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SS-Ranker Returns RAW novel - Chapter (326)
# 326
천상 결계의 보주 (1)
“유저?”
뜻밖에도 로칸을 찾은 것은 유저였다. 그러나 일전에 봤던 베르단과는 생김은 물론 묘하게 스타일도 다르다.
그저 다른 느낌의 유저일 수도 있지만 로칸은 그가 미국 쪽의 인물은 아니라고 직감했다.
[체리셰프][Lv 358]“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러시아 소속, 붉은 광장 길드의 마스터인 체리셰프라고 합니다.”
“흐음, 여기는 무슨 일로?”
역시나, 놈은 러시아 쪽 유저였다.
확실히 미국, 중국, 러시아의 유저들이 가장 크게 성장했다고 했었다.
그의 자기소개에 로칸은 무심한 눈을 유지했다.
359레벨은 참 애매한 숫자이기 때문이다.
베르단 놈이 천족의 지원을 받았듯, 그들 역시 어떤 존재의 후원을 받고 있을 수도 있었고, 저 정도는 길드에서 밀어줄 경우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그보다는 놈이 이곳에 온 목적이 중요했다.
“말을 빙빙 돌리는 걸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죠. 저희는 로칸 님의 파트너가 되고 싶습니다.”
“파트너?”
갑자기 파트너라니?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주였지만 살짝 의외이기도 했다.
로칸이 솔로 플레이를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 아니던가. 그런데 갑자기 파트너라니?
그 표현 자체도 애매했다. 베르단처럼 자신들의 길드로 모신다는 것도 아니고, 거래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 의문을 깨달았는지 체리셰프는 뜸을 들이지 않고 설명을 덧붙였다.
“예. 저희는 로칸 님과 경쟁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미국 놈들을 찍어 누를 수 있게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호오.”
그제야 로칸이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상은 각국의 유저들이 모두 모이는 공간. 그렇다면 자연히 길드 간의 경쟁보다 국가 간의 경쟁 성격을 띠게 되지 않겠나?
물론 국가 대항이라는 말로 모든 길드를 통합시킬 수는 없겠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국뽕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일단 타국을 짓누른 다음, 자신들끼리 경쟁하고 싶어하겠지.
충분히 이해 가능하고, 타당한 말이었지만 한 가지 의문은 있었다.
“그래서 내가 뭘 얻을 수 있지?”
파트너라는 것은 일방적인 도움을 바라는 관계가 아니니까.
“성에 차지 않으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희가 준비한 것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체리셰프가 처음으로 뜸을 들였다. 정확히는 긴장했는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꺼낸 종이. 그는 곧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먼저 현금입니다.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한화 10억 원을 지급하겠습니다.”
“10억? 넌 내가 얼마만큼의 골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한화 10억 원. 분명 큰돈이다.
하지만 지금의 로칸에게는 없어도 되는 금액이기도 했다. 당장 여분의 골드만 팔아 치워도 그 정도는 충분히 나올 테니까.
골드의 가치는 내려갔지만 신맵이 등장하면서 써야 할 곳은 늘어났다.
당분간은 골드 가치가 올라갈 것도 분명했고, 구하고자 해도 구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그것을 알기에 놈들도 골드나 코인이 아닌 현금을 제시한 것이겠지.
“물론 이게 끝이 아닙니다. 미국 놈들을 확실하게 짓밟게 된 후에는 다시 20억 원을 추가로 지급하겠습니다.”
도합 30억 원. 이 정도면 로칸도 무시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교묘한 술책에 속아 넘어갈 만큼 혹하는 액수는 아니었다.
“미국 놈들을 짓밟는다는 기준은 뭐지? 게임을 접게 만드는 건가? 아니면 성장을 훼방 놓는 건가?”
“놈들을 죽여 주십시오. 베르단을 비롯한 천상 내 다른 미국 길드 마스터들을 딱 열 번만 죽여 주시면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한 번 죽일 때마다 수당을 지급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이미 놈들은 로칸 자신에게 찍힌 상태였고, 고작 몇 명을 열 번씩 죽이는 데 30억이라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되었으니까.
“그리고?”
하지만 고작 그것으로 이 일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놈들도 생각이 있다면 로칸을 피해 천계의 깊숙한 곳에 짱 박힐 텐데 그들을 찾아내 죽이는 건 꽤나 수고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동안 자신의 성장도 더뎌질 것을 생각하면 이놈들이 오히려 자신과 미국을 함께 견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템을 드리겠습니다.”
“아이템?”
“예. 물론 로칸 님께서 쓰시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 있지만 저희가 나름대로 모아 둔 괜찮은 아이템이 꽤 됩니다. 에픽 등급도 있고, 레전드 등급도 있죠. 원하시는 것으로 1백 가지를 골라서 가져가실 수 있도록 모든 아이템과 창고를 개방하겠습니다.”
피식.
그 말에 로칸이 웃었다. 기쁨이라기보다는 그의 수작이 가소로워서였다.
당장 아이템 창고를 개방한다는 것은 허점이 많은 일이 아니던가? 주요 아이템은 빼돌려 두고 적당한 쭉정이들만 보여줄 수 있는 일이니까.
“네가 가진 그 레전드 등급 무기도?”
흠칫.
로칸의 지적에 체리셰프가 살짝 몸을 떨었다.
어떻게 안 것인지는 모르지만 로칸이 그가 착용한 아이템 정보를 읽어 낸 것이다.
“……물론입니다.”
약 1초간의 머뭇거림. 그리고 들려온 대답은 놀라웠다.
