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2)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32화(32/110)
32
“용케 멀쩡하네. 다른 쪽은 다 초토화인데.”
입장을 10분 남겨 놨을 무렵.
감독을 비롯해 긴장해 있는 귀로 촬영팀을 손수 살피고 온 강차헌이 다가왔다.
그는 오히려 매니저를 달래는 로운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지금쯤 말도 못 하게 떨고 있을 줄 알았더니만.”
잠깐 바람이나 쐬라며 매니저를 다독여 내보낸 로운이 물었다.
“그나저나 아직도 그래요? 감독님 아까 우황청심원 드시던데.”
“‘귀로’의 공식적인 첫 행사니까 어쩔 수 없지.”
사전질문지를 아주 생명줄처럼 꼭 쥐고 있다며 강차헌이 소식을 전했다.
“분명 분탕 치는 놈들이 있을 거거든.”
보통 제작발표회는 어느 정도 서로 원만하게 양해하며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업계 안에서 얼굴을 굳이 붉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로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감독님이 이를 가는 상대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논란이 있었을 당시 거의 업계에서 매장되다시피 했던 김 감독.
그런 그가 이제 와 다시 활동한다는 소리는 대놓고 그간의 설욕을 갚겠다는 소리일 터.
그러니 그를 외면했던 사람들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만큼 이번 제작발표회도 여러 변수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넌 걱정 안 돼? 너도 꽤나 시달릴 텐데.”
“어쩔 수 없죠. 시달릴 게 무섭다고 피할 수는 없잖아요. 어떡하겠어요. 해야죠.”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해야 한다면 제대로 하는 것이 맞다.
주어진 소중한 기회를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로운은 또 다른 후회를 쌓고 싶지 않았다.
“제법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는 게 아무리 봐도 진짜 이로운 아닌 거 같은데.”
“네. 다른 영혼이라고 했었잖아요.”
“아. 그랬었지, 참.”
이제는 익숙해진 대화가 오갔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할 노릇이었다.
연기도 강차헌도 한없이 낯설었건만 어느새 익숙해지다 못해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스탠바이. 1분 전입니다!”
스태프의 호출에 얼굴이 허옇게 뜬 감독과 조감독이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툭 치면 쓰러질 것만 같다.
그럼에도 로운은 그들에게서 설렘과 기대감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지금 입장하시겠습니다!”
긴장과 설렘 속에서 문이 열렸다.
* * *
제작발표회는 시작부터가 험난했다.
입장할 때부터 예사롭지 않던 반응.
그 불안은 캐릭터 소개를 마치고 제작 비하인드를 넘어 본격적으로 질의응답을 받는 시기에 최고점을 찍었다.
처음엔 미리 약속된 사전 질문들이 오가나 했다.
‘설마 이렇게 아무 일 없이 끝나는 건가?’
는 개뿔.
사회자가 “다른 질문 있으신 분?” 하고 묻기가 무섭게.
“N미디어의 김철수라고 합니다. 감독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K스포츠 홍길동입니다. 저도 감독님께 질문이…….”
“L매거진의 김이박 기자입니다. 감독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질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작품이 아닌 김 감독의 과거 이슈에 더 중점을 둔 내용들이었다.
대놓고 묻지는 않았지만 교묘하게 돌린 질문들이었다.
가령 이를 테면 이런 식이었다.
“한동안 작품 활동이 없으신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돌아오셨는데요. 이번 작품을 집필하시면서 영감을 받으신 곳이 따로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김성하 감독이 업계에서 사장되다시피 떠나야만 했던 이유.
그것은 그가 남의 작품을 도둑질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감독님이 뒤늦게 완성한 시나리오를 막 돌리기 시작하셨을 때 이미 그 시나리오와 거의 유사한 작품이 이미 제작 중이었다고 했었지…….’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김 감독은 자신의 무고를 증명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증명할 길이 없었다.
시나리오 초고를 작성할 때 사용했던 노트북을 이미 오래전에 분실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몰라 백방으로 찾아도 결국 찾지 못했던 김 감독이다.
시나리오 완성이 늦어진 까닭도 노트북을 잃어버렸기에 기억에 의존하여 다시 내용을 복구했기 때문이었다.
‘증거가 없으니 당연히 거짓말로 몰렸고.’
하필이면 상대가 김 감독의 절친한 친구이자 같은 영화감독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김 감독에 비해 그다지 인지도가 없던 그 감독은 해당 작품으로 대박을 쳤다.
곧장 인기 감독의 반열에 오르고 충무로의 실세가 된 상대는 권위 있는 시상식 같은 곳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흘리는 것으로 이슈를 만들어 냈다.
-비록 이 영화가 이렇게 제작되기까지 여러 힘든 일이 있었지만, 승림이가 말한 것처럼 진실은 거짓된 세상에서 스스로를 드러낼 진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믿었기에 덕분에 이렇게 여러분께, 세상에 승림이를 보여 드릴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 조승완의 영화는 한국식 히어로를 소탈하게 그려 낸 것으로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오락적인 측면도 확실히 잡은 데다가 그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수십 개의 상을 석권한 것은 물론이요.
