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5)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25화(25/110)
25
영화 제작은 놀라울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얼마전에는 크랭크인을 앞두고 첫 고사를 지내러 다녀오기도 했다.
“고사요? 무슨 고사요?”
“아, 맞다. 너 기억 잃었었지. 돌아오지 않았으면 해서 그런지 자꾸 까먹게 되네.”
“……?”
저기, 매니저 형? 지금 속마음이……?
아무튼 매니저의 속마음과는 별개로, 그가 설명해 준 바로는…….
‘생각보다 유서 깊은 전통이었지.’
그래서 그런지 야외촬영장에 준비된 고사상은 아주 으리으리 그 자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앞쪽으로 준비되어 있는 돼지머리였다.
[호오. 제법 본격적이로구나.]매니저가 설명해 줄 때부터 호기심을 드러내던 청화.
따라오겠다더니 정말로 따라와 상 주변을 뱅글뱅글 돌기까지 했다.
그러더니만.
[이렇게까지 진심이라면 성의를 봐서라도 내 힘을 써 봐야겠구나. 영감탱이들, 얻어먹을 거면 그쪽도 성의를 보여야 하는 건 잊지 않았겠지?]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신기했던 것은 감독을 비롯하여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상 앞에서 절을 할 때마다.
‘…잘못 봤나?’
작은 물방울이나 다름없는 청화의 몸집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별빛 32가 오랜만에 포식을 한다며 깊은 만족감을 드러냅니다!] [별빛 59가 정성 어린 상차림에 흡족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별빛 94가…….]‘뭐지? 관조자님들이 얼마나 와 계시길래……?’
로운의 눈에는 청화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띠롱띠롱거리며 올라가는 메시지 창을 보면 뭔가 심상치 않았다.
[내버려 두려무나. 오랜만에 속세의 맛을 보니 기분 좋은 모양인 것 같구나.]돼지 입에, 코에, 귀에 지폐를 물리고 꽂으며 절하는 사람들은 까맣게 모르겠지만.
그들의 정성 어린 치성을 들어주는 이들이 떡하니 앞에 있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내가 종종 길어왔던 정화수도 그럼 혹시……?’
김 감독처럼 거창하게 준비하진 못했지만 새벽마다 청량한 물 떠놓기를 잊지 않고 준비했었는데.
혹시 그 바람도 누군가 들어주었기에 이런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던 것일까?
‘나중에 청화 님께 물어봐야겠다……!’
아무튼 이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하늘의 존재만 해도 여럿.
로운은 왠지 가슴이 든든해짐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고사를 무사히 마친 뒤.
귀로 팀의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촬영장.
뜻을 보자면 영화 촬영을 위하여 장치물을 설치하거나 만들어 놓은 장소다.
그러나 로운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꿈을 만들어 가는 곳.’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모여든 곳이 바로 이 촬영장이라 해도 무관하다.
이곳을 통해 감독의, 그리고 로운의 꿈이 실현될 터.
그렇기에 촬영장으로 향하는 로운의 발걸음은 언제나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니, 로운이 네가 스태프로 고용된 것도 아닌데 촬영날마다 가서 촬영도 아니고 잡일까지 할 이유가 있어? 혹시 김 감독이 뭐라고 했니?
비록 매니저가 촬영이 있는 날마다 지박령처럼 그 주변을 맴도는 로운을 보며 ‘왜 그렇게까지 하냐’며 펄쩍 뛰기는 했지만…….
‘재미있는걸.’
간절함과 치열함은 쉽게 전염된다.
한평생 후회와 아쉬움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로운에게는 더욱더 그랬다.
단순히 장소라는 의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촬영장.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로운에게는 큰 도움이었다.
“안녕하세요.”
“어? 왔어요? 오늘도 엄청 빠르게 오셨네요.”
촬영장에 들어서며 인사하자 마침 준비 중이었던 스태프가 웃으며 함께 인사해 주었다.
당연하지만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진짜 처음에 비하면 정말로 장족의 발전이었지…….’
