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SS-Ranker Returns RAW novel - Chapter (226)
# 226
죽음의 홀 (1)
로칸이 마주한 것은 마네킹 같은 한 구의 모형이었다.
하지만 그가 주목한 것은 마네킹도, 그가 걸친 멋스러운 갑옷도 아니었다. 그의 등에 달린 한 벌의 망토였다.
마블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 나오는 것과 같은 핏빛의 붉은 망토는 무척이나 눈에 익은 것이었다.
전생에 이것 때문에 꽤나 고생을 했으니까.
“이게 고대 노움족의 병기였나 젠장, 어쩐지.”
일명 날개 시스템.
로칸이 활동하던 전생에도 그리 많은 수량이 풀리지 않은 날개 중에서도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비슷한 다른 물건일 확률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로칸은 알 수 있었다. 날개 중에 평소 망토의 모습을 하는 것은, 이 타오를 것 같은 붉은 빛을 띠는 것은 하나 뿐이니까.
“그놈도 누군가에게 빼앗은 거였나 보군.”
그처럼 특징적인 물건이지만 로칸이 이것을 고대 노움족의 물건이라 예상하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전생의 사용자는 노움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발견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고대 도시를 찾은 것은 어쨌든 노움 종족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템으로 이름을 날린 것은 하프엘프 종족의 유저였다.
그렇다면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죽이고 빼앗았거나, 돈을 주고 구매했거나.
“헤르메스였지 ”
창세의 왕이라 불린 오딘의 팀원, 헤르메스의 얄미운 얼굴을 떠올린 로칸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전력 강화도 기뻤지만 보기만 해도 화나던 그 낯짝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광풍의 날개][레전드]망토로도, 날개로도 사용할 수 있는 고대 노움족의 보물.
무엇보다 강인하면서 무엇보다 유연하고, 무엇보다 빠르다.
어떤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사용되지 못하고 잠들었다.
-방어력 : 1,000
-내구력 : 8,000 / 8,000 (자동 수복)
-모든 능력치 + 100
-모든 저항력 + 30%
-한기와 열기로 인한 상태 이상으로부터 면역
-[날개 형태]로 변형 가능
-[날개 비행] 중 모든 스킬 100% 효율로 사용 가능
“……광풍 ”
그런데, 그것을 손에 넣는 순간 뭔가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광풍’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것도 ‘광풍’의 전설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로칸은 황급히 퀘스트 창을 열어 확인했다.
[광풍의 흔적을 찾아서][퀘스트]오래전 세계를 질타한 광풍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나머지 흔적을 찾아 광풍의 유지를 이으십시오.
-고급 훈련장 수료 (완료)
-해저 터널 최초 통과 (완료)
-클래스 익스퍼트 상태로 클래스 마스터 5명 살해 (완료)
-봉인된 광풍의 배틀 액스 획득 (완료)
-광풍의 전설에 대해 듣기 (완료)
–
살짝 기대했지만 이것이 마지막 칸을 채우는 해답은 아닌 모양이었다. 퀘스트 창은 여전히 물음표 상태로 남아 있었고, 그것은 광풍의 날개를 착용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쳇.”
로칸은 아쉽지만 아주 소득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을 통해 또 다른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과 힌트, 가설들을 떠올리며 일단 무기고를 빠져나왔다.
[전체 공지. 날개 시스템이 해금됩니다.] [전체 공지. 지금부터 특수한 조건 달성을 통해 ‘날개’ 아이템을 습득/제작 하실 수 있습니다.]그리고 그 순간, 날개 시스템이 해금되었다.
전생에 로칸은 이 메시지에 당혹스러워하는 쪽이었다.
당시에는 뜬금없는 소리로만 여겼는데, 아무래도 그때 역시 누군가 광풍의 날개를 혹은 다른 날개 아이템을 습득했던 모양이었다.
“제길, 남 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군.”
하지만 곧장 날개 아이템에 대한 정체가 밝혀지고 그것을 얻는 이들이 나타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날개를 제작하는 방법은 무척이나 까다로우니까.
광풍의 날개처럼 완성된 유물을 얻거나 재료와 힌트를 모아 날개 제작이 가능한 NPC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데, 이 날개 제작 NPC는 지금까지의 친밀도와 평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한 노가다가 필요했다.
