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6)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16화(16/110)
16
“감독님……?”
<네. 아, 갑자기 전화해서 많이 놀랐나 보네요.>
많이 놀랐다.
하지만 로운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로 이렇게 전화를 다…….”
<내가 현승이에게 먼저 얘기해 뒀는데, 전해 들었어요?>
얼핏 기억에 남아 있는 사장의 이름이 나왔다.
“캐스팅됐다고만 들었는데, 혹시 무슨 문제라도…….”
감독이 따로 개인적인 연락까지 할 이유가 무엇일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불안감이 엄습한다.
‘혹시 캐스팅 취소라던가 뭐 그런 건 아니겠지?’
<아, 문제랄 건 없고요. 우선은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어쩐지 서두가 불안했다.
<사실 로운 씨가 이 시나리오,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분명히 망할 거라고 하면서요.>
아니나 다를까.
불길함은 현실이 되었다.
“제가… 그랬나요? 기억이 잘… 그냥 한 소리일 거예요.”
전 주인의 업보가 또 목을 졸랐다.
설마 그런 이유로 합격을 번복하려는 건가?
동시에.
-잘해 보렴. 촬영 현장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사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로운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아뇨. 그럴 만했다고 충분히 이해합니다. 말했잖습니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연락했다고요. 어쨌거나 가능성을 다시 봤으니 오디션에도 참여해 주신 거겠죠?>
딱히 로운의 답이 필요한 건 아니었는지 감독이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제가 그날 이로운 씨를 보고 생각이 좀 많아져서요. 이로운 씨가 맡은 배역을 좀 손보고 싶어서 양해를 좀 구하고 싶습니다.>
예?
‘설마!’
로운은 이런 느낌을 아주 잘 알았다.
그러니까 어떤 느낌이냐면, 이런 거다.
-소식 들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저희 스케줄은 없던 일로…….
-이런 식이면 곤란하죠. 가리온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이 얼마나…….
-손해는 우리가 손해죠! 위약금 청구 안 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가리온이 한창 시끄러운 소문들로 주춤할 때다.
스케줄이 하나둘씩 취소되고 미리 약속했던 행사가 줄줄이 캔슬되었다.
뭐라고 해명하지도 못하고 던져지는 돌만 맞아야 하던 그때.
그 끔찍했던 느낌이 떠오른다.
‘설마……!’
불길한 감각에 몸서리치며 로운이 목구멍을 쥐어짰다.
그리고.
“혹시 캐스팅 취소를…….”
<배역 비중을 좀 늘리고 싶…….>
두 사람의 오디오가 동시에 물렸다.
“네?”
<예?>
두 사람 사이로 찰나 간의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로운이었다.
“취소가 아니라 비중을 늘리신다는 말씀이세요?”
<혹시 취소하고 싶어요? 그럼 곤란한데…….>
“아뇨, 아뇨! 전혀 취소하고 싶지 않습니다.”
로운은 서둘러 부정했다.
‘기분 탓이었구나.’
불안으로 펄떡대던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생에서는 하도 불운에 불운만 겹치다 보니 그 기억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저야 비중이 늘어나면 감사할 따름이죠.”
<그렇게 말해 주니 다행입니다. 사실 이로운 씨 스케줄도 있을 거고 바쁠 텐데 너무 무리하게 부탁하는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쁜 일도, 스케줄도 없었다.
<내가 이로운 씨를 보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 좀 있습니다. 우선은…….>
감독의 열정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한참을 듣던 로운이 생각했다.
‘그러니까… 서사를 더 부여하고 싶다는 거네?’
말 그대로 캐릭터에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부여해 중요도를 높여 더 많이 출연하도록 하겠다는 소리였다.
<로운 씨만 괜찮다면 이렇게 진행하고 싶습니다.>
확실히 로운에게도 나쁜 얘기는 아니었다.
‘일부러라도 붙어 있을 판에 분량이 늘면 나야 일석이조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별빛(의뢰자)가 벅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잡습니다!] [별빛(의뢰자)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라며 토로합니다!]때마침 의뢰를 넣었던 관조자도 지켜보고 있었는지 기쁨의 메시지 창이 떴다.
통화를 마친 뒤, 로운은 어떤 감정이 자신을 휩싸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이건… 뿌듯함인가?’
퀘스트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만은 아니었다.
뭐랄까.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받은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인정받았어.’
아주 오래전에나 느꼈던 그 감정이었다.
전생의 그룹 활동이 어그러진 이후로는 계속해서 좌절과 절망만이 있을 뿐이었으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싸늘한 시선과 경멸만이 돌아오던 그때.
모든 노력이 무용이 되던 그 허무함.
로운은 결국 무력해지는 스스로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가 돕는 건 감독님뿐만이 아니었구나.’
퀘스트로 도움을 받는 것은 관조자와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그 역시 퀘스트가 있음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고 잊었던 감각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솟아오르는 뿌듯함을 안고 잠이 든 그날 밤.
로운은 꿈을 꾸었다.
누군가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꿈이었다.
묘하게 꿈이지만 꿈 같지 않은 그런 비현실적인 감각.
