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SS-Ranker Returns RAW novel - Chapter (15)
# 15
역병의 저주 (3)
“미친.”
그제야 떠올랐다, 초창기에 일어났던 하수도 퀘스트의 치명적인 버그가.
일명 ‘역병 몰살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버그는, 역병의 보석에서 퍼지는 ‘역병’이 보석을 들지 않은 이들에게까지 전염되는 버그였다.
“너무 일찍 온 게 문제였나 ”
이 버그가 당시 늦게 알려진 이유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려졌기 때문인데, 이미 역병 10연퀘가 발동된 후나 하수도 던전이 완벽히 클리어된 이후에서야 알려졌던 것이다.
그때도 하수도 던전이 클리어될 때마다 역병의 보석이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역병의 보석을 얻은 유저가 스테로이안에게 올 때쯤에는 이미 마법사 길드에 방문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버그의 존재를 몰랐다.
그런데 지금 로칸이 사람으로 미어터지기 직전인 곳을 몸으로 뚫고 왔으니, 광범위한 전염이 이루어진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나마 죽으면 전염이 멈추는 거였지.”
로칸은 이 저주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기도 했고, 어떤 학자가 이 사건을 바탕으로 「가상 세계의 전염병 발발」, 「전염병의 실제적인 확산 경로의 예」 따위의 논문을 현실에서 발표해 이슈가 되기도 했었으니까.
특별한 치료제를 마실 때까지 포션으로도 유저들의 스킬로도 치료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생명력울 갉아먹는 전염성 저주가 광범위하게 퍼졌으니 도시가 뒤집어진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NPC는…… 피해야겠군.”
그나마 유저들은 죽기라도 했지, 상인이나 길드 관련 NPC들은 편의상 ‘불사’의 설정을 가진 탓에 죽지 않았고 기사급 이상의 강력한 NPC들 역시 병들되 죽지는 않으면서 역병을 지속적으로 옮기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쯤 되자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마저 도시를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겨우 살아서 마을까지 들어와도 NPC와 접촉을 할 수 없으니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결국 더 로드의 신인 시스템 ‘콘돌’이 나서서 공간을 분리시키고 모든 역병의 저주를 일시에 해소시킴으로써 문제를 없애긴 했지만, 상인 NPC들의 불사 효과가 제거되는 등 긴급 패치가 진행되어야 했고 유저들 사이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그 유저는 처벌받지 않았지, 아마 ”
이 같은 단호한 대응에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 두고두고 회자된 이유는 처음 버그를 악용한 유저에 대한 처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버그가 일어난 것은 맞으나 그것은 설정상의 오류일 뿐, 개인의 잘못이나 악의적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죽은 유저들에 대한 피해 보상이나 복구도 진행되지 않았다. 이 또한 게임 진행의 일부라는 것.
덕분에 신난 것은 승냥이 떼 같은 얍삽한 유저들이었다. 일부러 역병을 전염시키고, 체력을 회복하며 그 뒤를 쫓아다니다가 죽으면 드롭된 아이템을 가지고 튄 것이다.
그러나 아이템과 경험치는 결국 끝까지 복구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먹어도 탈이 없다는 거겠군.”
옛 기억을 떠올리는 로칸의 눈앞에 수십 구의 시체 위로 떠오른 아이템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살아 있는 자는 없었다. 그러니 마법사 길드 NPC와 접촉하지만 않는다면 역병에 다시 걸릴 일도 없고, 누가 아이템을 가져갔는지도 알 수 없을 터였다.
1층에 내려가면 다른 유저들이 귀찮게 굴까 봐 창문으로 뛰어내릴 생각까지 하던 로칸은 서둘러 내려가 아이템들을 챙겼다.
초보용 아이템이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마법사 전용 아이템들이었지만 수가 제법 많아 팔면 돈이 제법 될 듯싶었다.
* * *
그렇게 챙길 것을 모두 챙기고 나서자 바깥에도 난리가 나 있었다. 역병의 저주에 걸린 유저 중 일부가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으아아악!”
“이거 좀 어떻게 해 줘!”
“사제! 사제 클래스 없어 제발 정화 좀……!”
‘……저기에 어울려 줄 필요는 없지.’
좀비처럼 괴성을 지르며 난리를 피우는 일부 유저들을 피해 벗어나자 그나마 한산해졌다. 아직은 저주가 멀리 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로칸은 즉시 무기점과 방어구점을 돌며 장물들을 팔아 치웠다. 크톤에는 ‘경매장’도 없거니와 경매에 올릴 만큼 거창한 아이템도 아니어서 되는 대로 상점에 처분해 버린 것이다.
아이템 주인들이 알면 피눈물을 흘릴 일이지만 상관없는 일이다. 그건 그들의 사정이니까.
