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SS-Ranker Returns RAW novel - Chapter (58)
# 58
피의 각인 (1)
하프엘프가 가장 먼저 3차 도시에 진출한 이유는 간단했다. 모든 능력치와 스킬이 강력해서 가장 쉽게 100레벨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전생에도 3차 도시 진출자가 나오기 시작한 한동안, 하프엘프라는 종족 자체가 너무 사기 아니냐는 말이 돌았었다. 능력치도 고르게 뛰어나고 스킬 위력도 강력한 전천후였으니까.
‘웃기는 소리지.’
하지만 그건 모르는 말이다. 모든 종족은 각자의 특징과 강점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노움은 손재주와 지능이 뛰어나 마법사로 적합했고, 드워프는 힘과 체력이 발군이어서 전사로서의 타고난 조건을 갖추었다. 인간은…….
‘가능성이라고 말은 한다만…….’
좀 애매하긴 했다. 다른 종족들에 비해 클래스의 제한이 적고 비교적 도시가 많다는 것을 빼면 이렇다 할 장점이 없었다.
물론 그것을 크게 써먹을 날이 오긴 하지만…….
‘그건 너무 멀어. 흠, 굳이 따지자면 수련장도 있겠군.’
수련장과 고급 수련장을 통해 여유 능력치가 아닌 방법으로 능력을 강화하는 것. 그것도 어쩌면 인간의 가능성 중 하나가 아닐까 다른 종족의 경우 비슷한 방식으로 능력치를 올리는 것이 무척 제한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상관은 없다. 지금 가장 앞서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로칸, 자신이니까.
“아니, 그러지 말고. 가격은 좀 더 쳐드릴 테니까…….”
“쯧쯧! 애송이들이 겉멋만 들어 가지고. 썩 꺼지지 못해 ”
그들은 로칸이 관찰하는 것도 모르고 상인 NPC에게 거래를 걸다가 대차게 쫓겨났다. 인간만큼 멸시를 당하지는 않지만 ‘인정’을 받지 못한 그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애송이 그 이상이 아닌 것이다.
그런 겁 모르는 햇병아리들에게 뭔가를 팔아 주고 가르쳐 줄 만큼 크로스로드의 상인들은 따뜻하거나 친절하지 못했다.
2차 도시까지가 푸근한 지방 도시였다면 여기는 차가운 도회지라고 볼 수 있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누구 잘못한 거 있어 마을 사람을 건드렸다거나 ”
“우리가 크로스로드에 도착하자마자 딴 데 안 새고 이리로 온 거 너도 잘 알잖아. 건드리긴 누굴 건드려.”
“하, 씨발. 그럼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진정해. 이 상점이 이상한 걸 수도 있잖아. 다른 곳으로 가 보자.”
“젠장, 이게 몇 번째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지 ”
“알아. 그러니까 일단 다른 곳으로 가 보자.”
인정 퀘의 존재를 알지 못하니 욕밖에 더 얻어먹을 게 있을까. 더구나 그들은 아직 인정 퀘를 받을 조건조차도 되지 않아서 잘못 도시 안을 어슬렁거리다가는 수비대에 끌려가거나 도시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그다음 주변에 돌아다니는 하급 몬스터나 잡으며 평판 작업을 해야겠지.
‘어 그러고 보니…….’
그런 그들을 보며 혀를 차던 로칸이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나도 수비대잖아 ’
예전에는 수비대 퀘스트를 건너뛰어서 까먹고 있었지만 자신도 엄연히 크로스로드 수비대의 일원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같은 권한을 부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것을 떠올린 로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신분 위장.”
자신의 신분까지 바꾼 채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소득 없이 상점에서 쫓겨나는 때에 맞춰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누가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신분 위장으로 이름과 외형은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수비대의 신분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크로스로드 수비대의 마크가 어깨에 드러났고, 그것을 알아본 하프엘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몇 번이나 욕을 얻어먹으며 수비대에 대한 얘기도 전해 들은 것이다.
