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9)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19화(19/110)
19
“죄송하지만 그 말씀은 듣지 못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제가 못할 질문을 한 것은 아닐 텐데요. 투자라는 건 이익을 얻기 위해 자본을 대는 일을 뜻합니다. 저는 이익을 얻지 못할 곳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의문이군요. 이로운 씨는 정당한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따냈습니다.”
“흐음…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 사람, 연기를 못하는 건 사실일 텐데요.”
“아, 감독님. 투자자예요, 투자자. 비위를 맞춰야지 성질을 건드리면 어떡해요!”
바싹 다가온 조감독이 옆구리를 팔꿈치로 팍팍 찍으며 속삭였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나를 매장했던 그놈들과 다를게 무엇인가!’
프레젠테이션 내내 발발 떨리던 목소리까지 어느새 힘이 들어가 있었다.
“실례지만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은 감독의 고유 권한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아쉽지만 투자를 재고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감독님 미쳤어요?
옆에서 조감독의 소리 죽인 비명이 들려왔지만 김성하 감독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재미있군요. 이 배우가 그렇게까지 감독님께 가치 있는 배우입니까? 제가 제시하는 금액을 거절하면서까지도?”
재미있다는 듯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비서에게 손짓했다.
품에서 휴대폰을 꺼낸 비서가 금액을 찍어 감독에게 내밀었다.
“허어억…….”
옆에서 조감독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이 금액이라면 웬만한 자잘한 투자는 모조리 거절해도 되는 수준이었다.
“제가 만약 이 배우를 자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감독에게 선택지가 주어졌다.
투자금이냐 아니면 배우냐.
“감독님께서 이 배우에게서 무얼 보셨든 제가 드리는 투자금이라면 얼마든지 그보다 나은 배우를 고르실 수 있을 겁니다.”
상대는 이미 김 감독이 구인난에 시달렸던 과거까지 모조리 알고 온 모양이었다.
평소대로라면 고민할 것도 없는 일.
“감독님, 뭘 망설여요? 빨리 저거부터 받아요!”
옆에서 조감독이 그를 열심히 부채질 하였다.
그러나 김 감독의 굳건한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자르지 않겠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저는 그에게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이라… 감독님의 복귀작을 걸 만한 가능성입니까?”
중요한 순간이었다.
어떻게 대답을 하느냐에 다라 투자가 결정될 수도, 아니면 파토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김 감독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영화에 대한 생각도, 투자에 대한 걱정도 아니었다.
대신.
‘대체 이로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도 사방이 빌런 천지인지. 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도 멋진 연기를, 그 선량한 마음을 계속해서 간직할 수 있었던 거지?’
로운에 대한 새삼스러운 감탄과 그가 그간 겪었을 어려움이 차례대로 연상되어 떠오른다.
그러자 무언가 울컥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나만이라도 이 사람을 제대로 봐주자. 그가 나를 제대로 봐주었던 것처럼!’
이성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고 외쳤지만 심장이 하는 말은 달랐다.
김 감독은 심장을 따르기로 했다.
생각은 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심장이 뛰지 않으면 죽음뿐이니까!
“이 배우가 이전에는 어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격앙된 목소리가 작은 사무실을 울렸다.
옆에서 조감독이 ‘이 감독님이 지금 미치셨나?’ 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은! 성장하기 마련이고! 누구나 마땅히!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감독님. 잠깐만요. 지금 좀 흥분하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몰라도! 이 배우는 제가 직접!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선택한 배우입니다!”
“아니, 감독님……! 잠시만……!”
“저를 믿고 투자하러 오신 것 아닙니까? 그럼 제 안목도 믿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짝, 짝, 짝.
뜬금없는 웅변이 마무리된 곳에 짧고 절도 있는 박수소리가 울렸다.
출처는 다름 아닌 그들의 앞에 여유롭게 다리를 긴 다리를 교차해 앉아 있던 남자였다.
그제야 김 감독은 출타했던 정신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크, 큼. 그러니까… 제가 그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상무님께서 지금 당장 납득하지 않으시리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어찌할 생각입니까?”
남자가 흥미롭다는 듯 김 감독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보, 보여 드리겠습니다. 직접 보시고 판단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 배우를 써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소리군요.”
“…그렇습니다! 가지고 계신 고정관념까지 제가 지금 어떻게 해 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완벽히 저질러 버렸다.
‘이대로 정말 투자를 취소한다 해도… 어쩔 수 없어.’
이건 신념의 문제였다.
이 영화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가치관을 꺾어 가면서까지 투자를 유치할 필요는 없었다.
정 안 되면 처음 계획처럼 사재를 털어넣으면 된다.
속이 시원한 것과 별개로 다 망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말 없이 듣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좋군요.”
“감사… 예?”
몹시 의외의 대답이었다.
“앞으로 그 생각, 그 마음 변치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남긴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감독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장신의 몸이 불쑥 솟아오르자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 감독을 내려다본 남자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투자는 말씀드렸다시피 그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배우는…….”
남자가 흘끗 빔프로젝터에 띄워진 화사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전적으로 감독님의 고유 권한이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좋은 작품이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가볍게 묵례를 한 남자가 들어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돌연히 사무실을 나다.
