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09)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109화(109/110)
109
배우를 인맥으로 끼워 넣는 정도야 사실 업계 관행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러니 해도령의 요구도 그리 무리는 아니었다.
그게 이정혜와의 계약 조건과 상충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 * *
“아유. 작가님이 직접 그렇게 말씀하시는 배우라면 꼭 캐스팅해야지요. 당연하고말고요.”
인맥 플레이야 업계 관행인 만큼 이정혜가 내민 특약 조건 중 하나 역시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게 조준철의 앞날에 그림자를 드리울 줄도 모르고.
그때의 조준철은 얼른 환세비원록을 호로록 삼킬 생각에 마음이 들떠있던 상태였다.
때문에 또 다른 특약 사항을 이정혜가 내밀었을 때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더랬다.
“각색과 대본 제작을 직접 하시겠다고요?”
배우 정도야 업계 관행이지만 이건 얘기가 좀 달랐다.
원작자가 직접 제작에 개입하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한 특이 케이스.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조준철은 다 잘될 거라는 해도령의 말을 떠올렸다.
‘뭐, 상관없겠지. 대본이야 아무나 데려와서 장단만 맞추게 시키려고 했었으니까.’
그게 원작자가 되어도 상관은 없을 터.
뭣도 모르고 덤벼드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작가와 드라마 작가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제법 큰 차이가 있다.
지문으로 등장인물의 행동 동기나 속마음, 이야기 흐름을 설명할 수 있는 소설과는 달리.
드라마는 온전히 대화와 행동만으로 모든 것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쓸데없는 대화를 늘어놓으면 흐름이 늘어지고.
대화가 너무 적다면 시청자들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사를 읽는 것과 말로 내뱉는 것의 차이도 의외로 크며, 눈으로 읽을 때와 직접 대사를 칠 때의 느낌 차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대본을 보고 무슨 대사가 이따위냐고 느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길이길이 대사로 회자되는 씬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미묘한 차이와 황금 밸런스를 잡는 것은 베테랑 드라마 작가들이라도 쉽지 않은 법.
‘뭐, 좀 해 보다가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겠지.’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봐야 아는 양반들이 있다.
조준철은 너그럽게 원작자 이정혜의 실패를 기다려 주기로 했다.
본인이 못하겠다고 두 손 두 발 들고 나가 주면 더 좋고.
“…그래. 거기서부터가 문제였던 거야.”
생각을 한참 거슬러 올라갔던 조준철이 드디어 시발점을 찾아냈다.
“그렇다고 지금 엎을 수도 없고. 하…….”
중얼중얼.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조준철을 피해 조연출 하광용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어느새 편집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줄도 모르고 조준철은 두통이 이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아니, 대체 그 할망구가 그렇게 잘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아직도 모니터에는 방금 전 이정혜가 보낸 초고가 떠 있다.
제풀에 알아서 떨어져 나가겠거니 했던 때엔 생각지도 못할 퀄리티였다.
초고임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어디를 흠잡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나 할까.
조준철의 눈에 해묵의 대사가 보였다.
[해묵: (설희연을 바라보며 혀를 찬 후) 네 한 몸이나 잘 돌볼 것이지. 어디서 뭘 또 주워 온 건데? 자선사업이라도 하려고?]문제는 이 해묵이란 인물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해묵을 맡은 배우가 문제라고나 할까.
하필이면 이정혜가 꽂아 넣은 배역이 바로 해묵이었다.
바로 이로운이 맡은 역할이다.
‘하 진짜… 이놈 대체 뭐지?’
이로운.
눈엣가시 같은 놈.
‘대체 이정혜랑 무슨 관계이길래 제대로 된 필모도 영화 하나밖에 없는 놈이 주조연급으로 꽂힌 거지?’
심지어 이정혜는 해당 배역에 이로운을 캐스팅하지 않는다면 계약 자체를 없던 일로 하자고까지 했다.
당시에는 괜찮겠거니 싶었다.
말했다시피 업계 관행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해도령이 끼어들면서 이야기가 복잡해졌다.
