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SS-Ranker Returns RAW novel - Chapter (52)
# 52
세계수의 새싹 (2)
“왜, 왜 그러시죠.”
“일단 비켜 보시죠.”
하프엘프들은 성큼성큼 다가오는 로칸의 모습에 긴장하면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채집하려던 세계수의 새싹이니 그럴 만도 했지만 로칸은 개의치 않고 즉시 행동을 취했다.
이 방법을 발견한 유저처럼 설득에 설득을 거듭할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 것이다.
결국, 결과로 말하면 그만이었다.
“어엇 ”
“안 돼!”
가벼운 몸싸움으로 그들을 밀어 낸 로칸은 즉시 품에서 중급 체력 포션을 꺼내 세계수의 새싹에 부었다.
고작 하나에 쏟아붓기엔 아까운 것이지만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역시 인간은……!”
채앵!
속았다고 생각한 것일까, 로칸의 돌발 행동을 막지 못한 하프엘프들은 즉시 무기를 꺼내며 적의를 불태웠다.
쩔그렁.
하지만 다음 순간 변화하기 시작한 세계수의 새싹을 보자 말없이 무기를 떨어뜨렸다. 입이 쩍 벌어진 채로 말을 잇지 못했다.
[자라난 세계수의 새싹]조금이지만 세계수의 새싹이 성장한 것이다. 다른 종족이었다면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기 전까지 몰라볼 수도 있는 작은 차이였지만 하프엘프들은 달랐다.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보고 경악했다.
이런 성장법이 있었을 줄이야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라 하며 로칸과 자라난 세계수의 새싹을 번갈아 보기만 할 뿐이었다.
“뭐 합니까 얼른 캐요.”
그런 그들을 향해 로칸은 별것 아니라는 듯 쿨하게 대꾸했다.
곧이어 채집이 마무리되자 한마디를 더 보탤 뿐이었다.
“갑시다. 최대한 많이 모으는 게 좋을 것 아닙니까.”
끄덕끄덕.
다시 순한 양이 되어 버린 그들을 이끌고 테칼로나 숲의 이곳저곳을 돌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그사이 틈틈이 세계수의 새싹을 발견하고 채집하는 것은 당연했다.
오염된 숲의 정령뿐 아니라 추가로 두세 가지의 몬스터가 랜덤하게 나타났지만 모두 로칸의 상대는 아니었다.
조합 스킬이 없는 이상, 놈들은 로칸에게 광산 코볼트보다도 낮은 수준에 불과했다.
“로칸 님 ”
몬스터를 처치한 다음에는 이제 자연스레 로칸을 찾는 하프엘프들이었다.
‘뭔가 호구 잡힌 기분이긴 하다만…….’
물론 그들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그런 고차원적인 수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순수한 애송이들이었으니까. 그 역시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에 돕고 있을 뿐이고.
피식 웃은 로칸은 그들에게 다가가 포션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아까와 같은 중급 체력 포션은 아니었다. 아무리 로칸이라 한들 1골드나 하는 그것을 어찌 함부로 사용할 수 있을까.
꺼내 든 것은 최하급 체력 포션과 하급 체력 포션이었다.
질 대신 양으로 커버를 해 볼 생각이었다.
쪼르르르.
“어…… 로칸 님 ”
한 통, 두 통을 쏟아부었음에도 전혀 변화가 나타나지 않자 하프엘프들이 의문을 표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로칸은 알고 있었지만 영문을 모르는 그들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흠, 이걸론 모자란가.’
한 병, 또 한 병 더. 로칸은 말없이 계속해서 포션을 따 부었다.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몇 병이나 더 필요한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시도해 볼 뿐.
그렇게 다섯 병쯤 더 붓자 변화가 찾아왔다.
“아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뻐하는 하프엘프들과 달리 로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혹시 몰라 넉넉하게 챙겨 오긴 했지만 효율이 영 꽝인 것이다.
이래서는 차라리 중급 체력 포션을 쏟아붓는 것이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저기,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만…….”
그때 은근한 목소리가 로칸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로칸의 머리를 스쳤다.
‘가만, 꼭 포션일 필요가 있나 ’
이 방법을 찾아낸 유저의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물은 안 된다고 했다. 특히 정제된 물의 경우 자연지기를 담고 성장해야 할 세계수의 새싹을 죽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하지만 로칸이 떠올린 것은 평범한 물이 아니었다.