그러나 그중 하나만큼은 팔지 않고 챙겨 두었다.
[겁쟁이 마법사의 반지][매직]한 겁쟁이 마법사가 만든 도주용 반지.
-하루 한 번 ‘탈출’을 외치면 3미터 뒤로 이동.
-충전 상태 : 1/1
-재충전 대기 시간 : 0:00
무려 생존기가 달린 반지였다. 옵션이라고는 스킬 하나뿐이고 등급도 매직에 불과했지만, 생존기가 붙은 아이템은 별로 없어 제법 레벨을 올린 뒤에도 이것을 차고 다니는 이들이 꽤 많았었다.
“오, 이걸 벌써 얻었단 말이야 하지만 아직 이것의 가치를 모를 테니 별로 아깝지도 않겠지.”
만약 자신이 이것을 빼앗겼다면 속이 쓰리다 못해 신물이 나왔겠지만 잃어버린 마법사는 그저 매직 등급 아이템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만큼만 열이 받을 터였다. 아직 컨트롤이 약해 이것을 제대로 쓸 줄도 모를 테니까.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로칸에게 있어 근접 계열에게 부족한 생존기 하나가 채워졌다는 것은 여벌의 목숨이 하나 더 생겼다는 뜻이었다.
“고맙게 잘 써 주마.”
로칸은 누군지 모를 상대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다시 몸을 움직였다.
“어디 보자, 공돈은 쓰라고 했지 ”
다음은 쇼핑이다. 뜻밖의 횡재 덕에 쌓인 돈으로 로칸은 신나게 아이템 쇼핑을 했다.
원단을 사서 붕대를 제법 쟁여 놓고 해독초와 포션, 식량도 채웠으며, 아직은 살 생각이 없던 투척용 손도끼와 방어구도 몇 점 구입했다.
다만 방어구의 경우 방어력보다 옵션을 중심으로 살폈다. 방어력은 형편없더라도 힘이나 민첩, 체력, 맷집 능력치가 추가로 붙은 장비를 우선 구입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돈도 별로 나가지 않았다.
“이 정도면 대충 50레벨까지는 쓰겠군.”
방어력만 따지면 레벨이 오를 때마다 금방 바꿔 줘야겠지만 옵션이 붙은 방어구의 경우 50레벨 정도까지는 그럭저럭 쓸 만했으니까.
어차피 방어력과 옵션 둘 다 좋은 것은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능력치를 몇십씩 올려 주는 것도 아니었고.
‘이제…… 튀자.’
그렇게 준비를 마친 로칸은 서둘러 도시를 빠져나왔다.
역병의 저주가 이번에는 어디까지 퍼질지 그조차도 짐작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적어도 콘돌이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긴급 패치를 진행하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흘이면…… 딱 좋군.”
스테로이안과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은 사흘 후. 절묘하게도 사흘이면 그의 계획과도 딱 맞아떨어지는 시간이었다.
* * *
“어디 보자. 공동묘지가…… 동쪽이었지 ”
로칸이 찾은 곳은 마을 동쪽에 위치한 공동묘지였다.
이상한 일이다. 공동묘지는 그야말로 묘지일 뿐,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이미 진작 확인된 지역이었다.
혹시 사냥할 만한 언데드 몬스터가 있을까 찾아와 기웃거린 이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누구 하나 건져 간 것은 없고 그냥 배경일 뿐이라고 온라인상에서도 결론이 난 상태였다.
‘순진들 한 거지.’
하지만 로칸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정보였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는 원래 지금 시점보다 한두 달은 더 지나야 공개가 될 것이었으니 남들이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찾았다.”
로칸이 공동묘지에 들어서자마자 찾아다닌 것은 다름 아닌 누군가의 의족이었다.
[묘지기의 의족][일반]발 없는 묘지기가 잃어버린 의족. 가져다주면 좋아할 것 같다.
공동묘지를 지키는 묘지기의 의족. 찾아서 가져다줘 봐야 보상은커녕 얼른 내놓으라는 호통만 당하고 쫓겨날 뿐이라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잡템이지만 로칸은 씨익 웃으며 집어 들었다. 그리고 묘지기 대신 어떤 묘를 찾았다.
“여기군.”
딸깍. 드르르르르르륵.
그가 찾는 것은 작은 홈이 파인 비석이었다.
그 홈에 묘지기의 의족을 가져다 끼우자 이변이 일어났다. 무덤이 열리고 계단이 생겨난 것이다.
[비밀 던전 ‘월하의 공동묘지’를 발견하셨습니다.] [굉장한 업적! 숨겨진 비밀 던전을 최초로 발견한 당신의 통찰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타이틀 ‘탐색꾼’을 획득했습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최초][탐색꾼][레어]예민한 감각과 특유의 통찰력으로 숨겨진 비밀을 풀어 낸 당신에게는 탐색꾼의 재능이 있습니다.
