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SS-Ranker Returns RAW novel - Chapter (475)
475 신들의 도시 (17)
공허의 신.
그들을 부르는 다른 표현은 이름을 잃어버린 신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공허 속에서 침잠하면서도 신계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망했으니 너도 망해 보라는 물귀신 작전?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온통 악의에 찬 상태로 소멸해 가는 격을 유지하며 한 놈이라도 같이 데려가려는 것일 수도.
그러기 위해 신위를 얻은 신계의 신들을 공격하고, 그들의 세계를 침공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무런 목적 없이, 실패하면 자신의 소멸이 더 가까워질 텐데도 악다구니만 쓰는 것일까?
로칸은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읽었다.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했다. 가끔은 문제 속에 답이 있음에도 읽지 못하곤 하기 때문이다.
‘이름.’
이름을 잃은 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혹시 이름을 얻는 것은 아닐까?
세계를 침공하고, 신들을 죽여 그들의 ‘신성’이 아니라 ‘세계’를 얻으려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자신을 다시 일으킬 기반을 확보할 생각인 것은 아니었을까?
어디까지나 가설이었다. 그러나 로칸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가설을 자신의 세계에 나타난 공허의 신들에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폭력과 파괴의 신 로칸이 촉수가 달린 공허의 신을 ‘가베라’라 명명합니다.]모든 존재에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었다. 그것이야 명부마도의 주민들이 차근차근 부르는 이름이 생길 테니까.
때문에 신탁, 퀘스트라는 이름으로 신격을 가진 공허의 존재들부터 이름을 붙여 나갔다.
로칸이 사냥한 공허의 신들은 제법 많았지만 그들 중 고대의 종족들을 지배하고 전면으로 드러난 이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기에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름을 붙이자 변화가 일어났다.
[공허의 신 가베라의 세계 : 명부마도에 뿌리를 내립니다.]놈의 존재가 로칸의 세계에 고정된 것이다. 이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로칸은 지금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슬슬 시작해 볼까?”
공격. 놈을 모시고, 놈이 가호하는 고대 종족들부터 처리하도록 세계 : 명부마도의 주민들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미 새로운 종족과 강자의 출현에 몸이 근질근질하던 전사들은 그의 퀘스트가 내려오기 무섭게 성문을 열고 달려 나갔다.
하지만 막무가내의 돌진은 아니다.
기다리는 동안 충분히 전략은 세워 두었기에 그것을 즉시 실행시켰다.
각 전투 직군이 조합되어 놈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폭력의 힘으로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피는 모두 뽑아내고, 살점과 뼈는 거름으로 만들어 주마!”
당연하게도 고대 종족과 가베라의 저항은 거셌다. 그러나 다른 종족들과 연합하지 못했다는 것이 놈들의 패인이었다.
탐욕스러운 공허의 신들이 서로 연합하여 지상을 공략하는 대신, 각자의 세력을 이루고 자신과 성향에 맞는 고대 종족들을 키워 가는 통에 바로 인근에 다른 고대 종족의 세력이 있음에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토벌된 것이다.
[권능 : 폭력의 신이 적용 중입니다.] [무자비한 폭력이 대상을 굴복시킵니다.]결국 세계 : 명부마도의 주민들의 승리.
만약 저쪽에서도 가베라가 직접 나설 경우 현신이든 강림이든 할 준비를 하고 있던 로칸이었지만 아직 힘이 모자란 건지 다른 조건이 필요한 것인지 가베라는 끝까지 나서지 않았다.
신으로서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적당히 버프를 돌리고 명령을 내리는 선에서 그 힘을 다하였다.
“우리를…… 살려 주겠다고? 정말인가?”
“어떠한 박해도 없이 가베라 님을 계속 믿어도 된다고?”
그렇게 완벽히 제압당한 가베라의 고대 종족에게는 한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멸망을 당하거나, 굴복하거나.
다만 굴복한다 해서 로칸을 유일신으로 절대 신봉해야 한다는 조건 따위는 없었다.
믿던 신을 그대로 믿어도 되고, 언제든 그들에게 도전해 승리한다면 자치권마저 인정해 주겠다는 약조를 받았다.
억겁의 세월동안 음습하기 짝이 없는 지하 세계에만 갇혀있던 그들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는 조건이었다.
그저 태양빛을 쐬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이들이었기에,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호의적인 그들의 제안을 냉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뿐 아니라 그들이 믿는 신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가베라를 하위 신으로 등록하시겠습니까?]“흠, 그래.”
로칸이 승낙하자 촉수 괴물처럼 생긴 공허의 신이 로칸의 하위 신으로 세계 : 명부마도에 등록된 것이다.
동시에 대량의 신성이 세계에 퍼져 나갔다.
가베라가 공허의 탈을 벗어 내고 진정한 신으로서 이름을 얻으며 세계에 기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작해야 하위 신에 불과했지만 가베라의 표정은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로칸이 보기에는 괴물의 모습 그 자체일 뿐이지만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하위 신 가베라의 신성이 세계에 퍼져 나갑니다.] [모든 식물의 생장 속도가 소폭 증가합니다.]식물 계열의 신이었는지 모든 식물의 생장 속도가 소폭 증가하는 이득도 얻었다.
아직은 작은 수준이지만 녀석의 신도가 늘어날수록 그 효과도 커질 것이다.
아직 믿을 수 없으니 정화의 나무 근처에는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겠지만 다행히도 자신의 계획이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때문에 더욱 탄력이 붙었다.
고대 종족들이 각자 어디에 자리를 잡았는지, 또 어떤 공허의 신을 모시고 있는지 파악한 뒤 차례로 공략을 지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사이, 로칸은 하위 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했다.
