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SS-Ranker Returns RAW novel - Chapter (406)
# 406
명부마도 (4)
“이제 좀 알겠군.”
가오칸과의 대련이 끝나고, 로칸은 그제야 속이 좀 후련해진 모습이었다.
오직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신성의 활용법을 일부나마 익힌 것이다.
“제길, 근데 이제 어떻게 하지? 드록쉬에게 부탁을 해야 하나? 복수자 옵션이 붙은 놈으로 하나 딱 나오면 꽤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러나 긍정적인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로칸이 머리를 벅벅 긁게 만든 이유, 두문불출하던 가오칸이 돌연 가출을 한 것과 같은 이유가 있었으니까.
“수리가 안 될 줄이야.”
광풍의 배틀 액스의 파괴.
헤드와 도끼자루가 분리해 놓은 것처럼 똑 떨어져 버린 것이다.
가오칸의 검이 박살 나다 못해 가루가 되어 버린 것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파괴]로 인식되어 수리가 불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나마 광풍의 배틀 액스를 녹여 그 희귀한 금속을 써먹을 수는 있다고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제련할 만한 대장장이가 없다는 것이다.
퍼뜩 드록쉬를 떠올리긴 했지만 과연 그랜드 마스터에 불과한 녀석이 마제스티 마스터의 무기를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반신이라 불리는 존재의 힘을 견딜 수 있는 무기를 말이다.
놈이 부여할 수 있는 ‘복수자’ 옵션이라면 천족을 상대로 꽤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무리일 듯싶었다.
그것을 들고 싸우게 될 로칸 스스로부터가 불안했으니 어디 전력을 다할 수나 있겠나.
믿고 쓸 수 있는 무기 하나가 이렇게 중요할 줄이야.
신성 때문이긴 했지만 소모품처럼 옵션 따라 갈아치우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질 지경이다.
“가만, 그렇게 따지고 보면 광풍의 배틀 액스도 마찬가지였던 건가?”
게다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문제가 심각해졌다.
만약 그렇다면, 어지간한 무구들로 반신의 ‘신성’을 견뎌 낼 수 없는 것이라면 무기뿐 아니라 장비 대부분을 갈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아닌가?
무기뿐 아니라 방어구까지도.
그나마 마신의 이빨 허리띠가 신급의 장비이니 이것만큼은 파괴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허리띠 달랑 하나만 걸치고 덜렁거리며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흠, 신성으로 무기를 만들어 봐?’
골똘히 생각에 빠진 로칸은 아예 신성으로 무구를 생산할 생각까지도 했다.
실제 그몰탄의 경우 자신의 주 무기인 채찍을 신성과 창조 스킬로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제대로 당해 보지는 않았지만 잡히는 순간 상대의 능력을 봉인하고 힘이 쫙 빠지게 만드는 까다로운 능력을 지닌 무기였다.
꼭 채찍으로 상대의 신체 부위 일부를 감싸야 한다는 제약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확실히 나쁜 생각만은 아니다.
아직 로칸은 반신에 오르며 획득한 권능인 ‘신성을 통한 스킬 창조’를 사용하지 않았고, 이번에 획득한 신성을 투자하면 꽤 그럴싸한 놈이 뽑혀져 나올 것 같았다.
어쩌면 광풍의 배틀 액스보다도 멋진, 로칸만의 전용 무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후우, 이것도 욕심이지.”
은근한 욕심이 생겼지만 간신히 참아 냈다. 신성으로 만든 스킬과 무기에는 ‘개연성’의 제약이 붙는다.
그몰탄의 채찍이 ‘붙잡아야만’ 힘을 발휘할 수 있던 것처럼 어디 한구석 약점이 생긴다는 뜻이다.
로칸은 제 스스로 약점을 만들어 내는 그런 바보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그저 신성을 버틸 수 있게 튼튼하기만 한 철퇴 같은 도끼를 하나 구해다가 자신의 능력으로 공격력을 덧입혀 써먹고 말지.
아니면 아예 일회용이라 생각하고 유니크 이상의 도끼류 장비들만 한가득 인벤토리에 쌓아 두었다가 부숴 먹으며 싸우든가.
