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SS-Ranker Returns RAW novel - Chapter (20)
# 20
트린식으로! (1)
‘그 전에 할 게 남았지.’
트린식으로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채비를 마쳤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
바로 비밀 던전의 판매였다.
이렇게 빨리 크톤을 떠나게 될지는 몰랐지만 다행히 경매 기한을 하루로 걸어 놓은 참이었다. 아니었으면 트린식에 갔다가, 던전 판매를 위해 크톤으로 돌아오는 수고를 할 뻔했다.
‘룬 북을 구하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만약 위치를 저장하고 저장한 위치로 텔레포트할 수 있는 룬 북을 구입한다면 공간의 제약은 사라지겠지만 아쉽게도 룬 북은 두 번째 도시, 즉 트린식급의 도시에서만 판매했다. 설령 트린식에 가서 룬 북을 구입한다 해도 크톤의 위치가 저장되어 있지 않으니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룬 북의 구입과 사용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아까웠다. 한 번 떠난 크톤에 다시 돌아올 일이 있을까
‘그때가 되면 마을 간 텔레포트가 업데이트되겠지.’
사실 비밀 던전의 입장 방법만 알려 줘도 되지만 실제 시현을 해 주는 것이 일반적인 거래 방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에 선금을 넣겠나 반대로 정보를 알려 줬다가 모르는 체해 버릴 수도 있었다.
‘계약서가 곧 업데이트될 테니까, 이번만 참자.’
곧 있으면 계약서 아이템이 업데이트되며 여러 조건을 건 거래들이 활성화될 테지만 아직은 직거래가 가장 확실했다.
‘어차피 접속 시간도 다 됐으니까…….’
때마침 접속 제한 시간도 거의 다 됐으니, 나가서 최소 5시간은 있어야 다시 게임에 접속할 수 있을 터였다.
늘 이 접속 시간을 꽉 채워 사용한 로칸이었기에 누적된 피로도 제법 됐는데, 이참에 휴식도 취하고 장이나 봐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나가자.’
캐릭터를 도시 한편에 세워 두고 로그아웃을 했다.
* * *
우웅!
캡슐이 떨리고 영민의 눈이 번쩍 뜨였다.
캡슐 안은 여전히 특수 용액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는데, 버튼 하나를 찾아 누르자 빠르게 수위가 내려갔다.
그러더니 용액이 사라지고 따뜻한 바람이 나와 금세 젖은 옷을 깨끗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속옷 바람으로 들어간 상태였기에 별로 말릴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캡슐 슈트가 빨리 나와야 할 텐데.”
그 때문에 곧 캡슐에 들어갈 때 착용하는 전용 슈트가 발매될 테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얼른 옷을 주워 입은 영민은 발가락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올렸던 글의 반응을 보기 위함이다.
더 로드 내에서도 확인이 가능했지만 영민은 그런 것에 접속 시간을 쓰기가 아까웠다.
곧 더 로드의 홈페이지가 열리자, 영민은 바로 거래 게시판으로 들어갔다.
“어 ”
게시판을 열어 본 영민이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게시판 ‘화제의 글’에 자신의 글이 올라가 있는 것이다.
주작이라는 비난 댓글이 많아서일까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바로 아래에 있는 다른 글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비밀 던전 발견! 공개 던전 이외에 숨겨진 던전이 있다 명예 기자 ‘크앙’의 비밀 던전 정복기]‘이게 벌써 나오는 거던가 ’
유명 게임 웹진의 명예 기자이자 ‘즐겜’ 유저 크앙. 그가 여행기 형식으로 비밀 던전에 대한 정보를 밝힌 것이다.
물론 영민, 즉 로칸이 있는 크톤과는 다른 스타트 지역이었다.
덕분에 어그로성 글로 치부될 뻔한 영민의 글이 뜨겁게 타올랐다. 업로드 시간상 크앙의 여행기보다도 더 빨리 올라온 글이기에 어그로 또는 사기라는 인식이 많이 걷힌 것이다.
-낙낙 : 이거 레알임 공개 던전이 전부 아니었어
-방태전사 : 사실이겠냐 이런 사기 원 데이 투 데이 봐
-어태커 : 크앙 글 안 봄 비밀 던전이 있는 건 사실임. 근데 이것도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덜덜덜 : 이 글이 크앙보다 더 먼저 올라왔는데 혹시 크앙이 몰래 아이디 파서 올린 거 아님
-차미슬 : 윗분 ㄴㄴ. 크앙이 찾은 비밀 던전이랑 등장 몹부터가 다름.
-샴샤르 : 진짜면 개꿀. 근데 이런 게 있으면 지가 돌지 왜 팜 나 같으면 해골 전사 세트만 파밍해서 꿀 빨겠다.