당장 어떤 NPC가 날개 제작을 할 수 있는지도 알기 어려웠고.
그런 이유로 전생에도 날개 아이템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이 전체 공지 창이 나타나고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뭐, 그렇다고 내가 몸 사릴 필요는 없지.”
하지만 로칸은 그렇다고 광풍의 날개 사용을 조심할 생각은 없었다.
그의 활약으로 인해 날개에 대한 정보 수집과 제작이 빨라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상대가 된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전투 능력만 따지고 보면 SSS급에 손색이 있던 헤르메스가 SSS급 중에서도 까다로운 상태로 꼽히던 이유가 무언가 바로 차별화된 날개의 성능 때문이었다.
그 말인 즉, 어떤 날개를 달고 와도 로칸의 상대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마저 털어 볼까 ”
생각을 마친 로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냥 돌아가면 섭섭하다.
로칸은 그 길로 소모품 창고는 물론 식료품까지 돌며 남아 있는 것들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고대 도시 따위 회생 불가능 하다 해도 제 알 바는 아니니 생각 같아서는 임시 동력원으로 쏟아부었던 아이템들까지 회수하고 싶었지만, 어떤 힘에 의해 보호를 받는 통에 그것까지는 하지 못하고 고대 도시에서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노움족 기계공학 : 93.2%]그 과정에서 얻은 추가적인 소득도 있었다.
점점 정밀해지고 머리 아파진 통에 좀처럼 올리지 못하고 있던 기계공학 스킬 숙련도가 90%를 넘어 93.2%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파괴 행위를 반복했을 뿐인데!
아무리 [제작]이나 [분해]에 실패할 경우 해당 아이템이 재활용 불가능할 만큼 파괴되는 대신 아이템의 수준에 따라 일정 확률로 기계공학 숙련도가 오르게끔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다지만 상상 이상의 소득이었다.
그리고 로칸이 이만큼 숙련도를 올렸다는 것은…….
“……흔적이 남지는 않았겠지 ”
고대 도시, 비공정이 반파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쯤 되면 설령 임시 동력이 아닌 완전한 동력원을 만들어 넣는다 해도 재가동과 수리가 가능할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그렇게 노움족의 염원을 아무도 모르게 박살 낸 로칸은 서둘러 바깥으로 향했다.
룬 북으로 이곳의 위치를 저장할 수는 없게 되어 있지만 이동 주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허용되었기에, 어렵지 않게 도주를 할 수 있었다.
“룬 북 사용, 타이무라로.”
흔적 지우기까지 깔끔하게 마친 로칸은 누가 올세라 황급히 자리를 떴다.
오크 광전사 크록취의 활약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한 황금사자 진영의 연합 도시 타이무라에 도착했다.
‘일단은 숨기는 게 좋겠지 ’
그러나 광풍의 날개는 일단 숨겼다.
룬 북을 사용하기 전 착용을 해제했다. 날개 모드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망토의 모습이긴 하지만 그 빛깔만큼은 전혀 평범하지 않으니까.
이처럼 선명하고 붉은색의 망토라면 로칸이 아니라도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전투 상태라면 굳이 숨길 생각이 없지만 굳이 걸어 다니면서 이목을 집중 시킬 필요도 없으니까.
더구나 이곳을 찾은 이유가 정보 수집을 위한 것임을 생각할 때, 조금 더 은밀할 필요가 있었다.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군. 그분께 날개 같은 게 있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야.”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로칸이 먼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광전사 길드였다. 광풍의 전설에 대해 들려준 그이니 혹시 광풍의 날개에 대해서도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광풍이라 불리던 존재를 추종하던 그조차도 날개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라고 ’
광전사 길드를 나와 다시 아이템 설명을 살피던 로칸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
광풍의 날개가 만들어진 배경이 ‘광풍’이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광풍’을 상대하기 위함은 아닐까 하는.
로칸은 만약 정말 그렇다면 광풍의 뒤를 쫓는 자신에게 이것이 들어온 게 참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일단은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군.”
