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SS-Ranker Returns RAW novel - Chapter (59)
# 59
피의 각인 (2)
똑똑.
가만히 문을 두드리자 약속한 것처럼 음침한 집사가 나타나 로칸을 맞이했다. 그리고 곧 트뤼엘 남작이 내려왔다. 아픈 딸을 재우고 내려온 모양이었다.
“내가 말한 것을 준비해 왔다고 자네 실력이 생각보다 좋은 모양이군. 역시 크로스로드 수비대다워! 그렇다면 한 가지만 더 믿고 부탁하겠네. 지금까지 모은 재료들을 가지고 트리티카를 찾아가 주게. 그에게 이것들을 주면 뭔가를 만들어 줄 거야. 그걸 내게 가져다주면 되네.”
[트뤼엘 남작의 어린 딸 회복 3][퀘스트]트뤼엘 남작이 자신의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 당신에게 도움을 청했다. 저주받은 트롤의 피와 뜨거운 양의 피, 두꺼운 양가죽을 주술사 트리티카에게 전해 주고 한 가지 물건을 받아 오자.
-완료 조건 : 주술사 트리티카에게 물품 전달
-보상 : 10골드
“맡겨 주십시오.”
씩씩한 답변과 함께 로칸은 그에게 주었던 세 가지 물품들을 모두 담은 상자를 받았다. 그리고 주술사 트리티카가 있는 장소에 대해서도 은밀하게 전해 들었다.
‘새끼, 수작 부리기는.’
트뤼엘 남작이 이처럼 조심스러운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주술사 트리티카라는 자가 ‘고블린’이기 때문이었다.
고블린은 오크, 언데드, 트롤과 함께 황금사자 진영과 대치되는 검은용군단 진영의 종족. 즉, 인간들의 주적과 다름없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 딸을 살리려는 것이라 해도, 황금사자 진영에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고 해도 알려진다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유저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아직은 마땅한 전쟁 지역 한 번 거쳐 보지 않았으니 대부분 스토리겠구나 생각하며 들어줄 터였다.
하지만 로칸은 아니었다.
‘어린 딸을 살리기는 무슨. 다 개소리지.’
그는 모든 전말을 알고 있었으니까.
일단 트뤼엘 남작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어린 딸 분명 윗방에는 어린아이가 잠들어 있지만 트뤼엘 남작의 딸은 아니었다.
오히려 납치된 아이였다. 그것도 아주 맛있는 먹이로서.
‘그때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
사실 힌트는 있었다. 남작이 ‘밤’에만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부터가 너무 눈에 보이는 힌트였다. 다들 퀘스트 보상인 대량의 골드에 눈이 멀어 제대로 보지 못했을 뿐.
뱀파이어.
트뤼엘 남작의 진짜 정체는 뱀파이어였다. 그리고 납치해 딸로 위장한 소녀에게는 ‘특별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하이엘프’였으니까.
엘프 중에서도 아주 고귀한 소수의 혈통을 가진 이들. 그 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뱀파이어는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트뤼엘 남작이 유저들에게 내리는 퀘스트는 너무나 신성한 그녀의 피를 희석시키기 위한 일종의 사전 작업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하이엘프의 피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순간, 그의 오장육부가 녹아내릴 테니까.
이미 강력한 진조 뱀파이어라면 모를까, 트뤼엘 남작 정도의 수준에서 하이엘프를 노리는 건 지나친 욕심이었다.
‘안개의 골짜기였지.’
트뤼엘의 별장을 나오는 순간 표정을 바꾼 로칸은 일단 그의 지시를 따라 움직였다. 고블린 주술사 트리티카가 있다는 안개의 골짜기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트뤼엘 남작과 달리 놈은 낮에도 만날 수 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속전속결로 끝내려는 것이다.
[안개를 먹는 하이에나][Lv 115]커헝!
하지만 가는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안개의 골짜기는 이름 그대로 가시거리가 짧은 짙은 안개가 낀 지역이었고, 그 안에는 110~120레벨에 이르는 몬스터들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귀찮군.’
능력치나 공격력, 방어력을 보면 로칸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 놈들이지만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그 숫자가 제법 많아지니 꽤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었다.
“파괴의 돌진!”
그 때문에 로칸은 아예 몸으로 밀어붙였다. 열 마리든 스무 마리든 일단 달고 움직인 다음, 어느 한 지점에서 몽땅 쓸어버린 뒤 편하게 이동하려는 것이다.