[보유 효과]-시력 증가.
-[야간시] 효과로 야간에도 시야 보정.
-낮은 확률로 숨겨진 장치 발견.
더불어 레어 등급의 타이틀까지 획득했다.
시력 보정과 야간시도 좋았지만 숨겨진 장치 발견 확률 옵션도 꿀이었다. 근처에 숨겨진 장치가 있을 경우 낮은 확률이지만 빛이 반짝거리며 알려 주게 되니까.
로칸이 알지 못하더라도 숨겨진 장치나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좋군.”
간단하지만 장기적으로 꽤 도움이 될 만한 옵션들에 만족하며 로칸은 기분 좋게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비밀 던전 ‘월하의 공동 묘지’에 입장하셨습니다.]쿠구구궁!
입장과 동시에 들어온 방향에서 무언가 거창한 소리가 들려 왔다.
왔던 길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외부에서 들어오는 길은 닫힌 것이다. 비밀 던전이 1회 입장을 허용하는 것은 개인 또는 파티뿐이니까.
물론 다시 공동묘지 어딘가에 나타났을 의족을 찾아 문을 열면 들어올 수 있지만 그 전까지는 이곳에 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터였다. 괜히 비밀 던전이 아니었다.
[최초 입장 보너스로 사흘간 획득 경험치가 30% 증가합니다.] [최초 입장 보너스로 사흘간 드롭률이 30% 증가합니다.]뒤이어 최초 입장의 특혜가 주어졌다.
사흘간의 최초 입장 보너스.
자신에게 주어진 사흘간의 자유 시간 동안 로칸은 여기서 제대로 꿀을 빨아 볼 생각이었다.
“그럼 꿀 빨러 가 보실까 ”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어둠뿐이지만 로칸은 개의치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야간시 때문에 짙은 어둠에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지만 곧 횃불이 밝혀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르륵!
조금 더 걸어 나가자 마법처럼 벽에 걸린 횃불에 불이 붙으며 통로가 나타났다.
땅굴을 파서 만든 길인 데다 습기까지 서려 있어 동굴같이 음습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분위기만 당장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을 뿐, 능력치가 깎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로칸에게 귀신이 무서운 이유는 벨 수 없기 때문인 것밖에 없었다.
“아, 귀신은 아니지만 비슷한가 ”
달그락 달그락!
양반은 못 되는 듯, 곧 던전의 주인공들이 나타났다.
[오래된 무덤 해골][Lv 25]해골, 또는 스켈레톤이라 불리는 언데드였다.
“재생도 못 하는 놈들이 언데드는 무슨!”
그래 봤자 재료가 부실하고 만들어진 지도 오래되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족속들이었다. 언데드 특유의 권능인 재생 능력도 없었고 녹이 슨 무기는 투박하기 짝이 없었다.
빠각!
득달같이 달려든 로칸은 일격이 녀석의 골통을 부숴 놓았다.
둔탁한 감각과 함께 두개골이 두 조각이 났다. 이 또한 로칸이 이곳을 찾은 이유 중 하나였다. 상대가 되지는 못하지만 손맛은 쓸 만했으니까.
“으랏차!”
로칸은 연이어 달려드는 오래된 무덤 해골의 다리를 걸고 오크족 배틀 액스를 횡으로 휘둘렀다. 무지막지한 근력 덕분에 걸리는 족족 금이 가거나 뼈가 부러져 나갔다.
뽀각 뽀각 뽀각!
기분 좋은 손의 감각을 즐기며 로칸이 오래된 무덤 해골의 뼈마디를 분질러 주었다.
상대는 다섯이나 됐지만, 로칸에게는 의미 없는 숫자였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다섯 마리를 잡자마자 다시 다섯 마리 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가뿐히 박살을 내 주자 곧 레벨 업의 이펙트가 나타났다. 드롭 아이템은 형편없어도 경험치는 다른 종족보다 더 주는 것이 언데드의 특징인 것이다.
거기에 최초 보너스와 노오오오력가 타이틀의 효과, 상당한 레벨 차이까지 겹치자 남들은 몇 시간을 고생해야 올릴 수 있는 레벨 하나가 단 1분 만에 뚝딱 올라 버렸다.
“이 정도면 괜찮군.”
로칸의 레벨은 이제 21이었다.
이 정도 레벨을 오르는 것은 파티를 짜도 쉽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봤다면 기겁을 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로칸에게는 이 모든 것이 숨 쉬듯 자연스럽기만 했다.
오히려 로칸은 몸을 풀 듯 점점 속도를 높여 던전 깊숙한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10분 만에, 던전의 3분의 1을 공략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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