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6)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26화(26/110)
26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설마 들킨 건가?
긴장으로 숨이 흔들렸다.
그러나 여기서 절대 긴장한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제 발이 저려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제, 제, 제, 제가 이, 이, 이로운이 아니면 누, 누, 누구겠어요?”
…물론 생각대로 잘되지는 않았지만.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강차헌은 말을 더듬는 로운을 이상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눈썹을 찌푸렸다.
“뭐… 내가 생각해도 좀 어이없는 말이기는 해. 사람이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현실이 영화도 아니고.”
그 어이없는 생각이 진실이었다.
차마 강차헌에게는 밝힐 수 없는 이야기지만.
“다른 사람의 영혼이 대신 들어오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이로운의 얼굴 거죽을 뒤집어쓰고 오는 것도 말도 안 되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강차헌의 눈길이 로운의 귓가를 훑었다.
설마하니 수술 자국이 남아 있을까 싶은 눈초리였다.
“차라리 쌍둥이가 있다는 쪽이 더 현실성 있으려나? 하지만 그쪽 집안에 쌍둥이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마지막 말은 거의 혼잣말에 가까워 들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진짜로 의심하는 건 아닌 모양이네.’
로운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아이고, 우리 배우들! 오늘도 사이가 좋아 보이는구만!”
그때,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김 감독이 나타났다.
“로운이는 오늘도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요 몇 주간 촬영장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생긴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김 감독의 말투였다.
로운이 먼저 나서서 편히 대해 달라 요청했고 김 감독은 몹시 기뻐하며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네.”
로운이 늘 그렇듯 같은 대답을 내놓자 감독은 이번에 강차헌을 향해 물었다.
“차헌이도?”
“그러려고요.”
“아니, 뭐 볼 게 있다고 매번 나와? 너희들 촬영은 아직 저 뒤인데. 학교 분량 찍으려면 아직 멀었잖아.”
타박하는 듯하지만 김 감독의 입꼬리는 하늘을 향한 채였다.
“현장을 보는 것부터가 다 배움이니까요. 지금 선배님들의 해석을 봐 둬야만 저희가 연기할 때 설정 오류 같은 게 안 생길 거 아니겠습니까?”
강차헌이 수려한 얼굴로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로운이 뒤통수를 맞은 듯한 얼굴로 강차헌을 바라보았다.
‘조금 덧붙이기는 했지만 저거, 아까 내가 한 말이잖아!’
진실을 모르는 김 감독은 한껏 기분이 좋아진 채로 싱글벙글 웃었다.
“맞네. 맞아. 아휴, 이 기특한 것들!”
김 감독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요새 몹시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영화 촬영을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건만.
‘그러고 보니 로운이를 만난 이후부터인가?’
기적같이 진흙 속에 숨겨진 원석을 발견한 그 이후부터 모든 일이 너무도 술술 풀려 나갔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촬영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
본래도 그리 나쁜 분위기는 아니었다.
애초에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결심해 준 배우들인 만큼 서로 동지애 비슷한 것이 싹 튼 덕이었다.
그러나 요즘 귀로의 촬영장은 그보다 더 나아가 어디서도 볼 수 없던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다.
시작은 매번 촬영일마다 찾아와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 긴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기하는 로운이었다.
-어? 로운 씨, 오늘 촬영 없는데요?
-네. 알아요. 혹시 구경은 어려울까요?
-아뇨… 안 될 것 없죠.
오히려 감독의 입장에서는 환영하는 바였다.
출연 배우가 현장 분위기를 익히고 거기에 빠르게 녹아드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렇지 못해서 설명하고 리허설 들어가는 데에만 시간을 꽤 잡아먹고는 하지만.’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니다.
그들이 이 작품 하나만 하는 것도 아니고 온갖 스케줄로 바쁠 테니까.
그러나 그런 작은 균열들이 모이고 모여서 영화 퀄리티에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리 후작업에 공을 들인다 하더라도 한계는 있으니까.’
편집의 마법은 분명 존재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충 그럴싸하게 만든 속 빈 강정 같은 장면은 귀신같이 알아본다.
관객들 또한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이 고집을 부려 배우들을 억지로 불러들일 수도 없는 일.
그런데 귀로의 촬영장의 분위기가 어느새 바뀌어 갔다.
-그 애들이 그렇게 매일 나온다고?
-채유정이 역은 그렇다 쳐도… 강차헌이는 왜?
-난들 알아. 근데 애들이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우리도 좀 뭔가 보여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원로랍시고 거들먹거리기만 하면 얼마나 꼴불견이야?
항상 바빠 본인 촬영일에만 나오던 배우들이 하나둘씩 방문 횟수를 늘렸다.
로운과 강차헌이 매번 촬영 때마다 현장에 나온다는 것을 안 이후였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본래 촬영은 보통 배우들의 스케줄과 로케이션 섭외 예약 상태 등에 따라 유동적으로 이루어졌으니까.
그 때문에 배우들은 보통 자신의 촬영 분량이 있을 때에만 나오는 게 일반적이었다.
‘배역이 간절한 신인이나 단역이 아니라면 이렇게 매번 출석 도장을 찍는 경우는 거의 없지.’
특히 로운이나 강차헌처럼 스스로 연기력이 뛰어남을 증명해 낸 배우들이라면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해도 무관했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배역이 굴러들어올 만한 위치의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로운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직접 움직여 열정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존재만으로 타인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배우.’
