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91)
재벌집 만렙 아들-91화(91/416)
< 역시 김 비서! >
마음을 정한 나는 저승사자를 돌아보았다.
김 비서에게 갖다줄 고급 정보, 네가 딱이다.
‘어이, 수호신. 불광동 휘발유 때문에 죽은 놈들, 명단 좀 가져와 봐라.’
[그건······!]‘왜? 그놈 곁에 붙은 원혼들이 나불댈 거 아냐. 아니면 명단 정도는 저승에서 간단히 확인할 수 있을 것도 같고?’
[그건 그렇지만······ 아무래도 명계에 다녀오는 건 좀······ 크흠.]내 공로를 추가 정산 받을 때는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도 만났다는 녀석이.
뭔가 켕기는 게 있다 이거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역시 인생은 당근과 채찍인가.
‘아까 말한 최신식 텔레비전 말이야. 네 전용품이 되면 좋을 것 같지 않아?’
[······!]‘아, 채널권까지는 탐낼 생각이 없어? 그럼 됐고.’
텔레비전 채널권은 오직 실세에게만 허락된 권력, 그 자체!
채널권 없는 텔레비전은 앙꼬 없는 찐빵, 끈 떨어진 팬티 격이랄까?
[금방 다녀오마!]저승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려고 했다.
불쑥 다시 나타난 저승사자가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참,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뭐가?’
[알아오는 건 내가 해도 그걸 받아적는 건 네가 해야 된단 말씀. 그럼 이따 보자.]······어라?
* * *
태성그룹 본사 16층에 자리한 비서실.
유종태는 비서실 문 앞에서 내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크, 오늘도 멋지십니다. 저도 같이 들어갑니까?”
“아니에요. 먼저 김 비서님이랑 나눌 이야기가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전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똑똑.
“예, 들어오십시오.”
“안녕하세요, 김 비서님.”
“정혁 도련님! 도련님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바쁘게 일하던 김 비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책상 위에는 서류산이 쌓여 있었다.
“회장님을 만나러 오셨군요. 지금 바로 면담을 요청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전 오늘 김 비서님을 만나러 온 거예요.”
“저를요?”
나는 동전 지갑을 열어서 김 비서의 명함을 꺼냈다.
“많이 바쁘시단 건 잘 알아요. 그래도 5분만 시간을 내주셨으면 해요. 아주 중요한 일이거든요.”
“차는 무엇으로 준비할까요?”
결재를 기다리던 세 명의 비서들이 당황한 듯 부산을 떨었다.
“코코아 좋아하세요? 유자차나 꿀물은 어떠세요?”
“아무래도 속 든든하게 율무차가 낫겠죠?”
“마침 땅콩 쿠키와 초코맛 사탕도 있답니다. 두유나 우유를 데워서 곁들여 올릴까요?”
아니야, 그거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전 5분 후면 돌아갈 거예요. 번거롭게 그런 거 준비 안 하셔도 괜찮아요.”
“직접 여기까지 와주셨는데, 차 한 잔도 안 드리고 잡상인 쫓아내듯 보낼 순 없습니다. 송 비서.”
김 비서는 읽고 있던 결재서류를 덮었다.
“도련님껜 쌍화차를 드리도록. 계란 두 개 동동 띄워서.”
역시 김 비서!
김 비서가 눈짓하자 비서들은 조용히 비서실을 빠져나갔다.
달깍.
그렇게 비서실에는 김 비서와 나, 우리 둘만 남았다.
“아주 중요한 일이라. 그게 뭘까 무척 궁금해지는군요.”
“일단 김 비서님이 지금 하고 계신 귀찮은 일부터 좀 덜어드릴까 해요.”
“제 일을 말입니까?”
“태성가족 환우돕기 행사를 망친 놈들이요. 김 비서님이 그 뒤를 캐고 있다면서요?”
김 비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광동 휘발유. 사채업자 중에서도 밑바닥인 질 나쁜 놈이더군요.”
역시 김 비서!
빨리도 알아냈구나.
“앞으로 도련님께서 걱정하시는 일이 없도록,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해 놓겠습니다.”
“김 비서님은 지금 손발이 묶이셨잖아요. 직속으로 부리던 태성그룹 제5 경호팀을 저한테 양보하는 바람에.”
나는 동전 지갑에서 곱게 접은 서류를 꺼내었다.
총 세 장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준비해 왔어요.”
“이건 뭡니까?”
“불광동 휘발유와 그 똘마니들이 저지른 죄목과 피해자 명단이에요.”
“예?”
“이런 잡일은 유 팀장님에게 맡기세요.”
유종태를 복도 밖에 대기시켜놓은 까닭이었다.
“이건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김 비서는 재빨리 내가 건넨 서류를 펼쳤다.
“범행 장소와 시간, 수법은 물론이고 증거와 증인 목록까지. 이토록 상세하게······.”
