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8)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38화(38/110)
38
영화 홍보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메이저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하나다.
“아무래도 무대인사지. 암.”
“몸이 좀 고단하기는 한데 이것만큼 확실하게 반응이 오는 건 없으니까. 개인 인지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되고.”
“그치. 보통은 우리네 같은 경우는 이렇게 관객분들 보고 할 일이 별로 없으니까. 이럴 때 열심히 얼굴도장 찍어 놔야지.”
제작발표회나 시사회도 엄밀히 따지자면 홍보의 일환이다.
요새는 유튜브까지 늘었다지만 전통적인 방식은 대충 저 정도다.
‘거기에 이제 인터뷰나 예능 같은 tv프로그램 출연이 더해지는 거지.’
이미 주연 배우들 중 일부는 유명 게스트쇼에 인터뷰를 나가기로 확정되어 있단다.
그런데 매니저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너도 곧 오퍼 들어올 거니까 기죽지 말고! 알았지? 분명히 로운이 너도 누퀴즈 나갈 수 있어!”
필사적으로 위로해 주었다.
정작 당사자인 로운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치만 지금 인지도로는 무리 아닐까요?’
물론 매니저가 상처받을까 봐 차마 그렇게 대답하진 못했지만.
어쨌거나 로운은 딱히 예능이나 tv쇼가 부럽지는 않았다.
비록 메뚜기 뜀뛰듯 움직이는 하드코어한 무인 일정이지만 오히려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한번 두고 보자, 하는 얼굴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울망울망하게 풀린 말랑한 얼굴로 호감을 잔뜩 뿜으며 나오는데.
기껍지 않을 리가 없잖은가?
“유정이랑 서준이, 지호는 안 힘들어?”
“아이, 또 또 이름 그렇게 부른다.”
“입에 붙은 걸 어떡하냐. 알았어. 로운이랑 차헌이랑 새로는 좀 괜찮고? 우리야 일환 형님만 아니면 별로 그렇게 찾지는 않으니까 애기들만 고생이지.”
오늘의 네 번째 무대 인사를 들어가기 전.
현대 파트의 주연 배우들이 앓는 소리를 했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그들은 빽빽한 하드코어 일정을 퍽 버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네, 저는 괜찮아요.”
이런 건 아이돌 시절 한창 굴려질 때에 비하면 선녀다.
실제로 힘든 것보다 즐거운 쪽이 더 강했다.
그래서 그렇게 대답했을 뿐인데 사방에서 기특하다는 칭찬과 먹거리들이 잔뜩 쏟아졌다.
“맨날 우리만 챙기지 말고 로운이 너도 잘 챙겨 먹어야지. 근데 어째 먹여도 먹여도 이렇게 살이 안 찌지?”
본체의 몇 없는 장점 중 하나는 맛있고 풍성한 끼니를 제때 챙겨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로운은 이 장점을 십분 활용하였다.
‘힘들 때일수록 잘 챙겨 먹어야지.’
힘든데 배까지 고프면 그 서러움은 말로 다 표현 못 한다.
기왕 먹는 거,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먹는 게 낫기도 하고.
‘…내가 좋아서 한 일을 너무 좋게 봐주시는 것 같은데…….’
로운이 밥심을 중요시 여겼다면.
배우들은 누가 요청하지도 않았건만 알아서 주전부리를 담당했다.
얼핏 듣기로는 김 감독이 예산 할당이 있으니 사비로 하지 말라고 애원했다고는 하는데…….
-하지만 이왕 먹을 거, 맛있고 푸짐하게 먹는 게 좋지 않을까요……?
로운이 언젠가 그렇게 말을 흘리고 간 뒤.
아마 매니저와 모종의 이야기가 오간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 뒤로도 배우들은 여러 간식거리를 챙겨왔다.
그 대다수가 로운을 쥐여 주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구는 것이 조금 곤란하긴 했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이거 우리 시골집에서 보내준 곶감인데 자연해풍으로 말려서 쫀득쫀득하고 맛있어. 당 떨어질 때 된 거 같으니까 지금 얼른 먹어. 달달해서 꿀떡 넘어갈 거야.”