-내가 배우 하나 쓰라고 했었지? 보니까 해묵이라는 역할이 괜찮아 보이니 그 배역 줘 봐.
하필이면 해도령이 골라도 해묵을 고른 것이다.
이미 내정된 사람이 있다고 얘기해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뭐? 너 망하고 싶어? 몇 년 동안 쪽박 찬 것도 모자라 아예 풍비박산 나서 길거리에 나앉고 싶어서 그래? 뒷방 늙으니라고 욕 들어 처먹는 게 아직 부족했어?
-다른 배역은 안 되겠습니까? 꼭 해묵이어야 해요?
-내가 괜히 사람 하나 데려다 쓰라고 한 줄 알아? 걔가 네 귀인이야. 걔를 갖다 써야지 네 일이 잘 풀리는 거라고. 걔는 주목받을수록 빛나는 애야. 걔가 잘 풀릴수록 너 역시 잘 풀린다니까?
-원작자가 특약으로 걸었다니까요? 저라고 안 드리고 싶어서 안 드리는 게 아니에요.
-보인다, 보여. 본전도 못 찾고 쪽박 차며 길거리로 나앉겠구나. 재기는 꿈도 꾸지 말거라. 제 복을 걷어차도 유분수지.
아쉬운 건 자신이 아니라는 듯 주저 없이 몸을 돌리는 해도령을 조준철이 기겁하며 붙들었다.
-아니, 도령님. 그렇다고 그렇게 야박하게 손 털고 가시면 어떡합니까? 뭐라도 방법이 없습니까?
쉰 소리 말라며 몇 번을 뿌리치던 해도령이 못 이기는 척, 은근하게 말을 흘렸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제가 못하겠다고 박차고 나가면 그만이지 않겠어?
-……!
조준철의 머리 위로 번쩍, 전구가 떴다.
-그 말씀은…….
-우리 피디님이야 약속을 지켰지만 본인이 싫다고 떠나는데 어째. 안 그런가? 그럼 그 남은 자리, 나 주면 되겠다. 그치?
확실히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그가 자리를 뺏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박차고 나가는 걸 무슨 수로 막겠는가?
곧장 머릿속으로 이로운을 자진 하차시킬 만한 몇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역시 도령님이십니다. 그럼 제가 꼭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래. 바로 그 자세라고. 복이 어디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줄 알아? 쟁취해야 하는 법이야.
-그럼요. 그럼요.
-자, 그럼 우리는 계산을 좀 해 보자고.
-예?
-네 복, 달아나는 거 내가 막아 주는 값은 쳐 줘야지. 누누이 말하지 않았어? 신령님께 보답하지 않으면 부정 탄다고?
-…….
당장 배역을 넘길 수 없는 건 사실이었다.
순식간에 거렁뱅이가 된 통장을 보며 조준철은 다짐했다.
절대로 이로운을 해묵 역에서 자진 하차시키고야 말겠다고.
* * *
이로운을 자진 하차시키겠다는 조준철의 야심찬 결심은 아쉽게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요새 기자들 돈 벌기 참 쉽죠?
└ㅈㄴ게을러 빠져 가지고 어디서 다 쉰 떡밥만 가져옴
└22 새로운 소스라도 발굴하는 성의라도 좀 보여라
“…….”
생각보다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이래서는 곤란했다.
투자자나 광고주들이 당장 하차시키라고 성화를 부릴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똑바로 말 전달한 건 맞아?”
“예, 예… 전달했습니다…….”
“근데 반응이 왜 이따위야! 내가 자극적으로 쓰라고 했지, 자극적으로!”
“말씀대로 했는데…….”
조준철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었다.
“야. 이런 간단한 일 하나 제대로 못 해? 꼴 보기 싫으니까 어디 처박혀 있어. 알았어?”
“…예.”
한차례 조연출인 하광용에게 온갖 신경질과 패악을 부리자 화가 좀 가시는 것 같았다.
‘저놈의 새끼는 저래 가지고 무슨 입봉작 타령이야 타령이긴.’
