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4)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24화(24/110)
24
이 자리의 모두가 놀라워하는 시선을 보내는 와중.
모든 것을 미리 예상했던 감독만이 홀로 싱글벙글 웃는 얼굴을 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그는 리딩장의 분위기를 기민하게 읽어냈다.
놀라움은 물론이요, 충격과 경악까지 가지각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운이 보여 준 연기는 정말로 예상 외였던 것이다.
‘일부러 이런 씬을 고른 보람이 있군!’
강렬한 감정 연기는 어떻게 보자면 오히려 쉽다고 할 수도 있다.
격렬하게 터트릴 줄 알면 반은 가니까.
표현하기 어려운 것은 그 반대의 감정이다.
미묘한 감정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장면이나 흐름 자체가 밋밋해진다.
작품 자체가 평면적으로 납작해지는 것이다.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당연히 관객의 집중력도 떨어지게 될 터.
그 결과는 고스란히 작품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어떨까?
‘오래도록 여운이 남고 계속해서 기억에 남게 되는 거지.’
한 번으로 모자라 두 번을 보고.
두 번도 모자라 재차 관람을 반복하며 영화에 담긴 여러 가지 메시지를 거듭해서 음미하게 되는 것이다.
회전문이 영화 관람 방식의 한 트렌드로 자리잡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김 감독의 어깨가 뿌듯하게 펴졌다.
이 대단한 배우를 알아본 사람은 다름아닌 자신이었다!
심지어 이 대단하고 멋진 배우는 불과 몇 주 만에 또다시 눈부시게 한층 더 성장한 상태였다.
이런 성장 속도라면 대체 앞으로는 얼마나 더 대단해질 것인가?
김 감독은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이 자리에 있는 배우들 역시 저마다 한가락씩 하는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
연기에 진심인 이들이기에 이 짧은 씬만으로도 로운의 진가를 알아봤을 터.
벌써부터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놀람.
경악.
불신.
충격…….
그 찰나의 감정이 눈동자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김 감독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배우들의 반응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마치 자신이 인정을 받은 것처럼 뿌듯함마저 들었다.
물론.
“……?”
폭풍 같은 충격과 거센 관심 속에 있는 당사자는 조금 어리둥절한 상태였지만.
* * *
‘왜… 왜 다들 조용하지……?’
혹시 뭐 실수라도 했나?
로운은 황급히 좀 전의 몇 분을 복기했다.
‘아닌데……? 대사 틀린 곳도 없는데……?’
다들 왜 말이 없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연기가 못 봐줄 정도로 끔찍했던 것일까?
하지만 분명 머릿돌이 ‘이 정도면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었는데.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따로 있었다.
‘저 인간은 또 왜 저렇게 쳐다보는데?’
안 그래도 신경 쓰이는 인간이 아까보다 더 신경 쓰이는 행태를 하고 있다.
분명 아까까지는 적의에 가까운 시선을 보내던 강차헌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몰라도 조금 누그러지나 싶더니만.
48번 씬이 끝나자 뭔 희한한 생물을 보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일단 여기까지 하고 잠깐 쉽시다!”
때마침 아까보다 한층 더 후덕해진 미소를 보이는 감독이 휴식 시간을 알렸다.
그제야 미묘한 침묵이 감돌던 대본 리딩장에 말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이. 이서준이가 진짜 나쁜 놈이네?”
“그러게나 말이야. 저렇게 티 안 나게 배려해 주는 착한 친구를 힘들다고 무시해?”
“요즘 애들은 친구 귀한지 모르잖아.”
“아니지. 이서준이가 왜 요즘 애야? 다 늙어빠진 아저씨인데?”
“그러네? 듣고 보니 그러네?”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말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전히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는 것은 로운 혼자였다.
‘강차헌의 연기가 이상했나? 갑자기 이서준은 왜 욕하시는 거지……?’
보자마자 시비를 거는 이상한 놈이라지만.
강차헌의 연기는 정말로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러웠다.
방금 전까지 으르렁거리던 사람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연기를 시작한 강차헌은 그야말로 ‘이서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삐쭉하게 바라보던 눈빛이나 툴툴거리며 던지는 말투는 친하지 않으면 오갈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었다.
“아니지. 저때 이서준이는 아직 어리잖아. 그러니까 어린애들은 아직 친구 소중한지 모를 때가 맞지.”
