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0)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10화(10/110)
10
조용한 가운데 울려 퍼진 혼잣말.
그 투덜거림이 너무 잘 들린 것이 문제였다.
[아니! 이 떡메로 메친 것처럼 눌어붙은 절편 같은 놈이! 감히 이 몸이 인정한 …에게 되먹지 못한 막말을!]반응은 청화가 빨랐다.
하도 길길이 날뛰는 바람에 로운은 오히려 반대로 침착해졌다.
“…뭐요. 뭘 쳐다봐요?”
“지금 제게 하신 말씀이신가요?”
로운이 묻자 남자, 김정률의 미감이 팍 구겨졌다.
“그쪽 얘기면 왜요. 어쩌라고요.”
맞나 보다.
[콱 멱을 똑 따 버릴까 보다! 이로운아! 가서 작두를 대령하라 해라!]청화가 펄펄 뛰었고 로운의 미간에도 금이 갔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는 멍텅구리로 사는 건 이제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것이 불과 며칠 전.
하지만.
‘일단은 참자. 지금 상대하면 더 피곤해져.’
지금은 아니었다.
멍청하게 살지 않겠다는 것도 결국 죽지 않아야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일단은 살기부터 해야지.’
그러니 지금은 오디션에만 집중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생각한 로운이 다시 종이로 집중하려는 순간.
“그쪽 연기력, 진짜 개판 맞잖아요.”
로운이 신경을 끄는 게 아니꼬웠던 상대가 또다시 빈정댔다.
문제는 그것도 모자라.
“그런데 같은 팀 됐으니 재수 없는 거 맞지 않나? 하필이면 대사도 같이 쳐야 하고. 대사 하나 제대로 못 치는 그쪽이랑 묶였으니 나까지 개판으로 보일 게 뻔한데. 웬만큼 수준이 돼야 상대할 만하지. 재수 없게.”
급발진을 했다는 것이다.
‘아. 팀이라는 게 그런 의미였나?’
그룹으로 묶은 이유가 서로 배역을 나눠 연기 상대를 해 주기 위해서였나 보다.
“늘 하던 대로 돈이나 처발라서 따갈 것이지 왜 하필 안 하던 짓을 해서 애먼 사람 발목을 잡아요? 왜 하필이면 나랑 붙는데? 그쪽처럼 대사 하나도 제대로 못 외워서 저는 사람이랑 대사 시너지가 나겠냐고.”
이러면 또 얘기가 달라지는데.
‘왜 이렇게 적대적인가 했더니 본체랑 안면이 있는 사람인가 본데.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언제고 본체의 업보가 찾아오리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게다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 보면 앞으로 가는 걸음걸음마다 이런 사람들이 즐비할 텐데. 내가 꼭 해결해야 하는 건가?’
얼마나 망나니짓을 했으면 스쳐 지나가는 지원자 1도 본체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건지, 원.
이미 매니저에게 들어 대충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심했다.
‘해명은 답이 아니야.’
일이 터질 때마다 나서서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달라진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럼 구설수도 자연히 줄어들게 되기 마련인 법.
‘…가리온은 그걸 제대로 못해서 망했지만.’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부터는 아니다.
가리온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부분부터 실패했기에 처참하게 망할 수밖에 없었다.
‘죽기 전 기억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다니. 인생은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그러는 사이에도 지원자 1, 김정률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지정 대사들을 다 외우기는 했어요? 아니, 지금 받은 그 대본, 외울 수나 있겠어요? 저번에는 기껏해야 뭐 한 줄이나 되나? 고작해야 몇 마디도 제대로 못 쳐서 NG를 수십 번이나 내던데. 댁 같은 사람이 촬영 현장에 껴 있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줄이나 압니까?”
그의 불만 어린 눈동자가 로운을 위아래로 훑었다.
“하여간 그때나 지금이나 겉멋만 들어 가지고. 배우에겐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이런 게 바로 과거의 업보로군.’
이미 나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최악이었다.
‘생각해 보니 굳이 지금 입을 다물어야 할까?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큰 그림을 그리며 침착할 것을 종용하는 자아와 다시 살아나며 참지 않기로 한 자아가 대립했다.
잠시 첨예하던 대립은 곧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여기서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인정하는 꼴이 되어 버리잖아.’
되살아난 후에도 이런 말에 얌전히 있는다면 가리온 때와 달라진 게 뭐란 말인가?