“왜 하필 이런 때에.”
평시라면 시간을 갖고 방법을 찾았을 터였다.
그러나 조금 전, 일단의 알림이 떠올랐다는 것이 문제였다.
[백염왕 히리칸토가 당신에게 적대를 선언했습니다.] [흑염왕 요시칸이 당신에게 적대를 선언했습니다.] [홍염왕 라이톤이 당신에게 적대를 선언했습니다.] [청염왕 시리한이 당신에게 적대를 선언했습니다.] [녹염왕 고스미가 당신에게 적대를 선언했습니다.]바로 유명계의 적대 선언.
경매를 진행하기로 한 날짜에 로칸이 나타나지 않자 그를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찾아 나선 이들이 그의 행적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판단을 내린 것이겠지.
로칸이 약속을 어겼다.
마제스티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고, 자신의 것이 되었어야 할 영혼의 구슬과 힘의 정수를 제 스스로 취했다!
자신의 세계에 영혼들을 편입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미 영혼의 구슬을 제 것처럼 생각하던 놈들이었다.
그것만 있으면, 신성을 증폭시키고 단숨에 유명계의 왕들 중에서도 한 단계 위의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던 놈들이기 때문에 분노는 크디컸다.
[유명계에서 추격대가 파견되었습니다.]심지어 추격대까지 꾸려졌다.
어떤 구성인지, 어디를 향해 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서로 견제하기 바쁘고, 정령계와 환마계를 생각하면 그리 대단한 인원이 나오지는 못할 텐데…….’
아니, 아니다. 로칸은 최악을 가정했다.
환마계는 지금 내란에 휩싸여 남 신경 쓰기 어렵고 정령계는 종족 성향이 맞지 않는다 생각될 만큼 유명계를 싫어하지만 애초에 호전적인 성향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 역시 환마계를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 유명계를 침공할 것이라 생각하기 어렵고.
그렇다면, 유명계의 왕 하나쯤 사라져도 괜찮지 않을까?
누군가 자리를 비운다면 그 지배 영역을 호시탐탐 노릴 만큼 음흉한 놈들이긴 하지만 로칸에게 열이 받아 서로 협정이라도 맺었다면, 영혼의 맹약이나 계약서 따위를 이용해 맹세했다면 일이 심각해진다.
만전의 상태였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오히려 따로 떨어져 나오는 놈의 신성을 잡아먹을 기회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시험 삼아 휘둘러 본 유니크 등급 도끼가 채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파괴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신성의 성향 자체가 주인을 닮아 거칠고 폭력적이기 때문이었다.
“아깝다.”
무기만 있었다면 오히려 상성은 로칸에게 더 좋았으니까.
반신 따위가 아니라 신위를 가진 이가 남긴 힘에도 저항한 불굴의 의지가 아니던가?
유명계의 존재들이 가지는 주특기가 정신 계열, 영혼 계열의 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상성 면에서는 로칸이 훨씬 좋은 것이다.
“튀자.”
그러나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었다.
로칸은 즉시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도주를 감행했다.
유명계의 특성상, 특정 대상을 추적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마냥 도망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무기를 획득할 방법을 알만한 이를 찾아 움직였다.
‘가오칸이 정보를 공유해 줬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가오칸은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그냥 자기 무기의 제작 기간이 길어질까 봐 알려 주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이해는 하지만 아쉽기도 했다.
이야기를 좀 풀어 줬다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기에 로칸은 정보를 알 만한 인물을 바로 찾아갔다.
[광풍의 제단]광풍 또는 학살의 신이라 불리는 자를 모시는 제단.
이미 신 맵에 있던 제단은 로칸이 박살 내 버렸기에 어쩔 수 없이 찾은 것은 타이탄들의 마을에 있는 그것이었다.
자신을 광풍의 사도쯤으로 오해하고 있는 타이탄들의 호들갑과 대결 요청 때문에 가급적 오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아니고서는 딱히 물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광풍님,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광풍과의 대화][퀘스트]신위를 가진 자가 지상에 직접 작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신성의 소모를 필요로 합니다.
