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44)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44화(4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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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랑.
또 한 장.
떨리는 손가락이 노트를 넘겼다.
[X년 X월 X일. 날씨 기억 안 남]시간이 아깝다. 다들 어떻게 시간을 낭비할지 고민하는 것이 참 아깝다. 그 시간들을 모아 내게 주면 좋겠는데.
며칠째 학교를 안 나오던 그 녀석을 봤다.
누구는 조금이라도 더 학교에 나오고 싶어 애쓰는데 누구는 아무렇게나 빠지고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다니. 불공평하다.
팔랑.
노트가 또 한 장 넘어갔다.
[X년 X월 X일. 흐림]세상에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나만 해도 곧 터질 시한폭탄을 안고 있지 않던가.
나는 나만의 힘듦에 매몰되어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학교 따위 유급해서 몇 년이고 계속 다녀도 될 것처럼 굴던 그 녀석이 학교를 빠진 건 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가끔 결석하는 건 일을 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마다 자리를 비우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나라도 내 약점을 남들에게는 보이기 싫다. 아마 저 녀석도 그런 거겠지.
비슷한 점 하나 없는데도 왠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팔랑.
팔랑.
팔랑…….
노트를 넘기는 김 감독의 손길이 빨라진다.
처음엔 어색했던 그들이 점차 친해지며 나누었던 대화들이 낡은 노트 안에 빼곡했다.
[X년 X월 X일. 흐렸나?]성하와 저번에 나눴던 얘기를 이야기로 만들어서 보여 줬다. 내가 할 줄 아는 글쓰기라고는 일기를 쓰는 것뿐인데.
무슨 캐릭터가 좋겠냐기에 나랑 정반대면 좋겠다고 했더니 무슨 영웅을 만들어 왔다. 성격도 반대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란다. 난 이렇게 정의롭지 않은데?
[X년 X월 X일. 모름]성하가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가 신선하다며 칭찬해 줬다. 그냥 영웅이 꼭 엄청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평범했으면 좋겠다고 했을 뿐인데. 영웅이라고 항상 특별한 것만을 바라진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평범함이 소중하다는 사실은 평범함을 잃었을 때야말로 알 수 있는 법이다. 본인이 특별한 영웅은 특별하지 않음을 바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
[X년 X월 X일. 비]주승완이 성하의 글을 읽더니 유치하다며 비웃었다. 그거 주인공이 나인데 비웃다니. 언제는 자기는 왜 안 넣어주냐고 묻더니만. 재수 없어서 주승완 빼놓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
[X년 X월 X일.]검사 결과가 안 좋다. 어머니가 밤에 몰래 우신 것을 알았다. 졸업은 하고 싶었는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
[X년 X월 X일.]일기를 며칠 만에 쓰는지 모르겠다. 주승완에게 노트북은 잘 전달해 줬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주면 받을 것 같지 않아서 주승완에게 부탁했는데 잘한 것 같다. 성하가 나를 찾는다고 들었는데 걱정이다. 너무 볼품없어져서 보여 주기가 부끄럽다.
…….
노트의 내용은 뒤로 갈수록 점점 짧아지고 뜸해졌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이 일기를 통해 보여졌다.
그리고.
팔랑.
[X년 X월 X일.]성하가 쓴 글 안에서의 나는 여전히 영웅이다. 건강하고 튼튼하며 아플 일이 하나도 없는 그런 영웅.
나는 그런 영웅으로 계속해서 남아 있고 싶다.
노트의 마지막 장이 넘어갔다.
투툭.
툭.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마지막 장까지 묵묵하게 읽던 김 감독이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때 얘기해 주고 갔던 것처럼 아이가 주고받았던 편지들도 모두 모아 두었어요. 안 그래도 아이가 가기 전에 그렇게나 신신당부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잘 모아뒀었지요. …이게 중요한 거 맞지요?”
“네. 맞습니다.”
울먹이느라 정신없는 김 감독 대신 로운이 색이 바랜 편지들을 챙겼다.
분명 이 중에 조승완과 주고받은 편지가 있을 테니까.
* * *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다.
모든 증거들이 이보다 더 확실할 수는 없으니까.