그런데 그 수비대가 자신들의 앞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어찌 겁을 먹지 않을 수 있을까.
혹시나 도시에서 쫓겨날까 숨을 멈추고 반응을 기다리고 있을 때, 로칸의 연기 톤 대사가 그들을 조여 왔다.
“딸꾹!”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런 의도가…….”
“시끄럽다! 계속 소란을 피우려거든 당장 도시에서 떠나라!”
[크로스로드 수비대의 권한으로 대상을 도시 밖으로 내쫓으시겠습니까 ]으름장을 놓아 본 것인데, 그럴싸한 알림 창이 나타났다. 수비대의 권한으로 정말 놈들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정 퀘를 수행하기 전까지만 쓸 수 있는 제한적인 능력인 데다 쫓아낸다 해도 평판 작업을 하고 나면 다시 문제를 일으키기 전까지 직접 건드리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는 안 되지.’
하지만 로칸은 애초에 놈들을 쫓아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입 꾹 다물고 있겠습니다!”
눈을 부라리는 로칸의 모습에 놈들이 대번에 겁을 집어먹고 머리를 조아렸다. 어떻게든 도시에서 쫓겨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쯤하면 되겠군.’
그 겁에 질린 모습을 보며 로칸이 선심을 쓰듯 한마디를 더 보탰다.
“쯧! 애송이 냄새가 풀풀 나는군. 여기서 조금이라도 대우받으려면 그만한 일을 해라! 그래, 자이로폴 정도면 네놈들 수준에 딱 맞겠군. 듣자 하니 번화가 중심에 있는 상점에서 손이 부족해 너희 같은 애송이들한테도 물건을 받는다고 하니 거기나 가 봐라. 뭐, 5백 마리쯤이면 되겠지.”
“에엑 5, 5백 마리요 ”
“그 정도도 못 하는 건가 역시 애송이들은…….”
“아닙니다. 해야죠, 해요.”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로칸에게 그들은 홀딱 넘어갔다. 그러고는 딴소리를 할까 봐 얼른 몸을 낮추고 사라졌다.
로칸이 이야기한 번화가의 상점으로, 혹은 도시 외곽에 돌아다니는 자이로폴을 잡으러 갈 터였다.
‘그래, 내 대신 열심히 노가다 좀 해라! 크크크.’
그런 놈들의 뒷모습을 보며 로칸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자이로폴은 아르마딜로와 비슷하게 생긴 ‘물리 저항’의 특성을 가진 몬스터였다. 그 때문에 마법 공격력을 가진 스킬이 없으면 크게 감소된 물리 타격만으로 어렵게 상대를 해야만 하는 놈들.
문제는 한동안 3차 도시로 넘어오는 마법 계열 유저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3차 전직 퀘스트가 워낙 근접 계열에 유리하게 짜여 있어서 마법 계열이나 원거리 공격 계열이 전직에 성공하려면 좀 더 몬스터들에 대한 연구와 공략법이 확보되어야 했다.
물론 그 상성의 한계를 뚫는 괴물들도 있긴 했지만 그 수는 정말 소수이니까.
‘진짜 5백 마리쯤 잡아야 가능하려나 ’
이런 상황에서 로칸이 자이로폴이라는 이름을 퀘스트처럼 흘린 이유는 간단했다. 그만큼 놈들이 크로스로드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잡기가 까다로운 대신 선공형 몬스터가 아니라 위협이 되지 않는 자이로폴을 잡아서는 평판 작업을 마치기까지 한참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경험치는 근방의 몬스터들 중 가장 조금을 주니 레벨 업을 서두를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다.
‘그 절반만 해도 꽤 짭짤할 텐데.’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었다. 자이로폴이 드롭하는 ‘자이로폴의 가죽’은 돈이 되는 것이다.
놈의 가죽으로 방어구를 제작하면 물리 저항 옵션이 높은 확률로 붙기 때문에 한 장당 무려 50실버나 되는 가격으로 상점에 팔 수 있었다.