김 감독이야 처음부터 로운에게 무한하게 호의를 드러냈다지만.
다른 스태프들은 아니었다.
처음엔 인사를 받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이쪽을 미심쩍게 바라보기만 했었다.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건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차하면 꼬투리를 잡아 패악을 부릴 시한폭탄처럼 보는 시선들이 대다수였다.
‘아니, 나는 그냥 인사를 한 것뿐인데……!’
이 모든 것이 본체의 업보였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꾸준하게 인사를 건네고 촬영이 있을 때마다 슬그머니 찾아와 맴돌며 눈도장을 찍고 한 보람이 있었다.
잔뜩 경계하던 사람들이 점점 누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꾸준하게 얼굴을 비추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얼마나 본체가 망나니였길래 싶은 마음 반, 기쁜 마음이 반이었다.
로운이 이런 상황을 알려 주자 매니저는 이렇게 대꾸했다.
-당연하지. 자기 촬영이 아닌 때도 현장에 나와서 일거리도 돕는 배우를 누가 싫어해? 그 사람들 눈이 동태 눈깔이 아니라면 로운이 네가 여러모로 노력하는 것도 다 보일 텐데. 보나마나 로운이 너, 슛 들어갈 때마다 눈 반짝반짝하며 열심히 지켜볼 거 아니야. 안 그래?
그건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눈앞에서 살아 숨쉬는 생생한 연기가 라이브로 펼쳐지는데 몰입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보는 것만으로도 부쩍부쩍 경험치가 쌓이는 느낌이라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 저런 식으로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거구나.’
‘별다른 대사가 없어도 표정을 어떻게 이어 가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느낌이 달라져.’
‘호흡을 저렇게 끊어 갈 수도 있구나.’
영상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던 사실적인 배움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로운이 할 일은 그저 열심히 보고 배우는 것이었다.
이렇게 대단한 실전 교재가 눈앞에 있으니 촬영이 있는 날마다 출석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뭘 해도 열심히 보고 배우려고 들잖아. 촬영 때만 얌체처럼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말려도 자꾸 이것저것 스태프들 일도 도우려고 하는데. 그런 배우를 누가 싫어하겠어?
그런가?
하지만 스태프들을 돕는 것도 로운에게는 배움이었다.
현장에서는 소품 하나도 허투루 세팅하지 않는다.
배치되는 배경이나 구성물은 모두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령 주인공 이서준의 집의 모든 살림살이는 낡았다.
‘아예 집부터가 좁고 낡고 허술했었지.’
이서준이라는 인물의 배경을 가타부타 긴말할 것 없이 사는 집 하나로 모든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왜 그가 쉼 없이 일을 해야 하는지.
왜 어린 나이에도 사회로 내몰려 돈을 벌어야 하는지.
그 단출한 살림 한편에 조르륵 놓여 있는 조그만 액자들 또한 여기에 신뢰도를 더한다.
사진에 있는 사람은 오로지 둘.
이서준과 그의 어머니뿐이다.
해맑게 웃던 어린아이는 몇 개의 사진을 걸쳐 세상의 풍파를 맞은 지치고 낡은 표정으로 변했다.
그것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이서준’이 어떤 인물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기하고 재미있어.’
그가 모르던 세상은 이렇게나 넓었다.
그 하나하나를 배워 가는 것이, 로운은 무척이나 즐겁고 기꺼웠다.
아무튼 그 덕분인지 로운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점차 바뀌어 갔다.
“그러고 보니까 차헌 씨도 먼저 와 있던데. 두 사람 요새 누가 먼저 빨리 오나 내기라도 해요?”
보라.
이렇게 먼저 말까지 걸어주지 않는가!
다만 그 내용이 조금 찝찝하지만.
“강차헌이… 와 있어요?”
“네. 아까 지나가던데?”
로운은 말을 전해준 스태프가 옮기는 조명 기기를 같이 옮겨 주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움직였다.
‘대체 그 인간은 왜 자꾸 오는 건데?’
촬영장은 여기저기 배울 것투성이인 배움의 보고 그 자체였다지만.
