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3)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33화(33/110)
33
사람에게는 촉이라는 게 있다.
거기에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살벌한 판이라면 없던 눈치도 생기기 마련.
“감독님, 그래도 될까요?”
이 자리에서 왜 로운이 직접 나서는지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 감독은 걱정된다는 듯 로운에게 눈짓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자신이 나서 봤자 ‘제 배우 감싸기’식으로밖에 비쳐지지 않을 것을 김 감독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채유정 역할을 맡은 이로운입니다. 부족하긴 하지만 제가 감독님을 대신해서 기자분의 의문을 풀어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셨죠?”
“K매거진의 주동이입니다.”
“네, 주동이 기자님. 우선 귀로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해요. 염려하시는 부분이 어떤지도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로운이 방긋 미소를 지었다.
거리낌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그늘 한 점 없는 청량한 미소였다.
“이미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는 분이 여기 계시지 않나요?”
마침 스크린에 강차헌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걸렸다.
입장할 때부터 업무용 미소가 걸려 있던 입가에는 어느새 흥미로운 듯한 기색이 한가득이었다.
“아아. 그렇죠. 강차헌 씨는 보고 있기만 해도 근심 걱정이 사라져서 인간 부적으로도 인기가 많으신 분이니까요!”
사회자의 적절한 대꾸에 기자석에서 낮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물론 강차헌 씨뿐만 아니라 여러 선배님들의 훌륭한 연기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구일환을 비롯한 여러 베테랑들의 흐뭇한 미소가 스크린에 띄워졌다.
“자극적인 액션이나 사건은 따로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이야기에만 집중하시기 좋으실 거예요. 우리 인생에서 차가 터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일은 없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들은 일어나잖아요. 그렇기에 더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말을 마친 로운이 방긋 웃었다.
본체는 예민하고 섬세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어 처음에는 신경질적으로 보였지만.
몇 달 사이 놀라보게 인상이 달라져 있었다.
같은 얼굴이라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졌던 것.
표정 없이 있을 때는 새침하게 보이는 로운이지만 웃을 때만큼은 확실히 달라졌다.
‘너무 곱상한 게 좀 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웃는 얼굴에 침은 못 뱉을 테니까.’
로운은 조용해진 객석을 보며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기로 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걱정하실 수 있죠. 특히 이력이 없는 배우가 있다면 더욱더 퀄리티가 걱정되실 수밖에 없는 점을 저도 이해합니다. 그래서…….”
상대는 돌려 돌려 말했지만 로운은 아니었다.
대놓고 말해야 이제 로운이 터트릴 폭탄이 당위성을 지닐 수 있게 된다.
“공약을 걸어 볼까 해요.”
“예? 공약이요? 아, 갑자기 이거 흥미진진해지는데요! 어떤 공약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로운 씨?”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발언에 잠시 주춤하던 사회자가 능숙하게 말을 받아주었다.
“일주일에 백만.”
장내가 술렁였다.
배시시 웃는 순한 얼굴과 다른 대담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만으로 주변을 술렁이게 만든 로운이 말했다.
“일주일 안으로 누적 관객수 백만 점쳐 봅니다. 실패한다면 제 모든 출연료를 반납하겠습니다.”
“아니, 출연료를요? 이로운 씨, 아주 칼을 가신 모양인데요!”
백만.
아주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쉽지만은 않은 수치다.
전체 상영 기간 내내 백만도 못 찍고 셔터를 내리는 영화도 수두룩하니까.
특히 영화 외 부정적인 이슈가 끼어 있는 ‘귀로’라면 더욱 아슬아슬할 터.
갑자기 던져진 호기로운 패기에 또다시 기자들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직접 보게 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실까요?”
“제가 출연한 작품이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좋은 작품이에요. 보시는 분들은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라 생각해요.”
로운은 얼마 전 비공식으로 진행된 가편집 회의에서 보았던 ‘귀로’를 떠올렸다.
아직 후편집이 조금 남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흐름과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했다.
‘이건 될 수밖에 없어. 이건… 된다.’
가장 좋은 선택지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판별안이 아니었더라도 로운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귀로는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희미한 금빛.
그러나 곧 찬란하게 빛날 황금색이 눈앞에 선명히 보이는 것 같았다.
“아, 강차헌 씨. 손 드셨습니다! 네. 말씀하시죠!”
“저도 그 공약에 참여하고 싶습니다만.”
“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요? 강차헌 씨가 참가를 선언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로운이 벌인 예상외 돌발 이벤트에 술렁였던 장내는 이제 흥미진진한 기색만이 가득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입니다.”
“아이, 강차헌 씨가 부족하시면 세상 누가 완벽하겠습니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제가 연기를 못 하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는 편이어서요.”
농담으로 들렸는지 장내 곳곳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물론 그 성질머리는 진짜여서 알음알음 퍼져 있었는데, 팬들은 그런 모습까지 프로페셔널하다며 좋아했다.
도를 넘어선 부분도 없었고 명백히 팩트만 가지고 사감 없이 말한다는 이미지도 있어 비난의 여지조차 없었다.
역시 본업은 잘하고 볼 일이었다.
‘하긴. 그러고 보니 본체 업보 때문에 첫인상이 개판이어서 그렇지 그 뒤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으니까.’
강차헌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제가 그렇게 연기 경력이 길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호흡을 맞춰 본 배우 중 가장 기억 남는 사람을 꼽으라면 그중 하나에 이로운 씨가 있을 겁니다.”
“아, 그건 같이 귀로를 촬영해서가 아닌가요?”
“들켰나요?”
