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2)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22화(22/110)
22
“아니, 아직 약속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이렇게들 일찍 오다니 부지런하네요! 다들 촬영 때도 이렇게 모여 주시겠죠?”
김 감독의 농담 반 진담 반인 발언에 회의실 안에 가벼운 웃음이 흘렀다.
“뭐야. 벌써들 모였어요?”
그런 김 감독의 뒤로 따라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귀로’의 현재 버전 주인공을 맡은 구일환이었다.
아직 정식 미팅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서로 안면을 트게 할 생각인지 감독이 배우들을 손짓해 불러모았다.
“인사해요. 이쪽은 구일환 씨. 익숙하죠? 우리의 구세주가 되어 주신 바로 그분입니다.”
“아이 참. 김 감독이 내 얼굴에 금칠을 다 해 주시네. 나 구일환입니다. 스크린에 참 오랜만에 복귀하게 되어서 모르는 게 많아요. 앞으로 좀 헤매도 이해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사람 좋게 웃으며 인사하는 구일환은 이제 중년에 접어드는 나이답지 않게 굉장히 젊어 보였다.
50이 넘어가는 그가 어떻게 40대를 연기하나 싶었는데 충분하고도 남아 보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형형한 눈빛이었다.
강차헌에게선 남들과 다른 아우라가 느껴진다면.
구일환은 그 눈빛으로 사람의 속을 낱낱이 파헤쳐 들여다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근데… 왜 나를 보시지?’
기사로만 접했던 구일환의 실물을 보고 감탄하는 것도 잠시.
로운은 그 형형한 눈빛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이 친구 맞지요? 감독님이 칭찬하신 그 친구.”
“하하. 네, 맞습니다. 바로 알아보시네요?”
“아이, 그럼. 내가 이 판에서 구른 게 벌써 몇십 년인데. 이 정도는 딱 알아보고도 남지. 내 친구라면서요? 악수나 한번 합시다.”
시나리오상, 로운과 구일환이 같이 촬영하는 장면은 없다.
로운은 일명 과거 팀이고, 구일환은 현재 팀이기 때문이다.
내밀어진 단단한 손을 마주 잡자 구일환이 그 형형한 눈으로 더욱 빤히 들여다본다.
“눈빛이 맑고 깊군요. 이런 눈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놔주지 않는데. 앞으로가 기대되네요. 보자… 주변 복이 좀 없던 거 같은데, 앞으로는 여기저기서 손을 내밀어주는 거 같고. 본인도 욕심이 있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편이기도 하군요. 숫기가 없어 보이는 게 유일한 흠이기는 한데……. 카메라 슛 들어가면 바뀐다고 했었나요?”
“아휴. 말도 마세요. 보시면 아주 놀라실 겁니다. 사람이 180도 달라져요, 아주. 어쩔 때는 빙의된 것 같다니까요?”
시선은 로운을 향해 있는데 말하는 건 감독에게다.
이전에 뭔가 오간 얘기가 있는 듯, 두 사람이 알쏭달쏭한 대화를 나눈다.
‘그… 칭찬인가? 그런데 왠지 관상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눈빛도 그렇고 왠지 배우보다는 영험한 점쟁이에게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어쨌거나 나쁘게 보는 것 같지 않아서 한시름 놨다.
안 그래도 강차헌에게 이유 모를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있는데 거기에 구일환까지 더해지면…….
‘어후. 생각하기도 싫다.’
“이쪽은 강차헌입니다. 일환 씨도 잘 아시죠? 하하. 이 친구가 일환 씨처럼 나를 돕겠다고 휴식기인데도 뛰쳐나왔다지 뭐예요?”
감독의 자랑과 뿌듯함이 섞인 말을 듣던 구일환이 강차헌에게도 악수를 권했다.
그리고는 로운에게 했던 것처럼 그 형형한 눈으로 강차헌을 들여다보았다.
“듣던 대로 멋진 친구네요. 어린 나이에 이만한 성취면 자만할 법도 한데 그렇지도 않고. 의리도 있고. 강해 보이는데 의외로 섬세하고 무르기도 하군요. 하지만 중심이 잘 잡혀 있어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요.”