설마하니 제 것을 주겠다고 할 줄이야. 그것도 레전드 등급의 아이템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놈들이 얼마나 아이템을 모았는지는 모르지만 에픽, 레전드급 장비 1백 개라면 로칸도 모으기 어려운 것이 아니던가?
그들이 말하는 ‘우리’의 범위가 어느 정도일지는 몰라도 러시아 길드 연합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절반 이상은 에픽 이상급으로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그 정도라면 받아들이지. 단, 제대로 협력하는 것은 아이템을 모두 받은 후부터다.”
고작 몇 놈을 죽여 주는 조건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 잘하면 마신의 이빨 허리띠가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도 있지 않겠나?
다만 놈들이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아이템부터 받고 난 후, 계약을 이행하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뭐가 있나?”
“저희가 로칸 님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내 영역? 이 영지를 말하는 건가?”
이어진 요구에 로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그렇지. 고작 미국을 견제하자고 자신들의 전력을 크게 낮추는 것이 이상했다.
“예. 로칸 님의 영지에 부속된 사냥터를 이용하기를 원합니다. 물론, 이에 대한 보상은 따로 지급하겠습니다.”
“보상이라…….”
“30%. 사냥으로 획득한 전리품의 30%를 매달 바치겠습니다.”
“호오.”
떼를 쓰는 건가 싶었는데 꽤나 강수를 뒀다.
전리품의 30%를 바친다니. 물론 인벤토리로 들어오는 아이템을 속이려 들 수도 있지만 계약서를 써 버리면 그만이었다.
계약서에 명시한 이상, 지키지 않고 수작을 부렸다간 계정이 날아가 버리고 말 테니까.
“물론 이 영지가 공격을 받는다면 수비도 함께 돕겠습니다.”
로칸이 흥미를 보이자 체리셰프는 한 가지 조건을 더 걸었다.
협력 방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언제 다른 중급, 또는 상급 마족의 침공을 받을지 모르는 로칸의 상황을 잘 이해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확 끌리는 건 아니다. 같은 레벨이라면 병사보다 유저의 전투력이 더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고작해야 하이 마스터급이라는 것은 다르지 않으니까.
로칸처럼 규격 외의 유저가 있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 과연 그럴까? 러시아는 큰 나라이니 그런 자가 몇쯤은 있겠지만 그랜드 마스터급을 일대일로 상대할 만큼의 전력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조건을 하나 더 걸었다.
“좋아. 하지만 한 가지를 더 추가하지.”
“어떤…….”
“내 밑으로 들어와라.”
“밑으로…… 말입니까?”
체리셰프의 눈빛이 떨렸다. 로칸이 하는 말이 대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긴장할 것 없다. 이 영지에서 활동하고자 한다면 이 영지의 소속이 되어야 할 것 아닌가? 내 병사로 들어오는 것이지. 물론 차후에 원한다면 페널티 없이 이적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
이건 그들에게도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 로칸의 병사로 등록되면 영지 이용에 혜택을 받으니까.
가장 흔한 것이 상점 할인이었고, 비용 없이 영혼을 등록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한 가지. 로칸이 굳이 이런 조건을 제시한 이유가 숨어 있었다.
병사가 몬스터를 사냥할 때 획득한 경험치의 일부가 로칸에게 넘어오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경험치를 불릴 수 있다는 이야기.
물론 400레벨에 오른 로칸에게는 티끌 같은 경험치에 불과하겠지만 그게 러시아 길드 연합 전체가 된다면 꽤 쏠쏠한 경험치가 될 확률이 높았다.
“……좋습니다.”
다른 길드들과 의견을 조율하는지 잠시 머뭇거리며 시간을 갖던 체리셰프가 곧 조건을 받아들였다.
뭔가 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조건이라면 그들로서도 나쁘지 않으니까.
곧 그들은 세부 조건을 조정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돈은 비트코인 전자 지갑으로 받지.”
“아, 예.”
로칸은 계약금인 10억을 비트코인으로 요구했다. 현금을 입금받거나 금괴 따위로 받으려면 자신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비트코인으로 받으면 가격 변동으로 가치가 떨어질 수는 있겠지만 개인 지갑을 만들고 비밀 키만 받으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어차피 이미 떨어질 만큼 가격이 떨어진 상태이기도 하고 반 토막이 난다 해도 큰돈이었으니까.
벌여 놓은 일이 많다보니 자신이 드러나면 큰 일이 날 수도 있기에 자신을 감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아이템은 언제 보시겠습니까?”
계약서 서명을 마친 체리셰프는 곧장 자신의 허리께에 손을 가져가 무기를 끌러 놓았다.
약속이자 신뢰의 증표로 자신의 것부터 내놓은 것이다.
“준비되는 대로.”
파트너십을 체결한 마당에 이쯤 되면 마다할 법도 하지만 로칸은 굳이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준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체리셰프의 검을 받아 챙기고 나머지 아이템을 받을 채비를 했다.
미국 유저들을 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모든 아이템을 손에 넣은 이후.
때문에 조급한 것은 오히려 그들 쪽이었다. 로칸이 모든 물건을 회수하고 나서야 계약이 발효되니까.
그 말은 아직 그들이 로칸의 영지에서 활동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리스트까지 정리해서 모레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체리셰프와 그 일행들이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로칸도 나름대로의 준비를 시작했다.
정보 상인에게 의뢰해 미국 유저들의 위치와 상태를 확인하는 한편, 체리셰프를 비롯한 러시아 유저들의 뒷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인터넷만 잠깐 뒤져 봐도 천상에 진출한 러시아 길드가 어디인지는 금방 나왔으므로 의뢰를 넣는 데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공허의 문을 열기 위한 재료 수집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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