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n of a wealthy family RAW novel - Chapter (98)
재벌집 만렙 아들-98화(98/416)
< 이게 바로 살생부! >
[우와아아!]저승사자가 두 손을 꼭 모은 채 소리쳤다.
[진짜로 지나간 연속극을 다시 돌려 볼 수 있다니! 이건 기적이다!]저승사자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대왕께서 시간을 돌리는 것과 똑같다!]저승사자가 감격하면서 텔레비전을 껴안았다.
그래 봤자 투명한 몸체 너머로 텔레비전 화면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앞으로 넌 내 보물 1호, 넌 내 보물 2호로 명하노라!]저승사자는 필립스 VCR을 어루만졌다.
검은색 도포 소매로 먼지 한 톨 없이 닦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래 봤자 투명한 소매가 스윽 통과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일일연속극이 다 뭐라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좋냐?’
[물론이다. 너무 좋다!]저승사자가 연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인생 별거 있나? 소소한 행복을 쌓아가는 게 최고다.]웃음은 전염되는 것이던가.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고 말았다.
‘소소한 행복이라.’
[이를테면 네가 일찍이 여읜 부모님을 다시 만나 뜨신 방구석에서 등 지지면서 콩나물 대가리나 따는 것?]‘······.’
[돌이켜 보니 너는 그간 참으로 평화롭고 호사스러운 나날들을 누렸구나. 과거와 달리.]그래, 너 말 잘했다!
‘과거에 내가 누구 때문에 매국노 누명을 썼더라?’
[······.]‘조실부모하고 사고무친하여 일곱 살 때부터 뒷골목에 버려져 박복하고 고되게 살았던 더러운 인생!’
[······.]‘천벌?’
이미 무릎을 꿇고 있던 저승사자가 달달 떨며 VCR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이것을 바칠 테니 봐줄 수는 없겠는가?]보물 2호를 포기하시겠다?
[부족하다면 이것까지 바칠 수 있다······.]저승사자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보물 1호라던 텔레비전도 마저 가리켰다.
나는 피식 웃었다.
‘봐줬다. 보물들은 넣어둬. 네 거잖아.’
[대인배로다!]저승사자가 감격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이러니 대왕께서 보석처럼 빛나는 영혼이라 하시었구나. 천벌을 받고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천국행 표를 끊은 자. 과연······!]저승사자가 벌떡 일어났다.
[안 그래도 이번에 불광동 휘발유의 죄를 조사하러 명계에 갔을 때, 아주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 본 처사가 너를 위해 반드시······!]띵동. 띵동띵동.
우리 집 초인종 소리였다.
눈치 빠른 경호원이자 내 수족을 자처하는 유종태가 나는 듯이 달려와서 보고했다.
“김 비서님께서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저승사자의 말 또한 궁금했다.
[명계의 일은 본 처사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괘념치 말도록 하라. 그럼 본 처사는 마저 연속극을······.]유종태가 보고했다.
“그런데 뭐가 좀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한데요?”
“평소처럼 뇌물 바치러 온 게 아니라 선물을 감사히 받으러 왔다고 하십니다.”
유종태가 바짝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김 비서님이라면 웬만한 선물에 이렇게 달려오실 분이 아니신데 말입니다. 대체 무슨 선물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물론 저 유종태는 호기심보다 신의를 우선하는 놈인지라······.”
“청와대로 보낼 살생부인데요?”
“좋은 시간 되십시오.”
꾸벅 인사한 유종태는 뒤도 안 돌아보고 튀었다.
역시 눈치가 빠르다니까.
유종태처럼 급이 안 맞는 인사가 심부름꾼을 자처하면 청와대 경호실장쯤은 잡아다가 야산 어딘가에 목만 남기고 파묻히는 꼴을 당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제 목숨 스스로 잘 챙기는 놈이 좋더라!
* * *
김 비서는 곧장 내 방으로 직행했다.
“도련님, 뉴스 속보 보셨습니까?”
우광 김 회장의 저택에서 연행되어 나오는 우광 계열사 사장들이 모습이 담긴 속보였다.
“우광의 김 회장님께선 이 기회에 대대적인 숙청을 시작한 모양입니다.”
김 비서의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절묘한 수였습니다. 계열사 사장들을 희생양 삼아 여론의 관심을 돌린 후에 빠져나갈 생각입니다.”
“그것만 하면 다행이게요?”
“예? 하지만 도련님, 지금 우광으로서는 달리 빠져나갈 방법이 딱히 없는 터라······.”
“우광 계열사 사장들에게 화살을 돌려봐야 우광이 문제란 점은 변하지 않아요.”
“······맞습니다.”
“이미 청와대에게 찍힌 이상 우광의 김 회장은 보다 확실한 방패를 내밀고 싶을 거예요.”
