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SS-Ranker Returns RAW novel - Chapter (468)
468 신들의 도시 (10)
‘재밌는데?’
본격적으로 사냥에 나선 로칸은 그야말로 신이 났다.
간만에 제대로 된 사냥을 하는 기분이랄까?
그들을 잡기 위해 나선 공허의 존재들 중 신급의 존재는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반신급의 존재들이 우글우글 몰려왔고, 그들이 어지간한 초짜 신들에게 비벼 볼 만큼 강력하긴 했지만 로칸은 이미 초짜 신의 경지를 넘어선 상태였으니까.
5천억의 신성, 537이라는 레벨은 굳이 경지로 나누어 볼 때 초급과 중급의 사이 정도라고 볼 수 있었지만 로칸에게는 신성 사용 효율 증가 옵션이 덕지덕지 붙은 데다 광전사 특유의 능력 증폭 능력 덕분에 중급을 넘어 상급에 준하는 전투력을 지닌 로칸이었다.
어설픈 반신급은 단박에 대가리가 터져 나갔고, 로칸에게 공허의 신성을 헌납하며 소소한 수집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었다.
‘이거 알 듯 말 듯 한데…….’
로칸은 그렇게 흡수하는 무수한 공허의 신성들을 토대로 감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타락한 이들이 강해지는 비법이랄까?
자신을 버리고, 세계마저 파괴당한 이들이 어째서 기존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그 원리만 깨칠 수 있다면 타락하지 않고도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러나 공허의 신성을 마구 흡수하면서도, 그 정보를 모조리 훑어보아도 방법이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잡힐 듯 말 듯한 신기루 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로칸은 포기하지 않고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한 놈을 분석해서 안 되면 두 놈, 세 놈, 열 놈, 1백이나 1천 마리라도 잡아 족치면 될 것 아니겠나?
아주 단순한 계산으로 학살을 자행했다.
이쯤 되면 누가 학살의 신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흠, 오늘은 인기가 없는걸?”
“……이게요?”
그렇게 공허의 존재들과 드잡이질을 하기를 한참.
정말 쉴 새 없이 배틀 액스를 휘둘렀건만 광풍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이 정도도 적다는 듯, 혀를 차고 있었다.
“어, 내가 처음 왔을 때는 지금의 1.5배 정도 됐었거든. 요즘에 공허 놈들이 딴짓을 많이 하고 다닌다고 한 것 같긴 한데 그것 때문인가?”
딴짓? 그 말에 로칸이 가만히 생각했다. 확실히 지상과 천상에 신경을 쓰고 있다면 정작 이곳에서 시간을 쓰고 있을 것 같지 않았으니까.
당장 이곳에서 신격을 잡아먹는다 해도 혼자 독식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쉽게 당해 줄 만한 이들이 나타나지도 않을 것 같았으니까.
적어도 자신이나 광풍 정도의 자신감과 무력을 지닌 이들이나 공허에 나타나지 않겠나?
그렇다고 공허의 경계를 넘어 신계를 대대적으로 침공할 것이 아닌 이상, 여러 꼼수를 부려 지상과 천상에 기틀을 잡는 쪽을 노려 보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일단 여기는 이 정도로 할까?”
여전히 가벼운 몸놀림으로 공허의 존재들을 때려잡던 광풍이었지만 흥미는 식은 듯 로칸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더 강한 놈들이 찾아오기 않기 때문인 듯.
어쩌면 처음인 로칸을 배려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로칸도 선뜻 동의했다. 힘에 부쳐서가 아니라 흡수한 힘들을 잠시 정리할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이쪽으로.”
“예? 돌아가는 게 아닙니까?”
“벌써?”
그러나 다시 공허의 경계로 돌아갈 것이라는 로칸의 생각과 달리 광풍은 더 깊숙한 공허의 어딘가로 그를 인도했다.
공허의 지형들은 사실 지상과 천상, 신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계 전체에 공허의 기운이 흐르고 있고 그 기운들이 호시탐탐 신성을 탐식하기 위해 혀를 날름거릴 뿐, 기형의 식물과 존재들이 자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세계라고 보는 것이 옳을 터였다.
광풍이 그를 인도한 것은 그중 어떤 산에 위치한 동굴.
어떠한 힘에 의해 가려져 있던 것인지 가까이 가기 전까지는 그곳에 동굴이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를 따라 이동하자 동굴과 어떤 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전신의 돌……!”
“잠깐!”
그리고 그 안으로 진입했을 때, 공허의 존재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음을 확인한 로칸이 즉시 몸을 날리려 들었다.
광풍의 제지가 없었다면 대번에 가슴을 뭉개고 머리를 터트렸겠지만, 놀랍게도 광풍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공허의 존재를 감싸고 돈 것이다.
“워, 워, 진정해. 이쪽은 적이 아니라구.”
“하지만 공허의…….”
“알아. 근데 모든 공허의 존재가 호전적이거나 적대적인 것만은 아니지. 공허에 파묻혀 며칠이고 사냥을 하려면 은신처를 만들고 관리하는 건 필수가 아니겠어? 이들은 여기를 관리해 주는 일종의 관리인이야. 우리 편이지.”
“……우리 편이라고요?”
로칸을 진정시킨 광풍은 겁에 질려 떨고 있는 그들을 진정 시켰다. 은신처의 관리인이라고 소개하며 전투태세마저 풀어 버렸다.
공허의 존재가 은신처의 관리인? 우리 편?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로칸의 상식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광풍이 저렇듯 편하게 대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넌 공허의 존재들이 왜 지상과 천상, 그리고 신계를 침공하려 한다고 생각하냐?”