“그것도 또 듣고 보니 그런데?”
그 와중에도 배우들의 토론 아닌 토론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 거. 이서준이가 배신하는 때가 언제야. 스물 넘어서잖아. 스물이면 다 크고도 남았구만!”
“어허. 스물이 뭐가 다 컸어? 그리고 배신은 무슨 배신이야? 그냥 자기도 힘드니까 그냥 잠수 좀 타고 그런 거지.”
“거, 친구라고 너무 편 드는 거 아니요? 아니지. 당신 김종선이잖아.”
“그러게. 배신이라면 이서준이가 아니라 김종선이가 하는 건데?”
김종선은 주인공 이서준과 채유정의 친구로, 이서준이 채유정과 친해지는 것을 본 김종선이 이서준에게 접근한다.
본래 김종선은 사람의 배경 따지기를 좋아하고 가려사귀는 성격이지만 채유정의 친구라는 이유로 이서준을 친구로 대한다.
항상 겉돌던 이서준이 그제야 갖게 되는 친구들이었다.
‘문제는 주인공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드는 게 이 친구라는 존재지만 말이야.’
배우들이 재잘대며 했던 말처럼 김종선은 이서준을 배신한다.
그것도 이서준의 꿈을 꺾는 최악의 방법으로.
먹고 살기 힘든 와중에도 어떻게든 작품을 써 내려가던 이서준이 결국 펜을 꺾게 되는 계기가 바로 김종선인 것이다.
‘반대로 채유정은 그런 주인공을 다시 글 쓰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그만큼 채유정의 역할은 짧지만 나름 중요했다.
그 어떤 흠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이로운 자신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안 그래도 사방에서 물어뜯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절대로 꼬투리잡힐 빌미를 줄 수는 없지.’
까딱하다가는 죽음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문자 그대로다.
의뢰를 실패하면 로운에게는 곧장 유예된 페널티인 죽음이 적용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로운은 무척 불안했다.
“유정이가 또 빨리 죽잖아.”
“나이도 어린데 안쓰럽더라…….”
어떻게 넘어갔는지 알 수 없는 대화의 흐름을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어느새 배우들의 빤한 시선이 로운을 향해 있었다.
‘그… 왜… 왜 그렇게 보시는 거지?’
어쩐지 안타까워하는 눈빛이다.
그들은 짠해 죽겠다는 듯이 로운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더니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때마다 로운의 어깨가 움찔움찔 튀었다.
심지어 그들은 다가와 로운의 손등을 토닥여 주기까지 했다.
로운은 영문을 모른 채 그들의 손길을 받으며 물음표만을 띄웠다.
‘연기가… 위로해 줄 정도로 형편이 없었나?’
분명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싶었는데?
그건 자신의 자만이었던 것일까?
로운이 이 알쏭달쏭한 반응에 영문을 몰라 하던 때.
쉬는 시간을 맞아 잠시 물을 마시러 한쪽으로 빠지자 기다리고 있었던 듯.
매니저가 후다닥 달려왔다.
“아이고, 우리 로운이! 귀여움 엄청 받네!”
리딩이 진행되는 동안 한쪽에서 눈을 반짝이던 매니저다.
한쪽 손에는 야무지게 캠코더를 들고 있었는데, 이 기념비적인 날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가져온 것이었다.
“귀여움이요?”
“그래. 방금 너 귀여워서 죽으려고 하던 선생님들 봤잖아. 그분들 엄청 까다롭던데 벌써 마음에도 들고. 아주 기특해 죽겠어, 우리 로운이!”
“그… 연기를 못해서 위로해 주신 거 아니고요?”
“아니, 얘가 기억을 잃더니 넘치던 자신감도 같이 잃어버렸나……? 아무 말이나 착즙하던 애가 대놓고 칭찬을 해도 왜 알아듣지를 못하니……!”
매니저의 말에 의하면 방금 전 배우들의 대화는 일종의 극찬이었다.
“배우들이 몰입할 만큼 네 연기가 인상 깊었다는 거지! 캐릭터랑 너를 동일시할 만큼 해석도 완벽하고 분위기도 확실하게 장악했다는 뜻이거든.”
고작해야 대본을 맞춰 보는 수준의 리딩이라지만.
실력 있는 배우들은 그 리딩만으로도 수준급의 연기를 펼쳐 보이고는 했다.
