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SS-Ranker Returns RAW novel - Chapter (125)
# 125
기사 대전 (2)
‘이런 거군.’
방어를 단단히 해 시간을 벌고, 독을 풀어 상대의 생명력을 깎는다.
시간은 걸리지만 방어력만 충분하다면 필승을 자신해도 좋을 전술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독에 대한 저항력을 가진 존재는 많지 않으니까.
누군가는 치사하고 졸렬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로칸은 그를 비난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전술을 높이 평가했다.
지속적으로 강력한 독을 습득할 수 없다면 문제겠지만, 조건만 충족된다면 대다수의 상대에게 통할 만한 전술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지금, 로칸 자신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독이 통하지 않는 방어 올 인 전사의 최후는
“끄어어억…….”
샌드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온갖 방어 스킬을 둘렀다 한들 로칸의 공격력은 규격 외의 것이니까.
한 방, 한 방이 꽂힐 때마다 방어구의 내구력은 팍팍 깎여 나갔고 생명력도 덩달아 움푹 파였다.
거기에 로칸은 짓궂게도 아머 브레이크까지 발동시켰다. 상대가 자신하는 방어구들을 하나하나 조각 내며 철저하게 박살 내고, 피의 각인을 이용해 오히려 본인의 생명력은 가득가득 채워 넣었다.
그래 봤자 어차피 깎인 생명력도 별로 없었지만.
“두 번째 대결, 승자 로칸!”
“우와아아아아아아!”
“이런 멍청한 것들!”
유저들이 앞선 두 경기에서 연달아 패배하자 레밍턴 영주가 분통을 터트렸다.
무려 영지가 걸린 전투에서 방문자 놈들을 믿은 것이 잘못이라는 듯 호통을 치고 욕을 내뱉어 댔지만, 유성 길드원들은 아무런 반박도,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죄인이 된 듯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그래 봤자 이 기사 대전이 끝나고 나면 그럴 필요도 없어지겠지만.
“다음!”
“세 번째 대결은…….”
다음 세 번째와 네 번째 대결 상대는 유저가 아닌 NPC였다. 유저들이 레밍턴 영지의 기사들을 꺾고 기사 대전의 참가 자격을 얻었다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다.
애초에 로칸 같은 특이 케이스가 아닌 이상, 남작급의 귀족에게 붙었다는 것은 실력이 그 정도라는 것이니까.
설사 능력이 된다 해도 레밍턴 영주가 오랜 시간 보아 온 NPC 기사들을 두고 그들만으로 인원을 채울 리도 없었다.
두 자리나 내어 준 것만 해도 파격적인 인사였다고나 할까.
어쩌면 승리를 자신했기에 할 수 있었던 판단이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꿈이었는지 지금 느끼고 있었다.
‘얼굴 터지겠군.’
시뻘게진 얼굴로 부들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이제 마지막 한 명만 해치우면 기사 대전은 끝이 난다. 로칸의 승리로.
그나마 마지막은 레밍턴 영지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놈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로칸의 상대가 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앞선 상대들을 그렇게 쉽게 요리할 수 없었으니까.
“잠깐! 잠시 작전 타임을 신청하겠습니다.”
“작전 타임 ”
레밍턴 영주의 요청에 카르본이 살짝 인상을 썼다. 작전 타임이라니, 기사 대전에 그런 것이 있었던가
못 할 것은 없지만 그러면 연속으로 전투를 치르고 있는 로칸이 조금이라도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주는 셈이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마이너스라고 할 수 있는 제안이었기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카르본 님, 잠시만.”
그때, 누군가 사람을 보내 카르본에게 어떤 소식을 전했다.
인상이 와락 구겨지는 것이 좋은 소식은 아닌 모양.
그리고 곧 그의 선언이 이어졌다.
“좋다. 받아들이지. 하지만 딱 1분이다. 그 안에 작전을 짜든 항복을 하든 하도록!”
“감사합니다.”
카르본이 수락하자 레밍턴 영주는 머리를 조아리고 스포츠 경기의 작전 타임처럼 기사들을 불러 모았다.
‘무슨 수작이지 ’
대체 무슨 속셈일까. 이번만큼은 로칸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어차피 상대는 무슨 짓을 해도 로칸 자신을 이길 수 없었고, 황제가 명령한 신성한 기사 대전에서 허튼 수작을 했다간 영지를 빼앗기는 정도가 아니라 삼족을 멸하게 될 텐데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는 것일까.
독 자폭 아니면 금지된 약물을 통한 순간적인 파워 업
어차피 로칸이야 설령 죽는다 해도 다시 살아나면 그만이니 상관없다. 몰수패든 뭐든 결과만 승리로 끝난다면.
“커헉!”
풀썩.
그때, 한창 작전 타임 중이던 레밍턴 영지의 진영 쪽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다음 차례로 대전에 나설 예정이던 기사가 갑자기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진 것이다.
“스파이다!”
“이놈! 죽어라!”
이어진 연출은 더욱 가관이었다. 레밍턴 영주가 직접 심장에서 피를 쏟아 내는 기사를 둘러싸고 있던 이들 중 하나의 목을 친 것이다.