“그거야……. 언데드 같은 거 아닙니까? 본능적으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자들을 공격하는.”
“본능이라…….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하지만 말이야, 아예 이성과 영혼을 상실한 언데드와 달리 이놈들 중 아예 제정신이 아닌 놈들은 벌레나 짐승 같은 저급한 놈들뿐이야. 적어도 반신급의 격을 유지하는 놈들 중에는 완전히 미쳐 버린 게 아닌 이상 제대로 된 정신이 박혀 있지. 놈들이 하는 짓은 지극히 이성적인 일이라는 뜻이다.”
“그럼?”
“의도가 있는 거지. 단순히 물귀신 같은 파괴와 타락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동이라고나 할까? 그건 이 녀석들 역시 마찬가지고.”
“……?”
아리송했지만 알 것도 같았다.
공허의 존재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이들은 파괴 행위를, 또 어떤 이들은 다른 존재를 타락시키는 행위를, 그리고 이들은 광풍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목적이 완전히 같은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과정, 행동은 다를 수도 있다는 뜻.
그렇다면 공허의 존재라고 해서 완전히 배척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가? 서로 이해관계만 맞는다면, 얼마든지 대화와 협력이 가능하다는 소리이니까.
“그럼 이들에게는 무엇을 주기로 하셨습니까?”
“이름.”
“이름……요?”
순간 로칸은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타락한 신, 혹은 공허의 존재라고 불리는 이들을 다르게 표현하는 말이 바로 ‘이름을 잊은’ 존재 또는 신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들에게 다시 이름을 부여하면 어떻게 될까?
신위를 되찾게 되는 것일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들이 공허의 존재로 타락한 이유는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니까.
‘한데 어떻게?’
문제는 방법이다.
그들이 신격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들을 신으로 여기는 이들이 필요할 텐데, 세계를 뚝 떼어 주기라도 할 참일까?
로칸이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광풍이 말을 덧붙였다.
“이들은 다시 신이 되려는 게 아니야. 안식을 찾고 싶은 거지. 그러니까 꼭 신격을 돌려줄 필요는 없어. 그저 세계의 주민으로서 이름을 가지고 빙의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하는군.”
“아…….”
그 정도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딴마음을 품으면 세계가 어지럽혀지겠지만 조용히 살아가기로 작정한다면 문제없겠지.
더구나 그들이 난동을 부린다 해도 상대는 학살의 신이 아닌가? 세계 속에서 다시 죽어 세계의 양분이 되기 싫다면 헛짓거리를 하지 않는 편이 좋을 터였다.
대충 그 프로세스를 이해한 로칸이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의 말처럼 할 수 있다면, 좀 더 거창한 일도 벌일 수 있지 않을까?
‘일단은 내 세계부터 정리를 해야겠지.’
물론 그 전에 자신의 세계부터 온전히 통일을 이루어야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안심해도 좋아. 어차피 딴 맘을 품는다고 우릴 어쩌지야 못하겠지만.”
광풍은 동굴의 안쪽으로 로칸을 인도하더니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었다.
공허의 존재들이 그의 수발을 드는 모습이 낯설었지만 뭐 어떤가. 덤비면 잡으면 그만이고, 광풍의 말처럼 순종적으로 자신들을 서포트한다면 이용하면 그만이다.
그들에게 적당히 시선을 주던 로칸은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세계부터.’
먼저 확인할 것은 자신의 세계였다.
시간 배속을 빠르게 돌려 두었기 때문에 천상 통일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로칸이 천상을 통일하고 절대자의 타이틀을 얻으면서 권능이 더욱 강화되었기에 전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거기에 권능 : 불굴의 의지와 권능 : 폭력의 신이 보조하며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만들어 냈고, 이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명부마도 역시 지상과 천상의 통일이 완성될 듯싶었다.
지하 세계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거칠 것이 없었다.
나머지 세계들 역시 마찬가지.
저항군 정도의 개념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세계의 70% 정도를 집어삼킨 인간들이 원주민이자 기존 세력인 이들을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상성이 잘 맞다 보니 이쪽도 큰 탈 없이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했다.
이들 역시 가만히 두기만 해도 알아서 세계를 통일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공허의 신성을 들여다볼 차례였다.
이미 로칸의 신성에 녹아 혈액처럼 흐르는 그들의 신성을 강제로 끄집어 올려 분석했다.
로칸이 때려잡은 공허의 존재 중에는 촉수 괴물도 있었고, 짐승형도 있었으며 천사나 악마, 몬스터의 형상을 한 놈들도 있었다.
그리고 천상에서 사냥했던 타모스의 그것 또한 아주 작게나마 자리하고 있었다.
로칸은 그 정보들을 머릿속에 분해하여 늘어놓았다.
그 구성 요소와 원리를 살피고, 공허가 가진 파괴적인 힘의 원천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공허의 존재들은 모두 그 종이 달랐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반대로 공통된 속성만 제대로 찾아낼 수 있다면 의외로 쉽게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정보를 뒤적거렸다.
“후우……!”
그러기를 한참, 로칸은 이렇다 할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공허의 신성을 흡수하며 대상의 정보를 흡수하기는 했지만 온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폭력과 파괴의 신성이 가진 고유한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을 처치하는 과정에서 정보의 일부가 손상되다 보니 완벽한 대조를 이루기 어렵기도 했고, 타락의 힘이 발생하는 원리 자체가 단순 구조가 아닌 복합 구조였기에 그 연결성과 인과를 추측하기에 자료가 부족한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다.
더 많은 샘플을 모아 대조해 보는 것.
로칸이 가만히 감았던 눈을 뜨자 무미건조한 인형처럼 그의 곁을 지키고 선 공허의 존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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