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1)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11화(11/110)
11
“나를 써.”
짧기만 한 대사.
그러나 귓가에 때려 박히는 맑은 목소리는 순간적으로 사람들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응? 잠깐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이상을 느낀 것은 고작 한 문장으로 된 대사를 듣고 난 직후였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나름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다.
심사위원은 물론이요, 지원자인 김정률 또한 스스로 이 바닥에서 제법 굴렀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 말고, 나를 써서 그 자리에 올라가.”
그 생각은 이어지는 대사에 깨끗하게 휘발되고 말았다.
곧게 응시해 오는 맑은 눈동자.
그러나 그 안쪽에 휘몰아치는 격한 풍랑은 소용돌이처럼 김정률을 휩쓸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뭔가를 억누르는 듯한, 얌전히 상대의 말을 따를 것 같으면서도 언제든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
그 양극의 감정 사이로 줄을 타는 위태로움까지.
“이로운 씨? 이로운 씨 본인 맞죠?”
자신도 모르게 끌려가듯 몰입해 있던 김정률이 화들짝 놀라 몸서리를 쳤다.
방치된 파절임처럼 축 늘어져 있던 감독이 눈을 빛내며 외친 소리 때문이다.
“감독님! 지금 오디션 중이니까, 쉿! 쉿!”
“아니, 잠깐 얘기 좀…….”
“감독님 아까부터 갑자기 왜 이래요? 안 그러던 사람이 이상하게 구네. 아이고 미안해요. 계속해요.”
중간에 스태프가 난입하여 흥분한 감독을 제지했다.
감독이 갑자기 왜 저러지?
아니지, 갑자기 이상한 건 감독이 아니라 이로운인 건가?
김정률의 머리가 과부하를 일으켰다.
“너, 너… 되게 이상한 말을 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김정률은 첫 대사를 더듬고 난 뒤였다.
‘망할. 큰일 날 뻔했잖아!’
다행히 빠르게 수습한 덕에 실수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감정을 위해 일부러 한 박자 끊어 가는 것처럼 처리한 덕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드러난 당황스러움은 표정 연기로 탈바꿈했다.
모든 실수를 완벽하게 수습했지만, 김정률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대체 뭔데, 이 사람?’
김정률은 나름대로 이로운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때 이로운에게 배역을 빼앗겼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저, 조감독님. 죄송한데 제 이름이 없는데요…….] [아아, 그거. 미안하지만 그거 딴 사람이 하게 됐어. 미안한데 다음에 같이하자, 응? 내가 좀 바빠서 다음에 얘기해.] [아니, 저! 감독님? 감독님!]다시 생각해도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기억이었다.
비록 단역이라지만 그 모든 것이 김정률에게는 하나하나 중요한 커리어였다.
여러 배역을 맡으며 경력을 쌓고, 그 경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점점 더 중요한 역을 맡게 된다.
게다가 놓친 그 역할은 조연급 중에서도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뭐. 그래!
사실 그런 일은 언제고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니 치사하고 더럽지만 참을 만했다.
문제는 이로운이 그 역을 맡은 이후 하도 발연기인 탓에 대사가 줄고 출연이 줄고 줄고 또 줄어 아예 한 컷 짜리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는 점에 있었다.
‘내가 했으면 그보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예쁘장하게 생겨서 분명 겉멋만 들어 배우 해 보겠다고 나대는 부류인 게 분명했다.
피지컬만 번드르르하고 연기력도 뭣도 좆도 없는 마네킹 같은 인간.
심지어 그 예쁘장한 얼굴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시체 같은 머저리.
그것이 이로운에 대한 김정률의 평가였다.
이로운의 그 이후 행보까지 염탐했던 그에게 그 생각은 변함없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는.
그런데.
“왜 안 되는데? 어차피 나 이용하려고 접근한 거잖아.”
이 감정선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아니, 이 사람은 대체 누구지?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절대로 이로운일 수가 없었다.
그는 이렇게까지 입체적이고 사람을 한순간에 홀리게 하는 연기 따위는 하지 못하는 밋밋하고 평면적인 인간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 보이려는 것 같지만 잘되지 않아 미세하게 일그러지는 표정.