목소리만으로도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상황인지, 어떤 분위기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보여지는 장면은 없지만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어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제가 진짜로 그렇게 잘했다고요?”
“로운아. 형이 비록 네 매니저지만 빈말하는 사람은 아니야. 애초에 김 감독 표정을 보면 그런 이상한 생각은 못 할텐데. 그 얼굴 못 봤어? 너 보면서 아주 흐뭇해 죽으려고 하던데.”
모두가 간식을 먹으러나가 비어서 그런지 매니저의 말은 거침없었다.
“아까 배우들 말하는 것도 들었잖아. 그 사람들 연기판에서 아주 오래 굴러먹은 사람들이라 웬만해선 칭찬 잘 안 하거든. 그런데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거 보면 뭐. 각 나오지.”
“…그런 거예요?”
“그래. 그 대단한 강차헌도 별말 없잖아. 강차헌이 좀 연기에 칼 같다는 평가가 있었거든.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탑스타 자부심이 어디 가겠어? 그런데 봐. 아무 말도 안 했잖아.”
그건 그랬다.
사실 다른 배우들이 손등을 토닥이며 갔을 때, 혹시 하는 생각은 있었다.
로운에게도 눈치라는 것이 존재했으니까!
그럼에도 확신하지 못한 것은…….
-야, 이 정도는 누구나 다 해. 바쁜 척은 혼자 다 하더니만 고작…….
-노래 뭐 얼마나 잘 부른다고 자꾸 연습이 필요합네 마네 하는데? 넌 어차피 대타야. 너 정도 하는 사람 널리고 널렸어. 그냥 가서 시간만 때우고 오면 된다고.
-인기 있지 않냐고? 야. 그게 네가 만든 곡 때문이냐? 부른 애들이 잘해서 그런 거지? 얘가 아주 착각을 단단히 하고 있네? 내가 걔네한테 곡 안 줬으면 네가 만든 건 다 묻히고도 남았어.
아직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소리들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애를 써도.
로운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결코 좋은 얘기를 듣지 못했다.
그 과거의 망령이 자꾸만 로운의 발목을 잡아챘다.
-이 정도는 어림 없으니까 다음엔 잘해. 알겠어?
언제나 모자라다는 얘기만 들었다.
열심히 하는데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냐는 말만 들었다.
그나마 조금이나마 재주가 있어서 쓸모가 있기는 했다지만.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소리는 언제나 로운에게 따라붙는 말이었다.
그랬었는데…….
‘인정 받았어.’
혹시나 했지만 매니저의 말로 로운은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꿈속 트레이닝을 위한 최소한의 잠을 제외하고는 미친 듯이 연습만 반복하고 지냈던 지난날.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지만 어느새 진심이 되어 버렸던 그의 노력들.
그 모든 것들이 인정받는 것만 같다.
‘망치고 싶지 않아. 이제는 제대로 하고 싶어. 더 이상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죽기 전.
찰나간에 든 생각은 후회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다시 기회를 얻은 지금.
로운은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었다.
더 이상의 후회가 남지 않도록.
그의 모든 노력 하나하나가 꿈으로 가는 길의 반석이 될 것이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던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제대로 인정받고 노력에 대한 온전한 성취감을 느껴 본 것이 대체 얼마만이던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지금.
로운은 이상하게도 가슴 한편이 욱신대면서도 뿌듯하게 차오르는 느낌을 동시에 느꼈다.
그것은 퍽 이상면서도 나쁘지 않은 감각이었다.
“자, 다들 모여 주세요. 휴식 끝났으니 다시 리딩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짧았던 휴식이 끝나고 다시 리딩이 재개되었다.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기뻤지만 좋아하기는 이르다.
‘이 한 번이 끝이 아니니까.’
비록 인상깊은 첫 인상을 확실하게 남겼다지만.
이 한 번만으로는 아직 뿌리깊게 남아 있는 망나니 이미지를 벗기엔 역부족일 터.
‘계속 증명해 나가야 할 거야.’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가는 과거의 악명이 그의 발목을 잡아 언제든 고꾸라트릴 테니까.
“자, 그럼 다음 진행할 씬은…….”
로운은 그 사실을 머릿속에 되새기며 몇 번이고 읽어 너덜해진 대본을 넘겼다.
지금은 집중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