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2)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12화(12/110)
12
“그 얘기, 혹시 어디서 들은 겁니까? 누가 얘기해 준 사람이 있습니까?”
로운을 바라볼 때의 반짝반짝하던 눈동자는 이제 희번덕할 정도로 뭔지 모를 열기에 젖어 있었다.
희열인지, 아니면 공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미래에 엄청 유명한 작가가 될 수도 있잖아. 미리 사인 받아 놔야 하나?]머릿속에 떠오른 기억 하나.
이 얘기를 김성하 감독은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그리운 사람에게서.
“아니, 그럴 수가 없는데.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 녀석이랑 나만 아는 얘기인데…….”
중얼중얼.
극도의 고양 상태인 감독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혹시 그 녀석에게 무슨 얘기라도 직접 들은 겁니까?”
그렇게 묻다가도.
“…아냐. 불가능해. 그 녀석이 살아 있을 때랑은 나이가 맞지 않는데. 아니, 그럼 대체 어디서 이 얘기를 들은 거지? 난 아무 데서도 말한 적 없는데.”
다시 스스로 아닐 거라며 부정한다.
놀랐다가 의심했다가 부정했다가.
혼자 갈팡질팡하며 중얼거리는 모습이 바빠 보인다.
그사이, 로운은 천천히 몰입에서 깨어났다.
‘느낌이 이상하네.’
분명 방금 전까지는 신나게 옆에 있던 상대와 웃으며 대화를 나눴던 것 같은데.
감독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언제 그랬냐는 듯,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머릿돌 님의 꿈속도 아닌데, 마치 꿈 같아.’
시간과 정신의 방 뺨치는 트레이닝 덕분일까.
꿈속도 아닌데 마치 꿈길을 걷다 나온 기분이다.
밝은 햇살도, 멋쩍은 듯 웃다 종내 크게 웃던 친구도.
아무것도 없다.
이곳은 다시 오디션장이었다.
“흠흠. 미안합니다. 이로운 씨. 내가 잠깐 흥분을 해서…….”
때마침 오락가락하던 김성하 감독도 제정신을 차렸다.
속에서 무언가 결정을 내린 듯한 모습이었다.
“방금 그 연기, 정말 잘 봤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혹시 어떤 해석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두 눈이 번쩍번쩍 빛나고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다.
물음에는 일말의 기대감마저 묻어 있다.
“왜, 하필이면 다른 것도 아니고 노트라는 아이디어를 가져왔는지도 정말 궁금한데요.”
별다른 대사나 디렉션도 없었다.
그저 상황만이 제시되었을 뿐이다.
‘친구끼리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독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로운의 머릿속에는 그 장면이 선명하게 재연되는 것 같았다.
로운이 한 것은 그 장면에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녹여낸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대답할 수는 없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로운이 입을 열었다.
“시놉을 보고 제 나름대로의 상상을 덧붙여 봤습니다.”
“시놉이요? 귀로의 시놉 말입니까?”
“네.”
고개를 끄덕인 로운은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주인공의 환경은 어릴 적부터 어려웠습니다. 시놉에 나와 있는 내용이죠. 돈이 되지 않는 꿈은 반대를 당했을 겁니다. 아마도 방황했겠죠. 제 나름의 생각을 덧붙인다면, 학교에서도 성실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엇나가는 청춘일 테니까요.”
학업 외의 것들이 삶을 괴롭히니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주인공 캐릭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자란 잠을 학교에서 채우고.
학업 대신 글쓰기에 몰두하고.
‘자연스럽게 보통의 학생들과는 거리가 생겼을 거야.’
주인공이 겉도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로운이 연기한 친구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부분이 비슷한 두 사람.
그 두 사람이 가까워지며 친구가 되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을 터.
‘공통점이 많으니 빠르게 친해졌을 거고.’
시놉을 보는 것은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 숨겨진 맥락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
그 행간에 어떤 이야기가 묻혀 있는지 캐내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무엇이 묻혀있을지.
어떻게 파내면 좋을지.
방식은 어떤 것을 선택할지. 등등.
준비를 얼마나 철저하고 충분하며 공들여 했는지에 따라 얻어내는 결과물이 달라진다.
로운이 한 일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배역에 친구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조연이었지. 언급되는 부분도 지극히 적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부분에 친구가 등장해. 그것도 주인공의 자각을 돕는 계기로서.’
[(주인공)은 정리를 하던 도중 우연히 친구의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잊었던 어린 날의 꿈을 떠올린다.]짧은 언급이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지식 값은 충분했다.
‘주인공은 친구와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어. 왤까? 친하다면 이사를 가더라도 얼마든지 연락은 할 수 있었을 텐데. 혹시 아예 만나지 못할 이유가 있는 걸까? …병에 걸렸다던가?’
‘편지라는 매체도 신경 쓰여. 왜 하필이면 편지일까. 문자나 메시지나 메일도 있잖아. 아니지. 옛날이라면 말이 돼. 편지라는 방식 자체가 현재와 과거를 구분 짓는 기준점이라면?’
‘굳이 친구가 각성의 매개체가 되는 이유가 있을 거야. 만약 둘이 정반대의 결과였다면? 친구라는 존재가 꿈을 이루지 못한 또 하나의 주인공을 투영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친구는 왜 꿈을 이루지 못했지? 오래 만나지 못한 이유와 연결될 것 같은데.’