그의 행보 하나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묵직하던 원로 배우들을 움직이게 만들었으며.
촬영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배우들이 보여 주는 열정에 스태프들의 의욕 또한 커져 갔다.
‘이게 바로 선순환인 거지.’
이러니 김 감독의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로운이 일으킨 나비효과였다.
* * *
“정말 괜찮겠어? 약 안 먹어도 돼? 너 멀미 심하잖아. 그렇게 먼 곳에 정말 갈 수 있겠어?”
아침부터 매니저가 안절부절못하며 로운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멀미약.
그것도 귀밑에 붙이는 것과 마시는 것까지 알뜰살뜰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매니저가 결심한 듯, 급발진을 했다.
“형이… 촬영장 옮기자고 해 볼까?”
“네? 아니요?”
감독이 직접 내정한 외부 촬영지를 바꾸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근데 그 놀라운 것을 본체가 해냈었다니…….’
업계인들 사이에서 본체의 평가가 극악인 이유를 하나 더 알게 됐다.
주연도 아니고 조연도 아니고 고작해야 단역이나 다름없는 주제에 촬영지를 바꾸다니?
‘그게 가능한 건지는 둘째치고… 대체 이 본체, 뭐하는 인간이지?’
파면 팔수록 충격과 공포뿐이다.
그리고 그 충격과 공포를 수습해야 하는 게 바로 로운 자신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괜찮아요. 그렇게 먼 것도 아닌데요.”
전 회사에서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행사 대타를 보낼 때마다.
사람을 붙여 주기는커녕, 혼자서 움직여야만 했다.
차량 지원은 당연히 없었다.
그가 모은 돈은 모두 가족에게 보내야 했으므로 결과적으로 로운은 돈보다는 시간과 체력을 가는 쪽을 택했다.
‘예전 그때에 비하면 뭐…….’
공연 시간을 다 합친 것보다 이동하며 길바닥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다.
“…정말, 기억상실이란 좋은 거야. 멀미도 괜찮아지다니……. 진짜 괜찮은 거 맞지, 로운아?”
“네. 아마 그럴 거예요.”
직접 확인하지는 않아도 아마 맞을 것이다.
육체와 정신,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로운이 이 몸에 들어오게 된 이후로는 중독 수준으로 매일같이 마셨다던 술도 전혀 끌리지 않았다.
본체가 저급하다고 입에도 대지 않았던 편의점 음식들도 맛만 좋기만 했다.
‘이런 걸 보면 본체 기준이 아니라 날 기준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지?’
그러니 멀미 따위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간신히 이미지가 좀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촬영지 교체하자고 말하면 말짱 도루묵 되는 거 아니냐고.’
로운의 첫 촬영.
보다 정확히는 주로 학교에서 진행되는 과거 편 촬영이 늦어진 이유는 생각보다 학교 측의 허가를 받아내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시대 배경을 생각하면 옛날 느낌이 있어야 해서요. 학급 크기나 학교 규모도 좀 커야 해서 찾는데 시간도 오래 걸렸는데. 휴우…….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복병이 있더라고요.
그렇게까지 신경 써서 골라야 하나 싶었던 것도 옛말이다.
촬영장에서 살다시피 했던 로운은 어째서 이들이 소품 하나하나 배경 하나하나 집요하다 싶을 만큼 세심하게 고르고 배치하는지 충분히 이해했다.
-마침 딱! 딱 좋은 곳을 찾아냈거든요? 지방으로 내려가서도 한참 외진 곳에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분위기가 더 찰떡인 곳인데, 거기 교장선생님이 좀 많이 깐깐하시더라고요…….
조연출이자 로케이션 매니저도 겸직하는 조감독의 침울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몇 없는 학생들에게 괜한 바람을 불어넣을까 걱정이라고 했었댔나.’
그뿐만이 아니다.
개봉하기도 전에 여러 구설수에 올랐던 것이 마음에 걸려 했다고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설득에 성공했는지 비로소 며칠 전, 로운의 촬영 일자가 드디어 잡혔던 것이다!
“와…….”
제법 오랜 시간을 달려 내려온 학교는 어째서 조감독이 그렇게나 섭외에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을 만큼의 멋이 있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나무 원목 바닥이라던가.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녹색 칠판이 그랬다.
책상과 의자도 손때가 잔뜩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났다.
‘딱 이곳만 따로 과거에서 따로 떼어 낸 것 같네.’
학생 수가 거의 없는 탓에 학교 기물을 바꿀 만한 예산을 받지 못한 탓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과거의 잔재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귀로’의 촬영장소로는 아주 딱이었다.
‘학교라… 이게 얼마만이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이후.
로운은 학교와의 연이 전혀 없었다.
데뷔 전에는 데뷔하기 위해 연습에만 매진했었고.
데뷔 이후에는 활동하느라 바빠 학업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가리온이 잠정 해체된 이후에는 더 그랬다.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그런 자신이 고등학생 연기를 하다니.
비록 정식으로 다니는 것도 아니고 연기에 불과하다지만.
이런 식으로 죽은 뒤에야 꿈이 이뤄지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어느새 예정됐던 촬영 시간이 되었다.
“모두 준비되셨으면 곧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여기저기 세팅하고 인원도 배치하며 분주하게 돌아가던 현장이 숨을 죽였다.
카메라에 붉은빛이 들어오고 슬레이트가 준비되었다.
비로소 촬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