가리온 때는 꽂히는 말들이 대부분 진실이라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래서 로운은 말하기로 했다.
“전부 외웠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한참 악의 섞인 말을 쏟아내던 김정률의 입이 막혔다.
그가 인상을 쓰더니 되물었다.
“외웠다고요?”
“네. 외웠는데요. 그리고 혹시 해서 말씀드리지만 지정 대본도 다 외워 왔습니다.”
고작해야 두 장 정도 되는 분량의 대사.
거기에 조금 더한 양이래 봤자 네다섯 장 정도의 분량이다.
그 정도는 그저 한두 번 훑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심심풀이라니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심심풀이라니!
지금 여기서 가장 간절한 사람을 꼽자면 당연히 로운이다.
이쪽은 지금 무려 죽음이 걸려있다.
옛날 고전 소설의 주인공처럼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와, 이젠 말도 안 되는 거짓말까지 하네.”
“외웠다는 걸로 거짓말을 왜 해요? 어차피 곧 들킬 일인데?”
로운이 이런 식으로 대꾸를 할 줄은 예상 못 했는지 김정률이 버벅였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빤히 바라봐 주자 김정률의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거, 조용히 좀 합시다. 대기실 혼자 씁니까?”
때마침 시기적절하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같은 팀으로 배정받은 심새로였다.
한쪽에 삐딱하니 앉아서 대본을 들여다보고 있던 심새로.
그가 슥 고개를 들며 말하자 김정률이 이로운과 심새로를 번갈아 보며 움찔했다.
“젠장…….”
그러더니 작게 욕설을 중얼거리고는.
쾅!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대기실을 나섰다.
‘저래도 되나?’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내 할 일이나 하자. 시간이 아까워.’
로운은 곧 신경을 껐다.
살짝 억울해서 대꾸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어그로는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심지어 심새로마저 김정률의 이탈에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음. 이렇게 삐걱대는 팀으로 오디션을 봐도 되는 걸까…….
그런 걱정도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뭐… 언제는 팀원들이 문제 없던 적이 있었다고. 지금 와서 그런 걸 따지겠어.’
정말 팀 복이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다니.
그래도 나름 이전 가리온 때부터 삐걱대는 그룹을 어떻게든 끌고 온 짬밥이 로운에게는 있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역시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로운 씨, 김정률 씨, 심새로 씨. 곧 들어가실게요. 근데 김정률 씨 어디 가셨나요?”
순서를 알리러 온 스태프가 대기실 안을 죽 둘러보며 물었다.
“헉헉, 김정률, 헉, 여기 있습니다!”
“함부로 자리 비우시면 곤란해요.”
“죄송합니다. 잠깐 집중 좀 하느라 바람 좀 쐬러…….”
“일단 다 따라오세요.”
헐레벌떡 뛰어온 김정률을 맨 마지막으로 그들은 오디션 장소로 안내되었다.
들어가자마자 반긴 것은 다름 아닌.
[별빛(의뢰자)가 격렬한 그리움을 드러냅니다!] [별빛(의뢰자)가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별빛(의뢰자)가…….]파파팍 떠오른 메시지 창들이었다.
지금 이게 다 뭐람.
[아니, 이 양반아. 지금 그렇게 좋아할 때가 아니야! 우리 애 집중해야 한다니깐! 허튼 데 힘쓰지 말고 아껴 둬! 좀 이따 써야지!]다행히 청화의 말이 먹혔는지 팝콘처럼 끊임없이 떠오르던 메시지 창이 잠잠해졌다.
점점 투명하게 사라지는 창 너머로 안의 풍경이 비쳤다.
이쪽을 향한 카메라 두 대와 정면에 자리한 큰 테이블이 보였다.
‘심사위원들이네. 저 사람이 김성하 감독인가?’
조금 당황스러웠다.
딱 봐도 아주 의욕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반쯤 의자에 묻힌 듯한 늘어진 자세며 이쪽을 볼 생각도 없는 듯한 무기력한 느낌까지.
다른 심사위원들도 알고 있는지 관심을 돌리려는 것처럼 일부러 과도하게 친절한 모습을 보였다.
“아이고,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자기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오른쪽부터 해 주시면 되겠네요.”
심사위원의 말에 맨 오른쪽에 있던 김정률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률이라고 합니다. 연기는 8년 차며 민들레 극단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으로는…….”
