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7)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27화(27/110)
27
“씬 41, 레디… 액션!”
조감독의 알림과 함께 경쾌한 슬레이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마셨던 로운이 다시 눈을 뜨는 순간.
모든 것이 잊혀졌다.
줄지어 늘어서 있는 카메라들.
곳곳에 놓여 내부를 밝히는 조명들.
그리고 그만을 지켜보는 수백 쌍의 눈동자들까지.
스크린에는 담기지 못할 것들이 한가득인 촬영장.
그러나.
“가정통신문 오늘까지 내야 하는데.”
다시 눈을 뜬 그는 이로운이 아닌 채유정이 되어 있었다.
매일매일 수십 번을 연습하다 못해 보고 또 보며 통째로 달달 외웠던 그 대사들.
그 모든 것이 호흡 한 번에 숨쉬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굳이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다음 대사가, 아니 눈앞에서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서준에게 할 말이 떠올랐다.
“뭐?”
“수학여행 가정통신문. 다른 애들은 다 냈는데 너만 아직 안 냈거든?”
방금까지만 해도 엎드려 있던 이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뭔가 신기한 것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것이 이 반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일지는 알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미묘한 대치가 이어졌다.
그 모호한 침묵을 깬 것은 한참을 노려보듯 쳐다보던 이서준이 뱉은 한마디였다.
“없는데.”
“뭐?”
“없다고. 없어서 못 내겠는데.”
평범한 말투.
그러나 어째서인지 시비를 거는 것처럼 들렸다.
다른 애들과는 달리 머리 하나는 더 큰 키나 커다란 체구.
그리고 늘 피곤에 찌들어 주름이 져 있는 미간 때문에 인상이 좋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까먹고 못 가져온 거면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릴게. 내일까지 가져오던가.”
“아, 진짜.”
짓씹듯이 중얼거린 이서준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숨을 죽이며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던 학생들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상체를 바깥쪽으로 쭉 뺀 것이 여차하면 당장 일어나 튈 자세였다.
고요한 것은 오로지 하나.
이서준과 대치한 채유정뿐이었다.
드륵! 탁!
이서준은 채유정과 몸을 멀찍이 뺀 반 친구들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더니 거칠게 머리를 헤집었다.
교실 바깥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험악했다.
그가 완전히 교실 안에서 사라지자 잔뜩 눈치 보며 죽였던 분위기가 그제야 살아나기 시작했다.
“어휴. 둘이 싸우는 줄.”
“새끼. 너 완전 쫄았더만.”
“뭐래? 지는 안 그랬던 것처럼?”
“그건 그럼. 이서준이 쳐다만 봐도 좀 살벌하지 않음?”
“걔는 그 정도면 알아서 자퇴하지 학교는 왜 나오는지 모르겠던데.”
가장 가까이에서 둘의 대치를 관전하며 조마조마해하던 이들이 말을 걸었다.
“근데, 반장. 어차피 이서준 수학여행 같은 거 안 갈 거 같은데 그냥 놔두면 안 돼?”
“왜?”
“아니이. 어차피 쟤 학교도 자주 빠지잖아. 수학여행이라고 뭐 다르겠어? 분위기만 나빠질 수도 있고…….”
반에서 겉도는 이서준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도 보라.
이서준이 한 것이라고는 고작 몇 마디 말과 몸을 일으킨 것뿐.
그 과정 어디에도 욕설이나 행패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이서준을 헐뜯는 동시에 두려워한다.
“그래도 같은 반 친구잖아.”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리야. 걔가 어떻게 친군데. 어휴. 하여간 반장도 좀 특이하다니까. 나 같으면 그냥 자기가 원하는 대로 빼주겠다.”
“우범아. 혹시 이서준이 너 괴롭힌 적 있어?”
실컷 이서준을 흉보던 녀석의 입이 딱 다물렸다.
눈치를 보는 것처럼 슬그머니 눈을 굴리던 녀석이 대답했다.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분위기가 그렇잖아?”
“맞아. 이서준 이쪽 동네 출신 아니잖아. 여기로 굳이 옮겨 온 것도 중학교 때 패싸움해서 그런 거라는 얘기가…….”
진실 여부를 알 수 없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카더라의 탈을 쓰고 튀어나온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으로 서 있던 채유정.
다시 친구들을 쳐다볼 때,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새 엷은 미소로 바뀌어 있었다.
“나 선생님한테 다녀올게.”
그리고.
“컷!”
김 감독의 목소리가 현장을 울렸다.
* * *
한정된 시간 안에 온전히 완성된 이야기를 보여 줘야 하는 영화.
그렇기에 한 장면 한 장면 모든 컷이 이야기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이번 씬도 그랬다.
이서준의 집안이 그의 불우한 환경을 보여 주었다면.
‘이 장면은 이서준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부분이니까.’
다만 이서준과의 직접적인 대화보다는 눈빛이나 표정, 움직임의 방식 같은 비언어적 표현들이 주로 쓰였다.
주인공인 이서준의 특징이 드러나는 씬이라지만 그의 대사는 거의 없고, 단역들의 대사가 주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강차헌 연기 엄청 잘하네…….”
“대사가 몇 마디밖에 안 되는데 눈빛 미쳤네 진짜.”
“긴장감 완전 미쳤다.”
이서준의 묵직한 눈빛이 주는 존재감은 이 극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뚜렷하게 드러냈다.
이 강렬한 첫인상이 바로 김 감독이 노리는 부분이기도 했다.
‘가정환경도 그렇고, 태도도 그렇고. 딱 엇나갔다고 오해하기 딱 좋지.’