-크앙 : 안녕하세요. 크앙입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이 글은 신빙성이 아주 높아 보입니다. 구매는 어렵겠지만 혹시 동행 취재가 가능하다면 저에게 연락 부탁드립니다!
-람세스 : 쪽지 드렸습니다.
-헬라딘 : 쪽지 확인 부탁드려요
-최고가 매입 : 쪽지 드렸습니다. 다른 분들보다 무조건 5% 더 드립니다.
누군가는 부러워했고, 누군가는 탐을 냈으며, 누군가는 시기했다. 구매 의사를 밝힌 자들도 제법 많았다. 물론 반 이상이 장난이나 사기겠지만, 쪽지함은 페이지를 넘겨야 할 정도로 꽉 차 있었다.
게시판 아이디만으로는 사람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구매자를 정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영민은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이미 눈에 익은 몇몇의 아이디가 있었던 것이다.
“이놈들이면 사기 치지는 않겠네.”
우선적으로 추릴 이들은 ‘길드’를 자처하고 다니는 자들이었다. 길드 시스템이 업데이트되자마자 바로 길드를 만들고 활동할 자들.
그들 중 몇몇의 이름을 전생에 알고 있었으니 그들 중 하나에게 팔아 치우면 되겠다 싶은 것이다.
물론 접속 제한이 풀린 후의 일이겠지만 일단 영민은 몇 개의 쪽지만 남기고 나머지를 다 지웠다. 그리고 조건들을 비교했다.
“일단 헛짓거리하는 놈들은 빼고.”
대부분 게임 머니 또는 현금을 제시하고 있었지만 몇몇은 되지도 않는 추가 조건을 내걸고 있었다. 돈이 부족한지 동일 가치의 현물을 지급한다거나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버스를 태워 주겠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 이미 두 번째 도시에서 활동하는 자들이니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감히 누가 누굴 세비지 마을을 털면서 이제 겨우 35레벨을 달성했지만 버서크까지 쓴다면 100레벨 밑으로는 지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는 영민이었다.
그 때문에 맞지 않는 조건을 건 놈들과 지역이 다른 자들을 제외하니 딱 두 곳만이 남았다.
“그럼 여기로 할까 ”
결국 영민에게 간택받은 것은 MP 길드였다. 흔히 RPG에서 말하는 Mana Point가 아니라 Manner Play의 약자로 쓰는 길드.
이름처럼 초보들도 돕고 PK도 잡으러 다니는 등, 길드의 힘이 아주 강하진 않아도 꽤 오랫동안 착한 이미지로 적당히 이름을 날린 자들이다.
덕분에 전생의 로칸과도 딱히 부딪힌 적이 없었다.
“너무 딱딱 들어맞아서 무서울 정도군.”
거래 확정 쪽지를 통해 거래 방식과 만날 위치를 전달한 로칸은 회귀 이후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 가는 상황에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이렇게 상황이 좋아도 되는 것일까.
불안하기까지 할 정도였지만 너무 걱정만 하지는 않기로 했다. 최악은 이미 겪어 봤으니까. 중요한 것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느냐였다.
만약 그때 로칸이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창세의 왕보다 강하고 길드들이 떼로 덤벼도 짓밟아 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영민의 눈빛이 스산하게 빛났다.
“일단은 장이나 봐 둬야겠군.”
어차피 미식가도 아니고 적당히 맛과 영양을 채워 줄 음식이면 됐다. 평소 같으면 인터넷에서 대량으로 구매하겠지만 모처럼이니 바람을 좀 쐬고 싶었다.
* * *
대충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서자 살짝 쌀쌀해진 저녁 바람이 뺨을 스쳤다.
10분쯤 걸어가면 SSM이 있었다.
접속 제한 시간에 걸릴 때마다 몸을 움직이긴 했지만 초기에 비해 근육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영민은 제대로 된 운동은 못 해도 양심상 이 정도는 걸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9월 말. 이제 막 개학 후다 보니 그가 자취하는 학교 앞이 북적거려야 정상이지만 의외로 거리가 꽤 한산했다.
‘한창 학기 중일 텐데…… 아, 더 로드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국민 드라마가 나오면 퇴근 시간 이후 거리가 한산해지듯, 더 로드의 인기와 함께 사람들의 외부 활동과 소비 활동이 줄었다고 소상공인들이 울상을 짓는 뉴스를 본 것도 같았다.
“너 어제 몇 렙 올렸어 ”
“나 2렙!”
“좋겠다, 난 죽어라 해도 1렙 겨우 올랐는데. 레벨 차이 때문인가 ”
“네 컨트롤이 구린 거겠지, 크크.”
