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0)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20화(20/110)
20
처음에는 오기나 다름없었던 오디션.
-그거 어차피 망한다니까? 받아주는 곳도 없잖아.
모두가 그렇게 입을 모아 말하며 혀를 찰 때.
김 감독은 이를 악물었다.
‘망할 땐 망하더라도 이렇게는 못 산다, 억울하게는 못 살아!’
김 감독도 바보는 아니다.
그가 걸어갈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예상 못한 바도 아니었다.
대중에게조차 버림받은 감독의 영화가 잘되어 봤자 얼마나 잘되겠는가?
그런데.
‘우연인가? 왠지 그때부터 잘 풀린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인가?’
오디션에서 웬 난데없는 원석을 줍는 횡재를 한 것에 이어.
갑자기 모두가 외면하던 작품에 투자가 붙었다.
‘그것도 무려 대기업이었지……!’
대체 그만한 기업이 왜 그의 작품에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무려 구일환이 그에게 연락을 주었다.
‘꿈인가?’
구일환이 누구인가.
젊은 시절 데뷔 때부터 탄탄한 연기력으로 스크린을 독점하다시피 하던 배우 아니던가.
그가 가진 천만 스코어만 해도 다섯 손가락이 넘는다.
나이를 먹어 중견이 된 지금.
전작의 영향으로 그는 ‘국민 아빠’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기도 했었다.
‘국민’이라는 수식어는 웬만해서는 붙지 않는다.
높은 인지도는 기본이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야만 획득이 가능한 칭호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구일환 배우의 안타까운 가족사가 밝혀지면서 또 한 번 ‘국민 아빠’로 자리매김하기도 했었다.
‘그때 이후로 활동이 없어서 잠정적으로 은퇴했나 싶었는데……. 이렇게 연락이 오다니.’
구일환의 복귀작.
이 소식만 전해져도 벌써 최소한의 관객수는 확보하고도 남으리라.
그날 이후에도 김 감독은 여러 곳에서 몇 가지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하나같이 누군가 도와주는 것처럼 모든 것이 순풍에 돛 단 듯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 * *
“로운아, 다음 주 금요일에 리딩 잡혔대.”
“벌써요?”
“원래 김 감독 추진력 불같기로 유명해서, 이 정도는 그 양반 기준으로는 빠른 것도 아닐 거야.”
모든 배역에 캐스팅이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그리고 어제, 로운은 완성된 시나리오를 전달받았다.
두툼하게 제작된 책자 위로 떡하니 박힌 이름 석자가 선명했던 기억이 난다.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그 이름을 손가락으로 쓸었던 기억 또한.
“형, 혹시 제 상대역 누군지 들었어요?”
“그건 김 감독이 말 안 해 주디?”
“혹시 삐졌어요, 형?”
“…아니? 내가 삐지긴 뭘 삐져? 난 그런 거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맡은 연예인이 나는 쏙 빼고 감독이랑만 연락하는 바람에 속상한 사람처럼 보이니?”
너무도 그렇게 보였다.
“아뇨. 그럴 리가요. 형이 절 얼마나 챙겨 주시는지 잘 아는데요. 감독님은 그냥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것뿐이고요.”
“…아니, 갑자기 김 감독이 불쌍해지려 그러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매니저가 끌끌 혀를 찼다.
“네 상대역이라면 과거 주인공 말이지? 그건 아직 공개를 안 한 모양이더라. 서프라이즈로 발표하려는 모양인데……. 뭐, 대본리딩 가면 볼 수 있지 않을까? 뭐 걱정되는 거라도 있어?”
“아. 이미지를 좀 생각해 두려고 했거든요. 아무래도 상대가 누군지 알면 그 위로 캐릭터를 그리기 조금 더 수월해서요. 지금은 약간 모자란 거 같아서 조금 불안하거든요. …왜 그렇게 보세요?”
어제 받았지만 밤새도록 몇 번이고 다시 보는 바람에 끝이 조금 구부러진 시나리오를 매만지는 로운을, 매니저가 울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냐. 그냥 이런 날도 오니까 좋아서…….”
