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02)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102화(102/110)
102
‘이건 뭐 얼렸다 녹였다 얼렸다 녹였다 황태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가 괜찮아질 만하면 누군가 냅다 재를 뿌려 버린다.
싸늘해진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찬물을 뿌린 이가 말했다.
“요새 대중들이 얼마나 이미지에 민감한데요. 문제 있는 배우 쓰다가는 자칫하면 편성도 엎어질 수도 있을걸요? 시청자들이 한 사람 때문에 작품 보이콧하면 얼마나 손해예요. 안 그래요?”
끼어드는 타이밍부터 그렇더니만.
아예 이쪽을 바라보는 눈길에 적대감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로운은 상대를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대본 리딩 때부터 계속 노려보던 사람이네.’
리허설이 진행될수록 로운에게 와닿는 시선들의 대부분이 호의적으로 변해 갔다면.
그 와중에도 꿋꿋하게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백자 역할의 하지환이 그랬다.
하필이면 백자 역시 해묵이 부리는 두 도깨비 중 하나인 탓에 유난히 로운과 나누는 대화가 많았다.
‘그때마다 얼굴이 뚫어져라 노려보더니만…….’
뒤풀이까지 와서 이렇게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본체랑 악연이 있는 사람인가?’
대체 이놈의 본체는 얼마나 적을 만들고 다녔길래.
자세한 사연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만 될 뿐이라는 것을.
그 뼈아픈 교훈을 로운은 죽음을 겪고 나서 깨우쳤다.
상대의 공격이 명백히 그를 향한 만큼.
지금이야말로 나서야 할 때였다.
물론.
“그러게요. 아무래도 문제 있는 배우가 있다면 곤란하겠어요.”
똑같이 이를 드러내고 적대시하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다.
로운은 미소를 지으며 하지환을 바라보았다.
“하지환 배우님께서는 정말 이 작품을 많이 아끼시나 봐요.”
“하!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출연하기로 한 거지.”
그 대답에 로운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그럼 걱정 없으시겠다. 문제 배우가 있으면 곤란하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그런 배우가 없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보이콧도 안 당하고 정말 다행이에요. 그쵸?”
마지막으로 생긋 미소를 지어 주자 이제 하지환의 얼굴은 터질 듯이 붉어졌다.
“하. 지금 누구 얘기를 하는 건데 대체…….”
“누구 얘기를 하시는 건데요?”
정말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자 기가 막히다는 것처럼 컹, 코 먹는 소리를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운은 상대를 빤히 응시하며 미소만 지어 보였다.
예로부터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더랬다.
본체는 눈꼬리가 올라간 편이라 웃지 않으면 쌀쌀맞아 보이지만 반대로 웃을 때는 그 이미지가 완전히 180도 변한다.
오죽하면 본체의 업보를 지게 된 로운도 외형만큼은 인정하지 않았던가.
“그, 아니. 그러니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인지 스턴에 걸린 듯 제대로 된 말을 내뱉지 못했다.
때마침 옆에서 지원사격이 들어왔다.
“그러게. 여기 사고 친 분 있어요? 있으면 지금 자수해요.”
맞은편에서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던 서우주였다.
이쪽을 살피던 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하나둘씩 말을 보태기 시작했다.
“아이구. 요새 이미지 중요한 거 모르는 사람도 있남?”
“조 피디님이 얼마나 이 작품에 사활을 걸고 계시는데 설마 문제 있는 배우를 캐스팅했겠어요?”
“그치. 얼마나 이를 갈고 계시는데 설마 그런 기본적인 실수를 하셨겠나.”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 와중.
“근데 이 얘기는 갑자기 왜 나온 거래요?”
누군가가 의문을 제시했다.
“몰라. 백자가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것 같은데?”
곧장 모두의 시선이 이번엔 하지환에게로 향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이미지를 신경 써야 하는 게 맞는데… 그게 그러니까 문제가 있는 사람은 하차하는 게……!”