그나마 거리에 나온 이들도 온통 더 로드의 이야기뿐. 대학가이기 때문에 더 게임에 민감한 것일지 모르지만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을 때 저쪽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누구더라 ’
풀어헤친 긴 웨이브 머리에 남자들이 좋아하는 살짝 색기 있는 얼굴.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 중 낯이 익은 것은 여자 쪽이었다.
이상하다. 아는 여자 사람은 별로 없을 텐데.
걸음을 늦추고 빤히 바라보자 여자 쪽도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낯빛이 굳었다.
‘아…….’
기억났다. 몰래 바람피우고 자신을 찬 전 여자 친구, 임수희.
회귀한 이후로는 한 번도 본 적 없고 연락한 적도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던 얼굴이 이제야 기억난 것이다.
그녀에게는 네 달여 만의 재회겠지만 영민의 입장에서는 전생까지 포함해 몇 년 전에 다 잊은 과거일 뿐이었다.
‘어쩐다.’
그렇다 보니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안 들었지만, 판단하기에는 애매했다. 어쨌든 안 좋게 헤어진 사이니까.
그러고 보니 옆에 있는 남자의 얼굴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바람난 상대, 즉 현재 남자 친구였다.
‘더 로드를 좀 한다고 했던가 ’
떠올리다 보니 하나씩 기억이 났다. 저 친구도 더 로드를 한다고 들었던 것 같았다. 그래 봐야 동네 고수 수준이겠지만, 전 ‘여친’인 임수희도 게임을 좋아해서 이상형의 기준 중 하나가 ‘자기보다 게임 잘 하는 남자’였을 정도니 그 정도는 하겠지.
더 로드라면 둘이 꽁냥꽁냥 놀기에도 좋고, 꽤 괜찮은 데이트 코스일 터였다.
‘그렇군, 이 방향은…….’
그들이 오는 방향은 공교롭게도 캡슐 방이 아니라 그가 임수희와 연인일 적 종종 가던 모텔이 있는 쪽이긴 하지만 말이다.
“안녕 ”
그래 봤자 화는커녕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여자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영민의 표정 없는 모습을 오해한 모양이다.
“어, 잘 지내지 ”
“응. 얘기 들었어. 아직…… 좀 힘들어한다고.”
걱정도 동정도 아닌 그 말투에 영민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건 또 누가 낸 소문인지…….
‘어쩔 수 없군.’
유난 떨던 과 CC였고, 남들이 보기에는 그 이후 영민이 학교생활을 접다시피 했으니 그런 소문이 날 법도 했다.
우습고 귀찮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영민은 루머를 인정할 생각도 없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휴학한 건 너 때문이 아니라 더 로드 때문이야.”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하지만 임수희는 그 말을 변명으로 생각했는지 여전한 표정으로 다시 그를 훑어보았다.
‘아, 실수했군.’
영민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실상 그가 준비한 것은 출시 3개월 전부터였지만 다른 이들에게 더 로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한 달 전쯤 등장한 게임일 뿐이었다.
그러나 구차하게 말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더 이야기해 봐야 구차해질 것만 같았다. 어차피 이젠 상관없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럼 열심히 해. 아, 혹시 힘들면 얘기해 남친이 더 로드에서 꽤 고수거든. 한 번쯤은 도와주라고 할게.”
우습지도 않은 도발이었다. 남친이란 녀석은 우월감인지 뭔지 모를 표정으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 같잖은 태도에 영민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아이디가 뭔데 ”
“피리아야.”
영민의 물음을 비굴함으로 보았을까. 임수희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피리아. 계집애 같은 아이디구먼.’
전생의 기억에 없는 이름인 걸로 볼 때 형편없는 녀석인 모양이다. 아이디를 기억해 둔 영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던졌다.
“아, 그래. 기억했어. 좋아, 다음에 만나면 한 번은 살려 주지.”
“뭐 참 나…….”
“권영민, 너 그게 무슨…….”
영민은 기가 막혀 하는 임수희와 그 남친을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그녀라면 알 것이었다. 그가 로칸이라는 아이디를 쓴 것이 더 로드에서만은 아니니까.
지금 나서 봤자 귀찮은 견제만 받을 테니 명예욕에 사로잡혀 날뛰는 일은 없을 테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알게 될 것이다. 영민 자신이 누구인지를, 그들이 누구에게 까분 것인지를.
그때 가서 후회를 할지 어떨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는지는 알게 될 것이었다.
‘안 볼 사이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영민은 옛 인연을 훌훌 털어 버리고 가던 길을 마저 갔다. 식재료와 군것질거리를 잔뜩 사고 배달을 시킨 뒤 집으로 돌아오자 MP 길드에서 답 쪽지가 와 있었다.
거래가 성사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