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8)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28화(28/110)
28
촬영은 재미있었다.
너무 즐거워하는 티가 났는지.
“어째 눈 오는 날의 똥강아지 같구만.”
“우리 집 예삐 생각나네요. 산책 나가면 딱 저렇게 좋아했는데.”
과거 파트 촬영지인 먼 지방까지 내려온 현재 파트 촬영팀이 그런 말을 하며 흐뭇해하는 일이 있었다.
‘…칭찬이겠지?’
왠지 다들 먹을 것 하나씩 쥐여 주셨던 것을 보면 나쁜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째 비유 대상이 전부 다 동물인 게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아무리 봐도 난 다람쥐처럼 조그맣지는 않은데……?’
비록 죽기 전보다는 조금 작아지기는 했다지만.
그래도 본체의 뼈대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작고 조그만 다람쥐에 비한다면 크고 듬직하기만 한데……?
그래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히자.
“그치. 우리 예삐도 그렇게 생각하더라고. 자기가 무슨 셰퍼드나 그레이트 데인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더라고.”
이런 아리송한 답변만 돌아왔다.
‘뭐, 그래도 예로부터 먹을 것을 주는 사람 중 나쁜 사람은 없다고 했었으니까……!’
물론 예외가 있기는 했다.
“흠…….”
“…….”
“흐으음…….”
“…….”
그 대표적인 예가 자꾸만 신경 쓰이는 소리를 냈다.
아니, 대체 왜 자꾸 쳐다보는 건데?
“…뭔데요.”
“거기 머리 조금 삐쳤어.”
“네? 아.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거울을 보니 바람 때문에 머리 한쪽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머리를 가다듬으니 강차헌이 관심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뭔데, 진짜?’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대놓고 빤히 쳐다보기 시작한다.
최악이었던 첫 만남 이후.
강차헌은 그렇게까지 개차반처럼 굴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그가 어느 날부터 로운을 따라 촬영장에 드나들었다는 점이다.
‘…신종 괴롭힘인가?’
그렇지만 강차헌이 딱히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강차헌과 찍은 씬은 언제나 김 감독의 극찬을 들었으며.
솔직히 같이 대사를 치는 것만으로도 보고 배울 것이 있는 훌륭한 배우였다.
사람을 관찰하듯 빤히 바라보는 것만 제외한다면 강차헌은 꽤 괜찮은, 아니 아주 대단한 배우였다.
사람들이 어째서 그에게 열광하는지.
다른 건 몰라도 연기력만큼은 죽어서도 영구 까방권을 줘야 한다는 말이 왜 있는지.
‘알 것 같기는 해. 보고만 있어도 감탄이 나오는 연기력이니까.’
그런 것치고 좀 이상한 사람 같기는 했지만.
대체 촬영이 끝나면 더 시선이 집요해지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아무튼 이런 사소한 점을 제외한다면, 로운은 몹시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는 중이었다.
비록 장소 대여 기한 때문에 촬영이 몰려 있어 스케줄이 몹시 빡빡하고 바쁘기는 하다지만.
‘이상하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아.’
보는 사람마다 로운에게 먹을 것을 쥐여 주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굴기는 했지만, 정작 로운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바쁘기로 따지자면 행사 대타로 굴려질 때보다 더 심한 거 같기는 한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선녀, 아니,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노력하고 공을 들인 만큼 온전한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크나큰 장점이었다.
늘상 그것밖에 안 되냐며 핀잔만 듣던 천덕꾸러기에 지나지 않던 로운.
그런데 이곳에서는 달랐다.
-아이고, 김 감독님 또 입 찢어지려 그런다.
-버릴 컷이 하나도 없네. 하나도 없어.
-이러다가 우리 로케 기간 끝나기도 전에 촬영분 다 찍는 거 아냐?
그저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자 성실히 노력을 했을 뿐인데.
그 노력에 대한 답이 차고 넘치게 돌아와 로운을 뿌듯하고 기쁘게 만들었던 것이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 피곤 따위는 모르고 즐겁고 신이 날 뿐이었다.
‘계속 카메라 앞에서 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쉬워…….’
채유정의 역할은 과거 편에서 끝이 난다.
주인공의 서사를 위한 중요한 파트이기는 하지만 분량으로 따지자면 현재 파트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채유정 역을 맡은 걸 후회하지는 않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
그렇게 아쉬움을 삼키는 와중에도 촬영일은 성큼성큼 줄어들어 갔다.
* * *
“와. 점심시간마다 계속 어디로 사라지나 했더니만. 여기 있었냐?”
불퉁대는 목소리가 끼어든다.
얼마 전부터 과거 편에 합류한 권지호 역을 맡은 심새로였다.
이로써 본격적으로 이 극을 끌어가는 세 사람이 모두 등장하게 되었다.
“뭐야. 맨날 둘만 맛있는 거 먹나 했더니만. 뭐 이런 걸 먹고 있냐.”
권지호는 주인공 이서준이 두 번째로 사귄 친구이자, 앞으로 미래에서 친구의 탈을 쓴 채로 이서준의 뒤통수를 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머나먼 훗날의 일.
비록 이때에도 떡잎이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십 대의 철없음으로 포장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었다.
“매점에서 이런 것도 파나 보네. 나도 한입 먹어 보자.”
권지호는 이서준이 먹고 있던 삼각김밥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가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러더니 곧장 웩- 하며 뱉어 냈다.
“우웩. 야, 뭐 이딴 걸 먹냐? 맛대가리 없네.”
문제는 그것이 이서준의 소중한 한 끼였다는 것이다.
함부로 돈을 쓸 수 없는 이서준은 때로 이런 식으로 한 끼를 때우고는 했는데, 그걸 권지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댔다가 버려 버리기까지 한다.