“구일환 선배님이 사람 보는 눈이 아주 좋으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 얼굴에 금칠해 주는 소리를 들으며 강차헌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어이없는 건 로운뿐이었다.
‘초면에 협박을 하는 애가 섬세하고 무르다고? 의리는… 감독님 생각하는 거 보면 있는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구일환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좋은 친구들만 어떻게 구해 오셨습니까. 걱정 많이 하시더니만 이제 보니 걱정하실 일도 없겠습니다.”
“아이고. 제가 한 게 뭐가 있나요. 다 알아서 찾아와줬죠. 일환 씨도 저 살려 주려고 오셨잖습니까!”
감독의 기분이 몹시 좋아 보였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하하허허 웃는다.
구일환이 잠시 다른 스태프가 불러서 간 사이, 감독이 로운과 강차헌에게 손짓했다.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척 얹은 그가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양대산맥. 내가 아주 기대가 큽니다. 영화 들어가면 둘이 단짝처럼 붙어 지내게 될 텐데, 친해져 봐요. 내가 보기엔 둘이 아주아주 잘 맞을 거 같으니까.”
로운은 생각했다.
‘실례지만 감독님, 혹시 눈이 좀 안 좋으신가?’
어떻게 이 삭막한 분위기를 보고 잘 맞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내가 보기에 둘이 비슷한 부분이 아주 많아요. 연기에 대한 열정이나 진지한 태도가 둘이 아주 딱 맞아. 둘이 친하게 지내다 보면 서로 배울 것도, 얻을 것도 많을 겁니다. 차헌이 너,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이 친구 아주 크게 될 거라고 했었잖아.”
“예. 기억납니다.”
그게 너였냐.
강차헌의 시선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대체 뭘 얼마나 속살거렸길래 감독이 이렇게까지 말하느냐는 눈빛은 덤이었다.
“채유정이 딱 감독님이 생각하는 그 자체였다면서요. 상상을 찢고 나온 것처럼요.”
“그래. 이로운 씨, 아주 크게 될 친구야. 미리 딱 얼굴 박아 두고 친해져 두면 너한테도 아주 도움 될 거다. 어쩌면 너보다 더 잘될 수도 있을걸?”
“그렇게나요?”
네가 그렇게까지 된다고?
강차헌은 이제 감독이 제정신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저 인간이랑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래. 너 내 눈 좋은 거 알지? 아까 구일환 씨도 그렇게 말했잖아.”
“예. 구일환 선배님도 처음 본 사람 내력까지 읊을 정도로 눈썰미가 좋다는 얘기는 저도 많이 들어봤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두 사람을 서로 소개시켜 주고 싶었는지 몰라. 둘이 잘 지내봐요. 어차피 계속 붙어 있다 보면 다 친해지더라고. 하하하.”
대체 누가 누구랑 비슷하고 누구랑 친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
“…….”
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는 듯 마주 보는 시선이 동시에 썩어들었다.
‘…기분 나빠 해야 하는 건 나 아닌가?’
로운은 억울했다.
졸지에 돈 없는 감독을 돈으로 매수한 비열한 협잡꾼이 되지를 않나.
수치도 모르고 칭찬을 강요한 뻔뻔한 인사가 되어 버린 이 현실이라니!
어색한 인사타임도 끝나고 미팅 시간까지도 아직 시간이 좀 남았을 무렵.
뭘 생각하는지 모를 얼굴로 로운을 바라보던 강차헌이 그를 끌고 복도로 나왔다.
“뭐 마실래?”
“……?”
방금까지는 뭐 씹은 얼굴로 쳐다보더니 갑자기 이렇게 음료수를 사 준다고?
“…데자와요.”
그래도 주는 것은 거절하지 않는다.
극도로 빈곤하게 살았던 로운에게는 이렇게 한 번 한 번 내려지는 은혜가 몹시 소중했기 때문이다.
“뭐?”
“데자와요. 따뜻한 걸로.”
“넌… 생긴 건 멀쩡하면서 입맛은 왜 그 모양이냐?”