무엇이든 받아 줄 것처럼 애달프게 굴다가도.
“근데 왜 안 되는데?”
결국엔 품고 있는 격랑에 잠겨 우울하게 가라앉는 무거운 눈빛까지.
스스로 연기를 잘한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던 만큼 김정률은 그 누구보다 실력에 예민했다.
연기를 보는 눈 또한 날카롭다고 자부했다.
그렇기에 연기력도 형편없는 주제에 돈으로 배역을 산 것도 모자라 아예 망쳐 놓은 이로운이 극도로 혐오스러웠던 것 아니겠는가.
“정말… 모르고 묻는 거라면 너… 정말 잔인하다.”
김정률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에도 한 박자 늦게 대사가 들어가 버렸다.
‘정신 차려, 김정률! 말려들면 안 돼!’
얕보고 있던 것이 패착이었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저 살아 있는 마네킹이 저런 대사를 친다고?
웃기는 건 저 예쁘장한 얼굴은 지금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이로운이 아닌 누군가였다.
호소력 짙은 눈동자와 슬픔에 잠식되어 스러져 가는, 사랑에 배신당한 한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자신이 이미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김정률은 인지하지 못했다.
그 사실이 김정률을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왜 주저하는지, 몰라서 물어? 정말 무섭다, 너…….”
망할. 이번에는 대사를 틀릴 뻔했다.
‘미친! 다음 대사랑 섞일 뻔했잖아!’
당장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현장에서야 흐름을 해치지 않는다면 감정선에 따라 어느 정도의 애드립은 허용된다.
하지만 지금은 오디션 중.
그것도 떨어트리기 위한 것이 분명한 현장 연기 중이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대본을 숙지하고 그에 부합하는 캐릭터의 성격과 상황 그리고 감정까지 완벽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 현장 연기다.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해야 10분에서 15분 남짓.
그 짧은 시간 내로 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실전마저 제대로 해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지정 대본을 미리 받아 연습해 왔다 해도 보통 여기서 많이 걸러진다.
수많은 오디션에 굴러 본 김정률은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김정렬 또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로운을 상대로 고른 것 아니던가.
‘분명 제대로 대사 하나 못 칠 테니 내가 끌어오면서 겸사겸사 망신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네가, 네가 이럴수록, 힘들어져… 더…….”
그 어마어마한 간극에 결국 과부하에 걸린 김정률의 뇌가 파업을 선언했다.
덕분에 어찌저찌 끌어가던 대사도 결국 티 나게 더듬어 버리고 말았다.
감정선을 위한 호흡이 아니라 누가 봐도 더듬는 게 뻔히 보였다.
‘아… 안 돼……. 이렇게 끝낼 수는……!’
그러거나 말거나.
오디션은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김정률이 가출한 정신을 되잡을 겨를 따위는 없었다.
“저기, 혹시 즉석 연기 가능합니까?”
스태프에게 제지당한 채로 눈만 반짝이던 감독.
언제 파절이처럼 늘어져 있었냐는 듯이 펄떡거리는 활어처럼 생동감 넘치게 오디션에 끼어들었다.
그러더니 즉석으로 제안을 했다.
본래라면 자유연기를 해야 할 순서.
“감독님, 지금 와서 그러시면 지원자들이 부담스러워해요.”
스태프가 끼어들어 말렸으나 불이 붙은 감독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일까.
[별빛(의뢰자)가 기쁨으로 떨리는 두 손을 맞잡습니다!]잠잠히 지켜보던 로운의 시야에 알림창이 떴다.
‘역시 퀘스트 대상은 감독이었구나.’
오디션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관조자의 반응을 본 순간부터 감이 왔다.
사실 의뢰명부터가 힌트기는 했다.
목숨이 걸려 있다 보니 쉽게 확신할 수 없어서 그렇지.
‘반응을 보니 다행히 내 연기가 나쁘진 않았던 모양이네.’
감독이 퀘스트 대상으로 확실시된 이상.
감독의 텐션이 높아진 것 또한 의뢰 해결에 도움이 될 터.
머릿돌과 꿈속에서 구르고 또 구른 보람이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받아줘야 인지상정.
“네. 가능합니다.”
