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SS-Ranker Returns RAW novel - Chapter (432)
# 432
칠대죄악 (3)
선두에 선 로칸을 이불리안과 반신들이 뒤따랐다.
나태의 힘이 매혹은 아니었기에 릴리스를 상대할 때와 같이 다 함께 칼부림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일시에 짓쳐 든 것이다.
원거리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면 직접 놈의 목을 따는 수밖에.
[나태의 저주에 노출되셨습니다.]콰앙!
성문에 닿는 순간 나태의 신성이 몸과 정신을 좀먹으며 팔에 힘이 쭉 빠졌지만 다행히 성문을 부수는 것에는 성공했다.
“……또냐.”
안으로 들어서자 이번에도 나태에 영향을 받은 병사들이 벽과 땅에 몸을 기댄 채 한껏 근무태만을 벌이고 있었다.
제지하거나 호통을 치는 이도 없는지 로칸과 일행을 보고도 슬쩍 눈길을 줄 뿐, 설렁설렁 몸을 일으킬 뿐이었고 그 모습은 전원이 반신으로 이루어진 그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놈은 찾아라!”
때문에 그들도 무시했다.
애초에 싸울 마음조차 없는지 초점이 사라진 눈빛을 하고 있는 병사들을 죽여 봤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나.
그들이 무시하자 병사들도 안심이 되었는지 주춤거리며 다시 자거나 무기마저 버리고 기대 쉴 뿐이었다.
“저쪽입니다.”
그사이 누군가 놈들 찾아냈다.
아니 찾는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놈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마을의 광장.
그곳에 있는 거대한 고치 속에서 나태의 신성이 느껴졌다.
“고치? 성이 아니라?”
“저거 조형물 아니었어?”
다들 영주성을 의심했지만 그저 조형물인 줄로만 알았던 거대한 고치가 바로 노스토칸의 거처인 것이다.
“고치라니…….”
이건 또 무슨 악취미란 말인가.
고치 속에서 잠이라도 퍼자고 있던 것일까?
저 안에서 나오면 나비라도 되는 거야?
황당함과 당혹스러움이 공존하는 가운데, 누군가 먼저 신성을 발휘했다.
어쨌든 자신들은 놈을 잡으러 온 것이고, 이 나태함 속에 계속 머물다가는 싸울 의지마저 상실해 버릴 것 같은 기분에 선수를 친 것이다.
콰앙!
“……!”
신성을 듬뿍 실은 공격.
그러나 폭연이 사라진 후 다시 나타난 거대 고치에는 아무런 흠집조차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실로 놀라운 방어력이었다.
어지간한 방어구는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대단한 방어력과 신성 저항력이 거기에 있었다.
“신성으로 만든 거다.”
그때 이불리안이 해답을 내놓았다.
신성으로 만들어 낸 고치.
어쩌면 마스터 스킬이나 창조 스킬일지도 모르겠다.
그몰탄이 채찍을 만들어 내었듯, 노스토칸은 이 거대 고치를 만들겠지.
그렇다면 이 고치에 다른 기능이 있을지도 몰랐다.
설마하니 ‘단단함’만을 부여하지는 않았겠지.
“파괴해라.”
나태함을 즐기기 위해 스킬 슬롯과 신성까지 투자해서 이런 걸 만들다니, 모두가 어이없어 하고 있을 때 이불리안이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는 자신이 보여 주겠다는 듯, 수하들에게 지시해 신성의 폭력을 때려 부었다.
콰과과과광!
이불리안의 수하들은 그야말로 아낌없이 신성을 때려 부었다. 마치 로칸에게 보라는 듯이.
어차피 놈이 고치를 뚫고 나오더라도 이불리안 자신과 로칸 그리고 로칸 휘하의 반신들이 남아 있으니, 상대하는 것에는 문제 없다는 듯 파괴 행위에만 전념했다.
“…….”
“말도 안 돼!”
“제길, ‘나태’ 때문인가?”
그러나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힘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막판에 힘이 빠졌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생각 이상으로 거대 고치의 방어력이 높았던 것일까.
