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97)
재벌집 만렙 아들-97화(97/416)
< 그림 괜찮아 보이나? >
녹음기에서 나온 말을 듣는 순간, 우광의 계열사 사장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낮고 긴 탄식이 이어졌다.
계열사 사장들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이해가 안 되는군. 도대체 왜 우광화학에 방화를······.”
이곳에 모인 모두가 궁금해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묻지 못한 일이었다.
김 회장의 표정이 너무 살벌했기 때문이었다.
“장 실장.”
“예.”
“녹음된 건 그것뿐이야? 내가 직접 이 새끼들에게 따져 물어야겠나?”
“형님, 제가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해예요! 이건 악의적인 편집입니다! 전 그저 사채업자에 관한 뜬소문을 시시덕거렸을 뿐으로······!”
우광건설 김 사장은 핏발을 세우며 최 비서를 노려봤다.
“이 새끼가 그런 겁니다! 전 몰랐습니다! 날 어떻게든 엮어서 누명을 뒤집어씌우려는 수작에······!”
달칵.
하지만 대답은 최 비서가 아니라 녹음기가 대신했다.
-최 비서, 만약에 말이야. 지금 태성화학에서 화재가 나면 어떻게 될까?
-사, 사장님! 방금 태성화학 인수를 끝내고 오는 길입니다. 전과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왜? 뭐가 달라졌는데? 태성화학에 화재가 크게 나면 재산 및 인명 피해가 크게 난다. 그럼 언론이 떠들어대고, 청와대의 분노가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미 인수 합병이 끝난 이상, 화학 공장에서 사고가 나도 차태성은 이제 못 건듭니다!
우광 계열사 사장들이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혐오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녹음기 속의 우광건설 김 사장은 키득대며 웃고 있었다.
-사장님, 이대로 일을 강행한다면 우광의 손해가 상당히 클 겁니다. 어쩌면 청와대에서 노여움이 떨어질 만큼······.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형님은 총수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까?
우광의 계열사 사장들은 신음을 흘렸다.
이제는 짧은 탄식조차 감히 내뱉지 못했다.
-조카는 이제 고작 30대야. 차기 총수로 올라가기엔 너무 젊지.
-사장님, 태성화학에 화재가 나면 태성화학이 허무하게 날아가고 맙니다. 거기에 우광증권까지 엮였다면서요? 손해가 너무 막심합니다!
-그 정도의 손해라도 보지 않으면! 내가 우광의 총수 자리에 앉아볼 수나 있겠어?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 가운데에서 녹음기만이 위이잉 돌아갔다.
-형님은 태성화학을 얻기 위해 우광건설을 버릴 독심까지 품고 있다. 이대로 우광건설을 부도내면 난 차윤성 꼴이 나는 거야.
달칵.
장 실장은 녹음기를 껐다.
“계속 들으시렵니까?”
“이만하면 더 들어볼 필요 없지 않나?”
“혀, 형님! 혀, 형님, 제가, 제가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새, 생각만 한 겁니다! 최 비서의 유도심문에 넘어가서 제가 잠깐 헛꿈을······!”
“헛꿈?”
김 회장은 최고급 가죽 허리띠를 풀었다.
우광건설 김 사장은 사색이 되었다.
“억울합니다! 저는 그저 우광의 현재와 미래를 염려하여······!”
“입 다물어.”
짜악!
김 회장이 허리띠를 휘두르자 우광건설 김 사장의 고개가 돌아갔다.
김 회장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허리띠를 휘둘렀다.
짜악! 짝! 짜악!
피가 튀고, 비명이 튀고, 둔탁한 소리가 튀었다.
“김우석, 지금까지 나는 너의 방종과 교만을 적당히 용인해왔다. 이유는 단 하나, 책임은 실패한 후 물어도 늦지 않기 때문에.”
“크흑!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네 잘잘못 따윈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언제나 사업이야. 넌 우광화학에 불을 질렀고, 우광을 말아먹을 뻔했다.”
김 회장은 숨을 몰아쉬며 동생을 차갑게 노려봤다.
“난 이제 네게 그 책임을 묻겠다.”
김 회장은 피 묻은 혁대를 내던졌다.
“이놈 주머니에 든 먼지 하나까지 전부 털어.”
계열사 사장 직함 달고 있는 인사들 중에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없다.
특히 우광건설 뇌물 장부까지 만들어가며 열심히 로비에 앞장서던 놈이라면 더더욱.
