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01)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101화(101/110)
101
시험대나 다름없는 첫 대본 리딩.
별다른 동작 없이 대사만 읊는 리허설임에도 실전을 방불케 하던 연습이 끝났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조준철 피디가 공식적인 마무리를 알리자 그 어느 때보다도 몰입되었던 분위기가 느슨하게 풀어졌다.
‘다행히 합격점은 받은 것 같네.’
처음 대강당에 들어설 때부터 리허설을 진행하는 중간중간까지.
로운의 순서가 올 때마다 온갖 감정을 담고 노골적으로 쏠리던 시선들이 오래 걸리지 않아 호감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의 주인공은 환세비원록의 주연을 맡은 서우주였다.
-거기 서우주 나온다며.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가 세 개나 있다는 의미의 ‘트리플 천만’ 타이틀을 보유한 배우 서우주.
그런 서우주가 환세비원록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는 기사가 떴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강차헌이 오랜만에 연락을 한 것이다.
-가서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넌 서우주만 확인해.
-네? 서우주 씨를요?
-그래. 연기에 되게 결벽적인 성격이라 연기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안 쓰는 타입이야. 연기만 제대로 하면 소문이건 뭐건 아무것도 상관 안 하는 편이기도 하고. 반대로 연기를 못하면 상대의 인지도가 어떻든 간에 독설부터 박는 편이고.
무슨 얘기를 하려고 연락했나 했더니.
물어보지도 않은 정보를 줄줄 알려 준다.
천만 영화를 세 개나 가지고 있는 서우주다.
그 정도면 작품을 보는 눈도 뛰어나고 그 작품을 살릴 만한 실력도, 능력도 있다는 얘기일 터.
커리어가 어마어마한 만큼 프라이드도 높으리라는 예상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기는 했지만.
‘연기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 타입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정보였다.
강차헌이 아니었다면 전혀 몰랐을 터.
‘아니, 고맙기는 한데 이렇게 갑자기?’
의아해서 물어보자 생각지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서우주 반응이 괜찮으면 그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신경 안 써도 돼. 너 정도면 서우주 기준에도 별일 없겠지만. 너 가끔 제발 저린 어린애처럼 사서 걱정하는 것 같던데 그거 쓸데없으니 그러지 말라고 하는 말이야. 쓰잘데기 없는 걱정할 시간에 잠이라도 더 자던가.
툭툭거리지만 마치 강차헌이 이쪽을 염려했다는 것처럼 들렸다.
-혹시 해서 묻는 건데… 설마 걱정해 주는 거예요?
믿기지 않아서 묻자 수화기 너머에서 짧은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뚝!
‘……?’
연락이 왔을 때처럼 뜬금없이 통화가 끊어져 버렸다.
평소라면 뭔가 싶겠지만 그때만큼은 아니었다.
‘무려 그 강차헌이 이런 기특한 행동을 하다니?’
이건 아무리 봐도 이쪽을 염려해서 한 연락이 맞았다.
이런 기특한 행동이라니?
그동안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 괜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어쨌거나 서우주와 함께 여러 작품을 함께 했던 강차헌의 증언이다.
그래서일까.
대강당에 들어서자마자 이쪽으로 날아와 꽂히는 여러 차갑고 못마땅해하는 눈초리들 중 가장 독보적인 것이 서우주의 것이어도 로운은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뭐, 그거야 연습한 걸 제대로 보여 준다면 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과연 강차헌의 말처럼 대본 리딩이 마무리되었을 때.
실시간으로 업보 수치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게 호의적으로 변한 것이 서우주였다.
“목 안 말라요?”
“네?”
“대사 분량이 많았잖아요. 목마를 텐데? 앞으로도 대사 칠 일 많을 텐데 미리미리 목을 아껴 둬야죠.”
“아, 감사합니다. 서우주 님.”
시작 전에는 사적 대화는커녕 초반을 제외하고는 이쪽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던 서우주가 로운을 향해 여분의 생수병을 내민다.
“앞으로 계속 작품 같이할 건데 그때마다 님자 붙여서 부를 건 아닐 테고. 그냥 간단하게 불러요.”
이 갑작스레 시작된 대화에 놀란 것은 로운뿐만이 아니었다.
은근하게 이쪽을 주시하던 배우들 사이에서 소리 없는 감탄이 퍼져 나간다.
“그럼 어떻게…….”
“선배라고 불러요. 앞으로 자주 봐야 하는데 극존칭 듣는 건 나도 부담스러우니까.”
“네, 선배님.”
로운이 배시시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이자 서우주가 대수롭지 않게 손을 저었다.
“됐어요, 뭐 그런 걸로 인사까지.”
연기를 잘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너그럽다는 강차헌의 증언이 진짜임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그 덕인지 첫 리허설임에도 매끄럽게 진행되어 마무리까지 깔끔하고 완벽하게 끝나 훈훈하던 분위기가 한층 더 화기애애하게 바뀌었다.
처음 들어설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때마침 현장 촬영을 온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던 조준철 피디가 서우주를 찾았다.
“우주 씨. 잠깐 인터뷰 가능해? A매거진에서 짧게 인터뷰 좀 따고 싶다는데.”
“네. 갈게요. 그런데 피디님. 뭐가 걱정되셨다는 거예요?”
“으,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웃으며 다가온 조준철이 삐거덕대었다.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 작품이라 부담되는데 퀄리티를 올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고요.”
“하, 하하하! 내가 그랬나? 요새 많이 바빠서 그런지 기억이 잘 안 나네……?”
타이밍 좋게 조준철 피디의 머리 위로 거짓이 떴다.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린 조준철 피디가 로운의 눈치를 살피더니 서우주를 재촉했다.