“청와대가 두려워하는 것이라면 오직 민심뿐입니다. 민심이 우광에게 등을 돌렸는데, 우광이 내세울 확실한 방패란 게 어디 있겠습니까?”
“태성이요.”
김 비서의 안색이 순간 굳었다.
“우광은 대마불사란 말을 믿고 있어요. 태성은 재계 서열 5위, 우광은 9위에요.”
“우리 태성과 우광은 혼약마저 깨어졌습니다. 태성이 왜 우광과 함께 서서 눈총을 받아야 합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광이 죽어라 물고 늘어지려고 하겠죠. 살기 위해서 별수 있나요.”
“설마······!”
역시 김 비서!
말 한마디에 바로 핵심을 꿰뚫는 남자였다.
“태성화학이란 끈을 이용할 거란 말씀이십니까?”
“계약서가 있잖아요. 태성이 우광화학과 우광증권을 가로채기 위해서 이런 일을 꾸몄다고 할아버지를 몰아가면요?”
“우광의 시궁창에 회장님까지 끌어들일 작정이란 말입니까?”
“우광 혼자라면 몰라도 태성까지 같이 묶어 버리면 국가 경제의 한 축이 무너질 지경이 되고 말아요. 청와대가 눈감아 줄 수밖에 없도록.”
“태성은 우광 화재와 관련이 없습니다. 단 한 점의 의혹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지은 죄도 없이 청와대의 눈 밖에 날 이유도, 우광과 함께 매를 맞을 까닭도 없습니다!”
“청와대에서 언제 죄의 유무를 따졌던가요? 의심을 사는 순간부터, 심기를 거스르게 된 순간부터 청와대의 눈 밖에 나는 거예요.”
그게 김 회장이 노리는 그림이다.
김 비서의 눈빛이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도련님께서 우광건설의 뇌물 장부를 쓰겠다고 결심하신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군요.”
우광이 물고 늘어지지 못하도록 이쪽에서 먼저 잘라내야 한다.
김 비서는 외투를 벗는 대신 서류 봉투부터 내밀었다.
“복사본입니다. 이쪽은 청와대 비서실장의 정적을, 저쪽은 청와대 경호실장의 정적을 추려봤습니다.”
나는 서류 봉투에서 서류를 꺼냈다.
똥빛이 나는 서류가 한 무더기였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이름이 나왔다.
‘서문 머시기!’
중앙정보부 감찰국 소속 요원 서문철.
엿본 미래에서 철구 아저씨를 서빙고 물고문실에 끌고 가 고문을 했던 놈이며, 우광의 사주를 받고 불광동 휘발유를 꺼내주려 했던 자였다.
‘그래, 우광에게 그리 충성하려면 평소에 얼마나 많이 받아먹었겠어? 우광건설 뇌물 수수 명단에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인제 보니 우광건설 뇌물 장부에 제 이름이 올라 있었기 때문에 철구 아저씨를 살인멸구하려던 거였구만!
거기에 서문철의 상사인 중앙정보부 감찰국장도 함께 있었다.
이것 정말 잘됐군.
“김 비서님, 이놈들은 양쪽 다 집어넣죠.”
“예. 안 그래도 양쪽에 다 넣은 놈들입니다. 우광의 앞잡이를 이 기회에 청와대의 칼로 날려버리려고 합니다.”
“아주 좋아요.”
차도살인(借刀殺人)
이거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라니까.
나는 흐뭇한 웃음을 숨기지 못하며 다음 명단으로 넘겼다.
‘어?’
깜짝 놀랐다.
거무스름한 똥빛 서류 중에서 황금빛이 도는 것을 발견했다.
‘그냥 황금빛이 아닌데······. 이렇게까지 불길하게 일렁이는 붉은색은 처음 본다.’
색이 섞여 있었다.
‘대체 누구의 서류이길래? ······이런.’
설마 우광건설이 뇌물 먹인 사람 중에 이자가 끼어 있었을 줄이야.
‘육군 보안사령관.’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현 대통령이 육군을 견제하기 위해 심어둔 최측근이자, 군부 쪽 정보를 한 손에 틀어쥐고 있는 남자.
대통령 암살 시해범으로 중앙정보부장이 지목된 까닭에 중정이 마비된 틈을 타서 국내외의 모든 정보를 틀어쥐고 그를 기반으로 또 다른 군부 쿠데타를 성공시킨 야심가.
“현 정권의 서열 4위에 달하는 실세 중의 실세입니다. 청와대의 주인을 떠받드는 네 기둥 중 하나이며, 세력은 물론 각하의 믿음 또한 대단합니다.”
청와대 경호실장의 정적 명단에서 이 이름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지.
‘하기야 육군 일심회 소속 부하들의 주머니를 챙겨주려면 뒷돈이 많이 필요하기는 했겠지. 우광의 후원을 마다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황금빛이 도는 서류라.
나는 육군 보안사령관의 서류만 쏙 빼어 들었다.
‘이건 일단 보류.’