“야. 이런 거 그만 먹고 내려가자. 내가 쏜다.”
“됐어. 너 그냥 가라.”
“아, 왜에. 화났냐? 그러니까 왜 그딴 걸 먹어. 내려가서 형이 매점에서 맛있는 거 사 주마. 가자.”
그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이서준은 권지호의 무신경함과 자기중심적 사고를 불쾌하게 여기지만 동시에 안도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처럼 이서준의 가난을 동정하고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랬다.
“어? 이게 뭐야, 너 일기 쓰냐?”
평소의 점심시간처럼 약속이 없음에도 자연스럽게 이서준과 채유정은 옥상을 방문했다.
거기에 그날은 불청객 한 명이 더해졌다. 권지호였다.
여러 오해로 반에서 걷도는 이서준이나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반에서 섞이지 못하는 채유정과 달리.
권지호는 무신경함과 뻔뻔함을 내세워 반에서 마당발로 통했다.
그런 권지호가 그날은 웬일인지 자기를 찾는 다른 친구들을 놔두고 옥상에 기습적으로 올라온 것이다.
“권지호, 내놔.”
“이야아. 우리 서준이 생긴 거랑 달리 여린 구석이 있어요.”
“내놓으라고.”
“아, 좀 읽고 준다, 읽고. 어디 보자아. 이서준이가 어떤 내용으로 일기를 썼나아.”
“일기 아니니까 내놔.”
“‘그는 몹시 고단함을 느꼈다. 별들이 인도하는 길을 언제나 그 의미가 모호하여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닿기 어려운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뭐가 어떻단 말인가. 쉽게 잡히는 것을 과연 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엥? 이거 진짜 일기 아니잖아?”
“내놓으라고 말했다.”
“야, 유정아. 이거 봐. 얘 소설 쓰나 봐. 와. 진짜 안 어울린다. 오글거리지 않음?”
까불거리는 권지호 뒤로 벌떡 일어선 이서준이 그를 뒤쫓았다.
평소에는 나이에 비해 철이 일찍 든 것 같은 이서준이 그때만큼은 또래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재밌기만 한데, 왜. 권지호 너는 책을 좀 읽을 필요가 있어. 안 그래도 너 국어 성적 안 좋잖아. 서준이는 그만 좀 놀리고.”
서로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세 사람이.
그들은 각기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특히 이서준은 권지호라는 새로운 독자를 얻게 된 때이기도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단함과 고립된 외로움.
그 모든 것을 글쓰기라는 방법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풀어내던 이서준에게 두 번째로 생긴 독자였다.
그러나 이 즐거움은 얼마 가지 못한다.
고3이 다가오며 서로의 진로가 갈렸기 때문이다.
“미치겠다. 엄마가 못해도 Y대는 꼭 가라고 하던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고오. 그러고 보니 이서준 너는 대학 안 간다고 했던가?
정확히 말하자면 안 가는 것보다 못 가는 것에 더 가깝다.
등록금을 낼 돈도 없을뿐더러 그만한 돈이 있다면 대학을 가기보다는 빚을 갚아야 했으니까.
애초에 일을 하느라 대학이란 것을 생각도 해 보지 않았다.
“난 일하려고. 졸업하면 정식으로 채용해 준다는 곳이 있어서.”
“아아. 부럽다. 나도 대학 때려치우고 너처럼 돈이나 벌까?”
권지호가 무신경한 말을 지껄이며 푸념을 늘어놓을 때.
“난 서준이 대학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채유정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쟤가 대학을 어떻게 가. 출석도 아슬아슬하고 내신도 개판일 텐데. 쟤 빡대가리라 공부도 못하잖아.”
“권지호. 내가 너 말조심하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리고 대학을 왜 못 가는데?”
다른 전형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채유정이 말했다.
이서준은 의아함을 느낀다.
무신경한 권지호는 모르겠지만 채유정이라면 그의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대학은 왜?”
“네가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싶어서.”
“…꿈?”
숨 막히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어 발버둥 쳤던 결과가 글이었다.
글 속 세상에서만큼은 현실의 고통이나 어려움 따위를 느끼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현실에서는 돈도 뭐도 없는 이서준이지만, 소설 속 세상에서는 달랐다.
그렇기에 이서준은 글쓰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숨쉬게 하는 유일한 쉼터이자 희망이었으니까.
“안 될 거라고 미리 지레짐작해서 포기해 버린다면 너무 뻔하고 슬픈 결말밖에 남지 않잖아.”
그 말이 이서준의 마음을 움직인다.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채유정이 이서준을 돕는다.
가능한 전형을 알아보고, 선생님들을 설득하고, 서류를 준비하고.
언제나 힘겹던 이서준의 인생이 새로운 희망을 품으려는 찰나.
-서준아. 너무 놀라지 말고 들으렴. …너희 어머니께서 쓰러지셨다는구나.
이서준의 꿈은 다시금 좌절된다.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가 쓰러지신 것이다.
담임이 전한 소식에 이서준은 이를 악물고 학교를 벗어난다.
“컷!”
강차헌이 교실을 박차고 달려 나가는 장면을 끝으로 김 감독이 외쳤다.
“잠시 쉬었다가 다음 씬 진행하겠습니다!”
심각한 씬에 맞춰 한껏 몰입했던 분위기가 풀어진다.
연기자들이 저마다 긴장을 풀고 잡담을 나누는 사이.
‘이제 몇 장면만 더 찍으면 학교는 끝이네.’
로운이 생각했다.
학교가 끝이라는 소리는 그의 역할도 곧 끝이라는 소리였다.
채유정이 이후 등장하는 씬은 고작해야 몇 분도 되지 않을 테니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나저나. 대체 마무리 씬을 어떻게 해야 하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마지막 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