일기장에는 도둑질당했던 내용들이 고스란히 김 감독의 이름을 달고 남아 있었으며.
노트북의 실구매자가 주승완이 아니라는 사실도 편지에 담겨 있을 테니 말이다.
구매 자체는 주승완이 했을지라도 어디까지나 대리 구매일 뿐.
실소유주는 김 감독이라는 사실은 명백했다.
‘유일한 증거의 신뢰도부터 무너지면 그 뒤는 수월하니까.’
상대가 가진 유일한 패가 효력을 잃게 되면 상대의 주장 또한 당연한 수순으로 정당성을 잃고 와해될 터.
‘일단 증거 확보는 끝났고. 이제 이걸 어떻게 사용하느냐만 남았는데……. 이건 역시 감독님에게 확인부터 하는 게 낫겠지?’
김 감독이 여전히 일기장을 놓지 못하는 동안.
로운은 먼저 바깥으로 나왔다.
감독에게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일기장, 네가 찾았어?”
뒤따라 나온 강차헌이 물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말하기 싫다는 소리네.”
정답이다.
사실 대답해 줄 말이 없기도 했다.
‘저 위쪽에 계신 분들이랑 소통해서 판을 짰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미친 사람 취급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다.
강차헌은 마치 희귀하고 신기한 생물체를 바라보는 것처럼 응시하더니 툭 물었다.
“너, 진짜 이로운 아닌 거 맞지?”
“그 질문 지금 몇 번째인 줄 알아요?”
이 인간은 저번에 싫어하지 않는다고 그런 말까지 했으면서 또 이런다.
“백 번은 안 채운 거 같은데.”
“…….”
설마 백 번씩이나 채울 생각이었나…….
“하긴. 그놈 머리가 이렇게 잘 돌아갈 리가 없지. 그놈이라면 지금쯤 생색이란 생색은 엄청나게 냈 을테고.”
강차헌이 중얼거렸다.
“감독님이 그러던데. 감독님 설득한 것도 너라고.”
“네, 뭐…….”
“그 얘기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혹시 일부러 부추긴 건가 싶어서 설마했는데.”
“그래서 일부러 따라온 겁니까? 의심돼서?”
“그보다는 좀 궁금했지. 대체 뭘 믿고 그러나 싶어서.”
그러니까 구경하고 싶어서 왔다는 소리다.
“구경한 소감은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가 궁금한데.”
“그거야 감독님이 정하실 일이죠.”
“하지만 판을 짠 건 이로운 너잖아. 감독님은 그저 너를 열심히 따라다니기만 한 것뿐이고.”
“그렇게까진 아니지 않아요? 그보다, 감독님하고 친한 거 아니었어요? 감독님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한데?”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맞는 말이기는 했다.
“일단 감독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려는 건 사실이에요. 어디까지나 감독님의 의향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너는?”
“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글쎄요. 만약 이게 제 일이었다면 상대도 똑같이 만들어 주고 싶을 것 같은데요.”
그저 친구를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표절 시비가 터진 뒤에 당황하여 대응이 조금 미숙했다는 까닭으로.
‘이렇게까지 고통받아야 할 이유는 못 되잖아.’
실수에 비해, 그리고 하지 않은 잘못에 비해.
김 감독은 너무나 오래 고통받았다.
김 감독의 상황에 과거가 투영되는 것은 로운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어리석었던 과거의 자신을 그 골방에서 끌어냈을 테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까.’
과거의 자신을 구할 수 없으니 로운은 김 감독을 대신하여 돕기로 했다.
“만약 감독님이 그러지 않기를 원하시면?”
“그거야 뭐… 어쩔 수 없죠. 선택은 어디까지나 감독님이 하실 일이니까요.”
아예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저 이렇게 도울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로운은 만족했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가 구원해 주기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 * *
“고맙다, 로운아.”
코가 새빨개진 김 감독이 돌아와 제일 처음 한 말이었다.
“네가 아니었으면 그 녀석이 이런 것들을 남겼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거야.”
김 감독이 제 손에 들린 낡은 일기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사실 졸업 이후로는 그 녀석을 자주 보지는 못했어. 나한테는 유학 간다고 해서 편지만 주고받았었거든.”