쯧!
벌써 몇 년째 데리고 있는 놈이건만 일처리 하나 제대로 빠릿하지 못한 것이 몹시 못마땅했다.
그나마 센스가 있고 보는 눈이 나쁘지 않아 데리고 있을 뿐이지, 아니었다면 진즉 내쫓아 버렸을 것이다.
역시 못 미더운 놈에게 맡긴 것이 잘못이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이런 일까지 직접 해야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아, 왜 아직도 안 꺼지고 있어?”
산만 한 덩치가 우물쭈물거리며 거슬리게 머뭇대고 있었다.
“저, 피디님… 그… 연락이 와서요……. 고소… 한다고요.”
“…그래? 고소한다고?”
“예… 올렸던 글들은 일단 다 지우긴 했는데…….”
“하… 환장하겠네.”
그럼 또 곤란하지.
조준철은 생각을 바꿔 먹었다.
만약 경찰 조사에서 출연 배우를 욕한 게 제작진이라는 것이 드러난다면 쪽도 이런 개쪽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그래. 이렇게 쉽게 갈 수 있을 리가 없지.’
딱 봐도 이로운은 독한 놈이었다.
예쁘장하게 생기긴 했지만 워낙 눈빛부터가 강렬했다.
항상 순하게 웃고 있어서 그렇지, 카메라에 불만 들어오면 사람 자체가 달라지다시피 변했다.
표정을 지우면 그것만으로도 제법 박력 있는 편이기도 하고.
모니터 너머로 보는 조준철도 가끔은 섬뜩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더구나 그 연기.
아무리 이로운에게 악감정이 있는 조준철이라 할지라도 연기만큼은 깔 수가 없었다.
‘차라리 연기라도 좀 못했으면 얼마나 좋아!’
그 핑계로 쥐잡듯이 잡아서 못 견디고 탈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빈말로라도 연기를 못한다고는 절대 말할 수가 없었다.
만약 연기력을 트집 잡는다면 대번에 ‘조준철 퇴물이라더니 감 다 떨어졌네’라는 소리만 나올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귀인이면 뭐 하냐고. 연기를 못하는데!’
하필이면 해도령이 들이민 배우는 연기력이 참… 빈말로라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로운의 대체역으로 쓰기에는 한없이 수준 차이가 난다고나 할까?
결국 그의 귀인은 해묵이 아닌 해묵이 부리는 도깨비 역할을 우선적으로 쥐여 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정규 멤버로 등장하는 배역 중 하나였다.
그나저나.
‘이로운 그 인간, 정말 내 생각을 읽어 내는 건 아니겠지?’
얼마나 연기를 잘하냐면 뭐라고 미처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마치 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마음에 쏙 드는 컷을 뽑아낸다.
아니, 기대 그 이상의 장면을 뽑아내 남몰래 감탄할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얼마나 귀신 같은지 연기할 때 소름이 돋을 때도 왕왕 있었다.
사실, 더 소름이 돋는 일은 따로 있었다.
‘왜 자꾸 신경 쓰이게 쳐다보는 건데?’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이로운이 매번 속을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다.
왠지 그의 거짓말을 다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켕기는 짓을 해서 제 발이 저린 것일 뿐이리라.
하여간 예쁘장하게 방긋방긋 웃는 얼굴 뒤로 독한 성격을 숨기고 있는 그놈.
그 독한 놈이 이런 얄팍한 수에 바로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여튼 알았으니 그 일은 그만둬.”
“예…….”
“한 번에 잘하자. 한 번에. 응?”
“예에…….”
첫 번째 방법이 처참히 실패했지만 괜찮다.
아직 조준철에게는 이미 생각해 둔 다른 방법이 있었으니까.
그것도 이로운과 이정혜를 한 큐에 묶어 보내 버릴 만한 방법이.
입가에 떠오른 음침한 웃음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조준철은 핸드폰을 들어 주소록을 뒤졌다.
뚜르르르-
신호가 가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아이고, 우리 조 피디님 아니신가? 오랜만이에요?”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