어떤 효과를 주는지, 문제는 없는지, 또 몇 명까지 등록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일단 걸리는 건 없는데…….’
신성을 일으켜 세계를 돌아보자 대략적인 법칙들을 읽어 낼 수 있었다.
간단히 표현해 효과는 해당 신이 가진 고유 신성에 따라 다르고, 당장은 별 문제가 없지만 해당 하위 신이 주신이 되기 위해 반역을 도모하거나 반대로 신도가 사라져 다시 타락해버릴 경우에는 세계가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숫자의 제한은 없었고.
로칸이 원하고 조건만 맞는다면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폭력으로 군림하는 로칸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굴복했던 놈들이 충분한 힘을 얻어 반기를 들었을 때의 위험도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상관없어.’
그러나 로칸은 개의치 않았다.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 존재들을 등 뒤에 세우는 꼴이지만 뭐 어떤가? 덤비는 놈이 있으면 박살을 내면 그만이고 놈들이 힘을 키운다면 자신은 더 큰 힘을 얻으면 그만이었다.
겨우 이 따위 위협에 몸을 사리고 꽁무니를 뺀다면 감히 폭력의 신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겠지.
때문에 로칸은 전폭적으로 그들을 지원했다.
1차 목표는 지상으로 올라온 지하 세계의 모든 고대 종족을 굴복시키는 것. 그에 따른 공허의 신을 포섭하는 것 또한 함께였다.
때문에 로칸은 카이스만에게 돌아가 보고를 하는 것도 잊고 잠시 세계에 빠져들었다.
자베라는 자신의 힘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지만 다른 놈들은 다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진정한 신으로써 자신의 추종자들을 지켜보며 지상에 올라온 고대 종족들이 토벌되는 것을 끝까지 확인했다.
그리고 몇이나 되는 하위 신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폭력과 파괴의 신 로칸][Lv 573]늘어난 것은 하위 신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지니고 있던 신성이 세계에 편입되면서 주신이자 세계의 주인인 로칸의 신성 또한 크게 불어났다.
고작 지상으로 올라온 몇몇의 고대 종족과 그들에게 붙은 하위 신을 포용했을 뿐인데도.
‘지하 세계에 고대 종족이 얼마나 있었더라?’
그렇다면 아예 지하 세계를 완전 정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신성의 양은 어떨까? 어쩌면 카이스만처럼 599레벨을 찍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기대를 하며 세계 : 명부마도에서 힘겹게 시선을 떼었다.
잠깐만 지켜본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접속 제한 시간에 가깝게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어쨌든 일단락해서 다행이군.”
뀨우!
그동안 로칸을 지키고 있던 카이가 기분 좋게 대답했다. 로칸에게 무언가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교감으로 아는 것 같았다.
***
“죽었다고? 그리고 그자 하나가 아니었다?”
접속 제한 시간에 걸려 보고가 늦어졌지만 카이스만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내용 자체가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변이의 신 키레마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던 신들까지 모두 공허에 침식당했다.
게다가 키레마는 한술 더 떠 일부 동물 신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 조각을 모아 키메라까지 만들었다.
그저 공허의 침식이 시작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잡아먹혔으며 다른 공허의 신들처럼 신계를 파멸로 몰아가려 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었기에 카이스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른 곳에서도 이미 공허의 침식이 시작된 신들을 발견해 제압하고 격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로칸이 발견한 사례는 그중에서도 가장 상황이 안 좋은 편인 것이다.
과연 그런 자가 키레마 하나뿐일까?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어딘가의 신이 그처럼 공허로 물들어 무언가를 꾸미고 있지는 않을까?
고민하던 카이스만은 문득 고개를 들어 로칸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네…… 많이 좋아졌군.”
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신성의 증가를 말하는 것일까?
아리송했기에 로칸을 씨익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보다, 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다음 상대는 없습니까?”
벌써 몸이 근질근질해진 것이다.
이제 지하 세계의 준동과 고대 종족, 공허의 신들의 위협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으니 새로 얻은 힘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 몸이 달았다.
“다음 상대라……. 다시 한번 당부하지만 이것은 자네의 전투 욕구를 채우기 위한 일이 아니네. 반드시 명심하고 꼭 필요한 일에만 힘을 써 주길 바라네. 어쩌면 곧 큰 파란이 일 수도 있으니 그때를 대비할 필요가 있을 걸세.”
로칸이 망나니처럼 날뛸 것을 염려했는지 카이스만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임무에서 배제 할 수도 없었다.
당장 키레마를 조사하는 일만 해도 어설픈 신을 보냈다가는 오히려 그에게 잡아먹혀 재료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니던가?
그만큼이나 확실한 무력을 갖춘 신은 정말 몇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다음 퀘스트를 부여했다.
[특이점 조사][퀘스트]신계를 구성하는 세 개의 특이점을 조사하라.
-성공 조건 : 신계 특이점 조사 0 / 3
-성공 보상 : 대량의 신성
“특이점요?”
당연히 특정 인물을 조사하거나 연행해 오라는 것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카이스만이 내린 퀘스트는 다소 의외였다.
특이점을 조사하라니? 대체 특이점이 뭐란 말인가?
로칸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카이스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신계를 구성하는 가장 큰 힘이 응집된 장소이네. 공허의 존재들이 손을 쓰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노릴 만한 곳이기도 하지. 가장 중요한 이곳은 내가 지키고 있지만 다른 세 곳은 숨겨져 있다고 하나 오래된 고신들이라면 그 위치를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아. 만약 그들이 공허에 넘어갔다면……. 신계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