생각의 가지가 끊임없이 뻗어 나갔다.
그럴수록 로운은 이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지.’
살을 붙이고 생명을 불어넣고자 했다.
단순히 조역 1에 지나지 않는 캐릭터가 아니라.
나름의 서사가 존재하는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인물로 말이다.
로운은 그가 거쳤던 이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설명했다.
“많이 이상했나요?”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덧채운 것은 로운이지만 어쨌거나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김성하 감독이다.
로운의 해석과 감독의 해석이 다를 가능성도 얼마든지 존재했다.
하지만.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로운의 말을 모두 듣고 난 감독의 얼굴은 더 광기, 아니, 희열에 젖어 있었다.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주 좋았습니다. 딱 내가 알던, 아니 생각하던 이미지 그대로였어요.”
감독이 극찬을 했다.
그 열정적인 발언에 옆 심사위원들이 술렁였다.
“아직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왜 주인공이 아니라 친구를 연기했습니까?”
“제가 주인공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요. 이로운 씨라면 충분히 주인공을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끅!”
난데없는 소리의 주인공은 맥없이 쭈그러져 있던 김정률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사레가 들어서……!”
맥을 끊는 잡음에 모두가 쳐다보자 김정률이 재빨리 사과했다.
어째서인지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식은땀을 흘린 건지 옆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주인공.’
로운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보통 주인공이 감독이랑 제일 오래 보지 않나?’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중심인물이기도 하고.
주인공을 고집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아직 그렇게까지 내 연기가 완성된 것은 아니니까.’
비록 머릿돌과 함께 3일 동안 구르고 구르면서 연기의 즐거움을 깨우치고 모르던 분야를 스펀지처럼 흡수하기는 했다지만.
그래봤자 아직은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앞으로 가야 할 일이 구만리인 터.
‘지금이야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감독님이 잘 봐준 것 같고…….’
우연이라지만 로운에게는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어쨌거나 연기는 둘째치고, 로운도 주인공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일단 감독과 붙어 있을 수 있는 날이 가장 길 등장인물이라면 단연 주인공이지만.
그러나.
‘친구 역이 맞아. 처음부터 눈이 갔던 이유가 있었어. 그리고 판별안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판별안.
빛으로 미래의 결과 여부를 판별해 주는 특수 능력.
로운이 얻은 이 능력은 다름 아닌 의뢰자의 선급금이었다.
‘선급금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긴 한데……. 어쨌든 미리 추가 보상을 미리 지불한 거라고 했으니까.’
때아닌 선급금을 받은 이유는 하나였다.
[뭐어? 불안하다고? 아니, 갑자기 왜? 잘되고 있구만? 뭐? 그래도 불안하다고?]다름 아닌 의뢰자가 로운보다도 더 실패할까 봐 염려했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죽는 로운보다도 더 필사적이라니.
의뢰자가 이번 의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뭐어… 나야 상관없기는 하지만, 김선비는 괜찮겠어? 권능을 쪼개는 거라고. 그쪽 덕만 더 날아가는 거거든? 뭐? 안다고? 괜찮아? 일 성사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로운으로서는 알아듣지 못할 얘기가 한동안 오갔다.
[생각보다 더 간절한 모양이네. 알겠어, 알겠다구. 그래, 뭐 나야 의뢰 성공하는 게 더 좋으니까. 게다가 보상을 미리 지불하지 말라는 항목도 없었으니 괜찮겠지!]뭐가 우당탕 한바탕 몰아치고 간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런고로.
[별빛(의뢰자)가 당신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축원을 내립니다!] [권능 ‘판별안’이 주어집니다!]로운은 난생처음 특이한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청화를 만난 것도 아주 신비한 일이었지만.
‘헐. 색이… 보여?’
판별안은 어나더 클래스의 특이한 능력이었다.
무려 색으로 가장 좋은 선택지를 고를 수 있게 도와주는 특수 능력이라니!
덕분에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황금빛 빛무리가 솟아나던 대본.
로운이 주인공 파트를 연구하기 시작하자 하나둘씩 빛이 꺼지더니 검은색 오오라가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혹시 해서 친구 배역을 집었더니 다시금 금색 빛 방울이 샘솟았다.
‘이렇게 쓰는 거구나. 명확하네.’
참 직관적인 능력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일부러 겸양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사람마다 그에 맞는 자리가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주인공의 자리는 제게 맞지 않는 옷이에요. 제가 가장 잘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역은 친구 역할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로운 씨가 돋보이는 게 아니라, 배역이 돋보인다는 말입니까?”
“네.”
다른 누구도 아닌 로운, 자신이 그 역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야 이 작품이 성공할 것이리라.
어째서 그래야 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이런 의뢰가 내게 들어오고, 하필이면 이 배역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어떤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지 않을까 기대할 뿐.
“좋아요. 이로운 씨. 당신과 꼭 함께 작업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당신이 원하는 그 역할로요.”
그렇게 말하는 김성하 감독의 주위로 황금빛 빛무리가 망울망울 피어오르다 사라졌다.
마치 로운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