“주식은 물론이고 10원 한 장까지 남김없이. 장 실장,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형제간의 싸움은 끝났고, 승패는 가려졌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갖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그 심플한 룰에 따라서 패자의 처우가 처리될 것이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광건설 김 사장의 금고는 얼마나 털어야 하겠습니까?”
“처자식까지 길바닥에 나앉을 때까지 털어.”
“형님!”
우광건설 김 사장이 형의 다리에 매달렸다.
“형님,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처자식까지는······!”
“그런 건 내 등에 칼을 꽂기 전에 생각했어야지.”
“형님, 우린 핏줄 아닙니까. 저는 그저······!”
“핏줄이라고 봐줘야 할 이유 있나?”
“형에겐 제수와 조카들이고······!”
“그러니까.”
김 회장은 제 다리에 매달린 동생을 걷어찼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뚝거리며 걸어나갔다.
“혈연을 앞세워서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내 피를 빨아먹겠지. 그러면서 제 아비와 남편의 복수를 꿈꿀 것 아닌가.”
핏줄에게도 일말의 자비조차 베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뭐 하나? 이놈도 서빙고 물고문실로 끌고 가야지.”
우광의 계열사 사장들은 침묵했다.
모두 김 회장만 바라보았다.
철구 아저씨가 김 회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야.”
“끌고 가.”
철구 아저씨는 손짓했다.
중정 요원들이 우광건설 김 사장과 최 비서를 붙들었다.
“대신 우광이 더 엮이지 않도록 이놈들 선에서 정리해줬으면 한다.”
“글쎄요.”
“그렇게만 해주면 앞길은 내가 책임지고 열어주지.”
“중정 요원을 매수하려 들면 곤란합니다.”
철구 아저씨는 시큰둥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의 현행범으로 끌고 가지 않는 것만 해도 많이 봐드린 겁니다.”
“뻣뻣하기는.”
“우광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철구 아저씨가 눈짓하자 중정 요원들이 최 비서와 우광건설 김 사장을 끌고 갔다.
달칵.
문이 닫히자 침묵이 유독 도드라졌다.
김 회장은 뻣뻣하게 굳어있는 계열사 사장들을 돌아봤다.
“난 주인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개새끼를 곱게 봐주는 사람이 아니야. 내 덕에 불린 건 거둬야지. 안 그런가?”
“예.”
“아까 끌려간 놈들도 똑같이 털어. 내게 등을 돌렸을 땐 그만한 각오도 했을 테지.”
우광을 위해 30년이 넘도록 일했건만.
그들의 처자식이 거리에 나앉을 때까지 사정없이 털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특히 우광의 주식. 차명이 됐든 가명이 됐든 사돈에 팔촌으로 몰래 넘어간 것까지. 단 한 주도 남기지 않고 회수해야 할 거다.”
“예, 회장님.”
* * *
한겨울 늦은 밤이었으나, 우광그룹 김 회장의 저택 앞에는 아직도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얼어붙는 손을 호호 불면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언제고 잡을 특종을 바라보며 그렇게 목이 빠져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엇, 저기 사람들이 나온다!”
“아니, 우광의 계열사 사장들이 연행되고 있잖아?”
“맙소사! 이놈들은 땅굴을 파서 들어갔나? 대체 거긴 언제 들어간 거야?”
찰칵! 찰칵! 찰칵!
어두운 밤에 플래시가 연속적으로 터졌다.
필름값이 비싸서 꺼뒀던 방송국 카메라도 일제히 켜졌다.
철구 아저씨 앞으로 이곳저곳에서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어디서 나오셨습니까?”
“우광의 계열사 사장들은 어떤 이유로 연행하는 겁니까?”
“우광화학 방화와 관련 있습니까?”
“우광그룹 김우석 회장께선 뭐라고 하시던가요?”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눈부신 카메라 플래시가 눈이 멀 것처럼 터졌다.
철구 아저씨는 멍청하게 두 눈만 꿈뻑거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니, 이윽고 순박하게 웃었다.
“자세한 사항은 내일 중정의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철구 아저씨는 잽싸게 튀었다.
“내일 중정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연대!”
“우광 계열사들이 중정에 잡혀들어간다고?”
“서빙고 물고문실이냐, 중정 지하실이냐! 따라가자!”
“특종이다! 신문 1면 기사 나왔다!”
언론사 기자들은 광분해서 날뛰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속도가 미친 듯이 빨라졌다.
기자들은 철구 아저씨의 뒤를 따라서 우르르 빠져나갔다.
“이제야 좀 조용해지겠군.”
김 회장은 2층 서재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우광의 나머지 계열사 사장들도 옆집 주차장을 통해서 사라진 이 시간.