저항 없이 그 칼을 받은, 어쩌면 스스로 들이민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한 대상 역시 숨이 끊어졌다.
“무슨 일인가!”
“자객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나 평온한 얼굴이지만 레밍턴 영주는 태연하게 거짓을 고했다.
“자객이라고 ”
“예. 이번 기사 대전과 관련하여 모종의 음모가 있었던 듯싶습니다.”
참으로 뻔뻔한 말이었다. 그래서 지금 다 끝난 기사 대전을 무효로 돌리자는 것일까
설마 이런 방법을 쓸 줄은 몰랐던지라 로칸과 카르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레밍턴 영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거창한 뒷배가 있는 모양이었다.
‘최소 대귀족 또는 의원인가 보군.’
말단이긴 하나 ‘의원’이 참관인으로 있는 자리에서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은 뒷감당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뒤가 없을 만큼 절박하거나.
레밍턴 영주의 뒤에 그만한 세력이 있었던가 로칸이 표정을 굳히고 기억을 더듬는 사이, 카르본이 먼저 나섰다.
“그래서, 지금 나보고 황, 제, 폐, 하께서 명하신 기사 대전을 취소하라는 소리인가 ”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카르본이 직접 매수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레밍턴 영주의 당돌한 행동에 언짢아진 카르본이 쏘아붙이자 놈은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제안했다.
“그럴 리가요. 어찌 그런 불경을 저지르겠습니까. 다만 청을 드리는 것은, 마지막 상대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으니 다른 자로 교체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사하는 것입니다.”
“대결 상대를 교체해 달라 ”
카르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미 지정한 대결 상대를 바꾸겠다는 것이니 그의 판단에 따라 이 경기는 이대로 끝을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그의 말을 들어줄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방금 전 받은 연락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의 훌륭한 장기짝이 되어 주고 있긴 하지만 뒷배가 있는 것도 아닌 로칸을 위해 그 요청을 무시할 필요가 있을까
잠시 저울질하던 카르본은 결국 답을 내놓았다.
“좋다. 허락하겠다.”
“감사합니다.”
따지고 보면 로칸이 다시 추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인 것이다.
방문자인 주제에 단시간에 완전한 남작의 지위까지 꿰찬 로칸의 승승장구에 제동을 걸어 주면 더 부려 먹기 편해지지 않을까
레밍턴 영주가 무슨 수를 쓰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사 대전 이후의 보복쯤은 자신이 막아 줄 수 있을 터였다.
“마지막 대결 상대로 저희 측에서 나설 기사는 이분……. 아니 이 사람입니다.”
‘미친.’
처음 기사 대전이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보지 못한 얼굴이 그 자리에 와 있었다.
아무래도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중간에 다른 곳에서 꾸어 온 것이 틀림없었다.
“하시모츠 경이라고 ”
그의 이름은 로칸도 알고 있었다.
마스터 하시모츠.
상대는 무려 마스터 레벨에 오른 기사였다.
“하시모츠 경은 루베론 백작가의 기사가 아니던가 ”
“오늘부터 저의 기사입니다.”
카르본이 의문을 제기했지만 레밍턴 영주는 서류를 꺼내 대응했다.
기사 하시모츠가 레밍턴 영지에 몸을 의탁한다는 서약서.
기사 서임장은 절대 날조될 수 없는 것이기에 카르본은 수작인 것을 알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허락하지.”
로칸이 일반적인 NPC였다면 허락하지 않았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잃어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방문자이기에 찝찝하더라도 허락할 수 있었다.
‘이 새끼가…….’
고작 남작 따위에게 이 정도의 지원을 하는 것을 보면 레밍턴 영주도, 그를 후원하는 인물도 이번 기사 대전에서 지기 싫은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이름만 걸친 것이라 해도 마스터급의 기사가 이적하면 황제에게도 보고가 되기에 근 시일 내에 다시 돌아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젠장, 그나마 아직 초짜 마스터라는 걸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
이쯤 되니 로칸도 빠르게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에서 마스터 레벨이 나왔다고 지금까지 일궈 온 계획을 모두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로칸에게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능력치만이라면, 또 버서크라는 최후의 한 수가 있는 이상 상대가 마스터라 해도 어떻게든 비벼 볼 여지가 있었다.
상대가 완숙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라면 확률이 극히 낮겠지만 이제 막 마스터에 오른 인물이라면 제 능력을 다 이끌어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길 확률은 많아야 10%쯤이겠군.’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길 확률은 높지 않았다.
10%라는 것도 버서크를 사용했을 때, 그리고 로칸의 컨트롤일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보통의 클래스라면 3% 이하일 수밖에 없겠지.
‘마스터 스킬…….’
그 이유는 단 하나, 마스터 스킬의 존재 때문이다.
조합 스킬과도 비슷하지만 그 위력과 효용은 비교도 되지 않는 마스터 스킬이 마스터와 비마스터 유저의 격차를 어마어마하게 벌리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킬만을 조합할 수 있는 조합 스킬과 달리, 마스터 스킬은 클래스와 상관없이 조합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으니까.