뭐지? 이건 시비인가?
그러나 강차헌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착실하게 로운이 말한 음료를 꾸욱 눌렀다. 좋아. 이번 한 번은 참아 줘야겠다.
“네가 채유정이었다고.”
강차헌이 그를 이상한 생물 보듯 샅샅이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감독님이 입이 마르게 칭찬하던 게 채유정인데. 그게 어떻게 너지?”
“…….”
그건 뽑은 사람에게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
“너 뭐 감독님한테 뇌물이라도 먹였냐? 아니, 어떻게 네가 채유정일 수가 있지? 난 뭐 어떻게 잘 비벼서 좀 괜찮은 조연 자리나 꿰찬 줄 알았더니 이건 뭐……. 비교도 할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을.”
어이없다는 말투로 중얼거리면서도 강차헌은 계속해서 집요하게 로운을 훑어보듯 살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근데 의심 받은 게 억울하긴 해도 뭐. 본체랑 문제 있던 사이였으면 이런 의심 충분히 할 수도 있긴 하지. 내가 봐도 본체 연기는 정말… 좀 많이 그랬으니까.’
오죽하면 관람객들이 영화에 본체가 묻었다고 짜증을 다 냈겠는가?
이런 의심은 오디션 때 그러했던 것처럼 스스로를 증명하면 사라질 터.
‘기필코 다시는 이런 헛소리를 못 하게 해 주마.’
이날을 위해서, 이 대본 리딩을 위해서 일 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칼을 갈며 연습을 했던가!
간신히 잡은 기회인 만큼 로운은 자신의 최선을 보여 주리라 다짐했다.
그때, 불쑥 커다란 손이 다가와 이마에 살짝 닿더니 곧 떨어졌다.
“뭐지? 열은 없는 거 같은데. 너 뭐 어디 아프기라도 하냐?”
“…아뇨?”
“아까부터 진짜 이상한데. 안 어울리게 웬 존댓말이야. 평소대로 놀라니까?”
본체가 있다면 붙들고 물어보고 싶다.
대체 강차헌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상대가 저렇게 나오는지.
전말을 모르니 뭐라 말하기도 어려운 로운이 경계하자 강차헌이 피식 웃었다.
“나랑은 뭐 말 섞기도 싫다 이건가? 뭐, 좋아. 어차피 리딩 들어가면 알게 될 테니까.”
그거야말로 간절히 로운이 바라던 바였다.
가장 순수하게 배우 본인의 역량이 드러나는 부분을 꼽자면 바로 대본 리딩이라 할 수 있다.
감독의 디렉팅도 없으며 편집의 마법도 없다.
스스로 분석한 해석과 캐릭터로 연기를 선보이는.
그렇기에 배우가 얼마만큼 스토리를 이해하고 캐릭터를 파악했는지.
대본 리딩은 그 모든 것이 가장 처음으로 드러나는 자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 대본 리딩을 위해 로운은 칼을 갈았다.
‘기필코 다시는 나보고 뇌물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를 못 하게 해 주마.’
그야말로 시나리오에 매몰되다시피 했던 일주일이었다.
간신히 잡은 기회인 만큼 로운은 자신의 최선을 보여 주리라 다짐했다.
“미팅 시작합니다. 다들 모여 주세요!”
때마침 시간이 다 됐는지 스태프가 모두를 호출했다.
이 난감한 자리에서 빨리 탈출해야겠다.
로운이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는데, 큰 손이 앞을 막으며 제지했다.
“…왜요?”
“이거 좋아한다며. 가져가서 더 먹어.”
언제 뽑았는지 홍차맛 음료가 손에 들려 있었다.
먹을 것에는 죄가 없다.
의외로 강차헌은 로운이 경계하며 그 손에 들린 음료를 가져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로운이 음료를 받아들자마자 먼저 긴 다리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지? 본체 엄청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먹을 거 주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하던데.
상대가 강차헌이라서야 영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일단 대본 리딩에만 집중하자.’
많은 것이 달라질 대본 리딩.
그 기회를 잡을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