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SS-Ranker Returns RAW novel - Chapter (370)
# 370
천족의 비밀 (2)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흠, 귀가 많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느긋하게 바라보는 라푸제를 향해 로칸이 무심히 말을 던졌다. 그만큼 은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라푸제는 가만히 지켜보더니 눈짓으로 수하들을 내보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그 둘조차 믿을 수 없다 말하기는 어렵지.
마나가 동결되었다고는 해도 충분히 힘을 쓸 수 있는 로칸이다. 그런 그를 대비하는 것은 당연했기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라푸제 님의 염원을 이뤄 드리고 싶습니다.”
“내 염원?”
로칸의 발언에 라푸제는 짐짓 모르는 척을 했지만 은근한 기대가 눈빛에 깔려 있었다.
로칸은 거칠 것이 없다는 듯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한 천족 고고학자가 발견해 낸 사실에 대해서.
“난 또 대단한 일이라고.”
“……?”
하나 정작 황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라푸제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 정도는 알만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면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군.”
그쯤이야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듯, 그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저건 떠보는 게 아니라 진심이다.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군요. 제가 드리려는 말은 진실에 대한 정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 정보를 흘리겠습니다. 근위대와 수비대를 바깥으로 유인해 내도록 하죠.”
“……!”
로칸을 쫓느라 비어 버린 황궁. 그다음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라푸제의 몫이었다.
현 황제를 죽이든 끌어내 유배를 보내든.
물론 그런 자비로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내가 자네를 어떻게 믿지? 이 일을 통해 그대가 얻을 수 있는 건 뭐고?”
역시 약아빠진 천족 놈이 아니랄까 봐 계산은 확실했다.
하지만 거래에 있어서는 오히려 이런 게 더 좋지.
“동족이 학살당할 텐데, 괜찮으십니까?”
때문에 로칸은 대답과 의문을 함께 담은 동문서답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이득은 따라나선 근위대를 비롯한 천족의 살해와 그 전리품 획득이라는 것이다.
“흥, 동족은 무슨.”
그 이야기를 들은 라푸제의 눈에 경멸의 빛이 스쳤다.
로칸에 대한 것이 아닌, 순수 천족들에 대한 것이다.
그 역시 2급 천족으로서 마족의 혈통을 이은 자이니, 원주민과 몸을 섞고 피를 나눈 순수 천족을 경멸하는 것이다.
결국 황제나 이놈이나 똑같은 놈들이라는 소리지만, 로칸은 어차피 서로의 이익을 취할 제안을 하는 것뿐이니 상관없었다.
순수 천족이란 놈들도 다른 종족들에게 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좋습니다. 이제 세부적인 조건을 이야기해 볼까요?”
로칸이 환하게 웃으며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자신과 라푸제가 원하는 바를 그곳에 하나하나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
“응? 이게 뭐지?”
[1급 천족의 검은 비밀. 난 너희 태생적 비밀을 알고 있다.]처음 시작은 잔뜩 뿌려진 포스터였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 만한 문구를 적어 수도 곳곳에 뿌려 두는 것으로 관심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뒷면에는 D-3이라고 적어 넣었다.
이것만으로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기 어려울 테지만 이틀에 걸쳐 점점 내용을 좁혀 들어가자 아는 사람을 알 만한 뉘앙스가 완성되었다.
D-2, D-1.
천족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하루씩 날짜가 줄어들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3급 이상의 천족들이었다.
게다가 원래라면 높으신 양반들의 귀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걸렸겠지만 라푸제가 먼저 나서서 은근히 이 일을 공론화시키고 있었기에 황족들은 금세 초조함을 느꼈다.
“찾아라. 이것을 뿌린 놈을 찾아 반드시 해치워야 한다. 육신은 잘게 찢어 환마계에 던져놓고 영혼을 뽑아내서 저 유명계에 던져 버려!”
“예!”
