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9)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29화(29/110)
29
유종의 미라는 말을 아는가.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훌륭한 결실을 맺는다는 뜻이다.
‘첫인상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마무리니까.’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듯이, 반대로 말하자면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과정까지도 평가 절하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는 곤란해.’
비록 연기에 푹 빠지며 진심이 되어 누구보다 즐겁게 촬영에 임했던 로운이라지만.
그는 무엇이 중한지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로운의 목표는 의뢰의 성공적인 완료.
그러기 위해서는…….
‘내 역할을 완벽하게 마무리해야 나중에 주인공이 채유정을 떠올릴 때의 감정이 드라마틱하게 극대화될 수 있으니까. 마지막까지 실수해서는 안 돼.’
장면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중요했다.
특히나 채유정 같은 인물이 끌어내는 서사의 완성이라면 더욱더.
‘어떻게 보면 채유정은 꿈이라고 볼 수도 있어.’
주인공 이서준에게 있어서 채유정은 일종의 상징적인 존재다.
시궁창 같은 그의 인생에 있었던 유일한 긍정적인 인물로서 꿈을 형상화한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채유정은 죽고 말지.’
험한 세상에 던져진 이서준이 깨지고 부서지며 풍파에 구르는 사이.
본래 오랜 지병을 앓았던 채유정은 건강이 악화되어 죽고 만다.
하루하루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벅찬 이서준은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다.
마치 생계에 집중하기 급급하여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지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마지막 씬이 중요하단 말이야? 주인공의 마지막 갈등의 한 축을 채유정이 상징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 앞에 좌절하는 이서준.
채유정은 그런 이서준의 상황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면서도 아쉬워하고, 결국에는 이해하며 받아들인다.
주인공이 체념하는 과정이 채유정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꿈과 현실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던 주인공의 세상은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극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씬.
“후우….”
그가 출연하는 과거 파트의 마지막 장면의 아쉬움은 뒤로 미뤄 둔다 쳐도…….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마지막인 만큼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둬야 하는데.’
문제는 그 중요한 마지막 씬에 대한 확신이 로운에게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게 티가 났는지 촬영이 마무리되자 강차헌이 물었다.
“뭔데?”
“…네?”
“뭔데 왜 또 혼자 심각한 표정인 건데.”
“티 나요?”
“엄청.”
강차헌이 로운의 앞쪽을 눈짓했다.
거기엔 평소보다 더 수북이 쌓여 있는 군것질거리들이 한가득이었다.
“아니… 언제 또 이렇게 주고 가셨지…….”
보는 사람마다 먹을 걸 쥐여 주더니만.
고민하는 기색이 느껴졌는지 더 신경을 쓰게 만든 모양이었다.
“뭐가 문제인데? 뭐 스캔들이라도 터졌어?”
“네? 아뇨? 절대 그런 문제 아니거든요?”
“그럼 촬영 종료가 거슬려? 배역을 더 늘리고 싶어졌다던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대체 이 사람은 본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해 들은 말이 있는 터라 납득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김 감독님이 안절부절못하면서 네 눈치만 보던데.”
끄응.
감독마저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니.
‘잠깐만. 그러고 보니 이 사람, 되게 유명한 배우잖아.’
그것도 연기력으로는 그 누구도 깔 수 없다는 배우다.
평소 강차헌이라면 껄끄럽기 그지없는 상대였으나 지금만큼은 달랐다.
“저기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궁금? 뭐가 궁금한데.”
“그러니까…….”
밑져야 본전이다.
그런데 결과가 의외였다.
로운이 가지고 있던 고민을 들은 강차헌이 아무렇지도 않게 제안했다.
“그럼 연습해 보던가.”
“네?”
“같이해 보자고. 혼자보단 둘이 더 감정 잡기 좋을 테니까.”
“…네?”
“있어 봐. 카메라 빌려 올 테니까.”
“……?”
비웃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일이 커져 버렸다.
* * *
“…이렇게 해도 돼요?”
“안 될 건 뭐야. 안 풀리는 부분이 있다며.”
표정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시비를 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강차헌은 로운의 고민을 비웃는다거나 가벼운 취급을 하지도 않았다.
‘진심인가?’
“싫으면 말고.”
“아뇨. 좋아요. 좋은데요……!”
강차헌의 인성과는 별개로 그가 대단한 배우라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카메라 앞에 서면서 직접 온몸으로 느꼈다.
그런 뛰어난 상대와 함께 연습한다면 분명 크게 도움이 될 터.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왜 어렵다는 건데. 그보다 더 어려운 장면들은 잘만 찍었었잖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행동력으로 빌려온 작은 핸디캠을 만지작거리며 강차헌이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강차헌 씨의 연기에 제가 제대로 맞출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고민 끝에 속내를 밝힌 로운을 보며 강차헌이 이상한 표정을 했다.
마치 ‘내가 무슨 이상한 멍멍이 소리를 들은 거람?’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곧 능숙하게 표정을 수습한 강차헌이 물었다.
“그러니까 이입이 제대로 안 돼서 문제라는 거잖아.”
“그렇죠. 마지막 장면이 이서준과 채유정의 갈등이잖아요.”
앞으로 이틀 뒤에 있을 마지막 촬영은 병원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서 떠날 줄 모르는 이서준을 위해 채유정이 직접 찾아온다.
“채유정이 도와주겠다고 찾아오지만 이서준이 거절하며 화를 내지.”
“맞아요. 그런데 저는 좀 그 부분이 이해가 잘 안 되거든요.”
“왜 이해가 안 돼?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 쓰러지면 당연히 대학 따위는 눈에 안 들어오는 게 정상 아냐?”