다음 서류를 확인했다.
‘허······!’
이번 것 역시 황금빛이 도는 가운데 시커멓기 이를 데 없는 검은빛이 섞여서 넘실대었다.
‘이쪽도 색깔이 섞여 있잖아? 이건 또 누구야?’
서류를 빼내어 이름을 확인했다.
이번엔 중앙정보부장이 대뜸 튀어나왔다.
“그 역시 실세 중의 실세입니다. 중정부장의 현재 서열은 3위입니다. 육군 보안사령관보다도 한 단계 높습니다.”
나는 중정부장의 서류도 일단 쏙 빼고 보았다.
“흐음.”
방바닥에 두 서류를 나란히 놓았다.
한쪽은 황금빛에 붉은빛, 다른 쪽은 황금빛에 검은빛.
‘권력과 영향력을 고려하면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거물 중의 거물이로군.’
2인자라는 청와대 경호실장의 정적이라면 시시한 자들일 리 없다.
서열 4위라는 육군 보안사령관, 서열 3위라는 중정부장.
내가 팔짱까지 끼며 고심을 거듭하는 이유였다.
“이들 전부가 빠지면 잔챙이밖에 안 남아요. 청와대 경호실장이 고작 잔챙이 몇 마리밖에 못 잡는 뇌물 장부에 흥미를 보일 리 없어요.”
“맞습니다.”
결심해야 했다.
숙청의 칼날 아래 집어넣을 사람을.
“김 비서님, 만일 이 뇌물 장부가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가정해볼 때 측근이 푼돈 몇 푼 받은 것으로 숙청을 감행할까요?”
이번 청와대의 주인은 과거 나와 접점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내가 어릴 때 죽었는데, 무슨 수로 얽혔겠어.
그에 관해 읽은 건 그저 역사 속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였고, 그마저도 정권의 입맛대로 취사선택된 일화나 업적이었을 테니까.
차라리 실제로 그를 보고 겪은 김 비서의 견해부터 들어보고 싶었다.
“배신의 기미, 혹은 반역 모의와 같은 결정적인 미운털도 없이 손발을 잘라내는 과감한 결단을 내릴 만한 위인인가요?”
“글쎄요. 청와대 주인의 속을 제가 어찌 감히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을지, 얽히고설킨 은원이 얼마나 될지, 나야 짐작할 수 없으니까.
“그분은 안 건드리는 게 상책인 분입니다. 서열 세우기와 권력에 대한 집착이 무시무시하셔서 말입니다.”
사석에서 술 한 잔 마시는 데도 장관들을 벽에 세우고 자격을 증명하라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청와대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의 이해관계에 주목해 명단을 뽑았습니다.”
김 비서의 말이 더 은근해졌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귀가 전부 열려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타당한 말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고, 눈과 귀는 측근이 가리는 법이다. 제 사리사욕을 위해서.
그래서 더 고민이 깊어졌다.
째깍째깍 시간은 잘도 흘렀다.
“실세에게 잘 보였을 땐 득을 크게 보겠지만, 밉보였을 땐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우광처럼.
“우광건설 뇌물 명단은 정적 숙청의 명단으로 탈바꿈하게 될 거예요.”
그러라고 보내는 선물이니까.
“청와대 경호실장이 청와대의 주인까지 움직여서 단번에 그들을 쳐내지 않는다면 그 후환을 태성이 감당해야 할지도 몰라요.”
내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김 비서가 입을 열었다.
“도련님, 청와대에서 신년마다 각계의 주요 인사를 불러다 보고 받거나 혹은 논의를 나누곤 합니다.”
“신년 오찬 모임을 말하는 건가요?”
“정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것이 신년 오찬 모임이라면 군부와 중정의 주요 인사들에겐 신년 보고회란 게 있습니다.”
오!
“육군 보안사령관 역시 육군의 정보를 보고하기 위해 조만간 청와대로 향할 겁니다. 어쩌면 내일 혹은 모레쯤.”
김 비서는 덧붙였다.
“국내외 정보를 장악한 중앙정보부 부장도 역시 같은 자리에 참석할 예정이고 말입니다.”
역시 김 비서!
김 비서의 말에 나의 길고 무거웠던 고민이 끝났다.
김 비서가 나지막하게 감탄을 터뜨렸다.
“역시. 회장님과 같은 결론을 내리셨군요.”
할아버지도?
* * *
김 비서 덕분에 약속 장소와 시간을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저승사자가 태성호텔 일식집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경호실장님을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귀빈들이 사용하는 룸에서 할아버지는 데운 정종이 든 도자기 주전자를 기울였다.
쪼로록.
난이 그려진 흰 도자기 술잔에 데운 정종이 찰랑이도록 담겼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단숨에 정종을 털어 마셨다.
“두둑한 성의를 준비했다고?”
< 이게 바로 살생부! > 끝
ⓒ 오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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