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43)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43화(43/110)
43
“꿈이요?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어느 날 잠을 자는데… 그 친구가 나오더라고요. 말을 걸고 싶은데 말은 안 나오고. 그런데 그 친구가 하염없이 울더군요. 계속 저만 쳐다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스튜디오 한편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로운이 슬쩍 눈을 들어 올렸다.
“…….”
[별빛(의뢰자)가 당신의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합니다!]뭔가 굉장히 많이 하셨나 봅니다?
‘하긴. 자기 덕을 떼내어 의뢰를 넣을 만큼 간절하다 했었으니까.’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어찌 됐건 덕분에 로운도 새로운 기회를,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지 않았던가.
이것이 바로 신개념 상부상조였다.
토크는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자, 그럼 오늘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실 텐데요.”
“네. 이런저런 얘기가 많았습니다만 어디까지나 귀로는 어디까지나 김성하라는 개인과는 별개로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젊은 날의 제가, 젊은 날의 여러분들이. 아무리 힘들고 고단한 삶이라도 결국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이루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기대감으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되는 가치를, 귀로를 보면서 귀로라는 이름처럼 다시 한번 거슬러 올라가 곱씹을 수 있게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곧이어 클로징 멘트가 이어지고 슬레이트가 쳐졌다.
자리가 마무리되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로운은 눈앞에 떠오른 창을 만족스럽게 확인했다.
[현재 의뢰 달성률: 92%]* * *
귀로가 개봉한 지 3주차가 되었다.
오백만을 넘어선 스코어는 어느새 육백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덕분에.
“이러다가 누퀴즈 방영되면 우리 천만까지 가는 거 아니야?”
“그러게. 이번 주말 방영이라며.”
배우들과 스태프는 천만의 꿈을 그리기도 했다.
‘과연 영향력이 대단하네.’
아직 정식 방영도 하기 전이건만.
보도자료가 돌아서인지 본래도 찾는 곳이 많았던 귀로팀이지만 이제는 그 숫자가 전의 배는 더 늘어난 기분이었다.
영화를 본 사람도, 보지 않은 사람도 이 흥미진진한 이슈에 관심이 쏠려 있는 덕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어? 로운아. 기사 떴는데?”
기민하게 위기감을 느낀 상대가 소금 맞은 지렁이처럼 반응하기 시작했다.
“‘노트북 분실 이야기는 사실무근… 억측 불쾌해’?”
제목만 봐도 감이 온다.
‘제 발이 저렸구만.’
내용은 생각대로 뻔했다.
김 감독이 지목한 노트북은 본래 조승완 자신의 것이며 구매도 본인이 했다는 반박 기사였다.
‘용케 영수증까지 찾아서 첨부하긴 했다만…….’
빈약하기 그지없는 증거.
노트북은 상대가 가지고 있는 유일하고 정당성인 셈이다.
더불어 지금까지 김 감독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유일한 원인이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김 감독이 토크 쇼에 나와 무죄를 얘기할 때부터 로운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도 그럴 것이.
[별빛(의뢰자)가 당신을 향해 굳은 결심을 내보입니다!]로운에게는 상대가 내세우는 정당성을 모두 허물어 버릴 만한 핵심 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을 위해 로운은 미리 준비해 둔 바가 있었다.
오죽하면.
[내 보기에 네 마음이 너무 여려 걱정했건만 괜한 염려였구나. 이렇게 강단 있고 야무지게 추진할 줄이야.]로운의 거침없는 행동력을 본 청화가 이렇게 감탄까지 했겠는가.
“억울하잖아요. 뺏긴 걸 뺏겼다고 제대로 말도 못 하고 내 걸 다들 다른 사람 거로 알고 있는 게.”
사실 로운의 입장에서는 의뢰 달성률만 채우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평소와는 달리 모질게 마음을 먹은 이유는…….
‘만약 내가 죽기 전에 누군가 모든 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줬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김 감독에게서 자꾸만 후회로 점철된 과거가 겹쳐 보이는 것은 기분 탓만이 아니었다.