광풍과의 대화를 원한다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완료 조건(택 1) :
1) 신성 : 1,000,000 지불
2) 광풍의 신전 설립
3) 학살의 업적 달성
완료 보상 : 광풍과의 대화 (10분)
“흐음, 이런 게 있었군.”
예상은 했지만 신위를 가진 자들은 마음대로 지상과 천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나마 간접 메시지 형태로 개입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마 그조차도 일정한 신성을 소모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현신이나 사도 임명, 직접 대화의 경우는 필요 신성이 훨씬 더 크겠지.
당장 10분간의 대화를 조건으로 신성을 1백만이나 요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광풍이 그걸로 남겨 먹으려 드는 위인도 아니고 말이다.
저번의 현신은 아마 로칸이 해결했던 검은 산의 퀘스트를 수행하며 쌓은 학살의 위업 덕분이었겠지.
“신성을 지불하겠다.”
골똘히 생각하던 로칸은 과감하게 신성을 지불했다.
일단 학살의 업적을 달성하는 것은 어려움을 넘어 너무 오래 걸린다.
가지고 있는 무기들을 소모한다 생각하면 어떻게든 달성해 낼 수야 있겠지만 유명계의 추격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시점에 그런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다.
그리고 광풍의 신전. 사실 로칸이 가진 영토에 작은 신전 하나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쉽게 생각하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많다.
다른 신이라면 모를까, 광풍의 경우 자신의 성향과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자칫하면 서로 부딪치는 부분이 생기거나 분열될 수 있다는 판단에, 아깝지만 신성을 직접 지불했다.
[광풍이 대화에 동의했습니다.] [신성 : 1,000,000을 소모했습니다.] [광풍이 10분 동안 현신합니다. 이 화신체를 이용해서는 전투를 치를 수 없습니다.]“야 이, 치사한 놈아!”
그렇게 모셔 온 광풍은 나타나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거 신전 하나 세워 주는 게 뭐 어렵다고 쪼잔하게 신성을 쓰고 그러냐! 에잉, 아니면 한판 붙을 수나 있게 팍팍 좀 투자하지 백만이 뭐야, 백만이?”
역시 이게 답이었다. 당장 백만이나 되는 신성을 쓴 것을 쪼잔하다고 타박하고 있지 않나?
그의 구박에도 로칸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무기가 없는 걸 어떻게 합니까.”
“응? 그건 또 어디다 팔아먹었어? 아, 이제 보니 반신이 됐구먼? 그럼 그럴 만하지. 사실 그거 내가 한 번 부러뜨려 먹었던 거거든. 어떻게든 슬쩍 붙여 놓긴 했는데 결국 또 부러졌나 보네.”
“……예?”
뭔가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로칸은 침착을 유지했다. 그렇다는 건 다시 붙일 방법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보다는 아예 이참에 새 걸 마련하는 편이 좋을 것 같지만 말이다.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그냥 갖다 버려. 어차피 너나 나나 신성 쓰면 웬만한 무기는 못 버틸 테니까. 어디 보자, 그럼 날 부른 이유가 뻔하군. 신성을 버틸 수 있는 무기 제작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 거겠지?”
“맞습니다.”
광풍은 이미 다 꿰뚫고 있다는 듯 로칸의 속에 있는 이야기를 시원하게 늘어놓았다. 저도 저때 그랬으니까.
그렇다면 로칸도 의뭉 떨 이유가 없다.
제 속을 내비치자 광풍이 호탕하게 제안했다.
“좋아. 가르쳐 주지. 우리 같은 신성을 쓰는 이들을 견딜 수 있는 무기는 딱 한 놈밖에 못 만들거든. 마지막으로 본 게 꽤 되긴 했는데 아마 아직 거기 있을 거야. 애초에 신위를 얻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놈들이라.”
“……?”
놈? 놈들? 뭔가 말이 이상하다는 생각에 갸웃거렸지만 광풍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덧붙였다.
“대신, 조건이 있다. 그게 완성되면 신성을 1천만, 아니 5백만쯤이라도 써서 날 다시 소환할 것. 그 정도면 한두 판쯤은 붙어 볼 수 있겠지.”
“약속하죠.”
씨익.
로칸과 광풍이 서로를 마주 보고 웃었다.
계약이 성립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