그렇게 되자 유일한 1급 천족인 황제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전에 고고학자 놈이 밝히려던 것을 묻었던 것처럼 힘을 이용해 비밀을 덮어 두기로 결정했다.
근위대는 물론 수도를 수비하는 치안 병력까지 모조리 동원해 범인을 색출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1단계는 성공이다.
라푸제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로칸은 이미 마지막 준비를 진행 중이었다.
“약해 빠진 주제에 돈은 많이도 모았네.”
바로 탈루바를 처치하는 것이다. 로칸은 고작해야 하이 마스터 수준밖에 되지 않는 놈을 은밀히 처치하고 폴리모프를 사용해 놈의 행세를 하는 중이었다.
놈이 알뜰살뜰 모아 놓은 재산을 챙기는 것은 덤이다.
죄책감? 양심의 가책?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살짝 알아보니 이놈이 쌓은 부는 모두 친구인 모테론의 자료들을 팔아먹은 대가로 얻은 것이었다.
그러니 원한을 풀어 주는 입장인 로칸이 모두 챙기는 게 당연하고 마땅하지 않은가?
아예 집문서까지 몽땅 팔아먹은 로칸은 그가 총장으로 있는 교육기관으로 이동했다.
지난 며칠간은 아예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나가지도 않았지만 오늘은 아예 특강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교육생들을 불러 모았다.
그 정도는 돼야 황제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겠나?
그리고 동시에 라푸제를 통해 정보를 흘렸다.
[탈루바의 동태가 수상하다.] [모테론이 사라진 지금, 천족의 진실에 대해 알고 있는 자는 탈루바가 유일하다.] [탈루바가 갑자기 주변을 정리하고 오늘 모든 교육생이 필수로 참석해야 하는 특강 일정을 잡았다.]수상하기 짝이 없는 정보들을 조합하여 황제가 알아볼 수 있도록 뿌려 둔 것이다.
마침 특강 제목도 노골적이다.
[천신의 탄생과 천족의 진짜 역사]원래 있는 과목이기는 하지만 갑자기 딴소리를 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수도의 전 병력이 출동했다.
탈루바가 허튼 소리, 허튼 짓거리를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강의장을 둘러싸고 일반 천족들 사이에 경비병들이 끼어들어 갔다.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언제든지 그를 체포하거나 제거하기 위해서.
“야, 이 빌어먹을 위선자 놈들아! 오늘이 네놈들의 비밀이 다 까발려지는 날이다!”
하지만 로칸, 탈루바가 나타난 곳은 강의장이 아니었다.
도시의 중심부.
일반 천족보다 순수 천족들이 더 많은 그곳에 한 아름의 전단지를 품은 채 나타난 것이다.
푸드득.
허공에 종이 뭉치가 눈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놈이 나타났다! 잡아라!”
“속았다! 지원 병력을 요청해! 병력 이쪽으로 이동시켜!”
먼저 달려든 것은 수비대 병력이었다.
명색이 수도를 방어하는 놈들인지라 대부분 강의장으로 몰려갔기에 그 숫자는 적었지만 그들의 무위 역시 만만치가 않다.
조장급은 대부분 400레벨이었고 부하들 역시 하이 마스터의 끝자락에 위치한 자들이니까.
하지만 감히 로칸을 범하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흥!”
로칸의 손 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어느새 배틀 액스를 꺼내 들고 춤을 추자 달려들던 순수 천족들의 팔다리가 날아다니고 숨통이 끊어져 경험치로 변할 뿐이다.
“저기 있다. 잡아라!”
그러나 그러면서도 퇴로 확보에는 확실히 신경을 썼다.
여차하면 제대로 한판 붙을 생각도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아니다.
이곳에서 최대한 물러나야지만 라푸제의 사병이 황궁에 진입하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테니까.
로칸은 저 멀리서 뒤늦게 달려 나오는 근위대의 모습을 보며 힘에 부친 척 연기를 시작했다.