하지만 로칸은 속단하지 않았다.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하고, 대조해 보기 위해 황궁 대도서관을 다시 찾았다.
이제 공작의 작위에 오른 만큼, 딱히 황제의 윤허가 없어도 S급 서고 이전까지는 확인이 가능할 터였다.
* * *
“흐음, 정말 그런 건가 ”
다시 며칠을 매달린 결과, 로칸은 고대 노움의 몰락에 대한 아주 소소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떤 ‘강대한 존재’에 의해 멸망을 당했으며 그에 대항하기 위해 모든 전력을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이 너무나 강력해 제대로 힘을 쓰기도 전에 패배하였으며,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든 도망을 쳤으나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그 강대한 존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가 세상의 파멸을 바랐다는 것 이외에는 딱히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 그 대상이 광풍이라 불린 이일지도 모른다는 가설도 마냥 허황된 것은 아니었다.
“쫓다 보면 알게 되겠지.”
머리를 긁적거린 로칸은 곧 생각을 비웠다.
이 퀘스트의 끝을 보게 되면 알 수 있지 않겠나 찝찝하긴 했지만 꼭 알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대도서관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전장으로 곧장 돌아가지는 않았다. 모처럼의 휴가이니 알차게 써야 하지 않겠나
전장의 상황이야 중간중간 홈페이지 등을 통해 살피면 그만이고, 아직 긴급 연락이 온 적도 없으니 괜찮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사냥을 좀 해 볼까 ”
로칸의 입장에서 현재 전장에 서는 것은 계륵과도 같은 일이었다.
전장에서는 한 번에 막대한 숫자의 적들을 만나고, 그들을 도륙하며 경험치와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레벨 차이가 꽤나 나는 까닭에 충분한 양을 채우기 위해서는 최소 수천 단위로 쓸어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중간에 하이 마스터라도 사냥할 수 있다면 흡족한 수준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지만, 하이 마스터는 그 숫자가 많지 않았고 그들 역시 로칸을 상대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하면서 슬슬 사냥이 어려워졌다. 로칸을 보면 꽁꽁 숨어 버리기도 했고.
“간만에 레벨 업 좀 팍팍 해 보자!”
반면 마스터 레벨 이상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은 개체별 사냥 난이도는 더 높지만 확실히 높은 경험치를 그에게 제공했다.
몰아서 잡기에는 부담이 있지만 공을 들인다면 확실하게 대량의 경험치와 낮은 확률이지만 아주 진귀한 아이템들까지 제공하는 것이다.
여러 상황이 겹치면서 선택의 여지 없이 한동안 전장을 전전했던 로칸이니 슬슬 몬스터 사냥도 그리워질 만했다.
고작해야 290레벨대의 유저들을 몇천, 몇만씩 도륙해 봤자 찔끔찔끔 오르는 경험치에 감질날 뿐이었으니까.
잘해야 1레벨이나 오를까
그렇게 로칸은 바짝 쫓아오는 추격자들을 뿌리치기 위해 마스터 레벨급 사냥터 중 하나인 ‘죽음의 홀’에 도착했다.
“여기라면 괜찮겠지.”
죽음의 홀은 사실 언데드들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로칸이 부담 없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 이외에 아직 이곳에 올 만한 이는 없으니까.
죽음의 홀을 지키는 파수병들은 같은 언데드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했고, 레벨도 무려 330 이상이라 이제 갓 마스터 레벨에 오른 이들이 비비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최근 검은용군단에서도 마스터 레벨에 오른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령 마스터들끼리 파티 사냥을 한다 해도 여기서는 무리다.
근접 계열부터 주문 계열까지, 클래스를 가리지 않는 것은 물론 물량까지 대단해서 외곽만 돌기에도 버겁기 때문이다.
“어설픈 놈들이 여길 오면 자살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까딱 잘못해서 죽어 버리면 복구에만 며칠을 쏟아야 하는 마스터 레벨의 특성상, 이곳은 자칫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사냥터가 될 수 있었다.
물론 로칸에게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그럼 시작해 볼까 만나서 반갑다, 경험치 덩어리들아!”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니 언데드로 폴리모프를 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완전한 힘을 개방한 로칸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데스 나이트를 향해 배틀 액스를 찍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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