로운은 요즘 조금 곤란함을 느꼈다.
“왔냐. 늦었네?”
“…….”
바로 눈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강차헌 때문이었다.
‘왜 친한 척이지?’
로운은 똑똑히 기억했다.
그들의 첫 만남이 얼마나 험악하고 사나웠는지를.
정확히 말하자면 로운이 뭣 모르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폭언을 들은 것에 가깝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뭐야. 이젠 인사도 안 받아주냐? 또 무시하기로 한 거야?”
“대체 촬영장에는 왜 자꾸 오는 건데요? 강차헌 씨 촬영 날짜도 아니잖아요.”
“오는 건 내 마음 아냐? 너도 매번 오잖아.”
“그거야 나는……!”
배울 게 많아서다.
‘하지만 너는 아니잖아요……?’
강차헌은 무려 헐리우드에서 주연까지 했던, 누가 봐도 뭐 하나 배울 것 없을 만큼 노련하고 숙련된 연기자다.
처음 촬영장에 드나들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로운은 어째서인지 강차헌을 자꾸만 마주치게 되었다.
‘…감시하러 왔나?’
대본 리딩 이후.
묘하게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던 강차헌.
그러나 첫인상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영 대하기가 껄끄러웠다.
‘본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건 확실한데. 그게 뭔지 모르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매니저도 확언하지 않았던가.
두 사람 사이에 접점이라고는 1도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로운이 촬영장 지박령을 자처하자마자 강차헌 또한 촬영장에서 거의 숙식하다시피 하며 드나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얘 진짜 뭐지?’
분명 첫인상으로는 이쪽과 겸상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단호한 기색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아주 감시하듯 촬영장을, 아니, 로운의 주변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맴돌았다.
“너는, 뭐. 왜 말을 하다 말아?”
“…난 배울 게 많아서 오는 거고요. 그쪽은 배울 것도 없잖아요.”
“배울 게 왜 없어?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속담도 있는데.”
“그 배움이 꼭 여기여야 할까요?”
“너는 여기서 뭘 배우는데?”
비꼬는 건가 싶었는데 진짜로 궁금한 표정이었다.
“그쪽은 연기 경험이 많아서 모르겠지만 나 같은 초보는 현장을 보는 것부터가 다 배움이거든요?”
“그래서 뭘 배웠는데.”
“뭐… 카메라의 무브먼트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라든가. 다른 배우분들이 카메라 앞에서 시선 처리를 어떻게 하는가 라든가. 감독님이 보여 주시는 콘티가 어떻게 연출되는지, 그 연출을 어떻게 디렉팅 하시고 배우분들이 어떻게 연기하는지. 뭐 그런 것들이요.”
그야말로 기초 중의 기초다.
촬영장의 소품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직접 드나들며 알게 되었듯이.
이 모든 것은 연습만으로는 알 수 없던 지식들이었다.
하다못해 조명이 놓이는 위치에 따라 배우들의 동선이 어떻게 변하는지 또한 현장이 아니라면 파악하지 못할 정보였다.
로운은 그 모든 것을 마른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모조리 받아들이며 소화시켰다.
‘그래야 ‘채유정’을 좀 더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 테니까.’
이곳은 로운이 연기할 채유정이 살아 움직일 세상이다.
그러니 이곳에 익숙해질수록, 이 세상을 자세히 알면 알게 될수록.
채유정은 점점 더 생생하게 살아 숨쉴 수 있게 될 것이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연기하는 것만으로 끝나면 안 돼.’
로운은 아쉽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알고, 조금 더 잘하고 싶었다.
‘비웃으려나?’
로운의 욕심과는 별개로 이제야 갓 걸음마를 시작한 그를 보며 강차헌은 어이없어할지도 모른다.
이미지가 최악인 상대가 이제야 기초적인 것들을 배운다고 생각하면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쳐다봐요?”
“아니, 좀 신기해서.”
조소는커녕, 오히려 뭔가 낯선 것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굳은 표정의 강차헌이 물었다.
“너 누구야.”
“네?”
“너, 이로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