꺼엉!
물론 그 와중에 얻어걸린 놈들은 그대로 뻗어 버리기도 했지만 로칸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누구보다, 또 어떤 클래스보다 광전사를 사랑하는 로칸이지만 다대일에서 재미를 보기 어렵다는 것은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었다.
나중에 가면 선택에 따라 나아지게 될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룹을 지어 몰이사냥을 시작할 선두 그룹에게 따라잡힐까 걱정하는 것이고.
‘가만, 정말 방법이 없나 ’
돌진과 살육을 반복하던 로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생각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동시에 하나의 아이디어도 스쳐 갔다. 어쩌면, 꽤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 구상을 계속해서 이어 가며 안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멈추시게.”
그리고 한참 뒤, 안개의 골짜기 끝자락에 위치한 고블린 주술사 트리티카가 나타났다.
“놀랄 것 없네. 누군가 올 것이라는 것은 점을 쳐서 안 것이니.”
트리티카는 딱 보기에도 전형적인 주술사의 모습이었다. 허름하지만 유서 깊어 보이는 나무 지팡이를 쥐고, 치렁치렁한 장신구들을 잔뜩 매단 채 로브를 둘러쓰고 있으니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그리고 로칸이 올 것을 알았다는 듯, 환히 웃으며 환대했다.
“트뤼엘 남작님이 보내셔서 왔습니다.”
로칸도 굳이 날을 세울 생각은 없었다. 들고 있던 배틀 액스는 등 뒤로 돌려 매었고 두 손 꽉 차게 가져온 재료 상자를 들어 그에게 건넸다.
“으흠, 얘기한 그대로군. 잠시만 기다리게.”
온전히 상자를 넘겨받은 그는 작업대로 보이는 곳에 양의 가죽을 펼치더니 어떤 약품을 바르고 가벼운 주술을 펼쳤다. 그러자 낱장이던 양피지가 커다란 한 장으로 붙기 시작했다.
주술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꺼낸 것은 붓이었다. 두툼한 붓을 한 자루 꺼내는가 싶더니 먼저 뜨거운 양의 피를 듬뿍 찍어 양피지 위에 무언가를 그려 갔다. 그다음은 저주받은 트롤의 피 차례.
두 가지 피를 사용해 순차적으로 어떤 문양과 글자들을 적어 가는 트리티카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문양과 글자를 그려 넣는 그 작업 자체가 하나의 주술인 까닭이다. 덕분에 놈이 무방비로 노출되었지만 로칸은 가만히 기다렸다. 주술이 완성되기를.
로칸이 이 퀘스트를 통해 진정으로 얻으려 했던 것은 경험치도 돈도 아닌 바로 이것, [피의 각인]인 것이다.
“자, 완성되었네. 이제 가져가게.”
[피의 각인][레어][퀘스트]몸에 문신 같은 피의 각인을 새겨 강한 흡혈의 기운을 몸 안에 담는다.
-사용 시 [피의 각인] 효과 발동
뱀파이어인 트뤼엘의 힘을 더욱 강화시켜 줄 물건이었다.
물론 막상 가져가 보면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며 하이엘프의 피를 더럽힐 다른 재료들을 가져오라고 요구하지만 로칸은 그걸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발바닥에 땀이 차도록 놈의 요구를 들어줘 봤자 결국 얻는 건 돈 몇 푼이 전부인데 그럴 바에는 놈의 것을 가로채는 편이 더 이득인 것이다.
[피의 각인을 사용하셨습니다.] [영구적으로 ‘적중 시 생명력 흡수(3%)’를 획득하셨습니다.] [각인은 강화나 삭제할 수 없습니다.] [각인은 종류에 따라 최대 습득 가능 수량이 정해집니다.] [현재 각인 수 : 1/5]그 때문에 로칸은 트리티카에게 넘겨받은 피의 각인을 즉시 자신에게 사용해 버렸다. 각인은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었지만 로칸에게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원래 얻으려 했던 ‘생명의 각인’이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이미 기대 이상의 타이틀들을 얻으며 충분히 대신할 만한 능력을 얻은 상태였다.
‘생명력 흡수 각인이 더 귀하니까.’
어차피 각인 시스템이 제대로 활용되기 시작하는 것은 지금보다 한참 뒤의 일이었고, 그중에서도 ‘생명력 흡수’ 능력은 매우 귀한 것이다.