“어, 그건 ”
로칸이 좀 전과 다른 병을 꺼내자 하프엘프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포션의 등급이 바뀌는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그가 지금 꺼낸 것은 ‘색깔’부터가 다른 것이다. 완전히 다른 용액이란 소리다.
하지만 로칸은 대답 대신 그것을 쏟아부었다.
액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청명 호수의 물’이었다. 단지 깨끗한 물처럼 보이지만 정순한 기운을 담고 있어서, 마시기만 해도 마나가 회복되는 효과까지 있는 ‘특별한 물’이다.
비싼 체력 포션을 붓는 것이 아깝기도 했지만 연금술로 제조된 포션보다 차라리 이편이 식물에게도 좋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 비롯된 시도였다.
“어어!”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이렇게 빠를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세계수의 새싹이 급격히 자라난 것이다.
운이 좋았는지 오염된 정령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세계수의 묘목]아예 한 병을 더 붓자 단숨에 묘목 수준까지 성장해 버렸다. 하프엘프들의 얼굴에는 경악이, 로칸의 입에는 미소가 걸렸다.
‘흐흐, 이거 보상이 뭐였더라 ’
자라난 새싹만 가져가도 상당한 보상을 받을 텐데 묘목이라니! 더구나 청명 호수의 물은 공짜였고, 장소 역시 아직 룬 북에 저장되어 있었다. 체력 포션보다 비싼 마나 포션을 구입하는 대신 빈 병을 사다가 청명 호수의 물을 떠 담아 두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세계수의 새싹을 발견하는 족족 묘목까지 성장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프엘프들에게 다시 채집을 지시한 로칸은 계속해서 이동하며 세계수의 묘목을 만들어 냈다. 덕분에 부피가 커졌지만 퀘스트이기 때문인지, 그들에게도 인벤토리가 있는 것인지 문제없이 쓸어 담을 수 있었다.
“여기, 여기에요!”
그리고 목적했던 테칼로나 숲의 중심에 도착했을 때, 하프엘프들이 격하게 흥분했다.
바로 세계수의 새싹이 밭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어림잡아도 이삼십 개 정도는 됨 직했으니 잡아야 할 몬스터도 열댓 마리 이상은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뽑기 운이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방에 끝내죠.”
그것을 잠시 바라보던 로칸이 결정을 내렸다. 오염된 정령들을 일시에 불러내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칫 세계수의 새싹들이 뭉개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위험을 반복적으로 갖게 되느니 차라리 한 방에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맡겨 주세요.”
로칸이 사정과 방법을 설명하자 하프엘프들의 눈이 반짝였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세계수의 재목들을 구해 갈 생각을 하던 그들이니 결의가 빛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시작합니다.”
그들이 자리를 잡자 로칸이 카운트다운을 했다.
“3, 2, 1……. 지금!”
촤아악!
아예 양동이에 모아 두었던 청명 호수의 물들이 일시에 뿌려졌다. 하프엘프들 중 하나가 부리는 정령들에 의해서.
-쿠오오오오오.
그와 함께 그 주변으로 몽글몽글한 기운이 피어났다. 오염된 정령들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실드!”
“아쿠아 실드!”
“디바인 실드!”
늦지 않게 하프엘프들도 힘을 떨쳤다. 마법사와 정령사, 사제 클래스가 가진 방어 주문들이 펼쳐지며 그들 자신과 발아래 있는 세계수의 묘목들을 지키는 것이다.
“크허허허허헝!”
그사이 로칸은 광기의 외침을 퍼트렸다. 거칠게 등장하던 오염된 정령들을 위축시키고, 모든 시선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이쪽이다!”
먼 녀석들에게는 손도끼를 던져 어그로를 끌어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놈들의 관심은 하프엘프들에게서 멀어졌고, 로칸은 천천히 물러서며 전장의 위치를 바꾸었다.
“놀아 보자!”
끼에에에에에엑!
오염된 정령들의 공격은 매서웠다. 나무 괴물이 뻗어 내는 줄기는 로칸을 낚아채기 위해 늘어졌고, 하늘에서는 괴조가 날카로운 부리를 앞세워 강하했다.
그걸 피하는 순간 품으로 뛰어드는 것은 돌도 씹어 삼키는 턱을 가진 투견이었다.
그런 놈들이 십여 마리. 조합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면 로칸으로서도 위험했다.