왜 자꾸 이유 모를 동질감을 느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렇기에 로운은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구원은 셀프라고.
‘왠지 감독님의 누명을 벗기면 내가 다 후련할 것 같단 말이지?’
꼭 죽기 싫어서만은 아니다.
이 의뢰를 성공적으로 끝내면 응어리져 있던 것이 조금은 풀릴 것 같은 그런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적어도 죽기 직전 마지막 생각이 온통 후회로 뒤덮였던 씁쓸한 기억이 옅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사람에게는 죽음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 때도 있으니까.’
물론 완벽한 결말을 위한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의뢰 시스템의 허점을 찾아내 아주 잠깐이지만 의뢰인과 양방향 소통을 하기도 했고.
그 정보를 토대로 직접 발로 뛰기도 했다.
‘그치만 결과를 생각하면 이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지.’
남의 걸 뻔뻔하게 훔쳐 가서 자기 거라고 주장하는 인간이 이제 와서 여론이 흔들린다고 납죽 엎드릴 리 없다.
곧 죽어도 아니라고 잡아뗄 것이고 더 나아가 이쪽이 억지 주장을 하는 거라며 몰아가려고도 할 것이다.
김 감독을 전면에 나서도록 설득하기 전부터 로운은 이 모든 상황을 예상했다.
물론.
“…강차헌 씨가 여기까지 웬일인데요?”
김 감독에게 예상치 못한 인간이 따라붙을 줄은 몰랐지만.
“아, 나오기 전에 차헌이가 갑자기 찾아왔더라고. 기껏 와 줬는데 나 혼자 오기가 좀 그래서……. 둘이 친하기도 하니까 괜찮지?”
별로 괜찮지 않다.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친절하게 구니까 더 이상하잖아!’
대놓고 로운에게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했었던 강차헌이라지만.
그렇다고 태도의 변화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프리 허그 이벤트 때는 조금 달랐다.
로운이 헤매는 걸 비웃지 않고 은근하게 챙겨 줬다고나 할까?
그 친절을 받는 입장에서는 물음표만 떠오를 뿐이었지만.
“내가 오면 곤란하기라도 한가 봐?”
“…아뇨? 전혀 안 곤란한데요?”
그런데 이쪽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영 불손하게 느껴진다.
설마 또 의심하는 건가?
사람을 처음 볼 때부터 대뜸 의심하며 협박했던 인간이다.
지금은 바꼈다지만 또다시 의심병이 돋았을지도 모르는 일.
‘뭐. 상관없겠지. 가서 보면 명확해질 일이니까.’
“근데 무슨 일로 갑자기 연락을 다 한 거야?”
“감독님과 같이 가야 할 곳이 있어서요.”
“아, 미팅 자리 잡혔어? 내가 뭐 가서 도와줄 만한 일이 있나?”
로운이 자신과 가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는지 김 감독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뇨. 그런 자리는 아니고 개인적인 일인데 감독님께서 같이 가 주시면 좋겠어서요.”
김 감독은 여전히 어리둥절했지만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세 사람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됐다.
* * *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건데?”
“가 보시면 아실 거예요.”
“아, 궁금한데. 혹시 로운이 너도 그렇고 차헌이도 그렇고. 오늘 뜬 기사 때문에 그런 거야? 나 위로해 주는 이벤트, 뭐 그런 건가?”
안 그래도 오늘따라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왔다며 자신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김 감독이 말했다.
“어차피 그 정도는 뭐 각오하기도 했고. 앞으로 진흙탕 싸움만 남았는데 고 정도로 의기소침할 거면 시작도 안 했지.”
그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호탕하게 웃는다.
‘아마 각오하신 진흙탕 싸움 같은 건 없을걸요.’
이 기묘한 동행의 끝자락에서 김 감독은 알게 될 것이다.
그가 걱정하는 모든 것들이 괜한 것이었다고 말이다.