설마 ‘파괴 불가’ 옵션이 붙은 건 아니겠지?
‘그건 확인해 보면 알겠지.’
난감해하는 반신들을 뒤로하고 로칸이 직접 나섰다.
자신이 가진 파괴의 신성이라면 저 거대 고치를 잘라 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무엇이든 꿰뚫는 창과 무엇이든 막아 내는 방패의 대결과도 같은 그림에 로칸은 배틀 액스를 더욱 힘껏 휘둘렀다.
“부서져라!”
콰앙!
쩌적. 쩌저저적.
파괴의 신성이 고치를 강타했다.
처음에는 외형상의 변화가 없었으나 로칸이 몇 번이고 배틀 액스를 휘두르자 그때서야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치에 금이 갔고, 파편이 떨어져 나왔다.
비로소 내부를 드러냈다.
“노스토칸!”
그 안에서 이불리안은 노스토칸의 모습을 발견했다.
눈에 쓴 안대 같은 것을 슬쩍 들어 올리며 뚫린 고치의 구멍 쪽으로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무척이나 평화로워보였다.
마족이 아닌 것만 같은 그 모습에 순간 여기가 어디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흠, 귀찮게들 구는군. 그냥 가 줄 순 없나? 여기까지라면 간만에 바깥바람 좀 쐬었다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무료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는 노스토칸.
이만한 인원이 몰려왔다면 그 뜻이 무엇인지 알 수밖에 없을 텐데도 녀석은 한껏 여유를 부렸다.
자신이 있다는 뜻일까, 그냥 나태에 절여져 있는 것일까.
“겁을 먹은 건가?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일단 이불리안은 판단이 선 모양이다.
수하들이 먼저 해 놓은 공격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고치를 파괴한 것은 또 로칸이었기에 조바심이 났는지 전면에 나서며 놈을 공격해 들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지.’
그 조급함을 읽은 로칸은 뒤로 슬쩍 물러났다.
이불리안의 자존심도 지켜 주고, 자신의 힘도 아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나?
만약 정말로 이불리안이 노스토칸을 처리해 버릴 경우 이번에는 그의 신성을 온전히 빼앗기고 말 테지만, 어쩐지 이 녀석의 신성을 가지면 자신도 나태해져 버릴 것 같은 기분에 크게 욕심이 나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조차도 나태의 신성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불리안의 탐욕은 나태보다 대단했다.
로칸에 대한 의식과 신성에 대한 갈망은 나태를 딛고 칼을 빼들 수 있게 만들었고, 노스토칸은 어쩔 수 없이 거대 고치의 소환을 해제했다.
“흐흥, 모처럼 공들여 만든 수면 캡슐인데 여기서 더 망가뜨릴 수는 없지.”
“……수면 캡슐이었냐.”
거대 고치의 용도가 수면 캡슐이었던 것도 놀랍지만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젓는 노스토칸의 신성 또한 놀라웠다.
[나태의 노스토칸][Lv 499]놀랍게도 그는 이미 499레벨을 달성한 것이다.
그렇게 나태하게 굴고도 499레벨이라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가설이 머릿속을 스쳤다.
‘설마, 신위를 일부러 얻지 않은 건 아니겠지.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신위를 얻지 않는다면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않는 이곳에서 마음껏 게으름을 피울 수 있을 테지만, 신위를 얻으면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거나 다른 신들에게 치이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일 것 같았다.
콰앙! 콰앙! 콰앙!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이불리안과 휘하 반신들은 전력으로 노스토칸을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몰아붙이는……건가?’
그러나 마냥 여유롭거나 이득을 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의 공격이 번번이 노스토칸에게 막혔으니까.
정확히는 노스토칸도 아니고, 그가 신성을 일으켜 만들어 낸 분신들에 의해서였다.
“으하아암.”
정작 본인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고.
‘나태라……. 대단하군.’