“선생님도 같이 드시면 안 돼요?”
“…살쪘다니까. 그래도 로운이가 같이 먹자면 먹어야지.”
가끔 스태프나 다른 단역들의 말을 들어보면 중견 배우들을 대하기 까다롭고 어렵다는데 로운은 사실 그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렇게 좋으신 분들인데……? 개판인 본체 평판을 들으셨을 텐데도 자꾸 이렇게 먹을 것도 챙겨 주시는데…….’
먹을 것을 챙겨 주는 사람 중 나쁜 사람은 없기 마련이다.
“그나저나.”
은근슬쩍 반건조 홍시를 손에 쥐여 준 배우가 은근하게 몸을 기울였다.
“혹시 강차헌이가 괴롭히지는 않고?”
“네?”
“나한테만 살짝 얘기해 줘 봐. 괴롭히면 내가 혼내줄게.”
아니, 그렇게 말하셔도…….
‘저기 시퍼렇게 눈 뜨고 보고 있는데요?’
대기실이 그리 넓지 않은 탓에 한편에서 팔짱을 낀 채 이쪽을 ‘잘 놀고 있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 강차헌이 눈에 아주 잘 들어왔다.
“음. 딱히요.”
“진짜?”
“네.”
강차헌이 보고 있어서 한 거짓말은 아니다.
처음에는 적의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와서는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얼마 전에는 아주 대놓고 말하지 않았던가.
로운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더 희한한 건 본체와 지금의 로운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저 특이한 정신세계였다.
‘무슨 열린교회 닫힘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예전에도 으름장만 놨을 뿐, 딱히 괴롭히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텃세도 없었고 눈치 주는 일도 없었다.
그저 집요하게 관찰하기만 했지.
“왜 걱정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그… 사이 나쁘진 않아요.”
“그래? 아~ 친해져 가는 단계구나?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맞아. 그것도 청춘이지. 음. 좋을 때야.”
예?
청, 뭐요?
뭔가 이상한 단어를 들은 것 같은데?
로운이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는지 상대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쟤가 성격이 저래도 나름 괜찮은 애야. 연기도 곧잘 하고 사생활도 깨끗하고 청렴하고. 저만치 유명한데도 나태하지 않고 자기관리 칼같이 철저하게 하잖아. 우쭐할 만한데도 항상 현장에서 깍듯하게 굴고.”
그건 그랬다.
탑스타라고 딱히 목에 힘주는 것도 없었고 단역들에게도 항상 일일이 예의를 갖추며 대했다.
누구와도 선뜻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여러모로 소탈한 구석도 있었다.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얘기하는 거람?’
강차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제 로운도 잘 알았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냐는 얼굴이네. 별건 아니고……. 그냥 둘이 친구 하면 딱 좋겠다 싶어서.”
“…네?”
“아니, 들어봐 봐. 쟤가 저래 봬도 대한민국 탑이잖아. 해외에서도 먹어주고. 그럼 이제 쟤 또래 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대단하다……?”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이번에도 기특하다며 사탕을 쥐여 준다.
“강차헌이가 현장에서 혼자 NG도 없고 무슨 씬이든 족족 오케이 받아. 주인공이니 모든 촬영이 강차헌이 위주로 돌아가고 쟤만 편의를 봐줘. 그럼 로운이 너는 어떤 생각이 들 거 같아?”
“배우고 싶어요.”
실제로 로운은 강차헌이 연기하는 것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녀석과 같이 대본 연습을 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되기도 했고.
“그래. 바로 그게 차이점이야. 웬만한 애들은 자꾸 자기랑 비교하면서 기가 죽거나 아니면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든.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결국 꼴사나워지기만 하더라고. 아니면 잘됐다고 들러붙어서 뭐라도 뜯어내려고 하거나. 그런데 우리 로운이는 안 그러더라. 내가 이 바닥에 오래 있어 봐서 알아. 그게 정말 힘든 거거든.”
그저 열심히 연습하고 배우고자 했을 뿐인데.