“아. 여기… 나 어릴 때 살던 동네 같은데?”
달리는 차창 밖을 보던 김 감독이 지나가는 풍경에서 익숙함을 느꼈는지 가만히 중얼거렸다.
“이야. 저기 원래 구멍가게 있었는데 편의점으로 바꼈네? 와. 건물도 새로 생겼어.”
추억을 더듬는 듯 목소리가 아련해졌다.
“여기도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네. 하긴… 시간이 벌써 얼마야. 삽심 년도 더 흘렀으니까 당연한가? 어, 근데 잠깐만…….”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던 김 감독.
들뜬 것처럼 이것저것 설명하던 그의 목소리가 조용해진 것은 세월이 묻어 있는 어떤 오래된 단층집 앞에 섰을 때였다.
“도착했어요.”
로운이 돌아본 김 감독의 얼굴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여기… 여기에 오는 거였어? 여기를 대체 어떻게…….”
“일단 들어가서 설명 드릴게요.”
“…들어간다고?”
김 감독은 이제 거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로운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보여 주기로 했다.
띵동!
오래되어 변색된 초인종을 누르자 곧 안쪽에서 반응이 왔다.
“언제쯤 올까 기다리고 있었어요.”
문을 열어 준 것은 머리가 하얗게 샌 노부인이었다.
그는 로운을 한 번 바라보고 그 뒤에 멀거니 서 있는 김 감독을 쳐다보더니 들어오라며 집 안으로 안내했다.
로운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는 김 감독의 표정이 멍했다.
대체 이곳이 어떤 곳이길래 김 감독의 넋이 나갔냐 하면…….
[별빛(의뢰자)가 그리움에 눈시울을 붉힙니다!]다름 아닌 김 선비의 집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의뢰자인 김 선비이자 채유정의 모티브가 된 김 감독 친구의 집이라고나 할까.
“안 그래도 어제 꿈에 그 애가 보이던 게 오늘 이렇게 연락이 오려고 그랬나 봐요. 이거, 찾으러 온 거 맞지요?”
노부인의 주름진 손이 낡은 노트를 쓸었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노트.
그것은 다름 아닌 일기장이었다.
“그런 곳에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지 뭐예요. 워낙 속이 깊은 아이라 우리에게는 힘든 티도 제대로 내지 않았는데……. 그래서 아마 보여 주고 싶지 않았나 봐요. 떠나기 전까지 꼼꼼하게 챙기던 아이가 굳이 우리에게는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겠지요. ”
[별빛(의뢰자)가 그렇지 않다며 눈물을 흘립니다!] [아이고, 이 양반아. 속세를 떠난 자가 미련을 가지면 안 돼요. 수련에 집중해야 할 양반이 지나간 과거에 미련을 두면 안 된다고! 아이구, 이거 참.]로운은 띠롱거리는 메시지와 청화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가져가요. 필요하다고 했었으니 돌려주지 않아도 돼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노부인에게 대답한 사람은 로운이 아닌 김 감독이었다.
김 감독이 떨리는 손으로 낡은 노트를 받아들었다.
“얼굴이 기억나네요. 몇 번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 아이 병원까지 찾아와 줬던 거, 기억해요. 우리 애가 늘 말하던, 그 일기장에 쓰여 있는 친구가 아마 당신이겠지요.”
오래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노부인의 잔잔한 시선이 김 감독을 향했다.
“그러니 당신에게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우리야 그 아이의 흔적을 뒤늦게나마 추억할 수 있던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
김 감독의 떨리는 손이 조심스럽게 낡은 노트의 표지를 넘겼다.
의미 없는 몇 장의 낙서 뒤로, 정갈한 글씨가 보였다.
김 감독의 눈이 내용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이상한 녀석을 만났다. 이 세상 고통을 혼자 다 지고 있는 것처럼 구는 녀석.
나날이 죽어가는 건 나인데 멀쩡한 녀석이 저렇게 구는 것이 신경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