반면 로칸의 ‘자판기’에서는 그것을 5실버에 매입했다. 10배나 되는 폭리였지만 알게 뭔가. 유저들은 상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니 유저인지 NPC인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게다가 그들에게 물건을 사거나 팔아 주는 상점이라고는 없을 테니 직접 제작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용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포션 같은 소모품이라도 구입할 돈을 마련하려면 말이다.
‘당분간은 창고와 통합 경매장도 못 쓰니 다른 도시에서 대량으로 구입해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지.’
둘 중 하나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여러 꼼수를 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불가능하다.
인벤토리를 소모품으로 꽉꽉 채워 다닌다면 모르겠지만 매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이거, 괜찮은데 ’
그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저들이 어렵게 얻은 정보를 쉽게 풀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이 풀면 될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만약 모두가 돈 되고 경험치와 평판 수치 낮은 몬스터를 퀘스트처럼 잡아 댄다면
‘돈도 벌고 격차도 벌릴 수 있겠지.’
결정을 내린 로칸은 즉시 잡화점으로 가 펜과 종이를 구입했다. 그리고 ‘방문자들을 위한 가이드’를 쓰기 시작했다.
내용이 길 필요도 없었다. 아니, 필사를 맡겨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길면 곤란했다.
“다 됐다.”
로칸이 작성한 가짜 방문자 가이드의 내용은 이러했다.
1. 로칸이 지정한 몇 종류의 몬스터를 잡다 보면 도시에 ‘소문’이 돌게 된다.
2. 이후로도 계속 사냥을 반복하다 보면 평판이 올라가 도시민들이 퀘스트를 주기 시작한다.
3. 해당 퀘스트를 받아 수행하다 보면 그들의 인정을 받아 도시의 일원이 될 수 있다.
4. 도시의 주요 건물들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들은 아니었다.
다만 로칸이 지목한 몬스터가 돈 되고 평판치와 경험치는 더럽게 안 주는 놈들이라는 것과, 평범한 퀘스트로는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물론 각 종족의 수장들도 크로스로드의 일원이니 그 또한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을 완성한 로칸은 즉시 필사 의뢰를 맡겼다.
수비대가 의뢰서나 현상 수배 등의 전단을 만들면서 의뢰하는 곳이 있었기에 제법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판매 설정.”
로칸은 몇 뭉치나 되는 ‘방문자를 위한 가이드’를 자판기의 판매 아이템으로 등록시켰다. 일단 벤더를 고용하면 고용인의 의사에 따라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찍어 낸 몇 가지 전단을 들고 상점 밖으로 나섰다.
“도시 전체를 돌려면 한참 걸리겠군.”
그것은 일종의 광고지였다. 마을의 게시판과 빈 벽에 붙이기 위한 상점 홍보 전단지를 간단히 만든 것이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 ‘방문자와도 아이템 거래’, ‘방문자를 위한 가이드 판매’라는 두 문구만으로도 유저들은 달려갈 수밖에 없을 터였다.
마구잡이로 붙였다가는 강제 철거를 당하거나 수비대에게 불려 갈 수 있지만 로칸은 정당하게 비용을 지불한 상태였다.
한 달에 10골드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상관없다.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일단 소문만 제대로 난다면 이후에 유입되는 유저들에게는 별도의 홍보가 필요 없었다.
‘게시판을 이용하면 편하기야 할 테지만…….’
그렇게 되면 ‘의심’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게임 내에서 벽보 형태로 홍보를 한다면 그 누가 유저의 상점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있으랴.
그리고 그 작은 오해 덕분에 로칸은 앞으로 운신하기가 훨씬 편해질 터였다.
그렇게 로칸은 밤이 올 때까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크로스로드의 곳곳에 홍보 전단지를 붙여 댔다.
마침내 밤이 찾아왔을 때, 피곤한 몸을 이끌고 트뤼엘 남작의 별장을 찾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