자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약점이란 것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아냈지.]오!
누구인지만 알아내면 따로 회수하는 건 일도 아니지!
[덧붙여 서빙고 물고문실에 끌려가서 꼼짝도 못 했을 불광동 휘발유가 어떤 식으로 우광을 불러냈는지도 알게 됐다.]훌륭하다!
‘내가 이걸 손에 넣으면 불광동 휘발유에겐 서빙고 물고문실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진단 소리네?’
우광을 향한 협박은 불광동 휘발유가 아닌, 우리 태성이 하게 될 테니까.
마침 우리에겐 확실하게 우광에 칼을 들이밀 만한 인재가 있지.
‘김 비서.’
그의 명함을 쓸 때다.
그러려면 김 비서의 수고를 덜어줄 만한 선물을 하나 가져갈까?
아무래도 평범한 인간이라면 쉽게 캐기 어려우면서, 김 비서의 일을 크게 덜어줄 만한 고급 정보여야겠지?
< 눈이 번쩍!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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