그간 전투에 대한 능력만을 높이 평가하던 로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색욕과 나태를 겪어 보니 꼭 신성이 전투 속성을 띄지 않아도 충분히 강력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자신이 그동안 다른 반신은 물론 다른 신위자들을 너무 무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 색욕이든 나태든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니까.
개인의 무력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칠대죄악이 아니라 그 어떤 힘이라도 결국은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젠장!”
그러한 탓에 이불리안과 그 수하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놈만 잡으면 마계의 왕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텐데!
분노의 캬루파와도 한판 붙어 볼 만해질 것이고, 칠대죄악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약점을 넘어 마계의 정점에 설 수 있을 터인데!
이불리안이 조급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놈이 성과를 그다지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
‘누적되는 건가?’
그뿐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공세는 더욱 거세지고 있지만 반대로 조금씩 힘이 빠지고 있다는 것도 눈에 보였다.
그저 신성의 소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는 것이다.
전투 의지를 잃어 가고 있다고나 할까.
무기를 휘두르는 손에 힘이 빠지고 정교하던 동작이 건성이 되고 있었다.
그나마 집념으로 똘똘 뭉친 이불리안은 분투 중이지만, 그 또한 마땅한 수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로칸이야 약간 떨어져 있어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노스토칸에게 가까울수록 그리고 그의 분신들과 손속을 겨룰수록 나태가 독처럼 퍼져 가는 것이 분명했다.
퍼엉!
어쩌면 분신들이 터져 나갈 때마다 뿌리는 연기 같은 무언가에 나태의 힘이 실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싸움은 갈수록 지루해지고, 고수들의 싸움이 아닌 어린아이들의 골목 싸움이 되어 가고 있었다.
‘곤란하네.’
그럼에도 이불리안이 꿋꿋이 무기를 휘두르는 중이니 끼어들기도 뭐했다.
애초에 끼어든다고 딱히 수가 있는 것도 아니긴 했지만 이대로면 저들은 전투 의지를 상실한 채 그 자리에 퍼져 버리거나, 노스토칸이 독하게 마음을 먹는 순간 심장이 꿰뚫려 죽어 버릴 터였다.
개입할까, 말까?
개입하면 해결할 방법은 있을까?
로칸이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나태와 무기력 그리고 잠. 이거라면 혹시…….’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의외로 이 상황을 쉽게 풀 수 있지 않을까?
나태의 강점이자 약점인 것을 이용하면 말이다.
“……소환.”
조금 더 그들의 처절하면서도 지루한 전투를 지켜보던 로칸이 무언가를 소환했다.
“수면 가루.”
바로 자이언트 버터플라이!
녀석이 은근히 날갯짓을 하자 수면 효과가 있는 인분이 스르르 놈들에게 스며들었다.
노스토칸은 물론 이불리안과 그 수하들에게까지.
털썩. 풀썩. 꽈당.
드르렁. 푸우!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이다.
나태에 찌들어 있던 놈들은 수면 가루에 노출되자마자 그 자리에서 기절하듯 쓰러져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불리안은 잠이 들지 않기 위해 고개를 털고, 입술을 꾹 깨물었지만 천하장사도 눈꺼풀은 들어 올리지 못하는 법이다.
결국 나태와 잠의 협공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음?”
그러나 놀랍게도 노스토칸은 버텼다.
아까부터 계속 하품을 하던 주제에 쓰러지지 않고 그 자리에 홀로 서 있었다.
실수한 것일까?
오히려 놈에게 기회를 준 셈이 되는 걸까?
순간 로칸은 당황했지만 곧 무언가를 발견했다.
“……서서 자는 거냐.”
이미 눈꺼풀은 감겨 있었고 새근새근 숨소리까지 미약하게 흘러나오고 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로칸을 따라왔던 반신들조차 졸음을 이기지 못해 속속 쓰러지는 중이었다.
무사한 것은 오직 로칸뿐.
소환수를 부리는 입장이다 보니 자이언트 버터플라이의 수면 가루에 면역 효과가 부여된 까닭이었다.
“나참.”
모두가 잠든 가운데, 로칸이 가만히 배틀 액스를 들어 올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