다시 한번 작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떤 점을 걱정하시는지 알지만 그 걱정을 굳이 하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이로운 씨의 공약에 함께하겠습니다.”
“설마 강차헌 씨도 출연료를 반납하시겠다는 말씀이실까요?”
“예. 이로운 씨의 말을 빌어서 보기만 해도 재미있다는 인간이 저인데. 보고도 재미없으시다면 제 잘못이니 반납하겠습니다. 하지만…….”
강차헌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늘렸다.
“실패에만 걸기는 아쉬우니 성공에도 공평하게 걸겠습니다.”
“오. 이렇게 되면 강차헌 씨가 어떤 공약을 내거실지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이로운 씨가 말한 수치를 달성하게 된다면 우선은 가볍게 프리허그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타타타타탁!
여기저기서 들리는 타자 소리가 더욱 격렬해졌다.
한차례 어그로를 던져 화제성을 확 끌어당긴 덕분인지 그 뒤는 비교적 얌전하고 정석적인 질문들이 주를 이루었다.
구구절절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강렬함이 더 기억에 남는 법.
‘이 정도면 확실하겠어.’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것은 물론이요.
사람들의 주목까지 제대로 끌었다.
더 먹음직한 먹이를 던져 주었으니 같잖은 언플 따위는 먹히지 않을 터.
‘강차헌의 동참은 예상외기는 하지만…….’
오히려 좋았다.
한차례 분위기가 뒤바뀌자 그 뒤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노련한 배우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알차게 홍보까지 마친 제작발표회가 끝날 무렵.
김 감독의 얼굴은 어느새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얘들아. 영화가 망한다 해도 내가 꼭 너희들 출연료는 챙겨 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알겠지?”
무대 뒤로 돌아온 김 감독은 몹시 감동 받은 얼굴이었는데, 잘 보니 눈가엔 이슬 같은 물기마저 반짝이고 있었다.
“에이, 김 감독 걱정도 팔자다. 쟤네들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배팅한 건데. 정작 감독이 못 믿어 주면 어떡해?”
처음엔 심판대 같던 제작발표회가 후반부에는 훈훈하게 풀어진 덕에 배우들의 얼굴도 한결 상쾌해 보였다.
“어쩜 거기서 그런 재치 있는 발상을 할 수가 있어? 우리 로운이 덕분에 이미 꼭지는 다 정해진 것 같았다니까.”
“아주 뜯어먹을 것처럼 굴다가 로운이가 공약 딱 내거는 순간 다들 눈이 휘둥그레해지던데 그거 엄청 웃겼어.”
“프리 허그는 나도 해도 되나?”
“아유. 주책맞게. 어딜 끼려 그래요? 애들 노는데 재밌게 놀게 냅둬요.”
그 누구도 실패를 걱정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뒤풀이까지 모두 끝나고 자리가 파할 무렵.
“다 잘 끝내 놓고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찬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로운에게 강차헌이 다가왔다.
…시비 거는 건가?
‘그래도 오늘은 도와줬으니까.’
로운은 순순히 대답했다.
“긴장돼서요.”
“긴장? 회장에서는 대놓고 공약까지 걸더니만, 이제 와서?”
“뭐…….”
‘너도 포토라인 앞에 서서 전 국민한테 욕먹어 보든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만큼 수많은 기자들을 생각하면 긴장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기억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걸 내팽개치고 도망칠 수는 없는 법.
‘기껏 두 번째 기회를 얻었는데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무섭지만 도망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든 두려움마저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로운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절대 실패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의식 위에 생각을 덧씌우는 것이다.
‘일종의 연기… 라고 할 수 있으려나.’
다만 대상에 몰입하는 것과 반대로 대상과 간극을 두었다는 점이 달랐지만.
어떻게 보자면 일종의 자기 세뇌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효과는 확실했다.
“그나저나 왜 끼어든 거예요?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던 로운은 슬그머니 주제를 돌렸다.
“나는 그렇다 쳐도 강차헌 씨는 곤란해지는 거 아니에요?”
로운은 잃을 것이 없지만 강차헌은 다르다.
까마득한 꼭대기에 서 있는 만큼 그를 사랑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추락을 바라는 이들도 많을 터.
밑져야 본전인 일을 강차헌이 왜 굳이 나서서 끼어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도와주고 싶었던 건가?’
그치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강차헌이?
“판을 키우고 싶은 거 아니었어?”
“그렇기는 한데요…….”
“그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이슈 몰이를 하려면 이 정도는 하는 게 좋아.”
“뭐… 강차헌 씨 덕분에 잘될 거 같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그 이슈몰이를 네가 왜 해 주는데요.
여전히 미심쩍은 와중에 강차헌이 툭, 내뱉었다.
“망할 것 같으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어.”
“네?”
“너를 끌어내던 내가 나가던. 둘 중 하나였겠지.”
언제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대본리딩 때겠지.
“뭐, 너만 이 영화가 성공할 거라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소리야.”
그렇게 중얼거린 강차헌이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잘했어.”
“네? 방금 뭐라고……?”
하필이면 바람이 세차게 불어 들리지 않았다.
“못 들었으면 됐어.”
할 말이 끝났다는 듯, 강차헌이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뭔데. 진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니까.”
그래도 덕분에 화제성 하나는 제대로 잡을 수 있었다.
로운의 공약은 자칫하다간 오만하거나 반감만을 살 수도 있었겠지만.
강차헌이 참전함으로써 분위기가 완전히 바꼈던 것이다.
‘강차헌의 팬들이 그렇게 일당백이라더니만…….’
로운은 그들이 불러올 여파를 상상해 봤다.
아마… 엄청나지 않을까?
그리고 로운의 예감은 이번에도 적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