한 놈씩 끝장을 내고 싶어도 도저히 틈을 내어 주지 않고 몰아치는 통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만약 로칸의 경험과 컨트롤이 아니었다면 벌써 큰 상처를 입었거나 일방적인 수세에 몰렸을 터였다.
“그래, 원한다면 써 주마. 버서크!”
적당한 반격 정도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것을 파악한 로칸은 지체 없이 버서크를 발동시켰다.
내면에 잠들어 있던 강대한 힘과 고양감을 이끌어 내며 상황을 반전시켰다.
터억.
살점을 뜯기 위해 달려들던 투견 형태의 오염된 정령이 공중에서 붙잡혔다.
손가락을 씹든지 말든지 입에 손을 넣어 턱을 붙잡은 로칸은 아예 무기를 내려놓고 양손으로 놈의 윗니까지 붙잡았다.
쩍, 쩌저적. 푸확!
그대로 힘을 주어 입을 찢어 버렸다. 말도 안 되는 힘이었지만 오직 로칸이기에, 버서크를 사용했기에 가능한 무용이었다.
“크허허허허헝!”
이윽고 다시 한 번 광기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버서크까지 사용한 진짜 미친놈이 사용하는 광기의 외침. 순간 달려들던 놈들의 움직임이 정지됐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로칸은 즉시 모든 적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한발 먼저 몸을 날렸다. 적들을 농락할 동선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와 동시에 몸이 움직였다.
이제부터 싸움을 주도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치명적 일격!”
일단은 귀찮은 괴조들부터. 다행히 높이 나는 것은 아니어서 충분히 거리가 닿았다. 그 일격에 놈의 형체가 일그러졌다.
끼엑!
일반 공격의 치명타 확률은 30%였지만 치명타가 안 터져도 좋았다. 무기까지 바꾸고 강화한 덕분에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터져 나가고 깃털이 밀려 나갔으니까.
로칸의 도약에 급히 날갯짓을 하던 괴조가 기우뚱 허물어졌다. 일격에 날개가 잘리고 땅으로 끌어내려진 것이다.
“스로잉!”
로칸은 아예 파닥거리는 놈의 몸체를 그대로 집어 던져 나머지 놈까지 떨어뜨렸다.
퍼석.
로칸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쓰러진 괴물의 머리가 터져 나가고 뇌수가 발을 적셨다.
생명력이 가장 높은 나무 괴물은 철저히 따돌리며 새와 개의 형태를 한 오염된 정령들부터 철저하게 박살 냈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이지를 상실한 놈들조차 몸을 떨며 달아나고 싶어 할 정도였다.
“흥! 별것도 아닌 새끼들이.”
결과적으로 피해를 감수하고 달려들었음에도 로칸의 생명력은 처음의 20%밖에 줄어 있지 않았다. 버서크의 페널티를 더하더라도 여유 있을 정도였다.
제대로 된 공방이 아니라, 일방적인 구타에 다름없었으니 로칸이 손해 보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은 탓이다.
“안전지대 설치. 잠시만 쉬었다 가시죠.”
“물론입니다!”
하지만 후유증이 남은 상태에서의 전투는 아직 위험했다. 다시 하프엘프들에게 돌아온 로칸은 그들이 채집을 마치는 대로 안전지대를 설정하고 여유 있게 휴식을 취했다.
모든 버서크의 후유증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세계수의 새싹을 찾을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있는 테칼로나 숲의 중심부에는 최대 130레벨까지의 몬스터들이 어슬렁거리기 때문이다.
하나라면 모를까, 둘 이상이 덤벼든다면 로칸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지키며 싸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와 하프엘프들은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조심조심 길을 더듬어 숲을 빠져나오자 하프엘프들의 모습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퀘스트의 완수였다.
그들의 안전을 확보해 크로스로드까지 데려오는 것이 임무였지만 그 먼 길을 끝까지 호위해서 돌아가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이것은 게임이니까.
그 때문에 그들의 몸이 흐려지며 사라졌다.
이제 크로스로드로 돌아가면 먼저 도착해 있겠지.
“이걸로 슬슬 인증 퀘도 끝이군.”
그것을 알기에 로칸도 부담 없이 룬 북을 발동시켰다. 목적지는 크로스로드. 노움의 인증 퀘스트는 간단히 끝낼 수 있으니 종족별 인증 퀘스트도 이제 끝이었다.
남은 건 한 아름의 보상을 챙기는 것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