게다가 조합할 수 있는 스킬 수의 제한도 없기에, 조합만 잘해 낸다면 필살기라는 말로도 부족할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로칸이 전생에 SSS급으로 분류되었던 것도, 폭력의 왕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릴 수 있던 것도 바로 이 마스터 스킬 덕분이었다.
‘그걸 이놈이 얼마나 잘 만들어 놓았을지가 관건이군.’
그러나 무작정 많이, 고위 스킬들로 조합한다 하여 강력한 것은 아니기에 하시모츠의 마스터 스킬이 별 볼 일 없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그의 주력이 되는 마스터 스킬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모든 마스터들이 처음 만든 마스터 스킬을 끝까지 사용하는 것은 아니니까.
아직 마스터 스킬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초반에는 최상위 조합 스킬보다 조금 나은 수준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다.
“다섯 번째 대결은 로칸 대 하시모츠! 마지막 대결을 시작하라!”
스스슥.
카르본의 선언이 있었지만 로칸과 하시모츠, 두 사람의 움직임은 크지 않았다. 서로를 탐색하며 틈을 노리는 것이다.
작은 틈을 균열로 만드는 고수들 간의 타이밍 싸움.
먼저 움직인 쪽은 로칸이었다. 상대의 패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로칸의 스타일이 아니다.
일단 부딪쳐 보고, 그것을 통해 정보를 낚아 올리기 위해 공세로 전환했다.
“폭격!”
“이지스의 방패.”
콰앙!
벼락처럼 날아든 폭격을 놈이 조합 스킬로 정면 승부했다. 그러나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단단한 방어 속에서 눈빛을 빛낼 뿐이다.
확실히 폭격 한 방에 나자빠지던 다른 놈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
“스트라이크.”
하지만 그 정도야 예상했던 일. 로칸은 신중하게 스텝을 밟으며 놈의 방어 위로 도끼를 찍어 갔다.
까강! 슈욱.
폭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로칸의 도끼가 떨어져 내렸지만 놈은 침착하게 방패로 막아 내고 아예 반격까지 시도했다.
방어를 유지한 채로, 검을 찔러 간을 본 것이다.
기본기가 훌륭했다.
“흥!”
그러나 호락호락 당해 줄 로칸이 아니다.
가드를 발동시켜 놈의 검을 걷어 냄과 동시에 자세를 낮추며 방어가 용이치 않은 발목을 쓸어 갔다.
“하앗!”
방어를 낮출까 하는 찰나의 머뭇거림을 떨치고 놈이 뛰어 올랐다. 로칸의 휩쓸기를 피하고 오히려 방패의 모서리로 로칸을 찍어 왔다.
“반격!”
“큭.”
백스텝과 이어진 필살의 일격.
그러나 이번에도 놈은 거북이처럼 방패 뒤로 몸을 숨기며 자신을 보호했다.
‘더럽게 단단하군.’
이쪽도 풀 8강이라지만 저쪽은 무려 300레벨 아이템이다.
적당히만 강화했어도 장비의 이점을 살리기는 어려웠고, 능력치 또한 보너스를 받아 뒤지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공격이 막혔다고 멈추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
로칸은 대시와 돌격을 이용해 속도를 높이며 놈의 철벽같은 방패를 들이받았다.
“숄더 차지!”
쿠웅!
그제야 녀석의 몸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몸을 띄운 것이지만 처음으로 자세가 흐트러진 것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로칸이 짓쳐 들었다.
“불굴의 전진!”
“흐읍.”
다시 한 번 몸통 박치기를 시도하는가 싶더니 충격으로 몸이 떠오른 순간, 빙글 몸을 돌렸다.
“탈출.”
반지에 내장된 스킬을 이용해 놈의 등 뒤로 돌아갔다.
전신이 중갑으로 무장되어 있지만 방패를 단단히 든 정면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곳을 노려 연타가 쏟아졌다.
“난무!”
“긴급 기동!”
한 호흡 만에 10연격이 펼쳐졌지만 로칸이 때린 것은 놈의 잔상이었다.
본체는 이미 탈출기를 통해 멀어진 상태였고, 다시 상황은 처음으로 돌아갔다.
“제법이군. 이 정도면 공격력만큼은 마스터급에 가깝겠는걸 ”
거의 피해 없이 모든 공격을 무효화시킨 하시모츠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마스터 레벨도 되지 못한 상대라기에 조금은 경시했던 게 사실인데, 적어도 공격력만큼은 자신이 알고 있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감탄이 오히려 로칸의 성질을 건드렸다.
“감히 누구한테 그런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
콧김을 씩 뿜으며 재차 덤벼들 준비를 마쳤다.
“그대를 예우하는 차원에도 나도 진지하게 임하도록 하지. 받아 보아라. 이것이 나의 마스터 스킬이다.”
방패를 등으로 돌리고 롱 소드를 두 손으로 힘껏 움켜쥐는 하시모츠. 그의 검에서 푸른 아지랑이와 함께 불과 번개가 솟아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