“그렇기는 하지만…….”
이서준의 ‘꿈’을 의인화시킨 것이나 다름없는 채유정.
그는 찾아간 병원에서 분노와 좌절이 섞인 이서준의 말을 들으며 그의 결정을 존중하게 된다.
‘문제는 이 부분인 거지. 왜… 왜 납득을 하는데?’
이 장면은 두 사람이 가진 또 다른 관계성이 나타나는 부분이기도 했다.
몸이 약해 언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채유정은 쓰러진 이서준의 어머니에 자신을 투영한다.
또한 꿈을 저버릴 만큼 희생적인 이서준을 보며 자신의 가족을 떠올린다.
그렇기에 이서준을 보며 자신을 투영하던 채유정은 그가 좌절하는 것을 이해하고 결국 놓아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마는 것이다.
“…납득이 안 간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로운의 해석을 듣던 강차헌이 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왜 그런 표정인데요? 혹시 해석에 이상한 부분이라도…….”
“아니, 그런 건 없는데. 가족의 사랑을 모르겠다고?”
그 표정이 마치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물어보고 싶은 느낌이었다.
“그치만 봐봐요. 양립하며 살 수도 있는 거잖아요. 꼭 그렇게 한쪽을 희생해야만 해요? 그걸 왜 납득하는데요? 친구라면 그래도 좀 끝까지 말리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닌데 이서준 입장에서는 어머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대사에도 있잖아. ‘꿈이 밥먹여 줘? 아니잖아. 난 지금 그 한 끼가 중요해. 그래야 병원비도 댈 수 있고, 그래야 우리 엄마도 안 죽을 테니까’.”
“어머니를 살리고 나면요? 그럼 이서준에게 남는 거는요? 사실상 어머니도 곧 돌아가시잖아요.”
“그거야 대본 밖에 있는 우리나 알 수 있는 거고, 이서준은 모르는 일이지.”
“꿈도 잃고 가족도 잃으면… 이서준이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
강차헌이 미묘한 얼굴을 했다.
“…막내를 싸고돈다고 들었는데. 다 헛소문이었나?”
그는 잠시 알 수 없는 말을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자유분방하게 뻗친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네 해석은 좋아. 대본 이면에 담겨 있는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도 괜찮고. 이 씬을 네 식대로 보는 것도 틀린 건 아냐. 배우가 고민할수록 좋은 장면이 나오는 건 맞는 얘기니까. 그렇지만.”
강차헌이 잠시 말을 끊더니 이어 설명했다.
“복잡할수록 오히려 간단하게 생각하는 게 답이 될 수도 있어.”
“뭘 어떻게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는데요?”
“가족 간의 사랑.”
“……?”
“이서준을 지탱하는 건 글과 가족이지. 어머니는 삶의 중심이자 그를 지탱해 주는 기둥이거든.”
그거야말로 로운에게 있어 미지에 가까운 부분이었다.
머릿돌과의 트레이닝을 비롯해 촬영장의 배우들과 강차헌을 통해 한껏 발전된 연기라지만.
어째서인지 이 문제만큼은 상상도, 이입도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그런 가족이 있을 수 있다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한때 로운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가족을 위해.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
가족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로운은 애썼다.
받았던 정산금은 모두 가족에게 보내고 그는 구질구질하게 연명하기만 했다.
그룹이 터지고 이제는 지쳐 조금 쉬고 싶을 때에도 쉴 수 없었던 이유는 하나다.
‘돈을 보내야 하니까.’
사랑으로 시작했다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남은 것은 의무와 책임뿐이었다.
사실 사랑으로 시작했는지도 지금 와서는 의문이다.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했었지.’
쓸모를.
존재의 의의를.
더 이상 그들이 자신을 찾지 않는 것이 더 두려웠기에 로운은 어떻게든 증명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게 사랑이라면 조금 슬픈 게 아닐까…….’
이미 지난 과거.
그러나 그 과거가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졸업도 하지 못한 고등학생, 그것도 모범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몰입해서 연기하면서.
고작 감정 하나를 이해하지 못해 이렇게 끙끙대다니.
아니.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보다… 이해를 하기 싫었던 것일지도 몰라.’
주인공 이서준을 말리고 싶었던 것보다는 돌아오지 않을 애정을 갈구하다 모든 것을 놓쳐 버린 과거의 멍청한 자신일지도 몰랐다.
로운이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이자 강차헌이 툭, 말했다.
“뭐, 반드시 모든 걸 납득할 필요는 없어.”
“그럼 연기가 납작해지잖아요.”
“다른 감정을 끌어와 대체할 수는 있지. 너, 살인자 연기하는 사람들은 다 잠재적 살인자라고 생각해?”
“그건 아니지만…….”
“가족끼리의 사랑을 연상하기 어렵다면 다른 쪽으로 접근해 봐. 가령 이서준에게 어머니는 그를 지탱해 주는 기둥이라고 했었잖아.”
강차헌이 태연하게 자신의 해석을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어머니는 이서준을 지지해 주는 유일한 존재거든. 꼭 가족이라서가 아냐. 그런 유일한 존재를 잃을 수는 없잖아.”
왠지 뭔가 알 듯 말 듯 했다.
“그런 존재가 반드시 가족이라는 법은 없지. 친구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거든. 채유정이 이서준의 친구이지만 실은 이서준이 가졌던 꿈과 희망… 뭐 그런 걸 대충 의미한다 치면, 어머니를 비유하는 다른 뜻도 있을 수도 있잖아.”
그 순간.
로운은 어째서인지 청화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