대놓고 판을 깔아 주자 하지환의 버벅임이 더욱 심해졌다.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 것 같기는 한데.’
애초에 저격하면서 나선 것도 이쪽을 겨냥한 것이었다.
아마도 평판이라는 단어로 물꼬를 트면서 발끈하면 그걸로 어떻게 몰아가려고 한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하지환이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내가 본체가 아니어서 발끈할 일이 없다는 거지.’
아마도 망나니처럼 굴던 본체가 같이 대거리를 해 주기를 바랐던 모양이지만…….
‘너무 자료조사가 부족한 거 아냐?’
공격할 대상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고 오다니.
이런 일차원적인 도발에 어울려 주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는 없다.
다들 아닌 척하고는 있지만 그가 어떻게 나올지 은근하게 기다리는 것이 느껴졌다.
애초에 하지환의 말에 로운의 눈치를 본다는 것 자체가 이들도 어느 정도 그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니까.
“하긴. 하지환 씨 말이 맞아요. 문제가 있는 사람은 하차를 하는 게 맞죠.”
“그러니까 당신이……!”
“그런데 우리 작품에는 그런 분이 안 계셔서 참 다행이지 뭐예요. 그쵸?”
“……?”
로운의 말에 드디어 때를 잡았다는 듯 눈을 빛내던 하지환의 말문이 또 한 번 막혔다.
“아니면, 하지환 씨가 아는 어떤 소스라도 있으신 건가요? 정말 그런 분이 계시면 당장이라도 피디님께 말씀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 잠깐. 잠깐만요.”
로운이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굴자 하지환이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너라고 너.
녀석의 눈빛이 그렇게 간절하게 속삭이고 있었지만 로운은 모르는 척 눈만 깜빡였다.
“왜요? 마침 피디님 저기 계시니까 제가 가서 모셔올게요.”
모르는 척 되물으며 슬쩍 몸을 일으키자 하지환이 황급히 로운을 말렸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아. 공개적으로 말씀하기 어려우신 거구나. 그럼 제가 피디님께 살짝 말씀드릴게요.”
“잠깐, 좀……!”
“아니면 설마. 별다른 증거도 없이 그냥 카더라 가지고 괜한 사람을 잡으려던 건 아니시겠죠?”
“그…….”
입꼬리를 끌어올려 매끄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자 하지환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지진을 일으킨다.
까딱하다가는 증거도 없이 소문만으로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를 퇴출시키려 모함하는 나쁜 놈이 될 위기다.
물론 증거가 확실하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녀석도 알고 로운도 알았다.
‘증거가 있을 리가 없지.’
생각해 보면 본체가 망나니처럼 굴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적은 없다.
더구나 원래 바닥이었으므로 추락할 이미지 따위도 없다.
그러니 로운이 굳이 저자세를 자처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보아하니 계속해서 시비를 걸 것 같은데 확실히 잘라 놔야지. 작품에 집중하기도 바쁜 와중에 이런 쓸데없는 시비에 낭비할 시간도 심력도 없으니까.’
강약약강.
괜히 이 말이 생겨난 게 아니다.
약하게 나가면 얕잡아 보이기만 할 뿐이다.
‘어디 어떻게 나오나 한번 볼까?’
로운이 생긋생긋 웃는 얼굴로 하지환을 계속해서 빤히 바라보자 하지환의 기세가 점점 더 초라하게 사그라들었다.
“그게…….”
칼을 뽑았다가 무도 썰지 못한 하지환이 불쌍해 보였는지 지켜보던 다른 배우가 슬쩍 끼어들었다.
“에이. 설마 지환 씨가 그런 의도로 그랬겠어요? 그냥 그런 경우가 있다~ 그런 말을 하려던 거겠죠.”
“맞, 맞습니다.”
하지환이 구명줄이라도 잡은 것처럼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인다.