“도망친다!”
“놓치지 마라!”
이쯤 되면 가장 중요한 게 거리 조절이다.
마스터 스킬이며 창조 스킬까지 마구 퍼부어 대며 로칸을 옭아매려는 놈들을 상대로 포기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끌어내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적어도 도시 밖, 함부로 몸을 돌려 다시 황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위치까지 끌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젠장!”
온갖 이동기와 회피기를 쉬지 않고 써 대는 로칸.
그의 컨트롤로도 뒤쫓는 수백의 그랜드 마스터들을 떨궈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생명력이 압도적이라는 것일까.
광풍 현신이나 버서크를 사용하지 않아도 어지간한 공격은 몸으로 받아 낼 수 있었기에 성벽을 넘어 달아날 수 있었다.
강의장 쪽으로 거의 모든 병력을 움직이게 만든 덕분에 가까이에서 쫓는 놈들의 수가 제한적인 것도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달려 지루한 술래잡기의 끝이 보일 때쯤, 탈루바의 몸이 로칸의 그것으로 돌아왔다.
“아닛!”
“가짜다!”
“저, 저 기운은……!”
신수 사냥꾼의 효과가 즉시 발동하며 놈들의 심기를 자극했다. 탈루바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광풍 현신, 전신 무쌍, 피의 각성!”
물론 로칸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것도 있었다.
도저히 400레벨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강대한 기운이 폭발하며 천족들을 위협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아닌 근위대다.
하나같이 400레벨대의 강자인 데다 조장급 이상은 무려 450레벨에 오른 자들.
그들이 신성 섞인 창조 스킬을 발동하며 로칸에 대항했다.
“천신장군의 재림!”
“천신의 권능!”
누가 천족 아니랄까 봐 대부분 천신의 힘을 빌려 쓰거나 흉내 내는 것들이다.
그러니 위력이 형편없었지.
자신들에게 맞지 않은 힘을 사용하니 제 위력을 내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로칸은 마지막 힘을 발동시켰다.
“무혼 각성.”
우우우웅.
장비에 서려 있는 영혼과 이야기의 힘을 깨우는 스킬.
하지만 이번에는 그 대상이 특별했다.
[광풍의 무구 세트에 담긴 무혼이 깨어납니다.]사자왕의 무구가 그랬듯, 세트 아이템인 광풍의 무구 전체에 무혼 각성을 건 것이다.
끄아아아아아아앙.
“헉!”
무구가 깨어나는 소리에 달려들던 천족들의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그 광기를, 공포를 이겨 내지 못한 것이다.
‘좋군.’
멈칫거린 것은 로칸 역시 마찬가지다. 광풍의 무구에 무혼 각성을 사용해 본 것은 그로서도 이번이 처음인 것.
다만 자신과 상성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천신의 무구와 마신의 무구를 깨우는 것도 포기한 채 광풍의 무구에 올 인을 해 본 것인데 그 예상이 적중했다.
천신의 무구를 깨울 경우 천족들이 사용하는 신성력에 피해가 아닌 이점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버티기’를 택한다면 당연히 이쪽이 훨씬 낫다.
하지만 로칸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버티기가 아니었다.
적의 전멸.
신성이고 나발이고 모조리 다 깨부수고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광풍의 무구를 깨운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크허허허허헝!”
무구의 광기와 주인의 광기가 더해졌다. 덧셈이 아닌 곱셈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며 주변을 지배했다.
400레벨조차도 한순간 눈을 까뒤집고 멍해진다.
450레벨은 돼야 겨우 버텨 냈고, 그마저도 신성을 일으키지 않으면 능력치 하락 등의 피해는 막을 수 없었다.
아직 세계를 부여받지 못한 초월자에 불과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일대가 그의 세계가 되었다.
광기와 죽음. 살육만이 존재하는 폭력의 세계가 열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