그게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인상 깊게 보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둘이 친구 하면 딱 좋겠다 싶더라고. 로운이랑 있을 때 강차헌이가 딱 제 또래로 보이기도 하고……. 사실 로운이가 백배는 더 아깝기는 한데, 네가 아니면 쟤는 평생 친구를 못 사귀게 생겼더라.”
“다 들립니다만.”
어디까지 하는지 두고 보자는 기색으로 팔짱을 끼고 있던 강차헌이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그래서 너 친구 있어? 없지?”
“없어도 연기하는데 지장은 없습니다만.”
“그러니 맨날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랑만 어울리려 그러지. 이런 좋은 친구 나타났을 때 좀 친해져 봐. 사람이 너무 우뚝 서서 홀로 외롭다 보면 이상한 생각도 하고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야.”
강차헌에게 핀잔을 주더니 이번에는 로운을 향해 다정하게 말했다.
“사람 하나 사귀는 셈치고 친구 해 줘. 곁에 두고 지내기에도 나쁘지는 않을 거야.”
방금까지 친구라는 이름으로 저놈을 이용해 먹으려는 인간들이 넘쳐났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나도 오지랖 같아서 좀 그런데 이 나이 되니까 또 이게 이렇게 되어 버리네. 강차헌이와는 별개로 로운이 너도 애가 너무 순하고 물러서 말이야. 앞으로 분명 이상한 날파리들이 꼬일 텐데 강차헌이가 옆에 딱 버티고 서 있으면 든든하지.”
“저를 너무 인간 부적으로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너는 부적보다는 퇴치기지. 해충퇴치기.”
서로 악의가 없는걸 잘 알고 있어서인지 피식거리는 웃음이 오간다.
“확실히 저 녀석이 좀 맹하긴 하죠. 신경 써 보겠습니다.”
“그래. 친구끼리 서로 챙기고 좀 그래.”
“……?”
맹하다니, 누가?
어떻게든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맹하다니?
로운은 인정할 수 없었지만 차마 항변하지 못했다.
“입장 5분 전입니다!”
문을 별컥 열고 들어온 스태프가 입장 시간을 알렸기 때문이다.
사적인 잡담은 접어야 할 시간이었다.
* * *
개봉 이틀차.
오늘도 무인 행사를 위해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벌써 개봉 전부터 며칠째 연속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이다.
심지어 앞으로 일주일은 더 이런 스케줄이 이어질 터.
그러나 귀로의 대기실은 피곤에 쩔기는커녕 오히려 더 기운이 넘쳤다.
“우리 이러다가 정말 일주일 안에 백만 가는 거 아니야?”
자정마다 갱신되는 박스오피스 스코어를 확인한 덕이었다.
각 영화사에서 미리 예매율을 받아 어느 정도 예측은 했지만 어디까지나 예측이다.
정확한 수치는 집계가 완료된 자정에나 확인할 수 있다.
“부정 타니까 그런 말 하지 말라 했지.”
“아니, 그치만 딱 감이 오는 걸 어떡해. 첫날 17만이면 로운이가 말하는 숫자도 무리는 아닐걸?”
물론 첫날 관객 동원수가 준수하다고 해서 끝까지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제아무리 돈을 처발라 온갖 홍보를 한다 쳐도 영화가 재미없다면 다 헛소용일 뿐이다.
특히나 입소문이 빠른 한국 영화계 특성상 노잼이라는 얘기가 나오면 그대로 끝이다.
재미가 있다면 웬만한 것은 넘어간다지만 조금이라도 재미가 없다면 아무리 유명한 탑스타가 나온다 하더라도 절대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다.
“벌써부터 설레발치지 말고 일단은 두고 보자고.”
출발은 순조로웠지만 아직은 긴장을 놓을 때가 아니었다.
들뜬 분위기에서도 귀로팀은 애써 침착하게 일정을 소화해 냈다.
그러나 4일째가 되었을 때.
“이틀째랑 삼일째가 이랬는데 이 정도면… 진짜 우리 백만 가는 거 아니야?”
첫날 성적이 나왔을 때만 해도 신중을 기울이던 침착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