젖어든 목소리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을 다시 봤을 때는 서로 대화도 어려웠어. 눈 뜨고 있는 시간도 짧았고 너무 쇠약해져서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었거든.”
항상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던 터라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그마저도 어설픈 필담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그 짧은 만남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김 감독에게 연락이 닿았던 것은 상대가 이미 손쓸 수도 없이 죽음만을 기다리던 때였던 것이다.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사실 원망도 좀 했었어. 이제 대학교 가고 새로운 세상을 알다 보니 나 같은 인간이랑은 어울리기 싫어졌나, 하고. 사실 그때도 왜 그 녀석 같은 우등생이 나 같은 문제아랑 어울리냐고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많았거든.”
그래서 연락이 뜸해진 건가 생각했었다고 김 감독이 말했다.
“못난 자격지심이었던 거지. 그 녀석이 떠나기 직전에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뒤로 얼마나 내 자신이 부끄럽고 어리석게 느껴졌던지.”
훌쩍.
또 한 번 붉은 코끝이 찡긋거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렇게 모르는 척하지 말 걸 그랬지. 아무리 그 녀석이 외국에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찾아가거나 더 자주 연락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다못해 통화라도 했더라면 그 녀석이 아파 하는 것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감독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람의 때라는 건 종종 어긋나기 마련이니까요. 그 당시 감독님이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를 그분도 아시고 계실 거예요.”
어려웠기에 성공하고 싶었다.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상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김 감독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죽어라 달리는 쪽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여러 아쉬움을 남겼다지만 그 당시엔 그것이 최선이었을 터.
“그러니 후회하지 않으셔도 돼요. 감독님은 틀리지 않았어요.”
“…정말 그럴까? 그 친구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럼요.”
“이상하게 로운이 네 말을 들으면 정말 그런 것 같단 말이지.”
“속이 깊으신 분이잖아요. 충분히 이해하실 거예요.”
“맞아. 똑똑한 녀석이었으니 내가 보지 못한 뭔가를 봤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 미리 이렇게까지 준비를 해 두었을 거고.”
조승완과 주고받았던 편지의 내용.
그리고 도둑질당한 작품의 초안이 그대로 담겨 있는 일기장까지.
언젠가 쓰일 때를 대비하여 준비된 증거가 긴 시간을 넘어 마침내 김 감독의 손에 들어왔다.
그것들을 내려다보는 감독의 표정이 씁쓸해 보였다.
“일단 그놈에게 연락해 보려고.”
고해 같던 감사인사를 마친 김 감독이 말했다.
“내게 이런 게 있다는 걸 안다면 그놈도 더 이상 함부로 굴지는 못할 거야.”
킁.
빨간 코끝이 한 차례 더 훌쩍거렸다.
“답답하지? 기껏 로운이 네가 이런 걸 찾아줬는데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그치만 이걸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어. 그 녀석과의 기억을 더 이상 진창에 처박히게 두고 싶지 않다는 그런 생각이.”
그것이 감독의 선택이라면 로운은 존중했다.
사람의 생각이 제각각이듯, 아픔을 보듬는 법도 제각각이기 마련이니까.
그게 잘 통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그래서 너는 그 인간이 냉큼 알았다고 수긍할 거라 생각하느냐?]김 감독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의뢰인을 달래느라 잠시 사라졌던 청화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글쎄요. 상대가 워낙 뻔뻔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라 쉽게 백기를 들 것 같지는 않아서요.”
[그렇지? 애초에 그 정도로 조용해질 인간이었다면 기다렸다는 듯이 언플을 하지도 않았겠지. 흠.]청화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아무래도 궁금해서 안 되겠다. 내 직접 확인하고 올 테니 기다리거라!]“네? 어디를요?”
[어디긴. 그 놈팽이한테지. 조신하게 잘 기다리고 있거라. 이 몸께서 소식을 가져오도록 할 테니!]그리고 몇 시간 뒤.
청화는 호언장담한 대로 소식을 가지고 왔다.
“네? 진짜 그렇게 말했다고요?”
듣는 사람 환장하게 할 만한 소식을 말이다.