각종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기까지 했던 것.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전 세상 사람들의 공통적인 정서를 건드렸다고 했던가?’
다수의 공감을 얻는 작품은 그만큼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다.
공감은 곧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동질감은 곧 호감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로운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여러모로 갈려 나가던 시기라 영화를 보는 건 꿈도 꾸지 못했었지만.
당시 매니저에게 지나가듯 정말 재미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유명 감독이라더니 알고 보니 표절범?
-자기 친구 작품을 도둑질하다니 진짜 뻔뻔 그 잡채;
-대체 이런 인간들은 양심이 뒤진 건가? 어떻게 남의 걸 훔칠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작품의 감독이 내비친 의미심장한 말.
당연하게도 여러 미디어에서 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안 그래도 업계에서 알음알음 돌던 제작 당시의 이야기는 사방팔방에 진실처럼 퍼져 나갔다.
김 감독은 작품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순식간에 표절범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제야 알았다고 했었지. 노트북을 가져간 사람이 누군지를.’
친구였기에 서로의 작업실에 드나드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작품 얘기를 종종 나누기도 했었던 터라 소재가 우연히 겹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김 감독은 상대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었다.
심지어 축하하기까지 했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언론에 의미심장한 말을 풀어 김 감독을 매장시키려 하기 전까지는.
“영감을 어디서 얻었느냐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기자의 질문은 명백히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또 표절을 했는지를 우회적으로 돌려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귀로’는 친구에게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장내가 일순 술렁였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김 감독과 조승완이 친구였음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벌써부터 눈을 빛내며 노트북을 와다다 두드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슬쩍 몸을 돌리며 황급히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오래전에 먼저 하늘로 떠난 친구와 나누던 편지에서 영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
예상하던 답이 아니었는지 상대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그, 편지라면 어떤…….”
“저를 항상 응원해 주던 친구였습니다. 마치 ‘귀로’의 유정이처럼요. 그러고 보면 제가 집필한 작품이라 그런지 저와 서준이가 여러 면에서 많이 닮았다고 볼 수 있겠군요.”
“어떤 면에서 닮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꼈는지 기자의 태도가 달라졌다.
눈을 빛내며 뒷이야기를 캐낼 것처럼 질문을 던졌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이고. 질문이 너무 감독님의 개인사로만 몰리네요. 잊지는 않으셨죠? 여러분은 지금 ‘귀로’의 제작발표회에 와 계신 겁니다~!”
적절하게 끼어든 사회자가 능숙하게 주제를 바꿨던 것이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이제 막 궁금해지려는데 말을 끊다니?
그러나 떠난 버스가 돌아올 리 없는 법.
‘분위기가 바꼈어.’
뭔가 있다 싶었는지 그제야 감독이 아닌 영화로도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귀로’에 대한 질문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제작 비하인드를 들으면 뭔가 알지도 모른다는 계산 속인 모양이었다.
물론.
“K매거진의 주동이입니다. 김성하 감독님의 이번 작품의 장르가 상당히 이례적이었는데요. 평소 액션 위주로 작업하시다가 드라마로 장르를 변경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모두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위의 질문만 듣는다면 건설적인 질문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장르 특성상 이전에 제작하셨던 영화들과 달리 비교적 잔잔한 영화로 보여지는데요. 영화가 잔잔한 만큼 관객들이 쉽게 몰입하지 못하거나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부분에서 혹시 대비하신 바가 있는지.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을 들어보면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게 정말로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인지.
아니면 상대를 살살 긁기 위해 하는 질문인지를.
게다가…….
“김성하 감독님의 기존 이미지에 기대하는 바가 있는 관객들이 실망할까 염려되지는 않으시는지가 궁금합니다.”
그 저격의 대상이 된다면 더욱더 모를 수가 없다.
‘굳이 저 말을 해석하자면 이런 뜻이려나……?’
-뭐 볼 것도 없는 지루한 영화에 연기력까지 개판인 놈을 데려다 놓으면 최악인데 영화 안 망할 자신 있음?
정도라고나 할까?
귀로가 김 감독 작품 결과 좀 떨어진 것도 많다.
귀로의 액션?
그래 봤자 공사판에서의 싸움이라던가 밤늦게 들이닥친 강도를 제압하는 정도밖에 없다.
그것도 액션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전까지는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접근했던 김 감독이다.
그러니 전작들과 테이스트가 완전히 달라진 만큼 충분히 나올 만한 질문이기는 했지만…….
‘너무 노골적인데.’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
여기서 로운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얼마없다.
첫째.
저런 날 선 질문을 받은 뒤 의기소침하게 아무 말도 못하기라던가.
둘째.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발끈하며 따지고 든다거나.
‘문제는 저 두 가지 방법이 죄다 최악의 수라는 거지.’
그래서 로운은 세 번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로운이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얼굴엔 미소를 한가득 지은 채였다.
“이 질문은 감독님 대신 제가 대답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