“머릿돌 님? 혹시 머릿돌 님이세요?”
사흘 밤낮을 꿈속에서 굴렀던 만큼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머릿돌의 트레이닝이었다.
“……?”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다만 로운을 직접 끌어들여 대신 살아가게 만들었던 이전과는 달리, 꿈은 알아서 착착 진행되었다.
정다워 보인다.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둘 사이에 감도는 친밀함과 오가는 고마움은 알 수 있었다.
‘이상하게 몸이 무거워.’
로운은 자신이 꿈꾸는 자의 건강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전처럼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님에도 숨이 가쁘고 팔다리가 축축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에 가해지는 찌를 듯한 고통과 가끔은 참기 어려운 격통이 찾아왔다.
시시각각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 또렷하게 드러나는데도 별로 아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 웃는다.’
뿌연 얼굴의 상대가 찾아올 때마다 즐겁기만 했다.
폐가 쥐어짜이는 것처럼 가빠오고 목에서는 색색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로운은 이 꿈의 주인이 몹시 기뻐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시에 점점 의식이 멀어졌다.
꿈에서 깨려는 조짐이다.
부서져 가는 꿈의 경계 사이로 무성 영화 같던 세계에 소리가 깃들었다.
[…엄청 유명한 작가가 될 수도 있잖아…….]메아리치듯 흩어지는 그 말소리가 귀에 익었다.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을 때, 로운은 알았다.
그가 꾼 꿈의 주인공.
그는 다름 아닌 의뢰를 넣은 관조자였다.
* * *
시간은 평화롭게 흘렀다.
‘역시 사람은 여유를 가져야 해.’
큰 산을 넘은 덕분인지 요 며칠 로운은 마음이 편했다.
‘생각해 보니 죽고 나서 다시 살아난 뒤로 편히 쉰 적이 없네.’
죽기 전까지 포함하면 거의 몇 년을 좌불안석으로 살았다.
특히 다시 살아난 이후의 일주일은 거의 폭풍과도 같았다.
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으니까.
관조자라는 존재들도, 청화도, 난데없는 의뢰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어쩌다 보니 또 얼레벌레 익숙해졌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던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물론.
[별빛 52가 당신에게 은밀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원합니다!] [별빛 23이 개수작 부리지 말라며 옆 상대를 응징합니다!]틈새시장을 노리는 자들이 있어 마냥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의뢰를 이중으로도 받을 수 있는 건가? 다른 의뢰랑 겹치거나 방해되지 않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의뢰는 철저히 관조자들의 영역이다.
불가능한 일의 경우는 관조자들 선에서 우선적으로 걸러졌다.
덕분에 어떤 의뢰가 도착할지는 알 수 없지만 로운은 그 불분명함조차 기대가 되었다.
퀘스트를 수행하는 만큼 로운의 세계도 넓어질 테니까.
‘나중에 청화 님한테 물어봐야겠다.’
요새 청화는 인터넷에 빠져 있었다.
[아니, 뭐 이런 신기한 것이 다 있단 말이냐? 내가 잠든 동안 세상이 바껴도 너무 바꼈구나!]그는 신기하게도 물방울 상태로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며 감탄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보도 접했는지 은근하게 로운에게 이렇게 물은 적도 있었다.
-거… 물 건너 서역 어디야……. 토이기나 서사 같은 곳에 아주 품질이 좋은 온천수들이 있다던데, 어디 한번 갈 생각은 없느냐?
하고 말이다.
청화가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뭐든 물과 관련된 존재겠군.’
그것도 아주 오래된 존재 말이다.
로운은 청화가 말하는 저 나라들이 어딘지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어쨌거나 현재로서는 해외에 가야 할 여유나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청화는 하늘 위의 존재들에게 뭔가를 닦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궁금해도 또 금기라며 딱히 알려 줄 것 같지는 않아서 로운은 다른 쪽에 신경을 쓰는 편을 택했다.
바로 그의 매니저였다.
“진정해요, 형.”
요즘 그의 매니저는 평온한 로운과 달리 매우 불안정했다.
“…나 매우 괜찮은데?”
“형, 다 티 나요…….”
“뭐?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로운은 생각했다.
‘정말 티가 안 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설마?’
티가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다.
평소 매니저는 로운을 자유롭게 풀어 두는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매니저가 원한 건 아니고 전 주인이 벌인 만행의 결과에 더 가깝긴 했지만.
어쨌든 별일 없으면 매니저는 굳이 로운을 터치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로운에게는 별일이 없었으므로 매니저가 굳이 와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랬던 사람이 별일도 없는데 집에 와서 오도카니 앉아 있다.
가끔씩 힐끔힐끔 오가는 시선이나 작게 내쉬는 한숨은 또 어떤가.
심지어 체구도 곰같이 커다란 사람이, 그것도 같은 공간에서 그러고 있으려니 신경을 끌래야 끌 수가 없었다.
“뭐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매니저가 그동안 신경 써 줬던 만큼.
로운도 매니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아이고, 아니야. 별일 같은 거 없어!”
로운의 귀에는 별일이 있다고 들렸다.