“아이고, 기자님 기다리시겠네. 후딱 하고 옵시다!”
허겁지겁 자리를 뜨는 조준철의 뒷모습을 보는 로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만약 그가 모자란 모습을 보였다면 조준철은 저렇게 도망가는 대신 기회를 잡은 것처럼 로운을 비난했을 터.
그 비난은 분명 로운을 지나 이정혜에게도 향했으리라.
로운을 이 드라마에 캐스팅한 것은 이정혜이니 말이다.
하지만 연기광인 서우주가 인정할 정도의 결과물을 낸 덕에 허겁지겁 도망가는 것은 로운이 아니라 조준철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지. 분명 작가님은 피디님한테 귀인이어야 하는데 어째 작가님과 연관된 말만 했다 하면 다 거짓말투성이니, 원.’
조준철은 이정혜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첫 만남의 대화를 복기한 뒤 로운이 내린 결론이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준철 피디는 자신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 망쳐질 위험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로운의 실력이 형편없기를 바랐다.
비록 그 바람은 로운이 못마땅한 시선들을 한 번에 일축시킬 만큼의 연기를 선보이며 실패로 돌아갔다지만.
‘대체 이유가 뭐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로운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연기를 선보이는 것.
오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면 조준철 피디의 속셈도 자연스레 알게 될 터.
‘조급한 사람이 실수를 하기 마련이니까.’
로운은 그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에게는 이호 같은 예지 능력은 없지만.
어째서인지 그때가 멀지 않다는 알 수 없는 예감이 들었다.
* * *
대본 리딩은 끝났지만 자리까지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끝나고 뒤풀이 겸 식사 자리 준비되어 있습니다~!”
조준철이 서우주와 사라진 뒤 조연출이 알렸던 소식 덕분이었다.
집필 스케줄 때문에 불참하게 된 이정혜를 제외한다면 거의 출연진 대부분이 뒤풀이에 참석했다.
앞으로 몇 달 동안 동고동락할 사이이기도 하고, 촬영장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칠테니 미리미리 친분을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공식 스타트를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덕분인지 뒤풀이 자리는 대본 리딩 때보다 조금 더 편하고 풀어진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오늘 딱 감이 왔다니까. 이 작품은 대박이 날 수밖에 없어.”
주인공 설희연의 조력자인 해묵이 부리는 두 도깨비 중 하나인 싸리비 역할을 맡은 배우 박종선이 말했다.
그는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대본의 퀄리티를 봤다면 확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흥행이 보장된 원작에다가 심지어 이 초월 대본을 완성한 사람이 원작자다. 이건 될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게다가 첫 리허설까지 깔끔하게 마무리된 데다가 현장의 기자들 반응까지 몹시 호의적이다.
환세비원록에 출연하는 배우라면 누구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에이. 난 대본 볼 때부터 딱 느낌 오던데. 받자마자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사인부터 했잖아.”
“전 원래 원작 팬이어서요. 지금 이거 기대하고 있는 팬들 완전 많아요.”
“그나저나 첫 리허설에 이렇게 합이 딱 맞는 경우도 드문데 말이죠.”
“어휴. 난 캐스팅 기사 뜰 때마다 심장이 떨렸다니까. 저런 배우들 사이에서 내가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하고.”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 다 그런 사람들만 모여 있구만!”
한껏 훈훈하게 달아오른 분위기 덕인지 듣기 좋은 덕담이 오고 갔다.
그러다가.
“그러고 보니 나 처음엔 작가님이 배우 하나 끼워 넣었다길래 걱정했었거든.”
누군가 불쑥 꺼낸 화제에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일순 가라앉았다.
주어는 없지만 누굴 겨냥했는지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소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기우였나 봐. 봐봐. 우리 분위기 완전 좋았던 거. 난 우주 씨한테 잡아먹히나 했는데 웬걸?”
로운은 순식간에 제게로 쏠리는 눈길을 느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있는 음료를 마셨다.
로운의 눈치를 슬쩍 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보탰다.
“캐스팅한 분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원작자님이신데, 뭘. 솔직히 누가 그 역할 할지 궁금했는데 소설에서 튀어나온 것 같더만.”
“맞아. 감정 변화 폭도 적은 캐릭터라 자칫하면 어색하게 혼자 둥둥 뜨지 않을까 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더라고.”
“원작 생각하면 젊은 친구가 맡아야 하는 역할인데 가능한가 싶었거든. 괜히 작가님이 데려오신 게 아니라니까.”
대본 리딩이 있기 전까지는 로운이야말로 옥에 티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다.
단역이라면 모를까.
주연은 아니지만 주인공 못지않게 등장하는 씬이 많은 것이 해묵이다.
주인공인 설희연을 돕는 조력자이자 설희연이 힘에 부칠 때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나타나 일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비록 주연은 아니지만 등장 빈도도 잦으며 임팩트도 큰 역할이 바로 해묵이었다.
‘한마디로 연기력이 허술한 사람이 맡으면 망하는 역할이라는 거지.’
등장할 때마다 임팩트가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해묵인데 연기력이 딸리면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밍숭맹숭한 결과만 나올 게 뻔했다.
극의 전체적인 긴장감이나 흐름도 흐지부지 느슨해지다 보면 재미 또한 반감될 터.
“연기만 잘하면 된 거죠. 어떻게 들어오고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
로운의 맞은편에 앉아서 반찬을 집어 먹던 서우주도 끼어들어 한마디를 거든다.
“그치? 우주 씨가 뭘 아네. 배우야 연기만 잘하면 되는 거지.”
그 덕에 잠시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다시 화기애애해지려는 찰나.
“잘 모르시나 본데, 요새는 연기만 잘한다고 다는 아닐걸요?”
불퉁한 목소리가 찬물을 끼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