그게 관객이 되었든, 아니면 작품 내의 친구들이건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도 곧 달라지겠지만.’
강렬한 첫인상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다른 의미로 180도 강렬하게 변하게 된다.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이 첫인상으로 가진 편견을 산산조각 내기 때문이다.
‘이것도 아마 의도한 바겠지.’
로운은 김성하 감독이 여러모로 영리하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온전한 이야기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도 그렇지만.
그와 별개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메시지를 끊임없이 일관적으로 넣는다.
당신이 알고 있는 진실이 진짜인지.
혹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매 장면마다 반복하여 그런 의문을 들게 만든다.
‘관객들이 직접 편견이 박살 나는 경험을 하게 만든 후라면 그 메시지는 더 직접적으로 와닿을 테니까.’
더 대단한 것은 감독의 이 개인적인 의도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감독의 개인사를 떼놓고 영화 자체만으로도 완벽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와 별개로…….
‘이런 기분이었구나.’
머릿속으로 반복해서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상상만 하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더구나 기묘한 해방감이 느껴지는 것이…….
‘이래서 호범이가 계속 연기를 했던 걸까?’
멤버들이 하나둘 사고를 친 이후부터 미련 없이 아이돌 활동을 전부 접고 오로지 연기에만 매진하던 막내가 떠올랐다.
그 심정이 갑자기 이해가 되었다.
채유정으로 카메라 앞에서는 순간.
로운은 그간 가지고 있던 후회와 회한, 걱정과 염려 같은 모든 생각들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듯한 기묘한 일탈감이었다.
‘재밌어.’
카메라 앞을 벗어난 로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촬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로운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처음 느끼게 된 감정을 돌아보느라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것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직하게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따위는 당연히 들리지 않았다.
“그보다, 쟤는 대체 무슨 일이냐?”
“야, 쟤라고 하지 마. 감독님 들으시면 큰일나.”
“무슨 신이라도 내린 줄. 아니, 강차헌이랑 붙었는데 밀리는 감이 없어. 말이 돼?”
“후반부에 표정 변하는 거 보고 진짜 놀랐잖아. 몸 틀면서 바뀌는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잘못 본 줄.”
“감독님이 입이 부르터라 자랑하셨잖아. 대본 리딩 씹어먹었다고.”
“아니, 그거 그냥 하시는 말씀 아니었어?”
“감독님이 허언하실 분이냐. 지금도 봐. 아주 입 찢어지신 거.”
은밀한 수다를 나누던 스태프가 팔꿈치로 옆 사람을 슬쩍 찔렀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시선이 감독을 향했다.
김성하 감독은 스태프의 증언대로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눈은 부릅뜨고 있어서 조금 미친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김 감독은 막 방금 찍은 장면 확인을 마친 참이었다.
“어우, 아주 좋아. 너무 좋아. 그래, 이거지. 어흐흐흐.”
감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웃음까지 흘렸는데, 그 덕에 스태프들은 하던 대화도 멈추고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야 했다.
“로운아.”
“네, 감독님.”
때마침 모니터링을 위해 로운이 가까이 왔을 때였다.
“나 잊으면 안 된다?”
“…네?”
“잘돼서 칸에 가고 오스카에 가도 날 잊으면 안 된다는 소리야. 알겠지? 자, 약속하자.”
로운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감독에게 새끼손가락을 내줬다.
“하… 내가 정말 뭐를 발굴해 낸 거지? 두렵다. 나의 이 퍼펙트한 안목이.”
“……?”
“로운이 넌 분명 대성할 거야. 근데 그게 내 생각보다도 더 빠를 수도 있겠다.”
약간 돌은 것 같아 보였지만 감독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진지한 태도였다.
로운의 실력이 늘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갓 피어나기 시작한 재능은 촬영장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무섭게 모든 것을 흡수하며 성장했던 것이다.
꼭 거창하고 뭔가 강렬한 연기만이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박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몰입되다 못해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만든다면……. 그것도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거지.’
강차헌과 이로운의 시선 교환.
그 찰나 간의 침묵이 주는 기묘한 긴장감은 보는 사람의 입안을 바싹 마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곧 달려들어 싸울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둘 사이에 뭔가 알 수 없는 케미가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한.
-없는데.
강차헌이 그 껄렁한 대사를 쳤을 때.
그제야 숨을 몰아쉬는 스태프도 있을 정도였다.
“진짜라니까? 나 못 믿니?”
“아뇨, 믿죠.”
그러면서 배시시 멋쩍은 표정으로 웃기만 한다.
저거저거 분명 못 믿는 거다.
김 감독은 어느새 차가운 불을 속에 담아 둔 채유정을 모두 걷어낸 뒤 맑은 얼굴로 웃는 로운을 응시했다.
로운이 촬영장에 드나들며 여러 가지를 흡수한 만큼.
반대로 김 감독 또한 로운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자신감이 없어도 너무 없어……. 대체 어떤 감독들한테 무슨 가스라이팅을 당했길래 자신감이 없어도 이렇게 없지.’
이전의 필모그라피가 그토록 처참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불쌍한 녀석. 연기를 하면서 이렇게 눈이 반짝반짝할 정도로 좋아하는데…….’
한 장면만으로도 수많은 사람의 넋을 빼놓는 이 재목이 이렇게나 자신감이 없다니. 안 될 말이다.
김 감독은 이 귀중하기 짝이 없는, 이제 갓 싹트기 시작한 재목을 열심히 꽃피워 내 보기로 했다.
물론 그가 키우기도 전에 알아서 만개할 것 같기는 했지만.
김 감독은 벌써부터 그날이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