그 표정을 본 매니저가 황급히 변명했다.
“아니, 진짜야. 별일 없어. 아직까지는. 진짜.”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아직까지는, 이라는 조건이었다.
‘뭔가 있긴 한 거군.’
이럴 때는 괜히 재촉하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다.
매니저 같은 타입은 억지로 입을 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왠지 안 믿는 눈빛 같은데, 진짜라니까?”
“…….”
“로운이 너 너무 나를 무슨 일 있어야만 오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거 아니니?”
“…….”
“그래. 방금 건 내가 생각해도 맞는 말을 하기는 했네.”
매니저가 한숨을 푹 쉬었다.
항복의 한숨이었다.
“진짜 별건 아니고, 그냥 요새 좀 기분이 불안해서 그래.”
“불안해요? 왜요? 오디션도 잘 붙었는데요.”
“그러니까… 너무 조용하잖아?”
“……?”
‘그러니까 내가 또 사고 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는 거잖아?’
전 주인이 남기고 간 업보였다.
‘이놈의 업보는 대체 언제까지 발목을 잡고 있을런지.’
문제는 당분간은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뭔가 크게 바뀔 계기가 있지 않은 이상, 한동안은 미우나 고우나 함께하게 생겼다.
익숙해지는 수밖에.
“내가 너 의심하는 거 아닌 건 알지?”
“아니, 괜찮아요. 형. 뭐, 그럴 수도 있죠.”
전생에 비슷한 기억이 있던 터라 로운은 매니저를 이해했다.
오래도록 시달린 매니저에게도 전생의 그처럼 무슨 촉 같은 것이 있을 테니까.
“진짜야. 형은 너 의심 안 해. 얼마나 네가 요즘 착실해졌는데.”
사실은 사실이었다.
요즘 너무 조용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디션을 치렀다고 바로 영화 제작이 시작되는 건 아니니까…….’
그 정도는 매니저 경력이 십 년은 넘어가는 베테랑 매니저로서 얼마든지 짐작 가능한 바였다.
우선은 시나리오가 수정됐으니 그 수정에 걸리는 시간도 있을 것이요, 관련자들에게 컨펌받는 단계도 필요하다.
또한 배우들과의 계약 조정도 있을 것이고 그 조율이 다 끝나면 세트를 준비하거나 로케이션 헌팅 같은 세부적인 디테일에도 힘을 써야 한다.
그뿐만인가?
이번 작으로 복귀할 생각이니 김성하 감독이 얼마나 콘티 작업에 신경을 쓰겠는가.
거기에 걸리는 시간 또한 짧지는 않을 터.
그 외 의상이나 헤어나 분장 그리고 소품 같은 자잘한 관련 준비 또한 금방금방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밖에도 배급이니 투자 조율이니 하는 얘기도 끊임없이 오가리라.
그건 출연자가 아니라 제작하는 쪽에서 신경 써야 할 일들이겠지만.
어쨌거나 배우도 수십에 스탭은 그 배를 넘어가며 얽혀있는 이들 또한 적지 않으니 당장 오디션이 치러진 지 고작 며칠 되지 않은 지금이 조용한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매니저 박형우는 생각했다.
로운은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변했다.
누가 혼을 쑥 뽑아 다른 사람을 집어넣은 듯했다.
기억을 잃는다고 이렇게까지 사람이 바뀔 수가 있는가?
조금 의아했지만 매니저 박형우는 그 변화를 몹시 반겼다.
지금의 로운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가끔은 밤에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지금 현실 맞는 거겠지?’ 하고 확인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로운은 달라진 게 맞았다.
지금도 보라.
“그래요. 알겠으니까 형, 진짜 얼굴 안 좋은데 일단 쉬어요. 무슨 일 나면 내가 알려 줄게요. 근데 김 감독님이 나 퇴출시키는 것만 아니면 딱히 터질 일 같은 거 없지 않을까요?”
예전 같았으면.
-그 짜증 나는 쌍판 좀 저리 치워. 뭐 누가 죽기라도 했어? 왜 그리 죽상이야? 기분 더럽게!
라고 외쳤을 애가 저렇게 차분하게 사람을 달래지 않는가?
‘그래. 기분 탓이겠지!’
기억상실 이전의 로운은 이렇게 조용할 때가 가장 골이 아팠었다.
언제 어떻게 사라져서 무슨 기기괴괴한 사고를 쳐 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라진 로운은 얌전했고, 착실했으며, 온화했다.
본인이 직접 오디션에 가 배역을 따내기도 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런 로운이 무슨 사고라도 칠 일은 없을 것이다.
매니저 박형욱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
설마가 사람을 잡는 법.
기어코 일이 터져 버렸다.
“아니, 이게 뭐야?”
로운이 친 사고는 아니지만, 로운에 관한 일은 맞았다.
[연예계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 이대로 괜찮나?] [범죄자의 컴백? 문제아와 문제아 그리고 또 문제아.] [끼리끼리 이끌어주고 밀어 주고… “김성하 감독 복귀 초읽기 도입?”]몹시 적대적이기 짝이 없는 기사가 난데없이 떴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