아무것도 묻어나오지 않는 눈가를 손가락으로 슥 훔친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불안하긴 뭐가 불안해. 너처럼 받자마자 대본 분석부터 들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로운이 너, 솔직하게 말해 봐. 이거 벌써 다 외웠지?”
“제가 뭘 열심히 해요……. 다 이 정도는 할 거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누가 100페이지가 넘는 대본을 하루 만에 다 외워? 얘가 다른 배우들 뒷목 잡고 쓰러질 소리 하고 있네?”
“그래도 아직 많이 모자라니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로운이 어물어물 말끝을 흐리자 매니저가 솥뚜껑만 한 주먹으로 제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우리 로운이, 사람이 바뀌더니 다 좋아졌는데 딱 하나가 아쉽다.”
“뭐, 뭔데요? 연기력?”
“아니. 자신감!”
“…네?”
“솔직히 그전까지는 연기력도 없고 노력도 안 하는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한가 싶었던 것도 사실인데, 그래도 그때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단 말이야.”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래서 더 문제였다며 매니저가 말했다.
“내가 너를 맡아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너 정말 연기 잘해. 그 발연기를 하던 이로운으로 안 보여. 누가 보면 아주 사람이 바뀐 줄 알걸?”
정답이었지만 차마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아휴. 이걸 어떻게 보여 줄 수도 없고. 그래. 내가 백날 얘기해 봤자 모를 테니 직접 겪어 보면 알겠지.”
직접 필드를 구르며 부딪치고 깨지며 혹독한 현실을 마주하라는 소리일까?
무엇을 겪어 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역시 연습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겠어.’
불안은 완전하지 못함에서 온다.
이전의 삶에서도 로운은 항상 불안했었다.
팬들에게 반응을 얻고 1군 자리를 막 넘보려고 했을 때부터 회사는 그들을 밖으로 내돌리기 바빴으니까.
-이럴 때 오히려 더 연습해서 자리를 굳혀야 하는데.
로운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윗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가리온은…….
‘폭발했지.’
멤버들이 연달아 연쇄적으로 폭탄을 터트리지 않았어도 로운은 항상 불안에 떨었을 것이다.
춤도, 노래도 모두가 어설펐다.
충분히 익히고 연습할 시간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잠을 줄이면서까지 매달려 봤지만 그 정도로는 ‘벌써부터 빠졌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처참했다.
빛나는 자리를 거머쥐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법.
‘대본 리딩 전까지 연습만 죽어라 해 보자.’
한번 훑은 것으로 이미 모두 외운 대본이라지만.
로운은 몇 번이고 다시 시나리오를 보며 재차 활자를 눈에 박아넣었다.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이 장면, 이 대화를 통해 어떤 감정과 서사를 끌어내고 싶은지.
행간 사이에 숨어 있는 그 미묘함을 캐치하여 녹여내는 것.
그것이 로운이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다음 주면 시간이 너무 촉박하네. 형이 샵이랑 관리랑 다 예약해 뒀으니까 일단 그거 받으러 가자. 오디션 때는 너무 급하게 잡혀서 아무것도 제대로 못 했지만 이번엔 그래도 관리하고 가야지.”
“아뇨, 형. 시간이 모자라서 안 될 것 같아요.”
“시간이 모자라긴 뭐가 모자라. 일주일은 남았으니까 그래도 관리는 얼추…….”
“저 연습해야 돼요.”
“…응? 뭘 한다고?”
“연습요. 대본 분석도 아직 한참 남았어요.”
“아니, 너 다 외우지 않았어? 그런데 또 본다고?”
평소 대본을 외우기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모습을 떠올리던 매니저가 물었다.
그에게 로운이 대본을 제 역할뿐만 아니라 전체를 통틀어 모조리 외운 것은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요, 천재만재의 현신이나 다름없이 여겨졌다.
그런데 또 연습이라니?
‘이거 좋기는 한데, 너무 좋기는 한데……. 애가 이렇게까지 바뀌어도 되나? 뭐 잘못되는 거 아냐?’
그러고 보니 로운의 눈밑이 약간 거뭇한 것이…….
“로운이 너 혹시 밤샜니?”