김 비서는 은테 안경 너머로 눈동자만 움직여서 빠르게 읽어내렸다.
“이건 유종태의 솜씨가 아니로군요. 녀석이 제법 똘똘해도 이만한 수완은 없습니다.”
저승사자와 내 고생을 털어놓을 수도 없고!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지금은 그런 사소한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에요. 중요한 건 따로 있어요.”
“맞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개잡놈들을 어떻게 족치는가’지요. 말씀만 하십시오. 전 도련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김 비서는 담담하게 말했다.
“서빙고 물고문실로 보낼까요, 야산에 파묻을까요, 감히 건방지게 놀렸던 손발만 끊어놓을까요?”
“잡범을 조지느라 시간 낭비할 생각 없어요.”
“그럼 놈들을 이대로 용서하시겠다는 말입니까?”
내가 언제 용서해준댔어?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
“고작 그런 놈들을 조진답시고 김 비서님이 고생을 자처할 필요 있나요?”
“예? 그야······.”
“그런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은 우광에게 떠넘기자고요.”
“우광이 그놈들을 조지겠다고 자청할 까닭이 없잖습니까.”
“내기할래요?”
우광이 먼저 불광동 휘발유 패거리를 족치겠다고 나서게 만들기?
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차도살인(借刀殺人).
이거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거든.
“그놈들이 우광의 약점을 잡았어요. 우광으로선 아마 무척 괘씸할 테죠?”
“우광의 약점을? 하하하.”
김 비서는 웃었다.
“도련님. 몹시 죄송한 말입니다만, 우광이 그걸 용납할 리가 없잖습니까.”
김 비서는 은테 안경을 추켜올렸다.
“도련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 지금쯤이면 놈들은 싸늘한 변사체로 변했겠군요.”
“그게 일반적인 약점이었다면 그랬을 테죠.”
“그 말은······.”
“만일 놈들이 제대로 된 약점을 잡고 물고 늘어졌다면요?”
불광동 휘발유는 영악한 놈이었다.
똘마니들과 달리 그는 중정의 물고문실에서 유유히 빠져나갔다.
“우광은 가진 게 많아요. 잃을 게 많은 자는 약점을 되찾을 때까지 발톱을 숨길 수밖에 없어요. 푼돈 좀 던져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불광동 휘발유는 기어코 살아남아서 훗날 남산 찰거머리 밑에 들어갔던 놈이었다.
그놈 머리 위에는 황천길 카운트다운가 반짝이지 않더라고.
“흐음, 일개 사채업자가 우광의 치명적인 약점을 쥘 만한 일이라면······.”
“우광화학 화재.”
“······!”
“정말 안전사고였을까요?”
김 비서가 표정을 굳혔다.
“새해 첫날, 전 심 사장님과 함께 태성화학 공장을 견학하러 갔었어요. 제6공장 안에는 인화성 물질이라곤 전혀 없었고요.”
“으음.”
“화학공장인 만큼 거기에 불 붙으면 크게 터져요. 다들 알고 조심하더라고요.”
“소량의 위험 물질마저 안전수칙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광화학의 화재 사고에서는 어땠죠?”
“공장 안에서 다량의 인화성 물질이 발견되었지요. 제6 공장에서는 아예 취급할 필요도 없는 위험한 물건들이.”
김 비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탓에 불이 옮겨붙은 탱크가 폭발하면서 피해가 유독 컸습니다.”
“우광은 그런 기본적인 사실조차 몰랐을까요?”
“그럴 리가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김 비서의 표정은 무척이나 딱딱했다.
“이게 바로 우광이 기를 쓰고 언론을 틀어막는 이유였군요.”
“불광동 휘발유는 그걸 알었고요.”
불광동 휘발유를 만졌을 때 본 미래.
서빙고 물고문실에서 똘마니들이 시인했고, 불광동 휘발유 역시 인정한 바였다.
“묻겠어요. 태성가족 환우돕기 행사가 있던 날, 마침 우광 쪽 사람들도 잔뜩 몰려온 이유는요?”
“우광의 김 회장과 계열사 임원들이 그쪽으로 온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입니다.”
“불광동 휘발유가 바보도 아니고, 그런 날에 똘마니들까지 대동하고 온 이유는요?”
“평소라면 만나기 어려운, 우광의 주요 인사와 접촉하기 위해서. 하, 작정했던 걸음이었군요.”
역시 김 비서!
은테 안경 너머 김 비서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눈을 가늘게 뜬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김 비서가 눈을 차갑게 번뜩였다.
“그래서 도련님께선 어떻게 하시고 싶으십니까?”
“세 가지 단계를 계획하고 있어요.”
과거 내 별명은 신림동 개미지옥.