김정률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뭔가를 끄적이던 심사위원이 말했다.
“오. 민들레 소속이에요? 연기 잘하시겠다. 거기 웬만큼 연기 잘하지 않으면 안 받아 주잖아요. 그 정도면 주연 생각하시는 거예요?”
“하하, 제가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역할은 어떤 역이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런 열정적인 자세 좋네요. 자, 그럼 다음으로 심새로 씨?”
심사위원의 지목을 받은 심새로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김정률에 비해 단출하지만 깔끔했다.
그리고 다음 순서로는…….
“어디 보자. 다음은 이로운 씨네요. 오, 배우시네요? 이번 팀은 전부 경력자분들이시네요. 그럼 이로운 씨 소개를… 음? 잠깐만. 배우? 이로운?”
로운의 차례였다.
헌데 심사위원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진짜 이로운 씨?”
“……?”
“허, 참. 이로운 씨가 오디션도 봐요?”
어째 말하는 게 이전 몸 주인을 알고 있던 사람인 모양이었다.
‘무명이라지 않았나? 인지도는 제로면서 악명만 이렇게까지 높은 것도 정말 재주라면 재준데…….’
하필 그 업보를 자신이 뒤집어쓰게 되다니.
대체 얼마나 패악질을 부리던 망나니였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심사위원은 김정률처럼 급발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쪽을 바라보는 눈길이 좀 심드렁해졌을 뿐이다.
“자, 우리가 잡담하려고 모인 건 아니니 연기를 좀 볼까요? 지정 연기는 모두 다 잘 준비하셨을 테니 패스하고, 현장 연기를 보고 싶은데요. 준비되신 분부터 앞으로 나와 주시면 됩니다. 저희가 나눠 드렸던 대본 중 하나를 지정해 드리면 그걸 해 주시면 돼요. 상대역은 지금 계신 분들 중 한 분으로 고르시고요.”
심사위원의 설명에 김정률과 심새로가 움찔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곧 마음을 굳힌 듯한 김정률이 앞으로 나섰다.
“오, 김정률 씨. 좋아요. 상대는 누구로 하시겠어요?”
“이로운 씨로 하겠습니다.”
“오… 이로운 씨, 하시겠어요?”
“네.”
어째 김정률의 시선이 이글이글거리는 게 심상치 않다.
‘일부러 엿 먹이려는 것 같기는 한데.’
이쪽도 호락호락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대본은 ‘나의 친애하는 로미오에게’로 진행해 주세요.”
심사위원이 지문을 고르자 김정률이 이로운을 향하여 고개를 까딱했다.
그 앞에 서며 이로운은 생각했다.
‘감정 연기에 자신이 있나 보네.’
대사로 채택된 지문은 격한 감정이 드러나는 씬이었다.
연기력이 받쳐 주지 못한다면 국어책 읽기처럼 뚝딱거리는 장면이 될 터.
“제가 여주를 맡겠습니다. 이로운 씨는 남주를 맡아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 지문의 시작은 남주가 먼저다.
즉, 로운이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 대본 보셔도 됩니다.”
몰입을 위해 로운이 잠시 숨을 가다듬는 것을 오해한 심사위원이 말했다.
“아뇨, 다 외워서 괜찮습니다.”
대본을 들고 있던 김정률이 움찔했다.
“음… 뭐, 그래요. 그럼 시작하세요.”
후우.
로운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내 최선을 다하는 거야.’
같은 지원자는 대놓고 견제를 하고.
심사위원은 아예 기대를 내려놓은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심호흡을 한 로운이 눈을 감았다 떴다.
그와 동시에 대사가 시작되었다.
“나를 써.”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절제된 차분한 목소리.
그러나 그럼에도 그 기저에 넘실대는 감정의 폭풍이 여실하게 느껴지는 아슬아슬한 이중성까지.
“다른 사람 말고 나를 써서 그 자리에 올라가.”
그렇게 말하는 로운은 더 이상 한때 망나니였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랑 앞에서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남자만이 남아 있을 뿐.
그리고 잠시 후.
“이로운 씨? 이로운 씨 본인 맞죠? 뭐 대리로 보는 거나 그런 거 아니죠?”
맑은 눈의 광인처럼 희열에 찬 얼굴을 한 감독이 그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