실질적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너무 심각하게 얘기해서 정말 그런 사람이 있는 줄 알았잖아~”
“그러게. 여기 소문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는 게 이 바닥이잖아. 안 그래?”
“맞지, 맞지. 그나저나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문제 생기나 놀랐구만 알고 보니 그냥 지환 씨가 너무 걱정을 한 거였구나?”
하하호호 웃으면서 건네는 말들 속에 뼈가 들어 있다.
이 순간 확실해졌다.
하지환은 앞으로 이 주제로 또다시 말을 꺼내지 못할 것이다.
피디에게 말할 깜냥도 없으면서 괜히 입방정이나 떨어 대는 이미지를 본인이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그러게 왜 괜히 시비를 걸어서는.’
간신히 얻은 두 번째 기회.
그 기회를 망치려는 놈을 가만히 두고 볼 정도로 로운은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아, 그러신 거였구나. 제가 너무 걱정이 앞섰나 봐요.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지환 씨.”
“그… 하아. 아닙니다….”
웃으며 막타까지 날리자 이제는 하얗게 재가 된 하지환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완전한 패배 선언이었다.
“좋네요. 이렇게 작품을 여러 방면으로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는 게.”
물론 하지환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기사화될 정도가 아니라면 솔직히 말해서 연기력이 받쳐 주는 쪽이 더 낫기는 하죠. 까놓고 말해서 인품이 훌륭해도 연기가 개판이면 아무도 안 써 주잖아요? 뭐, 연기도 못하고 문제도 있는 사람이라면 나가 죽어야 하고요.”
서우주가 덧붙이는 말에 안 그래도 형편없던 하지환의 얼굴이 더 팍삭 일그러졌을 뿐.
‘아까부터 계속 도와주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대본 리딩 이후 가장 눈에 띄게 태도가 바뀐 것이 서우주이기는 했다.
게다가 방금의 말은 대놓고 로운을 두둔하는 말이기도 하고.
‘강차헌이 왜 서우주 씨를 두고 연기 광인이라고 했는지 알겠네.’
서우주가 방금 한 말은 하지환을 두 번 죽이는 말임과 동시에 논란이 있더라도 연기력을 더 우선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연기를 못하면 얄짤없다는 소리이기도 하고.’
정말이지 연기 광인이라는 표현이 딱이었다.
서우주의 말에 형편없던 하지환의 얼굴이 더 팍삭 일그러지는 찰나.
“아이고. 분위기가 왜 이렇게 가라앉았어요? 이렇게 즐거운 첫 회식 자리인데!”
상황이 대충 마무리되었다 싶었는지 넉살 좋은 박종선이 화제를 돌렸다.
맡은 ‘싸리비’ 배역도 그런데 배우 본체도 한 넉살 하는 듯이 분위기를 바꾸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작품, 다들 읽어 봤죠?”
언제 분위기가 얼어붙어 있었냐는 듯, 또다시 한껏 풀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
누군가가 원작 이야기를 꺼냈다.
“당연히 다 읽었지. 원작을 안 읽고 어떻게 연기를 해? 원작이 없는 작품이면 몰라도, 있으면 읽는 게 맞지.”
“왜 유명한 베스트셀러인지 알겠던데요. 아주 그냥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다 읽어 버렸다니까요?”
다들 기다렸다는 듯 본인이 읽었던 원작의 감상을 쏟아놓는다.
그러던 때.
“그나저나 좀 무섭지 않았어요? 나만 좀 으스스했나?”
한 연기자가 밤에 무서운 꿈까지 꿨다며 과장되게 어깨를 떨었다.
“아무래도 작품 주제가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다루는 거다 보니까 나도 새벽에는 좀 괜히 목덜미가 선득하고 그렇기는 하더라고요.”
“헐,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게 또 귀신도 나오고 그러잖아요. 아휴. 작가님이 너무 리얼하게 잘 쓰셔 가지고 진짜 어딘가 있을 일 같기도 해서.”
아마 그 진짜 있는 일이 맞을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