특히 공격력의 3%나 되는 생명력을 흡수하는 능력은 나중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게다가 각인 슬롯도 하나밖에 차지하지 않았다.
퀘스트 아이템이기에 수준을 높게 잡아 둔 것인데 로칸이 그것을 전하지 않고 꿀꺽해 버린 것이다.
전생에도 누군가 실수로 이것을 사용하면서 알려진 이후, 콘돌이 나서서 1%로 하향 패치를 해 버렸다. 이미 얻은 자들은 어쩔 수 없었지만.
“자, 자네 그걸……!”
힘들게 피의 각인을 만들어 낸 트리티카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미래를 점치는 그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오늘이 자신의 제삿날이 될 줄은.
서걱.
피의 각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로칸은 즉시 놈의 목을 베어 버렸다.
이미 큰 주술을 사용하느라 많은 힘을 뺀 상태였으니 변변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생명력이 바닥을 치고, [트리티카의 목]이라는 아이템이 인벤토리로 들어왔다.
“푼돈을 버느니 이게 백배 낫지.”
로칸은 즉시 귀환 스크롤을 사용해 크로스로드로 돌아왔다.
좀 더 사냥을 하다 돌아올까도 생각했지만 적어도 여기는 아니었다. 차라리 1 대 100으로 싸웠으면 싸웠지 지금처럼 안개가 잔뜩 끼어 시야 확보도 안 되는 전장은 그도 사양이었으니까.
하지만 곧장 수비대로 향하는 일은 없었다. 말킨에게 트리티카의 목을 보이면 곧장 트뤼엘 남작을 쫓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트뤼엘 남작을 처단하고 납치된 하이엘프를 되찾는 것은 꼭 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은 한밤중. 굳이 적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줄 이유가 없었다.
말킨의 급한 성격을 알기에 수비대 대신 상점가로 방향을 잡았다.
‘잘해 주고 있군.’
일단 로칸은 자신의 상점부터 들렀다. 아직 들를 만한 자들은 거의 없겠지만 자판기에 들어오고 나간 상품들을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양의 자이로폴 가죽이 들어와 있음을 확인했다. 그래 봤자 서른 개가 조금 안 되는 정도이지만 이만한 숫자를 얻으려면 적어도 쉰 마리는 족히 잡았다는 소리였다.
요령만 붙는다면 열흘이 아니라 엿새에서 이레만 돼도 5백 마리 처리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약발이었나 ’
그리고 포션과 약초도 제법 팔린 상태였다. 시세보다 곱절에 가깝게 비싼 가격이지만 꽤나 많은 수량이 빠진 걸 보면, 물약발로 버티면서 사냥 속도를 올린 모양이었다.
‘돈만 충분하면 그게 제일 빠르긴 하지.’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이라 추천할 만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초반에 치고 나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생각하면 그리 나쁜 방법도 아니었다.
아직 물건을 새로 채워 넣을 만큼 소진된 것은 아니었기에 확인만 마친 로칸은 밖으로 나왔다. 구상해 둔 것을 실행하기 위해 광전사 길드를 찾았다.
네 번째 조합 스킬.
그것을 만들기 위함이다.
“포스랑 돌격, 단단한 육체, 그리고…… 트위스트 어택 스킬 북을 주십시오.”
언뜻 봐서는 잘 매칭이 되지 않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값을 치르고 스킬 북을 받아 든 로칸은 개구쟁이처럼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합 스킬 생성.”
[원하시는 스킬 조합을 위한 액션 클립 또는 스킬 북을 지정해 주세요.]잠시 무기를 꺼내 액션 클립을 만든 로칸은 신이 난 목소리로 스킬 조합을 마무리했다.
“액션 클립 등록. 포스, 단단한 육체, 돌격, 트위스트 어택.”
[조합이 가능합니다.] [조합 스킬의 예상 사용 모습을 보시고 조합 완료 버튼을 눌러 주세요.] [조합 완료 시 스킬 북은 사라지고 조합 스킬을 자동 습득하게 됩니다.]화면에 나타난 모습과 설명은 썩 만족스러웠다. 막상 사용해 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자신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조합 완료!”
[조합 스킬의 이름을 지정해 주세요.]로칸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네 번째 조합 스킬의 이름을 소리쳤다.
“휠 윈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