남은 비서가 자세한 사항을 뭐라뭐라 알려 주는 것 같았지만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
뭐지? 반대하는 게 아니었나?
반대하는 것 같더니 의외로… 아무 말 없이 갔다.
“야… 우리 된 거냐?”
“그런 거… 같은데요?”
마치 폭풍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 듯한 상황에서, 김 감독과 조감독이 서로를 어리둥절하게 마주 보았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또다시 김 감독의 전화로 전해들은 로운은…….
“……?”
영문을 모를 뿐이었다.
* * *
“아. 그게 그 소리였구나.”
매니저가 가져온 소식에 로운의 머리위로 그제야 느낌표가 붙었다.
“응? 뭐가?”
“김 감독님 영화에 투자 붙었다는 거요. 오전에 감독님이 연락 주셨었거든요.”
로운은 몇 시간 전에 걸려온 전화를 떠올렸다.
어딘가 격양되고 흥분이 역력한데다가 내용이 횡설수설이라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듣지는 못했었는데.
‘무슨 소리인가 했었는데 그게 그 소리였구나.’
시험을 당했는데 로운을 생각하며 버틸 수 있었다느니.
자신의 신념을 덕분에 지킬 수 있었다느니.
그렇게 보여 준 의지력에 상대가 감탄하고 갔다느니.
전부 로운으로서는 물음표만 떠오르는 미스테리한 말들이었다.
다만 한 가지.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제 저희… 부자예요……! 으하학! 이제 돈 걱정 안 해도 된다! 전부 다 로운 씨 덕분입니다!
제작비 걱정이 없어졌다는 부분만큼은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로또라도 맞았나 했는데, 알고보니 투자를 받은 거였다니.
‘근데 그게 왜 내 덕이지……?’
물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존재했지만.
어쨌거나 영화가 엎어질 걱정이 없어졌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김 감독이 네게 직접 연락도 해?”
“네. 어제도 통화했잖아요.”
“그거야 해명하려면 직접 전화해야지. 그런데 투자 건도 네게 먼저 알렸다고?”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 그 양반이 그렇게 세심한 양반이 아닐 텐데……?”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 감독의 연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며칠 후.
로운은 또다시 좋은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로운아! 들었니! 김 감독 영화에……!”
“구일환 선생님 합류했다는 거요?”
아침부터 신나서 뛰어 들어오던 매니저가 멈칫했다.
맥이 탁 풀린 것처럼 시들시들해진 그가 말했다.
“아니, 친구도 없는 애가 대체 이런 소식은 어디서 듣는 거야? 나도 좀 전에야 전해들은 극비 중의 극비였는데.”
아니, 이렇게 갑자기 뼈를 때린다고요?
하지만 매니저에게 별다른 악의는 없을 것이다.
본체가, 그리고 이로운이 친구가 없는 것은 사실이기는 했으니까.
“감독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뭐? 그 양반이 또? 끄응. 네가 정말 마음에 들기는 했나 보다. 그럴 양반이 아닌데 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걸 보면 말야.”
“맞아요. 너무 세심하고 친절한 분이시더라구요.”
“세심… 친절……?”
마치 못 들을 걸 들었다는 것처럼 매니저가 반응했다.
“그 양반이 그런 양반이 아닌데……? 내가 뭐 잘못 알고 있나……?”
그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로운이 이어 말했다.
“저, 정말 열심히 하려고요. 이렇게까지 챙겨 주시는데 저도 보답해야죠.”
빙의되기 전, 로운의 삶은 친절과는 거리가 멀었다.
친절이 뭔가?
늘상 대놓고 굼뜨다며 욕을 먹는 삶이었다.
어디를 갈때도 당장 들이닥쳐 가자고 끌고 가는가 하면.
곡이 필요하다며 바로 내놓으라고 달달 볶이는 것이 일상이었다.
한 번은 행사 대타가 잡혔는데 미리 알려 주기는커녕 대뜸 당일에 들이닥쳐 로운을 끌고 갔더랬다.
목을 풀 시간? 당연히 없었다.
안무를 제대로 숙지할 시간은 고사하고 원룸에 갇히다시피 하며 작업하느라 굳은 몸을 풀 시간도 없었다.
그 때문에 성대 이상과 무릎 부상이 점점 심해졌지만 전 회사는 도리어 로운을 매도했었다.
-평소 관리를 얼마나 게을리했으면 이 정도로 앓는 소리를 해? 알아서 평소에 미리미리 준비해 뒀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하여간 게을러 빠져서는.
모든 것이 로운이 탓이 되었던 그때를 생각하자면 지금은 천지가 개벽한 수준이다.
하나하나 친절하게 떠먹여 주는 이 햇살 같은 친절함과 자애로움이라니!
‘정말 고마우신 분이야…….’
비록 퀘스트를 하기 위해 만난 사람이지만, 로운은 은혜를 알았다.
그 때문일까.
“희한하네……. 그 양반이 그래 봬도 한때 충무로에서 성질이 불같기로 이름 날렸던 사람인데. 나이가 들어서 유해졌나……?”
눈을 끔뻑이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매니저의 어리둥절해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퀘스트, 기필코 꼭 성공시키고야 말겠어.’
코앞에 닥친 죽음 말고도 퀘스트를 성공시켜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