그런 별명이 붙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는 함정을 파고 사냥감을 끌어들여 털어먹는 게 주특기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김 비서를 찾아온 세 가지 이유이기도 하지. 이 일엔 김 비서의 도움이 꼭 필요해서 말이야.’
나는 손가락을 꼽았다.
“첫째, 불광동 휘발유가 잡은 약점을 가로챌 생각이에요.”
중정에 끌려간 불광동 휘발유를 우광이 무리수를 쓰면서까지 꺼내야만 했던 이유.
그 이유를 내가 가져와야지.
그러면 놈은 서빙고 물고문실에서 빠져나올 수 없겠군.
“둘째, 우광을 침몰시켜야죠.”
“우광을?”
“어떻게 잡은 결정적인 약점인데요.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순 없잖아요.”
“맞습니다.”
“마침 우리에겐 날카롭게 잘 벼린 칼이 하나 더 있어요.”
“아! 우광건설 뇌물 장부!”
역시 김 비서!
구구절절 침 튀겨가며 설명할 필요가 없구만!
“도련님, 설마 우광의 치부를······?”
“네. 공개할 생각이에요.”
순간 김 비서의 눈이 은테 안경 너머에서 번뜩였다.
“일을 크게 키우실 작정이군요.”
“그래야 청와대가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뒤에서 은밀하게 오가는 정경유착이라면 몰라도, 공공연히 밝혀진 치부라면 덮을 방법이 없죠. 청와대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테니까요. ”
정부는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그래서 정당성과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깨끗한 정부, 정의로운 정부를 외치며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서는 시늉을 하는 까닭이었다.
“아무리 우광의 김 회장이라고 해도 감히 각하의 뜻에 맞설 순 없겠지요.”
이미 우광은 구로동 판자촌 강제철거 때 단단히 찍힌 후였다.
게다가 이번 우광화학 화재 사건 때 청와대로 불려가 단단히 혼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광은 청와대가 만족할 만한 반성은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우광화학 화재와 관련된 결정적인 증거까지 공개된다면?
만루홈런으로 아웃!
“셋째, 우광이 침몰할 때 우리는 그 틈을 노려서 우광의 알짜배기 계열사들을 헐값에 사들여야죠. 어때요?”
“훌륭하십니다.”
김 비서는 흡족한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재계 서열 9위인 우광입니다. 이보다 더 먹음직스럽고 싱싱한 사냥감이 또 있겠습니까?”
사냥감이 쓰러지는 순간 하이에나 떼가 몰려들 것이다.
“마침 우리 태성엔 돈이 남아돕니다. 이게 다 도련님 덕분이지요.”
송년의 밤을 기점으로 후원을 잔뜩 받아 예산이 차고 넘친다.
거기에 굵직한 국책 공사를 여럿 맡아 국가예산까지 두둑하게 지급되었다지.
“이참에 우광증권, 우광건설, 우광화학은 물론이고 우광의 알짜배기 계열사까지! 몇 개나 배 터지게 집어삼킬 수 있을 겁니다.”
김 비서의 웃음이 낮게 깔렸다.
“태성의 재계 서열이 단번에 훌쩍 뛰겠는데요?”
김 비서의 눈빛 예사롭지 않았다.
사냥할 각오는 이미 끝낸 것이다.
“도련님, 지금 바로 회장님께 가실까요? 쌍화차는 그곳에서 마시는 게 좋겠습니다.”
김 비서는 고개를 돌려 벽시계를 확인했다.
내가 청한 5분의 면담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회장님께선 공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두둑한 포상을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안 그래도 미리 할아버지께 확실한 약속을 받아놨지!
지금 내 동전지갑 속에는 할아버지가 쓴 각서가 있다구?
-아무리 손자가 예뻐도 내 자식의 밥그릇까지 빼앗아 줄 수는 없다.
-그럼 아예 태성 대신 다른 회사의 것으로 받을게요. 새 회사나 망한 회사 같은 거요. 그건 안 비싸잖아요.
-오호, 비상장 회사나 인수 합병할 만한 회사를 사 달라? 많이들 쓰는 증여 방법이지. 좋아. 그거라면 못 들어줄 것도 없다. 태성건설 주식 대신 다른 회사를 사 주기로 하자!
-그 회사는 완전, 전부, 몽땅, 내 몫으로 넘겨주셔야 해요?
-그러니까 지분 100%가 네 몫이니 건들지 말라는 말이렷다? 까짓것, 비상장 회사나 말아먹은 회사가 뭐 얼마나 한다고.
그 각서에서는 황금빛 광채가 어찌나 요란하게 쏟아져 나오던지.
너무 밝아서 눈이 멀 지경이었다.
‘내가 인수하려는 회사가 하나란 말은 안 적었거든.’
그럼 내가 유공 하나만 보고 그 각서를 받았을까.
내 몫은 내가 챙겨야지!
< 역시 김 비서!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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