“아, 그러려고 하던 건 아닌데… 이게 읽다 보니 너무 재미있어서요.”
“……?”
매니저는 생각했다.
이런 것이 바로 인지부조화라는 것일까?
하지만 로운은 진심이었다.
처음은 얼떨결에 죽지 않기 위해 시작한 연기.
그런데 이 새로운 분야는 그야말로 로운을 흠뻑 젖어들어 빠지게 만들었다.
의무에서 흥미로, 거기에 김성하 감독에 대한 은혜까지 더해지자 진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로운이 눈 밑이 까맣게 변할 정도로 날밤을 새워서 대본을 읽다 못해 달달 외우게 된 까닭이었다.
상대가 얼이 나가 있던 말던, 로운이 야무지게 자신의 계획을 읊었다.
“그리고 형. 직접 영상 찍어 보니까 해석이 덜돼서 그런지 너무 어설퍼서 아직 연기 연습도 더 해야 될 것 같아요. 사장님이 저 강사 붙여 주신다고 했는데 혹시 바로 가능할까요?”
그래도 다음 주 금요일이면 너무 시간이 빠듯한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로운을 보며 매니저는 몇 번째인지 모를 생각을 했다.
‘우리 애가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어요……!’
하지만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얼떨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뿌듯했다!
“그래. 이 형이 꼭 강사 하나 잡아 오마.”
“잡아 오는 게 뭐예요.”
재밌다는 듯 웃는 로운을 보며 매니저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과거 언젠가 이와 꼭 반대되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대본을 손에 쥐여 주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는데…….
매니저가 최대한 서포트를 다짐하며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사이.
‘아무리 감독님이 잘 봐주셨다 해도 결국 현장에서 함께 합을 주고받는 건 배우들이야. 그 배우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면 대본 리딩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배우들끼리 삐걱거리는 현장보다 케미가 좋은 곳에서 한층 더 퀄리티 높은 작품이 완성될 터.
그러기 위해서는 이 거지 같은 이미지를 벗어던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바로 대본 리딩이었다.
‘백날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보여 주는 게 더 확실하니까.’
뿌리 깊게 박힌 부정적인 이미지를 한 번에 타파할 수는 없다.
다만 차근차근 자신이 달라졌음을 보여 줄 수 있을 터.
그 최적의 무대가 바로 대본 리딩이었다.
‘본체의 연기가 형편없던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금만 연기다운 연기를 해도 그 효과가 드라마틱하리란 것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물론 로운은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지만.
[애가 참 순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담……?]머릿돌의 꿈속 트레이닝을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하다 불려 나온 청화가 혀를 찼다.
그렇게 로운이 매진하는 사이.
어느새 대본 리딩 날짜가 코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으리으리한 고층빌딩 앞.
“먼저 올라가 있어. 형 커피 좀 챙기고 갈게.”
차에서 내린 매니저가 로운에게 손짓했다.
“저도 같이 갈게요.”
“아냐. 넌 미리 가서 분위기부터 익히고 있는 게 나아. 눈도장도 좀 찍고.”
보통 때 같았다면 끼고 돌지 못해서 안달이었을 매니저였겠지만.
로운이 밤잠도 설치며 대본 리딩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는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서슴없이 먼저 로운을 떠밀어 보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응원해 줘야 맞는 거겠지……. 아아. 이게 바로 빈둥지 증후군인가…….”
곰만 한 덩치로 손가락을 세워 눈가를 슥 훔치는 것이 퍽 섬세해 보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영문을 모르는 것은 여전했지만.
얼떨결에 홀로 떨어지게 된 로운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부터 번쩍번쩍한 것이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매니저 형 없이 혼자네. 어색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혼자 다 했건만.
고작 한 달 정도 누군가 챙겨줬다고 벌써 빈자리를 느낀다.
‘…사람이라는 건 참 좋은 거였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잠깐의 헤어짐이 새삼스레 그 전의 삶이 얼마나 삭막했는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뚜벅.
새삼스러운 깨달음에 로운이 잠시 멍 때리는 사이.
누군가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로운의 옆에 섰다.
인기척을 느낀 로운이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
저기…….
죄송한데 지금 노려보시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