김 회장의 옆에는 우광그룹 경호실장인 장 실장만 남았다.
“저 친구, 어디 소속의 누구라고?”
“중정 공안국의 박철구라더군요. 중정 내에서도 알아주는 꼴통입니다.”
“그건 내 앞에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것만 봐도 알아.”
김 회장의 웃음은 차가웠다.
“암만 봐도 출셋길이 꽉 막힐 타입인데 말이야. 저런 꼴통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볼까요?”
“됐다. 어떤 멍청한 놈이 저런 꼴통을 밀어줄까? 차라리 말 잘 듣는 사냥개를 키우는 게 낫지.”
“그건 그렇습니다.”
“뒷배도 없는 놈이 말이라고 통할까. 그런 놈이 우광의 치부를 건드리면 골치가 아파져.”
“말이 잘 통하는 놈으로 담당을 바꿀까요?”
“결론적으로 그리되어야겠지.”
김 회장의 눈이 가늘게 잠겼다.
“어차피 일이 커지면 중정에서 검찰로 넘어가야 하는 일이야.”
“예, 아무리 날고 기는 중정이라도 재판까지 담당하진 않으니까요.”
“말귀 알아듣는 놈이라면 서빙고 물 고문실에서 마무리할 테고.”
“그 정도 머리가 있는 놈이라면 저 실력에 꼴통이라 불리며 뺑이나 치고 있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러니 우석이 놈 언변에도 휘말리지 않고 제대로 족칠 테고.”
김 회장은 최 비서가 만들고 간 붉은 흔적을 힐끔 바라봤다.
“최 비서가 또 뭐라더냐? 녹음된 내용은 그게 다야?”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만약에 말이다.”
김 회장은 턱을 쓸었다.
“알고 봤더니 내 동생의 뒷배가 따로 있었다면?”
“예?”
“태성은 고작 세 장짜리 날치기 계약서를 강행했다. 상식적이지 않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그 말은······.”
“우광화학은 물론 우광증권까지 날로 먹고 싶은 태성이 날 총수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덫을 놓았다. 어떤가? 그림 괜찮아 보이나?”
* * *
나는 저승사자와의 시야 공유를 끊었다.
‘우광그룹 김 회장.’
반역자들의 숙청을 겸하면서, 그놈들을 언론의 제물로 던져줬을 뿐만 아니라, 그놈들의 재산을 털어서 빈 곳간을 채우기로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 회장의 지도력에 의문을 품은 자들에게 경고했다.
등 돌린 자들을 참수하면서 본보기를 세우고, 화살을 돌렸으며, 내친김에 귀찮은 기자들까지 일거에 치워버렸다.
‘내부 정리. 딱 거기까지만 갔으면 좋았을 텐데.’
우광화학 화재 사고.
태성이 됐든 우광이 됐든 총수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계획한 범죄였다.
‘우광의 침몰에 태성을 끌어들여 책임을 떠넘기시겠다?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지.’
나는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몇 차례의 신호음이 간 후, 차갑고 진중한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태성그룹 비서실장 김영걸입니다.
“김 비서님, 차정혁이에요.”
-도련님께서 어쩐 일로 제게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우광건설 뇌물 장부를 선물로 드릴 곳이 생겼어요.”
-우광건설 뇌물 장부를요? 그것도 선물로?
전화기를 타고 흘러드는 김 비서의 목소리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그건 협박용이지 선물용이 아닙니다.
그 좋은 물건을 왜 협박용으로만 쓰려고 하시나.
-그게 제 목줄이고 치부인데, 그걸 받고 누가 기뻐하겠습니까?
그걸 받고 기뻐할 사람이 없긴 왜 없어?
“청와대라면 기뻐할 것 같은데요.”
순간 숨을 들이마신 김 비서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각하의 최측근이라는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호실장. 그들 눈에 밉보인 고위 관료와 정치인 명단을 각각 뽑아왔으면 해요.”
나는 씩 웃었다.
“이참에 공을 세워 논공행상에 끼어봐야겠어요.”
-논공행상이라면······.
“그동안 각하의 눈치를 보느라 쳐내지 못했던 정적을 제거할 기회를 쥐여주는데, 우광을 뜯어먹을 때 우리 몫으로 큰 덩어리 하나 안 내어줄까요?”
청와대의 보증만 있으면 돈 한 푼 안 들이고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다.
김 비서의 목소리에는 기쁨과 떨림이 섞여 있었다.
-도련님, 제가 지금 바로 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김 비서의 눈에도 그림 괜찮아 보이나 보군.
< 그림 괜찮아 보이나?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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