로운의 대답과 동시에 김성하 감독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 * *
“친구끼리 일상적으로 대화 나누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나이는 대충 고등학교 정도로요.”
신이 난 것처럼 말을 쏟아내는 김성하 감독을 보며 로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혹시 원하시는 배경이 있으시거나 따로 생각하신 부분이 있으시다면 반영하겠습니다.”
“아뇨. 아뇨아뇨! 그러지 말고 그냥 이로운 씨가 생각나는 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기존 계획했던 오디션에서 좀 멀어진 것 같은 상황.
그러나 찾아낸 원석을 보고 이미 눈이 돌아가 버린 김성하 감독.
그리고 이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로운이 거기에 신경 쓰는 일은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김정률만이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현실도피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친구끼리의 대화라…….’
막연하고 불성실한 디렉팅.
그러나 로운은 어렵지 않게 한 명의 인물을 떠올렸다.
후읍.
눈을 감고 호흡을 골랐다.
깊은숨을 들이켜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방금 전까지 보는 사람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할 만큼 애절하고 처절하던 청년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앳된 얼굴에 한가득 삐딱함과 불만을 담은 소년이 자리했다.
“너 또 여기 왔냐?”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의 오후.
터덜터덜 걷던 걸음이 멈칫한다.
그가 늘상 오던 자리에 며칠째 방문하는 불청객이 먼저 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데 다 놔두고 왜 여기 와 있냐니까? 다른 데 가라고. 좀.”
그다지 친하지 않던 사이다.
같은 반인데다가 어쩌다 보니 비슷한 부류로 묶여 취급당하기에 얼굴 정도는 알고 있다지만.
그다지 대화도 없었기에 친분이랄 것도 없었다.
그나마 요 며칠 부딪치면서 몇 마디 해 본 것이 다였다.
“이젠 대꾸도 안 하냐.”
작게 구시렁대더니 상대에게 슬쩍 다가간다.
“또 뭐 쓰고 있는데?”
그 물음에 상대가 인상을 쓴다.
“아, 알았어. 그림자 안 지게 비키면 될 거 아냐.”
진짜 성질머리 하나 못됐다.
슬쩍 비켜 앉으며 투덜거리자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서로 몇 마디 투닥거리는 말이 오간다.
그것만으로도 로운은 그 나이대의 소년이 되어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굳이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았다는 부분이다.
로운은 마치 허공에서 노트를 집는 것처럼 슥, 손을 움직였다.
“그러는 너는 왜 점심도 안 먹고 여기 와서 이러는데. 너 없었으면 난 잠이나 보충하려 했거든? 아아. 글 쓴다 그랬지.”
뭔가를 들여다보듯 파라락 넘기는 시늉을 한 로운이 물었다.
“…근데 그거 재밌냐? 맨날 수업 시간마다 쓰고 있더만? 뭐… 나 읽어 봐도 돼?”
상대의 대답은 없지만 로운이 보이는 미묘한 표정의 변화나 작은 제스처로 충분히 가늠했다.
분명 심드렁한 태도가 오가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잠시 후.
로운이 눈을 크게 깜빡이며 입을 벌렸다.
누가 봐도 놀란 표정이었다.
“어… 야. 이거 재밌다? 아니. 진짜로. 야, 내가 너한테 아부해서 뭐 하게. 진짜 재밌으니까 하는 말이지.”
억울하다는 목소리가 더해지자 상대의 반응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아마도 헛소리 말라며 타박을 놓았을 터.
그럼에도 로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너 꿈이 작가야? …아니. 어울려. 진짜 어울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허덕이는데.
바로 옆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몹시 신기했다.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을 정도로.
그 기색이 짧은 텀 사이로 여실히 드러났다.
픽 웃은 로운이 말을 이었다.
“지금 미리 사인 받아 놔야 하나. 왜. 미래에 엄청 유명한 작가가 될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미리미리 사인 받아 두는 거지.”
그것으로 지켜보던 사람은 알 수 있었다.
서로 데면데면하던 양쪽이 이제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로운 씨……? 방금 그거… 어디서 들었습니까?”
로운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엔 흥분인지 당황인지 모를 감정으로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감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